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 닦는 소독제로 뇌수막염 바이러스도 잡는다?

도마 닦는 소독제가 뇌수막염 바이러스도 잡는다?
'락스물'로 바이러스 잡으려는 육군

육군이 신병 생활관의 생활용품에 사용하기 위해 들여온 의료용 소독제가 실은 식당에서 식기류를 소독할 때 쓰는 주방용 소독제로 드러나 문제가 되고 있다. 애초 육군이 요구한 소독제의 성능은 일반 유해세균류뿐만 아니라 뇌수막염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도 살균이 가능한 의료용 살균제였다. 그러나 실제로 보급된 제품은 바이러스 살균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락스물’에 가까운 소독제였다.

김동규 디펜스21플러스 기자 ppankku@gmail.com

2011년 4월 22일.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20킬로미터 완전군장 행군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한 노모 훈련병은 복귀 후 37.9도의 고열 증세를 보였다. 의무실을 찾은 노 훈련병은 해열제 처방을 받고 돌아왔지만 상태는 더 악화됐다. 다음날 육군 훈련소 지구병원을 거쳐 건양대병원으로 옮겨진 노 훈련병은 병세가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다가 하루가 지난 24일 결국 숨지고 말았다. 사인은 뇌수막염으로 인한 패혈증과 급성호흡곤란이었다. 이후 군의 허술한 의료체계를 성토하는 여론이 들끓었고 군은 대책 마련에 분주해졌다. 

모든 신병에 뇌수막염 백신 접종, 예방 위한 살균 소독제는…

노 훈련병의 사망 이후 여론의 비난에 시달리던 국방부는 훈련소에 입소하는 모든 신병들에 대한 뇌수막염 백신 접종을 검토했다. 최소 12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비용이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국방부는 2013년 국방예산 요구안에 뇌수막염 백신 접종을 위한 예산을 추가했다. 

육군은 백신 접종과는 별도로 신병 생활관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의료용 살균 소독제를 도입했다. 지난해 11월 17일 육군은 전자조달시스템 나라장터에 총 2억 8,000여만 원의 예산으로 53,356개의 의료용 살균소독제를 도입하는 사업 공고를 올렸다. 이 사업의 구매 사양서는 납품될 살균소독제에 일반 유해 세균류 99.99%를 살균하는 것은 물론 뇌수막염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바이러스인 콕사키·에코 바이러스도 살균 가능한 성능을 요구했다. 사용처는 신병 생활관에서 사용하는 모든 생활용품으로 적시돼 있다. 살균 소독제는 현재 입찰이 완료돼 D사에서 제조한 제품이 육군 측에 보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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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균소독제 구매사양서에는 용도가 신병 생활관 소독용으로, 효능에 콕사키·에코 바이러스 살균이 가능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보급된 제품이 입찰 공고에서 요구한 성능을 갖추지 않았고 당초 요구했던 의료용 살균제가 아닌 일반 공산품에 가까운 제품이란 점이다. 공고에서 요구한 의료용 살균제는 물품분류번호가 ‘51’로 이는 조달청에서 의약품으로 분류하고 있다. 식품의약안전청에서는 의료용 살균제를 의약외품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전문가의 독성 실험을 거쳐 식약청만이 허가를 내주는 등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육군에 납품된 D사의 제품 검증을 식약청에 의뢰한 결과 이 제품은 의약외품이 아니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식기 닦는 소독제로 생활관 방역까지?

식약청 대변인실에 D사의 제품 사진을 보낸 결과 “해당 살균소독제는 식품첨가물제조업 허가를 통해 만들어진 주방 혹은 식품 공장용 살균소독제이고 의약외품이 아니다”는 답변을 받았다. 실제로 이 제품 용기에는 사용처로 ▲ 급식소 또는 접객업소 설비, 기구의 살균소독 ▲ 유가공 설비의 살균소독 ▲ 식품가공 설비 기구의 살균소독 등이 표시돼있다. 식약청의 답변대로 병사 생활관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식기용 살균소독제에 불과한 용도다. 한 마디로 공산품에 속하는 ‘비의료용’ 살균소독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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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균소독제 용기에 쓰인 사용처는 육군이 요구했던 신병 생활관과는 거리가 멀다.

식약청 답변을 받은 뒤 육군 측에 입찰공고에 부합하는 제품이 납품된 것이 맞는지 질문하자 “세균·바이러스 예방을 위해 병사들이 활동하는 신병 생활관에서 사용하므로 ‘의약외품’으로 분류가 가능하다”며 “입찰 공고와 동일한 용도의 제품이 납품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육군의 자의적 판단에 불과하다. 현재 납품되고 있는 제품의 주성분은 차아염소산수다. 식약청의 식품첨가물 공전에는 차아염소산수를 식품용 기구 등의 살균목적 이외에 사용해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육군은 식약청 고시를 어기고 주방용 소독제를 신병 생활관 생활용품 소독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락스물’로 바이러스 소독을?

원래 식품용 기구를 소독할 목적으로 제조된 소독제가 뇌수막염을 유발하는 콕사키·에코 바이러스를 살균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바이러스 살균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육군 측에 살균 효과에 대한 공인기관의 시험평가 결과를 요구했지만 육군은 한국식품연구원의 시험성적서와 ‘염소에 의한 바이러스 불활성화’란 제목의 해외 연구 논문만 보내왔다. 그러나 한국식품연구원의 시험성적서에서는 바이러스 살균을 보증하는 항목을 확인할 수 없었고 연구논문도 차아염소산수가 아닌 염소에 대한 바이러스 불활성화 실험 결과만 들어 있었다. 육군 측에 재차 살균소독제 성능을 검증할 수 있는 공인기관의 시험 성적서를 요구했지만 “국내에는 이를 검증할만한 시험기관이 없다”며 제시하지 못했다.
  
한 제약업체 관계자는 육군에 납품된 제품을 두고 “효능효과의 과대선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만약 민간에서 이런 식으로 용도가 다른 물건을 납품했을 경우 형사고발 시 5년 이하 징역감이고 행정처분 시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6개월 제조업 정지 처분을 받을만한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육군에 납품된 제품의 실제 성능에 대해서는 “차아염소산수는 쉽게 말해 락스에 물을 탄 정도의 약품에 불과하다”며 “콕사키나 에코 바이러스 살균까지 하려면 더욱 강력한 염소계 약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시중에 판매 중인 락스의 성분은 대부분 차아염소산나트륨으로 육군에 납품된 살균소독제 주성분과 비슷하다.  

한편 현재 보급 중인 D사의 살균소독제 용기에는 콕사키·에코바이러스를 99.99% 살균할 수 있다고 표시하고 있다. 식약청은 바이러스 살균능력에 관한 문의에 “소독제 실물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제품 사진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식약청의 답변을 육군 측에 제시하며 이 제품을 의료용 소독제로 볼 수 있는지 다시 질의했지만 육군은 “목적에 맞는 제품이 선정됐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지금도 육군 신병들은 주방용 식기 소독제를 생활관에 뿌리며 각종 질병에 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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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군에 보급 중인 살균소독제. 용기에는 뇌수막염 유발 바이러스를 살균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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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가진 거라곤 ‘안보의 민주화’에 대한 열정밖에 없던 청년실업자 출신. 〈디펜스21+〉에서 젊음과 차(茶)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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