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북한의 유일한 바깥창구 중국… 손해 보면서도 의존은 심화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장의 두 번째 본지 기고문은 북-중 접경지대 탐방기입니다. 남북 경협이 교착 상태에 놓인 지금, 북한은 외부 경제와의 거의 유일한 창구인 중국에 대한 과거보다 더 깊이 의존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는 계속될 전망입니다. ―편집자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장 http://www.facebook.com/atbppc

총 13일, 2,000km에 이르는 여정은 북-중 접경지대에서 시작하여 접경지대에서 끝났다.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도시 단동에서 출발하여 두만강 하구의 중국측 도시인 훈춘에서 끝마친 이번 여행은 북한과 중국의 경제협력 현장을 탐방하기 위한 것이었다. 북한을 직접 방문할 수는 없는 관계로 북-중 접경지대를 중심으로 탐방할 수 밖에 없었다.

북한과 중국의 경제협력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었다. 첫 번째로 북-중 경제협력은 자원을 주고 받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를 테면 북한은 중국에 광물을 주고, 그 대신 북한이 필요로 하는 중유나 식량, 공산품 등을 받는 방식이다. 두 번째로는 인적 교류를 통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중국에 투자한 외국기업이나 중국기업에 필요한 노동력을 북한의 인력으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심양공항에서 내려 4시간 버스를 탄 끝에 단동에 도착했다. 이튿날 우선 단동지역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고용되어 있는 외국 및 중국 기업을 방문했다. 단동시에서 동강시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싱가포르 기업가가 세운 의류제조 공장에서는 400명의 북한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었다. 또다른 중국 식품 공장에는 200명의 북한 근로자가 고용되어 일하고 있었다.

우리를 안내한 사람의 말에 따르면 한국인이 세운 기업에도 북한 근로자가 고용되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외형상 이들 기업은 중국기업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 정부의 5․24 대북 경제제재 조치에 따라 우리 기업이 북한에 금전적인 이득을 주는 경제행위를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는 행위 또한 포함된다. 그래서 이들 기업은 실제 사장인 우리나라 사람 대신 중국인 법인대표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워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한국 사람의 방문을 반기지 않는다.


중국 단동의 식품공장에서 북한 근로자들이 일하는 모습.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는 중노동이라 중국 노동자들은 기피한다고 한다. (사진 필자 제공)

이렇게까지 하면서도 북한 근로자를 고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 사장들이 어떻게든 북한 정부에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종북세력의 일당이기 때문일까? 답은 간명하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중국도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인건비가 꽤나 상승하였으며 중국인들 중에서도 일명 ‘3D’ 업종을 기피하는 경우가 늘었다 한다. 결국 북한의 노동력은 채산성을 우선으로 하는 기업인들의 자연스러운 선택이 되는 것이다.

다음날에는 단동세관을 방문했다. 필자는 지금껏 단동을 십여 차례 방문하였는데 매 방문시마다 꼭 단동세관을 방문한다. 이곳은 북-중 교역의 50% 이상이 오고가는 곳으로, 이곳을 오가는 차량이나 사람을 관찰하면 북-중 교역의 형태나 규모를 어림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단동세관이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보따리상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북한으로 들어가는 중국 공산품과 식량을 실은 북한 차량들을 항상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방문한 단동세관은 색다른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중국 차량이 대부분이었고 북한으로 싣고 가는 물품 또한 상당히 다른 면면을 보여주었다. 건설기계류나 건설자재를 실은 차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마도 신의주 황금평 개발을 중국이 담당하기로 한 것 때문인 듯 싶다. 과연 북한의 발표대로 황금평 개발은 중국이 담당하며 이에 필요한 자재 또한 중국에서 가져가는 것 같다.

다음날에는 열차를 타고 22시간을 움직여 길림성의 화룡시로 향했다. 화룡에서 우린 북한 무산의 광산 개발에 대한 놀라운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화룡시에는 중국 각지로 연결된 철도가 있건만 30km 정도 떨어진 북한 무산으로는 철도가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북한 무산시 반대편에 위치한 남평이란 중국의 작은 시골마을까지 철광을 실어나르기 위한 전용철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북한 무산 광산에서 가져오는 철광을 일반 화물 차량이 아닌 철도로 수송하기 위해서란다. 참고로 북한 무산 광산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철광산이고 그 함량 또한 아주 좋다고 알려져 있다.

무산 광산은 중국이 100% 설비를 투자하여 생산량의 50%를 받기로 북-중 지방정부간 협의를 한 상태라고 한다. 중국은 보다 안정적인 철광 자원 확보를 위해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협정을 요청한 상태이나 최근 권좌에 오른 김정은이 비준을 하지 않고 있다 한다. 중국이 국제 시세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철광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화룡에서 북한 무산 광산으로 이어지는 철도 부설 공사 현장 (사진 필자 제공)

북-중 무역 경험이 10년이 넘는 현지의 한 사업가는 철광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여러 가지 갈등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제난에 시달리는 북한 기업의 입장에서는 공장을 돌려야 하는 절박함 때문에 중국 측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북한 기업이 자기네 정부에는 중국과 국제 시세에 거래를 하는 것처럼 보고하고, 실제로는 제공하는 철광의 양을 더 얹어주고 있다. 1톤의 철광을 국제 시세로 중국 측에 판매하는 서류에 사인은 하되, 실제로는 1.2톤 정도를 중국 측에 넘겨주기로 이면합의를 하는 게 북-중 교역의 일반적인 형태라고 한다.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북한으로서는 중국과의 거래를 계속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5․24조치로 인해 우리나라와의 연결고리도 끊어진 상황에서 중국은 북한에게 있어 바깥 경제와의 거의 유일한 통로나 다름없기 때문에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 다음 우리가 찾은 곳은 화룡시에서 3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장백현이었다. 중국이 워낙 큰 나라이다 보니 그런지, 화룡시의 사람들은 여기 다녀오는 것을 옆동네 다녀온다고 말한다. 길림성 장백현은 북한 량강도 혜산과 맞닿은 도시로 그 규모는 작은 편이다. 도리어 북한 량강도의 도청소재지인 혜산의 인구가 장백현보다 10배 정도 많다. 장백현 북-중 세관 바로 앞에는 개발구(우리나라의 공단과 유사) 건설이 한창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일할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한다. 중국의 시골 소도시에서는 대부분의 인구가 대도시나 외국으로 빠져나간 상태이기 때문이다. 현지인 안내자는 공단을 운영하려면 북한에서 인력을 데려와야 할 것이라 했다.

다음날에는 길림성 훈춘시를 방문했다. 훈춘시는 북한 나선경제특구로 연결되는 권하-원정리 세관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지리적으로 중국 동북경제의 매우 중요한 물류운송지역이다. 중국 동북지방에는 지하자원이 많다. 이 자원을 중국 남방의 대도시로 운반하는 데 가장 중요한 창구가 바로 북한 나선항이다. 북한의 나선항을 통해 운반하면, 중국의 남방 대도시인 광주나 상해, 청도로 가는 물류를 육로로 운송하는 것보다 그 비용이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적게 든다. 이미 중국은 중국 훈춘에서 북한 나선항으로 이어지는 북한측 도로 확장 공사를 중국측 투자로 완료한 상태며, 나선항 3개 부두를 50년간 사용하기로 북-중 계약을 한 사실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다.

우리는 이 세관 근처에서 북한의 김일성화, 김정일화를 키우고 있는 온실을 보았다. 우리를 안내한 사업가의 말에 의하면 훈춘 출신 중국인이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건설한 온실이라고 한다. 이 온실에서 생산되는 꽃을 가지고 1년에 한두 차례 전시회를 개최하며 이때 북한의 고위 당간부들을 중국으로 초청한다고 한다. 이 중국인 사업가는 북한이 절대적으로 신성시하고 우상화하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상징하는 김일성화와 김정일화 온실을 운영함으로써 전시회 때마다 북한의 고위 간부들을 초대하여 인맥을 맺고, 이를 활용하여 대북 사업을 한다. 북한으로부터 희귀자원, 특산품, 수산물들을 수입하여 중국에 판매하며 또한 북한에 중국 공산품, 과일 등을 가져다 판매하는 것으로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한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북한 세관원들도 이 온실 운영자가 가져가는 물품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지 없이 그냥 통과시킨다 했다. 그래서 이 사업가와 친분을 맺으려는 중국의 사업가들이 이 온실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리고는 도문시에 위치한 한 피복 공장을 찾았다. 이 공장에는 북한에서 온 400명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었다. 사진 촬영이나 북한 근로자와의 인터뷰는 할 수 없었지만 그 대신 공장의 운영자를 만날 수 있었다. 주 투자자는 한국인이고 대표는 중국인이었다. 저녁에 만난 한국인 투자자는 우리나라의 현행 법률상 제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인을 법인대표로 세웠다는 사실과 북한 근로자를 고용하면서 지불하는 비용 등을 비롯한 공장 운영의 세부사항에 대해 많은 것들을 설명해 주었다.


북한 노동자 400명이 고용되어 있는 도문경제개발구내 피복공장 (사진 필자 제공)

사실상 북한 근로자의 고용주인 이 우리나라 사업가는 “북한에 무상 증여성 지원은 안 된다. 하지만 북한 인력을 활용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협력의 형태까지 불법으로 규정한 것은 우스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도문 공단에는 피복 공장 외에도 IT분야, 비닐 공장 등의 여러 기업에 북한 인력이 적지 않게 채용되어 있었다.

도문에서 사흘 정도를 쉬고서 길림성 집안시로 이동했다. 집안시는 광개토대왕의 유적이 많은 지역이다. 아직 이곳에서는 북-중 경제협력이 활발하지 않았다. 다만 그 준비가 되어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북한 자강도 만포시와 집안시 간 왕복 4차선 압록강 대교가 건설 중에 있었고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중국이 자본과 자재를 대고 북한의 속도전청년돌격대가 동원되어 단 두 달만에 건설되었다 한다. 과연 속도전청년돌격대다운 모습이었다.

북-중간 경제협력이 증대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엄연한 사실이다. 다만 이번 탐방을 통해 본 북-중 경제협력은 북한이 손해를 감수하면서 서서히 중국 경제에 편입되는 형식이었다. 북한은 오래 전부터 개방을 원해 왔지만 체제유지를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에 보다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와는 최근 들어 그 관계가 더욱 악화되었으니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가 경제 봉쇄와 교류 단절 정책을 고수하는 한, 북한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북-중 경제협력에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형덕    평남 개천 출신으로 1993년 19세의 나이로 탈북하여 중국과 베트남, 홍콩을 거쳐 이듬해에 한국에 입국했다. 이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여 탈북자로서는 최초로 국회의원 비서관을 지냈다. 2005년에는 탈북자 최초로 금강산 관광을 하기도 했다. 2008년 미국 연수 이후 2010년에 귀국하여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를 세워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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