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보다 민간인 더 많이 죽인 비인도적 무기 집속탄 무기
2011.10.11 18:02 ppankku Edit
군인보다 민간인 더 많이 죽인 비인도적 무기 집속탄
평화운동가의 집속탄금지협약(CCM) 2차 당사국회의 참가기
여옥 <무기제로> 활동가
집속탄금지협약(CCM, Convention on Cluster Munitions)은 집속탄의 사용, 생산, 비축, 이전을 금지하는 협약으로 2008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체결돼 2010년 8월 1일부터 국제법으로서의 효력이 발생했다. 작년 라오스에 이어 올해 두 번째 회의가 열리는 레바논은 1975년 이래 700여명이 넘는 집속탄 피해자가 발생한 나라다.
라오스와 레바논처럼 집속탄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가 심각한 나라에서 당사국회의가 열리는 것은 집속탄이라는 무기가 가져오는 고통과 현실을 직면함으로써 이 끔찍한 무기를 없애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노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이번 회의는 복잡한 안보상황에 처해 있고 집속탄 사용의 경험도 있는 중동에서 열리는 군축회의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 군인들이 집속탄 제거작업을 하는 레바논 남부 나바티예 지역의 모습 ⓒ 무기제로팀
2006년 7월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전쟁이 끝날 무렵, 이스라엘은 4백만 개 이상의 집속탄을 레바논 남부에 뿌렸다. UN의 중재로 휴전이 선포된 8월 14일 이후에도 불발 집속탄으로 인한 사상자는 4백 명이 넘었고, 그 중 90%는 민간인이며 1/3은 18세 이하였다. 집속탄 오염지역 정화작업이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불발탄은 삶의 영역 곳곳에서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9월 12일, 레바논 남부 지역을 방문하는 것으로 이번 회의의 공식 일정이 시작되었다.
현장방문을 했던 레바논 남부의 나바티예(Nabatiyeh) 지역은 2006년 이스라엘의 집속탄 폭격 당시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하나로, 불발 집속탄으로 오염된 지역에서 제거작업을 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당일 오전에도 작업 중 집속탄 3개를 발견해 처리했다고 한다. 집속탄은 군사지역과 민간지역, 농지, 학교, 집, 사회기반시설을 구분하지 않는다.
남겨진 불발탄은 지뢰처럼 작동하기 때문에 전쟁 후 재건사업이나 생계유지, 경제회복이 힘들어진다. 레바논에서 사용된 집속탄은 대부분 미국산으로, 이 지역에서는 M42, BLU-63 등이 발견된다. 불발탄 제거를 위해 관련 정보를 미국에 요청했으나, 미국은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같은 유형의 집속탄을 한국도 생산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 나바티예 지역에서 집속탄 제거작업을 하는 군인들이 집속탄의 종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무기제로팀
2011년 9월 12일부터 16일까지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린 이번 2차당사국회의에는 120여개국의 정부관계자들과 66개국의 시민사회 활동가들, 집속탄피해 생존자들이 참석해 집속탄금지협약의 이행계획에 대해 의논했다. 집속탄금지협약은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국제협약인만큼 회의에도 시민사회영역의 참여가 활발했고, 이에 대해 당사국들 역시 존중하고 있다.
가입국이 아닌 40여개국의 정부관계자들도 이번 회의에 참석했는데, 이는 이 협약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집속탄이라는 무기가 이제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북한은 참가등록을 했지만 결국 오지 않았다.
회의 기간에 비준한 스와질란드를 비롯해 집속탄금지협약 가입국 현황은 계속 업데이트 되고 있으며 2011년 9월 16일 현재 서명국은 110개, 비준국은 63개다. 이 가입국들 중 38개국은 가입 이전에 집속탄을 사용했거나, 생산, 수출, 비축을 한 적이 있는 나라다.
▲ 9월 13일부터 페니시아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됐다. ⓒ 무기제로팀
지금까지의 협약 성과를 축하하고 앞으로 화학무기, 집속탄 등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게 살 모든 이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전 세계가 하나의 기준으로 협약에 가입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발언으로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됐다. 당사국회의는 협약의 보편화, 비축분 폐기, 오염지역 정화, 위험감소교육, 피해자 지원, 국제적 협력 등의 주제로 나누어 진행되었고, 당사국들은 협약에서 정하고 있는 의무에 따른 각 나라별 이행 진행상황을 보고했다. 공식회의일정 외에도 다양한 사이드이벤트와 전시가 열렸다.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CCW, Convention on Certain Conventional Weapon)에 대한 논의 브리핑 사이드이벤트에서는 최근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에서 진행중인 집속탄에 관련한 제6의정서 초안 논의 내용이 집속탄금지협약보다 훨씬더 후퇴한 내용이라는 지적과 많은 비판이 있었다. 집속탄을 사용하거나 생산하는 주요 국가들은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을 핑계로 집속탄금지협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데, 전쟁잔류폭발물(ERW, Explosive Remnants of War)에 관한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 제5의정서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속탄 사용과 그로 인한 피해를 막지는 못했다.
그래서 집속탄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별도의 집속탄금지협약이 만들어진 것인데,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 가입 국가들은 특정 조건(불발율 1% 미만, 자기파괴 메커니즘 장착 등)을 충족시키는 집속탄은 사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제6의정서를 논의 중인 것이다. 만약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 제6의정서가 채택된다면 집속탄을 사용하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어서 올해 11월에 제네바에서 열리는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 회의가 주목받고 있다. 한국은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 가입국으로 제5의정서를 비준했고 제6의정서 논의에도 참여하고 있으며, 최근에 나온 초안에도 찬성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 BLU-63 집속탄을 들고 있는 필자의 모습. 각각의 자탄은 수류탄과 비슷한 크기다. ⓒ 무기제로팀
‘IKV Pax Chirti’에서 주최한 집속탄 투자에 관한 사이드이벤트에서는 집속탄 생산기업에 투자하는 금융기관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다. 이 단체에서는 매년 집속탄 생산기업 중 문제가 될 만한 기업을 선정하는데 올해 8개 선정기업 중 한국의 한화와 풍산이 목록에 올라갔다. 이 두 기업에 투자하는 금융기관에 대한 정보를 확인해보니 한화 32개, 풍산 34개 등 총 49개로 이 중 한국기관은 26개다. 국민은행, 신한은행,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SK증권, 동양증권, 우리투자증권, 삼성그룹 등 많은 금융기업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에서도 이 두 기업에 투자를 하고 있어서 주목을 받았다.
점점 윤리적 투자에 관심이 쏠리면서 비인도적 무기인 집속탄 생산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꺼리는 추세다. 집속탄금지협약 가입국 중 많은 나라는 집속탄 생산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협약 1조에서 금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투자를 철회하는 국내법을 제정하고 있다. 이런 나라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이다. 현재 많은 나라에서 투자철회 캠페인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한국에서도 <무기제로> 활동가들이 국민연금관리공단 앞에서 집속탄생산기업에 투자철회를 요구하는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 이번 행사의 경호는 모두 군인들이 맡았다. ⓒ 무기제로팀
공식 회의일정을 하루 남겨둔 목요일 밤에는 집속탄반대연합(CMC, Cluster Munition Coalition)에서 주최한 레바논 생존자 축구팀과의 축구경기가 열렸다. 집속탄이나 지뢰로 인해 팔, 다리를 잃은 사람들이 의족으로 자유롭게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활동가들로 구성된 집속탄반대연합팀보다 훨씬 더 잘 뛰던 생존자팀이 경기에서 승리했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는 국적, 성별, 인종, 장애, 종교, 직업에 상관없이 모두가 어울려 레바논 전통춤을 추며 행사를 즐겼다.
마지막 날에는 집속탄금지협약 2차당사국회의 최종 선언문인 베이루트 선언이 채택됐다. 이번 회의를 통해 결정된 협약의 기준들이 엄격하게 이행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보편화, 피해자지원, 정화와 위험감소, 비축분 폐기와 보유, 협동과 원조 등 여섯 개의 워킹그룹이 만들어졌으며 3차당사국회의 전에 운용 가능한 이행지원기구(ISU, Implementation Support Unit)의 설립을 위한 별도의 회의도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 수거한 불발탄을 처리하는 모습. 왼쪽 아래 연기가 나는 부분이 폭발 지점이다. ⓒ 무기제로팀
그리고 집속탄과 지뢰피해 생존자들의 선언도 이어졌다. 생존자들은 피해자로서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그것은 기본 인권임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5일간의 집속탄금지협약 2차당사국회의 공식일정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집속탄금지협약 3차당사국회의는 2012년 9월 10일~14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기로 결정했고, 다음 회기간 회의는 2012년 4월 16~19일 제네바에서 열린다.
이번 집속탄금지협약 2차당사국회의 직전에 아프가니스탄이, 회의 중에는 스와질란드가 비준을 했다. 또한 이탈리아, 헝가리, 체코, 남아프리카 등이 곧 비준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보고했으며 많은 나라들이 집속탄 비축분을 폐기하는 과정 중에 있다. 집속탄금지협약의 영향력은 계속 늘어나고 있고 집속탄을 없애기 위한 전세계적인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한국은 계속 안보상의 이유로 집속탄 보유를 주장하고 있으며, 작년 연평도사태 이후 집속탄을 사용하는 다연장로켓포(MLRS)를 실전배치하기도 했다.
▲우간다 출신 생존자가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 무기제로팀
무차별적인 피해 때문에 비인도적이라고 낙인찍힌 무기. 군인보다는 민간인의 피해가 훨씬 더 큰 끔찍한 무기. 한번 사용하면 그 피해가 수십 년 지속되는 잔인한 무기를 이제는 한국도 금지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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