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때 못 신는 한국군 전투화 방산

싸울 때 못 신는 한국군 전투화
각개전투 훈련 몇 번에 닳아버린 신형 전투화

 
김동규 <디펜스21플러스> 기자 ppankku@naver.com

 

전투화 닳을까 조심조심 싸워야하는 병사들

 

한반도 전장은 거칠다. 강원도의 한겨울은 영하 20도를 넘나들지만 한여름은 영상 40도에 이를 정도로 덥다. 또한 국토 대부분이 산악 지대인 탓에 병사들은 주로 험난한 산을 누비며 훈련을 받는다. 이들이 착용하는 전투화는 60도가 넘는 온도차를 견뎌야 하고 거친 산악 지형도 버틸 수 있는 내구성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국방부가 내놓은 신형 기능성 전투화는 한반도의 전투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내구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가 지난 13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육군 1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지난달 중순경부터 보급하기 시작한 신형 전투화 750족 가운데 절반이 넘는 400족의 앞코 가죽이 훼손됐다고 한다. 보급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국방부는 가죽이 벗겨진 원인을 “각개전투 훈련시 일부 훈련병들의 불량한 포복자세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또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행군을 비롯한 제반 부대활동 시에는 기능성 전투화를 착용하고, 각개전투에 한해 구형 전투화 또는 중고품 전투화를 착용하도록 조치했다. 신형 전투화를 지급받은 신병들은 전투화가 닳지 않도록 자세에 신경써가며 전투를 수행해야 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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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훼손된 신형 기능성 전투화 
 

기존 업체들 아예 포기한 신형 전투화 사업

 

전투화 불량은 사업초기부터 예견된 사태였다. 국방부는 지난 2011년 5월 25일 174억원 규모의 신형 전투화 사업을 위해 전투화 제조업체들을 대상으로 조달 설명회를 열었다. 그러나 국방부가 요구하는 군화의 성능이 전투화로는 부적절하다며 기존업체들이 반발했고, 아예 입찰에 참여조차 하지 않겠다는 업체까지 나왔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기술력 없는 기존 업체들의 반발에 불과”하다며 비아냥댔지만 업체들의 반발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신형 전투화 사업 전 10년이 넘도록 전투화 제조업체에 가죽을 공급해오던 J, S, H사는 사업에 아예 참여하지 않았다. 국방부가 요구한 가죽의 성능이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기능성 전투화 투습도를 기존 850g/㎡/24hr에서 1,200g/㎡/24hr으로 올려야 한다는 성능요구조건을 걸었다. '1,200g/㎡/24hr'은 가죽 1제곱미터당 24시간동안 1,200g의 수증기가 투과할 수 있는 기준을 말한다. 상승분 350g은 전투화 한 쪽에서 한 시간 동안 1.3g의 수분을 배출할 수 있는 정도다. 문제는 이 한 방울의 수분 배출을 위해 전투화의 기본인 내구성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가죽제작업체 J사 관계자에게 왜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는지 묻자 “지금까지 가죽을 만들어온 경험에 비춰봤을 때 국방부가 요구하는 성능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H사 관계자도 비슷한 답변을 내놨다.

“투습도 1200g이 나오도록 하려면 가죽에 도장작업을 할 수 없다. 도장작업을 해야 긁힘 현상도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는데 국방부가 요구하는 성능에 맞추면서 도장까지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또 소가죽은 천연피인 탓에 가죽마다 특성이 달라서 모든 가죽을 투습도 1200g이 나오도록 맞추기는 힘들다. 1200g이 나오지 않는 가죽은 버릴 수밖에 없다.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전투화 사업에 참여하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오랜 노하우를 갖고 있던 3개사가 기술적 문제로 사업을 포기했지만 N사 한 곳만이 투습도 1200g이 가능하다며 사업에 뛰어들었다. N사가 가죽을 공급하고 국내 유명 등산화 제조업체 T사가 제작한 기능성 전투화 시제품은 국방부의 각종 성능테스트를 통과했지만 보급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가죽이 닳는 불량이 발생하고 말았다. 업체들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전투화를 제작한 T사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투습도 1200g에 맞추기 위해서는 가죽 가공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사실인지 질문하자 “가공을 못 하는 건 아니다”며 “가죽이 더욱 좋아지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투습도 1200g에 맞추면 어린이 피부와 50대 피부가 확연히 다른 것처럼 오히려 가죽이 더 좋아진다”고 밝혔다. 덧붙여 “기존 업체들은 기술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라는 말도 남겼다.

국방부도 “기능성 전투화는 천연가죽이라 부드럽기 때문에 딱딱한 구형 전투화에 비해 마모 정도가 다소 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다른 전투화 제조업체 관계자는 “전투화는 말 그대로 싸우기 위한 신발이다”며 “가죽의 질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격한 훈련에도 벗겨지지 않는 가죽을 써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사업 초반 투습도에 얽매이면 전투화 고유의 특성에 맞는 표면 코팅처리를 하지 못한다고 수차례 지적했지만 국방부가 묵살했다”고 밝혔다.

 

접착식 공법도 문제 제기돼

 

가죽 업체들뿐만 아니라 기존 전투화 제작 업체들도 기능성 전투화 사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특히 ‘접착식 전투화’만큼은 다시 생각해야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전투화는 밑창과 상단 가죽을 접합하는 방식에 따라 크게 접착식, 봉합식, 사출식으로 나눈다. 접착식은 강력 접착제를 이용해 밑창과 상단 가죽을 붙이고 봉합식은 실로 재봉한다. 사출식은 가죽 하단에 폴리우레탄 재질 밑창을 압출해 일체형으로 만든다. 전투화 제조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각각의 방식은 장단점이 있어 딱히 더 우월한 방식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한 목소리로 ‘접착식은 전투화에 맞지 않는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기능성 전투화 사업에 문제를 제기하며 신문 광고까지 냈던 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접착식 또한 신발 제조 공정의 하나로 널리 쓰이고는 있지만 전투화 제조에는 어울리지 않는 공법이다. 봉합사로 단단히 꿰맨 봉합식이나 아예 일체형으로 뽑아낸 사출식은 밑창이 떨어질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접착식은 밑창의 고무배합에 문제가 있거나 거친 환경에 노출되면 떨어져나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2010년에 발생한 불량도 밑창의 고무배합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이 관계자는 또 여름과 한겨울의 기온차가 최고 60도까지 나는 한국에서는 온도 변화에 약한 접착제가 제기능을 못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미 해병대는 2011년 3월 8천여 켤레에 이르는 신형 전투화를 전량 리콜했다. 앞부분은 봉합식으로, 뒷부분은 접착식으로 만든 전투화에서 밑창 분리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지급하기로 돼 있었던 미 해병대 신형 전투화는 미국의 유명 전투화 제조업체인 B사에서 개발한 제품이었다. 전투화 제조기술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업체의 제품에서 접착 불량이 발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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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량 리콜 처리된 미 해병대 신형 전투화


한 전투화 제조업체 관계자는 “미군도 봉합식과 사출식을 선호한다”며 “환경 변화에 약한 접착식 전투화는 아프가니스탄의 혹독한 기후를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군이 착용하는 전투화는 50%가 사출식, 30%가 봉합식, 나머지 20%가 봉합식과 접착식을 혼합한 세미봉합식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T사 관계자는 "이번에 개발한 전투화는 고온에 24시간 이상 둬도 접착부분에 문제가 없었다“며 기존 업체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전투력 약화시키는 불량 전투화

 

지난해 10월 20일 국방부에서는 군수관리관 주관으로 ‘기능성 전투화 조달을 위한 최종 협상업체 선정 공개 평가위원회’가 개최됐다. 이 자리에는 인터넷으로 선정한 예비역 장병과 현역으로 복무중인 장병의 부모님, 착용 시험에 직접 참가한 장병 등이 참석해 업체들이 내놓은 전투화를 직접 확인했다. 앞서 9월 중순경부터 1개월간 실시된 부대착용시험은 KCTC훈련부대, 특전사, UDT, GOP 경계부대 등 다양한 부대가 참가해 야전적합성을 검증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참여했던 한 업체 관계자는 1개월의 부대시험 평가로 야전적합성을 검증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기능성 전투화는 반드시 사계절 시험평가를 해야 한다. 국방부는 고어텍스 소재가 한여름 장병들의 발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검증도 하지 않고 9월 중순부터 겨우 1개월 동안 120족만 평가하고 끝내버렸다. 기존 전투화 사업에서는 1년씩이나 평가를 했으면서 이번 사업은 왜 이렇게 짧게 끝냈는지 모르겠다. 사업을 너무 급하게 진행하는 느낌이다”

이 관계자의 지적대로 기능성 전투화 사업은 매우 급하게 진행됐다.

국방부 홈페이지에 입찰공고가 게시된 것은 2011년 5월 23일 오후 5시 40분이다. 국방부는 입찰공고에 다음날인 24일 오후 2시까지 참가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25일 열릴 예정인 사업설명회에 참여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또한 사업설명회에 출석하지 않은 업체는 기능성 전투화 사업 자체에 참여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업체 관계자들은 “20만족 174억원 규모의 사업치곤 굉장히 촉박한 입찰공고”라며 의구심을 표했다.

한 업체는 지난해 5월 25일 열린 사업설명회에 참가해 “이번 기능성 전투화 입찰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이 사업의 문제점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제기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업체는 9월 중순경 이번 사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건의문을 주요 언론에 광고 형식으로 냈다. 국방부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다른 업체 관계자들은 ‘군납사업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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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전투화 제조업체가 지난해 9월 전투화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국내 유력 일간지에 게재한 광고.


업체 대표에게 왜 사업을 포기하면까지 문제를 제기했는지 질문하자 그는 “앞으로 군납을 아예 못하더라도 병사들을 위한 전투화를 생각하면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전투화 제조가 생업인 중소업체가 수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장병들의 발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업체들이 요구한 개선사항이 단순한 이권 차원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사실 국내 전투화 사업은 이미 2010년 하반기부터 수의계약이 아닌 공개경쟁입찰로 진행해왔기 때문에 기존 업체의 기득권은 사라진 지 오래다.  

전투화는 이름 그대로 싸우기 위해 신는 신발이다. 장병들의 두 발은 싸워 이기는 전투형 군대를 위한 기초체력이다. 기초체력도 제대로 못 갖춘 군대가 전투형 군대를 표방하는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밑창 떨어진 전투화에 이어 가죽 닳는 전투화가 장병들의 발뿐만 아니라 한국군의 전투력까지 병들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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