짱돌이 두부조각처럼 산산조각나다 민웅기의 수련일기

민웅기 수련일기 14/토굴의 수행- 차훈명상

  
 밤새 산개구리 소리가 천지지간에 난만했다. 어제는 1980년 오일팔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난 지 36주년인 날이었다. 믿어지지 않는다. 세월의 흐름이 그토록 빠를 수 있다는 것이. 마치 오일팔의 영령들이라도 돌아온 것일까. 산 자들의 나태와 각성을 깨우치기라도 하는 듯, 개구리 소리는 서늘한 산 밑의 밤공기를 울렸다.
 
 세월호에 잠긴 우리 생때같은 아이들의 소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일구와 삼일독립투쟁과 동학농민군들의 피맺힌 절규였는지도 모른다. 핏빛 진달래의 난만한 사태 위로 너울너울 춤추듯 울려오는 그 소리들이 나의 잠든 혼을 일깨운다.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한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그 역사에 오롯이 깨어있지 못한 자에게 삶의 진실은 없다.
 
 자연의 하늘과 역사의 하늘이 둘이 아니듯, 땅의 질서와 하늘의 도가 둘이 아니듯,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지금 이 순간에 둘이 아니듯, 티끌 속에 배어든 우주적 진실이 무궁한 시공을 넘나드는 것처럼, 지금 우리는 둘이 아니다. 너와 나, 나와 그것은 둘이 아니다. ‘나’의 마음속 우주가 저 높은 곳으로부터, 저 낮은 곳으로 흐르고 있는 것처럼.
 
 오관을 통해 스며들어온 차의 영묘한 기운이 내 전신의 기혈을 창통하고 내 의식의 미로를 뚫고 흐른다. 도인(導引)과 주시(注視)의 협조아래 자각의 기운이 어둠의 터널을 통과해오고, 주시의 대상과 주시자는 점차 하나의 또렷한 영점을 향해 서로의 빛을 투사해 들어간다.
 
 산개구리 소리들과 가여운 청춘들의 노래가 내 의식의 전면에 겹치듯 흐르다 사라진다. 실바람 타고 날아온 그윽한 향기 하나, 찔레꽃 아니면 개울가 때죽나무 꽃으로부터 왔을까. 향기가 코끝에 걸쳐있다. 알아차림의 눈길 닿는다. 꽃 향 남기고 사라진 자리엔 텅 비운 공(空) 하나 남는다.
 
 생각도 생각하는 자도, 그걸 다시 주시하는 자도, 사라지고 없다. 무상(無常)함만 흐른다. 어느 한 순간도 고정된 ‘실체’가 없다. 관찰을 지속한다.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 그것이 지금, ‘참나(眞我)’다. 그것이 ‘무아(無我)’다. 주시의 대상도 주시자도 사라진 자리에 ‘주시’의 빛만 투명한 거울 같다.
 
 장자는 말했다. ‘지극한 사람의 마음 씀은 마치 거울과 같다(至人之用心若鏡).’
 ‘장자의 거울’에 내 마음을 비춰보고 있는 듯.
 
 종남산의 새벽은 재잘거리는 새들의 노랫소리와 더불어 밝아왔었다. 새벽 서너 시엔 자동으로 일어났다. 토굴의 마당 곁을 흐르는 실개울의 얕은 물에 얼굴을 씻는다. 산 공기가 물안개 자욱한 고산의 어둠을 헤치며 내 예민한 코끝에 감긴다. 물기에 젖은 낯가죽이 간지럽다.
 
 토굴은 세 평 남짓한 방 한 칸과 간단한 부엌이 전부다. 전기가 들어왔으나 며칠 안 돼 고장이 났는지 전혀 쓸모가 없게 됐다. 깊은 산속의 토굴 행각을 자청한 이방인 수행자로선 그것도 감지덕지다. 부엌에 솥이 하나 걸려 있어서 이 솥을 이용해서 밥도 해먹고 물도 끓여서 쓴다. 단출하기야 말로 할 수 없이 단출하다. 나는 이토록 지독한 단순함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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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가 나가고 나선, 새벽마다 하는 차훈명상이 조금 번거로워졌다. 전기 탕수기로 끓이면 몇 분 안 되어 끝나는 것을, 밖의 솥에다 나무에 불을 지펴 끓여야하니, 성가시다. 그래도 그런 것쯤은, 내 유년의 추억과 그때 익혀둔 기술, 그리고 귀농살이의 자산이 있어 문제가 안 된다. 새벽이면 불을 살라서 가마솥에다 끓여낸 물을 이용해 ‘차훈’을 했다.
 
 ‘차훈명상법’은 싸부가 창제한 수행법이다. 둥글고 깊숙한 도자기에 차를 적당히 넣는다. 거기에 펄펄 끓인 물을 붓고 수건으로 얼굴과 머리를 감싼다. 차의 훈증을 쐰다. 동시에 도인호흡법과 선녀호흡법, 관상법, 그리고 기공의 타법 등을 배합하여 명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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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땐가 싸부는, 쓰촨의 청두에서 멀지 않은 청성산 일원에서 ‘기공지도사’ 과정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곳으로 달려갔다고 했다. 베이징에서 청두까진 열차로 2박3일 정도 걸린다.
 당시 기공은 중국 대륙에 일대 파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기공사 교육과정이 성행한 것도 당연했다. 유명세를 타는 기공사 배출과정엔 전국적으로 지망생들이 쇄도했다. 참가비용도 만만찮게 들었다. 몇박며칠동안의 장거리 이동도 불사하듯 찾아드니, 그 지원 인파의 수효나 열기가 어느 정도였을지 가늠키 어렵지 않다.
 
 싸부도 어느 땐가 그 바람을 타고, 청성산 일원의 동굴 수련과정에 참여한 것이다. 3주간의 교육과정 중 첫 일주일간은 단식을 시킨다. 깜깜한 동굴 속에서 전등불 한 개 없이 일주일동안을 산송장처럼 견뎌내야 했다. 스님은 암담했던 당시의 심경을 남의 말 하듯 했다.
 그렇게 생사를 돌보지 않은 한 주간의 서바이벌 단식의 시간을 보내고 동굴을 나왔다.  그러자 지도자는 기염을 토하듯 일동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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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여러분 앞에는 짱돌이 하나씩 놓여있습니다. 이제부터 손가락 하나로 짱돌 을 깨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이 돌을 짱돌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돌이 아니고, 단지 두부일 뿐입니다. 자, 속으로 이것을 두부라고 여기고, 검지 손가락을 들어 가볍게 내리치십시오.”
 “네에.....?”
 “기공의 힘은 다만 믿음으로부터 나옵니다. 의심은 금물입니다. 두부를 내려치듯 가볍게 내려치십시오. 어서!”
 
 일동은 시키는 대로, 그저 일념으로 내려쳤다.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각자의 앞에 놓여있던 짱돌들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참가자들은 까악, 놀라고 말았다.
 
글 민웅기(<태극권과 노자>저자,송계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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