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친딸 조카도 손빠른 동서도 ‘이젠 괜찮다’ 생생육아
2011.09.08 10:49 신순화 Edit
결혼하고 나서 맞는 명절은 정말 달랐다.
신씨 가문 셋째 딸에서 강릉 최씨 둘째 며느리로 바뀐 내 신분 때문이었다.
처녀적엔 명절 아침에만 조금 일찍 일어나서 청소와 음식 차리는 일을 돕다가
시집간 자매들이 인사하러 오면 함께 밥 먹는 일로 잠깐 분주했을 뿐 자매들이 돌아가면
오후엔 나도 시내로 놀러가곤 했었다. 함께 놀 친구들이 없으면 혼자 영화를 보기도 했다.
며느리의 명절은 당일의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명절 일주일 전부터는 준비를 해야 한다.
우선 시댁 식구들 선물을 산다.
시댁 식구들은 자주 볼 수 없기 때문에 오랫만에 다 모이는 설과 추석에는 꼭 서로 선물을 하는 가풍이 있다.
서울에 계신 시이모님을 모시고 이모부님 산소에 벌초를 가는 일도 중요하다.
이모님은 딸 하나만 두고 40대에 청상이 되신 분이라 가장 가까이 사는 조카인 우리 남편이
늘 아들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남편의 고향은 강릉이다.
나는 대관령을 구비구비 넘어 강릉 향교에서 전통혼례를 올리는 것으로
강릉 최씨 집안의 둘째 며느리가 되었다.
시부모님은 아들만 셋을 두셨는데 남편은 둘째 아들이지만 출가는 제일 늦어서 우리 아이들이 제일 어리다.
형님네 아이들이 셋, 동서네 아이들이 둘, 그래서 다 모이면 애들만 여덟에 어른이 여덟이다.
적은 숫자는 아니다.
시집을 가서 맞는 명절은 단순히 식구들이 모두 모여 안부를 묻고 제사를 올리는 날만은 아니었다.
명절이란, 무엇보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자손들의 성장을 확인하는 날이었다.
키가 얼마나 컸는지, 학교생활은 어떤지, 건강은 어떤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집안의 모든 어른들에게 선 보이는 자리기도 하다.
그래서 명절때 아이들의 컨디션은 아주 중요하다.
그동안 내내 건강했다가도 명절 때 감기 걸려 데리고 가면 아이들 단도리를 잘못한 엄마가 된다.
우리 아이들 셋도 여름내 건강했다가 일교차가 커진 요즘 콧물에 기침을 하는 녀석들이 있어 걱정이 된다.
손주들을 끔찍히 아끼시는 어머님은 아이들 온 몸에 생긴 모기 물린 자국에도 한 소리 하실것 같다.
'에미가 애들 모기 물리지 않게 챙기지 않고서는...'
이쁜 몸에 남은 자국들에 마음을 상하실게다.
아아~ 얄미운 모기들.
학교에서 공부는 잘 하는지, 시험은 잘 봤는지, 무슨 상을 타고 어떤 대회에 나갔는지 같은
온갖 성취들이 줄줄이 나올것이다. 요 대목에선 엄친딸 수준으로 탁월한 성과를 올리고 있는
동서의 맏딸이 가장 빛날 것이다. 학교 성적으로는 울 아들이 내밀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지만
어머님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키가 쑤욱 커서 안심이다.
다섯살 윤정이는 언제나 야무지고 똑 부러지는 말 솜씨에 길고 반짝거리는 머리칼로 칭찬을
듬뿍 받고 있고 게다가 한창 꽃처럼 피어나는 이룸이가 있으니 든든하다. ㅎㅎ
부모님 드릴 용돈도 넉넉히 준비해야 한다.
어머님은 매년 고추를 직접 사서 햇볕에 말려서 질 좋은 태양초 고춧가루를 만들어
추석때 챙겨 주시곤 했는데 올해는 고추값이 너무 비싸서 고생을 많이 하셨단다.
고춧가루 값도 챙기고 명절 쇠는데 쓰실 용돈도 챙겨야 한다.
그동안 여기 저기 글 써서 얻은 원고료가 한 몫 하겠다.
내가 번 돈이라고 드리면 더 좋아하실 게다.
'내려갈 땐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나'도 고민이 된다.
제사는 큰댁에 가서 드리는데 형님은 큰댁에 갈 때마다 꼭 맏며느리로서 어울리는 얌전하고
정숙한 옷차림을 하시던데 젖먹이 아이가 있는 나는 아무래도 편한 옷을 입기 마련이다.
어쩌면 형님과 동서는 한복을 입을지도 모른다. 어머님이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형님과 동서는 내가 봐도 정말 타고난 효부 며느리다.
어머님의 뜻을 늘 살펴서 기뻐하시는 대로 하려고 애쓴다. 난....잘 못한다.
한복만 하더라도 늘 젖먹이가 있어 나만 평상복을 입고 가곤 했다.
올해도 예외가 없겠다. 올 여름엔 티셔츠 두 어개 새로 산 게 고작인데 추석에 내려갈 것을 대비해서
얌전한 옷이라도 한 벌 사야하나... 고민중이다.
평소에 옷차림에 별로 신경쓰지 않고 늘 후줄근하게 지내는 게으른 며느리라 발등에 불 떨어졌다.
그러나 역시 무엇보다 체력과 컨디션 조절이 중요하다.
시댁에 내려가는 일부터가 막히고 밀리는 차 안에서 세 아이들과 씨름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도착도 하기 전에 지치기 일쑤다.
시댁에 가면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고 계속 움직이고
열 여섯 명 식구의 먹을 음식과 명절 음식을 만들고
큰 댁에 가서 일 해드리고
친척집 돌며 인사하는 강행군을 해야 한다.
여기에 밤마다 식구들에게서 나오는 빨래를 해야 하고 청소에 정리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 게으르고 불규칙하게 생활하던 내게는 아주 고된 일정이다.
결혼하고 몇 해동안 명절에만 내려가면 변비에 두통으로 고생을 했다.
명절 때만 찾아오는 증상들이다.
갑자기 바뀐 생활리듬에 몸과 마음이 따라가지 못해서 생기는 증상이다.
이제 이런 증상들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한 번 다녀오면 며칠씩 힘들어서 고생을 한다.
사실 힘든 일의 대부분은, 손이 워낙 빠르고 부지런한 형님과 동서가 다 하고
나는 옆에서 돕는 것이 고작이지만 도무지 눈썰미가 없고 요령이 늘지 않아
내려갈 때마다 일 순서를 헤매고 실수하느라 몸 고생이 많다.
형님과 동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도 않고 수 많은 일을 척척 해내면서 식구들 빨래도 나오는대로
다 손으로 비벼 빨고 밤에는 곯아 떨어질 것 같아도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그간의 회포를 푸는 막강 체력 소유자들이다.
어린애가 있다고 일도 제일 적게 하는 나는 빨래도 챙겨간 가방에 따로 모아 온다.
처음엔 형님과 동서 흉내 낸다고 손으로 비벼 빠는 시늉을 했는데
평소에도 손 빨래를 잘 안 하는 나이다 보니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처럼,
힘들고 어려워서 포기했다.
게으른 며느리 소리 들어도 할 수 없다고 단념하고는 빨래 가방에 다 챙겨 온다.
게다가 젖 먹이느라 술도 못하니 형님과 동서의 술 자리에 끼지도 못한다.
어머님은 술을 안 마시더라도 같이 술자리에 앉아서 얘기도 하면서 함께 즐기기를 바라시지만
내 저질 체력은 도무지 버티지를 못한다. 그래서 늘 정없고 저만 챙기는 며느리가 되고 만다. ㅠㅠ
결혼하고 한동안은 명절에 시댁에만 다녀오면 마음이 많이 상하곤 했다.
생활 스타일이 너무 다른 형님과 동서 사이에서 내 역할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양육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오는 스트레스도 컸다.
오래 안 만났던 대가족이 한 집에 모여 며칠씩 함께 지내다보면 불편하고 다른 일이 너무 많았다.
그렇지만 그런 어려움들도 세월이 지나니까 조금씩 편해졌다.
이젠 형님과 동서도 내 스타일을 아니까 조금씩 접어 주는 것들이 생기고
아이들도 크니까 싸우고 아웅다웅하는 것들도 줄고 불편해도 익숙해지는 것들이 주는 편안함이 생기는 것이다.
더디긴 하지만 요령이 는 탓도 있겠다.
이젠 연세가 많이 드신 시부모님의 건강도 늘 염려가 되고, 손주와 자식들에게 손 벌리기 싫어
아직도 기를 쓰고 품일을 다녀가며 용돈을 버시는 어머님도 짠하다.
애를 셋이나 낳고 보니 이미 나보다 먼저 세 아이를 반듯하게 키워 오신 형님에게 진심으로 고개도 숙여지고
알뜰하고 재주 많기로는 둘째가면 서러울 살림꾼 동서에게도 감탄과 고마움이 든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촌들과 재미나게 어울려 노는 아이들 모습도 좋고, 제일 어린 우리 아이들을
아끼고 이뻐해주는 조카들도 고맙다.
구정 때 찾아 뵙고 무려 반년 만에 가는 시댁이다.
비가 한없이 내리던 여름휴가 땐 찾아 가지도 못했다.
1년에 두세 차례가 고작인 시댁 나들이라 이번엔 설레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
이룸이가 이만큼이나 자란 모습을 보면 얼마나 흐믓해 하실까.
좋은 모습 많이 보여 드리고 일도 좀 잘 하고 와야지... 다짐도 하게 된다.
나도 아들을 하나 두고 나니까 어머님이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
언젠가는 나도 시어머니가 될테고 내 집이 시댁이 될 것을 생각하면
자식을 그리워하는 어머님의 마음이 언젠가는 내 마음일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고 오는 길이 멀고 가서도 힘들긴 하겠지만 이 다음에 나도 내 아들과
멀리 떨어져 살게 되면 얼마나 그립고 보고싶을 것인가.
내 며느리가 내 집을 불편해하고 어려워하면 나도 안스럽고 속상할 것 같다.
지금 어머님 마음이, 훗날 나의 마음이다.
그러면 이해안 될 것도 없고, 못 할 것도 없다.
잘 해드리고 오고 싶다.
개와 닭들을 두고 며칠씩 집을 비우는 것이 맘에 걸리긴 하지만
올 추석엔 정말 이쁘고 대견한 며느리로서 효도 많이 하고 오고 싶다.
아아아~, 마음이 결연해진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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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씨 안녕하세요. 글로만 늘 반갑게 뵙고 정작 인사를 몇번 못했네요. 저는 강릉에 살고 있구요, 딸 하나, 아들 하나 둔 애엄마에요. 저 역시 결혼 5년차인데... 저는 시댁이 정말 너무너무너무~~ 어렵고 힘드네요. (싫다고 하면 남편이 너무 서운해하니 싫다는 말은 못꺼내겠어요.) 그나마 멀리 있어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살아요.
한번은 남편 방학기간에 한달 가량 시댁에 머문적이 있었어요. 그 동안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매일 남편만나면 올라가겠다. 도저히 이곳에서는 못 살겠다. 들들 볶기도 많이했어요. 그러면 남편은 또 제 어머니한테 쪼르르~ 달려가 왜 우리 집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만드냐 소리소리를 지르고 .. ㅠㅠ (너무 힘들어서 푸념한 것인데 남편은 저를 위해준답시고 언제나 그렇게 어머님께 화를 내었더랍니다) 한상에서 밥먹기도 어려울 지경으로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었어요. 한번은 시어머니가 찾아오셔서 '니가 애 키워서 한 번 살아봐라 아들이 장가가기 전에는 저러지 않았는데.. 얼마나 원망스럽고 서러운줄 아냐' 하시며 막 우시더라구요..
그 때에는 잘 해 드리리라 다짐했지만 또 시간이 지나니 관계가 너무 힘들고 어렵게만 생각이 되네요.
시간이 지나면 많은 부분이 해결이 될까요? 정말 명절때만 되면 저 역시 옷 걱정에(애만 키우다보니 옷이 없어서요) 용돈 걱정에 제수음식 만들 생각과(음식도 정말 지지리 못하는 며느립니다) 그 시간들을 견디어낼 걱정에 아직은 정신이 없네요.
신순화씨의 글을 보고 고마움과 함께 몇 가지 소소한 걱정이 생각나 덧글을 답니다.
명절 잘 보내고 오세요 -
저도 결혼하고 몇 해 동안 힘들었어요. 지금도 형님과 동서는 서로 친자매처럼 자주 연락하고 돈독하게 지내는데 가운데 낀 저만 서먹서먹 하지요. 가풍도 많이 다르고 문화도 많이 다르고 생활습관도 너무 달라서 적응을 잘 못했어요. 형님과 동서는 시댁에만 오면 편하지 않아 하는 제 모습을 늘 서운해 하구요. 왜 자기집처럼 여기지 못할까, 왜 자기 식구처럼 여기지 못할까 안타까와 하시는데 1년에 두 세 차례 만나는 것으로 진짜 형제 자매같은 감정이 들기는 어렵더라구요.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조금씩 적응되는게 생기더라구요. 5년차까지는 저도 퍽 힘들 때였답니다. 조금만 더 지내보세요. 힘 내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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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 결혼하면 양가부모와 같이 의논해서,
설날은 남자쪽에 먼저, 추석은 여자쪽에 먼저, 다음해는 또 바꿔서, 뭐 이런 식으로 해 보면 어떨까 싶어요.
이런 생각은 아무래도 남자쪽 부모님이 먼저 하고, 얘기를 해줘야 되는건데...
저희 자식들 세대는 외동인 경우가 많을테니 좀 달라질까요?
솔직히 저는 남편이 두 형제 중 막내인데요, 형님네는 늘 명절 바로 전날 오후에 오십니다. 저는 차가 없고 아이는 어려서 기차표에 매인 몸이라 "명절 전날 오전에 시댁 갔다가 명절 당일 오후에 친정가는"게 힘들어요.기차표도 그 시간대가 제일 먼저 매진되거든요.
작년부터는 그냥 작정하고 명절 전전전날 내려갑니다. 시부모님은 아주 좋아하시죠. 그런데도 명절날 낮이나 오후에 올라가는 표 끊었다 그러면 "벌써가냐" "왜 그렇게 끊었냐" 그러십니다. 아니, 왜 내가 친정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안하실까요?? 양선아 기자님 말대로 결혼한 여자에게 명절이 힘든 제일 큰 이유는 "남자집" 중심 때문인 것 같아요. 양선아님처럼 친부모님이 혼자 계신 상황이면 더 그렇겠죠. 아무리 시부모님이 잘 해주시고, 음식 싸주시고 해도...
물론, 일도 쉬운 건 아닙니다. 정말이지 40대 짱짱한 두 아들은 널부러져 tv 보고 있고, 며느리만...!! 저희 시어머니는 아들이 밥 먹고 빈그릇 설겆이통에 집어넣는 것도 싫어하십니다. 남자들이 밥 기다리며 정치사회경제를 논하는 동안 여자들은 밥상 차리고, 남자들 밥 먹는동안 여자들은 과일 깎고, 남자들 과일 먹는 동안 여자들 상 치우고, 남자들이 이제 친척집 누구네 가자고 서두는 동안 여자들 허겁지겁 식은 밥 먹습니다. 결혼 초에는 명절 때 한 집안 내에서 홍해 갈라지듯 나뉜 성별분업의 현장을 보며 정말 토하는 줄 알았습니다. 와... 결국 나도 결혼이란 걸 해서 이 꼴을 보는구나... 10살짜리 땅콩만한 조카녀석도 사내라고 밥상에 앉아 밥 먹는데...
솔직히 제 자식세대에 얼마나 바뀔까 회의적이기도 해요. 저희 자식들도 다 이거 보고 크지 않습니까?
저는 올해로 5년짼데, 명절을 맞을 때마다 일거리가 많아서 힘들다기 보다는,,
"왜 남자집에 먼저 가야만! 하나" 이 분노가 당최 해소가 안됩니다.
왜 명절엔 꼭 남자집 우선이어야 하나요? 왜왜왜왜왜왜왜왜~~~~~
명절 때 부모님은 당연히 딸아들 안가리고 자식들 다 모여서 노는거 보고 싶어하시죠.
고향 내려간김에 사촌들도 보고 싶고, 이모, 외삼촌 등등도 뵙고 싶고,
그거야 인지상정인데, 사촌이건 친척이건 결국 남편일가 우선아닙니까.
저는 친정이 1남 3녀인데, 엄마는 세 딸들이 온 뒤에야 올케언니가 친정가길 원하십니다.
올케언니는 자기 친정에 역시 올케언니가 있는데 그 분들은 또 제 올케언니가 와야 친정에 가시죠.
이건 뭐, 물고물리는 관계가 아닌가...
저는 딸 하나만 키우는데, 딸래미가 결혼해서 명절 때 얘 기다리는데 몇시까지 못오네 어쩌네 하면
정말 속상할 것 같아요. 20년 뒤에는 좀 달라질까요?
우리나라 명절, 참 좋긴 한데, 남성 중심, 정확하게는 남편일가 중심인거, 이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의 문제의식은 분노가 되었고,
남편은 부모님 살아계시는 동안은 어쩔 수 없지않냐고 하고, 저도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분!노!는 여전합니다.
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