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자식들', 삼성전자와 외교부의 '태자당' 편집장의 노트

 

D&D Focus 2010년 10월호


군 복무 24개월의 ‘어둠의 자식’들,

외교부와 삼성전자의 ‘태자당’들



대만의 모병제 전환 검토


제가 지난 5월에 대만을 방문했을 때 장관급인 대만의 양용밍(楊永明) 국가안보회의(NSC) 수석자문위원을 비롯한 안보 관계자들은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현재 12개월로 군 복무를 단축하고 보니 군 운영에 어려움이 많아졌다며 아예 2012년경부터는 징병제를 폐기하고 모병제로 전환을 검토 중이라는 겁니다. 12개월 군 복무는 숙련도가 높은 병사를 양성하기 너무 짧다는 거죠. 게다가 경제도 어려운데 국방예산을 늘리기도 어려우니 차제에 모병제로 전환하여 군을 더욱 슬림화하겠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의 징병제와 예비군 동원제도는 대만과 아주 유사합니다. 5․16 쿠테타 직후 대만을 방문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장개석 총통을 만나 배우고 와서 시행한 것이 바로 새마을 운동, 예비군 창설, 병역제도 정비입니다. 대만의 징병제는 냉전시대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상징이었습니다. 냉전 이후에도 여전히 중국군 22만을 코앞에 두고 안보위협에 시달리면서도 그들은 끊임없이 병역제도를 현대 전장상황에 맞게 개선하여 왔습니다. 개선 방향은 전쟁을 현대적으로 수행하는 것, 그리고 인본주의 사상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실현 가능성이 의문시되는 국방개혁안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는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는 사병 복무기간을 24개월로 환원하겠다는 입장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18개월로 단축될 육군 사병의 복무기간은 현재 21개월입니다. 그러자 이미 줄어든 복무기간이 다시 늘어난다는 해괴한 발상을 이 대통령이 제지했습니다. 아마도 21~22개월 정도로 절충될 모양입니다. 

병력감축과 복무기간 단축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군 감축의 핵심 사안입니다. 안보회의가 이를 유보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국방예산이 모자라다는 것입니다. 병력 감축을 보완하려면 첨단무기를 보강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는 거죠. 건설현장에서 비싼 크레인을 살 돈이 없어 일용직 노동자 수백 명으로 이를 대신하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장비를 사람으로 대신한다’는 인본주의가 결여된 발상 자체가 거북스럽군요.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전투원의 생명가치와 장비가 단지 운영비용이라는 동일한 화폐가치로 치환되는 국방경제학의 근저에 깔린 원시적, 비윤리적 발상입니다. 전방에서 열악한 주거와 복지, 빈약한 개인장구 등 사병의 복무 현실은 25년 전 제가 군대생활 할 당시와 거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전쟁의 양상은 현대화하는데 군의 경계 및 근무는 까마득한 과거를 답습합니다. 일선 전투원의 생명가치가 총체적으로 경시되는 현실 자체는 600조원을 투입해도 변한다는 보장이 없다. 그들의 시각으로는 공짜나 다름없는 징집병이 있기 때문입니다. 

국방예산과 병역자원 감소를 대만은 군대 혁신의 기회로 활용했고, 한국은 과거를 답습하는 개혁 회피 명분으로 활용했습니다. 국가 지도급 인사들과 군사 지도자들의 수준 차이입니다.


          

개혁이 좌절된 내막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국방비만 늘려주면 개혁은 곧 될 것처럼 말합니다. 사실일까요? 1993년 국방부에 설치된 ‘21세기 연구위원회’는 2002년까지 현역 병력을 50만 명으로 10만명 줄인다는 방향을 담은 국방개혁안을 구상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육군의 반발과 국방예산 부족을 핑계로 채택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국방부는 1999년에 ‘국방기본정책서 ’99~‘15’를 채택하면서 2015년까지 병력을 50만 명으로 감축하고 군 구조조정을 완결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문서를 만들기 위해 1996년부터 국방부의 자문에 10개월 간 응했던 13명의 민간인 중 한 명이 바로 현재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를 이끌고 있는 현 이상우 위원장입니다. 그러나 이 문서도 예산부족과 군의 반발로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2005년에 국방부는 2020년까지 병력을 50만으로 감축하고 부대 숫자를 대폭 줄이겠다는 ‘국방개혁 2020’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또 번복해서 개혁의 목표를 무산시키겠다는 것이 현재 안보회의의 발상입니다. 보십시오. 지난 18년 동안 똑같은 개혁목표가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슬금슬금 연기되는 것을.

이제 복무기간 단축을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면 그 다음 순서로는 병력감축도 유보하겠다는 안을 검토할 것이 뻔합니다. 예전에도 항상 그랬으니까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예산 문제를 살펴봅시다. 1994년부터 2010년까지 4대 정권 18년간 투입된 국방비 총액은 309조7726억원입니다. 94년 당시의 국방예산 10조753억은 2010년에는 29조639억원으로 명목상으로 288% 증액되었습니다. 94년에 국방부는 90년대 말이면 대북 재래전력 열세가 극복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전망을 기초로 21세기에는 현대화된 작은 군대로의 전환이 기정사실화되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도 ‘육군 전력은 북한 대비 70%’라는 주장이 18년 전과 토씨 하나 바뀌지 않았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국방예산을 늘리면 늘릴수록 군은 더 배고프다고 말합니다. 이런 현상을 이상하게 여긴 고 노무현 대통령이 화가 나서 “그 많은 국방비 떡 사 먹었냐”고 말하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90년대는 매년 잉여병역자원이 30만 명 정도 발생했습니다. 의지만 있었다면 50만으로의 감군과 18개월 이하의 복무기간 단축은 2002년에 벌써 끝났을 일입니다.

그러니 300조원이 아니라 600조원을 투입한다 해도 문제가 해결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는 의심이 생기는 이유입니다.



징병제 장점은 이미 상실


그러나 더 문제는 우리의 징병제의 근간인 국민 개병주의와 사회정의가 크게 위협받고 있는 현실입니다. 원래 징병제의 매력은 누구나 공평하게 병역의무를 수행한다는 평등주의일 것입니다. 최근 선풍을 끌고 있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120쪽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프린스턴 대학의 경우 (징병제인) 1956년 졸업생 750명 가운데 과반수인 450명이 졸업 후 군에 입대했다. 그에 반해 2006년에는 졸업생 1108명 가운데 입대한 사람은 고작 아홉 명에 그쳤다. 다른 일류대학이나 미국 수도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의회 의원 가운데 자녀가 군에 입대한 경우는 2퍼센트에 불과하다.”

대다수가 도심과 시골의 빈민 출신이 이라크에서 무기를 든 자원자들이었다는 겁니다. 2004년에 뉴욕 시의 자원자 70퍼센트가 저소득층 출신의 흑인과 히스패닉이었다고 책에서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모병제를 다시 징병제로 바꾸면 상류층도 군에 입대하기 때문에 이라크 전쟁은 시작되지도 않았다며 찰스 랭글 민주당 의원은 징병제 부활을 주장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상당히 일리 있다고 보지만 징병제에서도 랭글 의원이 주장하는 정의를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반칙과 특권으로 병역을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할 경우, 그리고 생명이 경시되는 병영현실이 방치될 경우에는 오히려 징병제가 정의를 훼손하는 독약이 될 수도 있는 거죠.

대통령과 여당 대표, 국정원장, 정무수석이 병역 면제자이고 외교안보수석은 보충역이며 그 직속의 총괄비서관은 병역면제자입니다. 이런 병역 이행 실태는 징병제에서는 불가능합니다. 군대 가지 않는 특권층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겁니다. 바로 랭글 의원이 개탄하는 미국의 지원병제도의 모순이 한국의 징병제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겁니다.



삼성전자와 외교부


공정과 평등의 가치를 표방한 징병제가 위기에 처했듯이 지금 우리 사회는 외교부 직원 특채 문제로 비슷한 논란을 겪고 있습니다. 단순히 유명환 장관 딸에 국한되지 않고 그동안 세습직처럼 자리를 만들어 온 외교부 특채제도에 사정의 칼날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자리에 반칙이 있었냐, 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외교관 자녀들은 정당하게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교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외교부 내에는 한 때 아버지가 잘 나가는 외교관이면 ‘태자당’, 아버지가 별 볼일 없는 외교관이면 ‘왕자당’이라고 불리는 패거리 비슷한 것이 있다고 공공연히 말해졌습니다. 진급과 보직에 결정적 영향을 받는다는 거죠.

이런 패거리들은 초일류 조직인 삼성전자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유력자를 아버지로 둔 자제를 삼성전자가 청탁을 받고 채용해주는 겁니다. 공채가 아닌 특채로 입사한 삼성전자의 ‘태자당’들은 절대 일반 직원들과 섞이지 않도록 해외 영업조직에 몰아넣었습니다. 일도 단순 배달과 같은 쉬운 업무만 줍니다. 높은 급여가 보장된 오직 신만 아는 직장인 거죠. 그리고 근무평정이 모두 최상위인 등급을 공평하게 줍니다. 만일 근무평정이 잘못 나오면 유력자인 아버지가 회사로 전화를 한다는 겁니다. 

우리 사회에 공직과 기업에서 이와 같은 일이 공공연히 벌어진다는 것은 이미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압니다. 그러면 태자당은 고사하고 왕자당에 끼이지 못하는 ‘어둠의 자식’들은 어디로 갈까요? 이들이 사회에 차고 넘치니까 청년 실업률이 더 높아지게 되고 그래서 몽땅 군대를 보내야 청년 일자리 문제도 해결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군 복무를 24개월로 늘리고 군대도 60만 명 이상의 병력을 보유하는 것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의식구조와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의 정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상황에서 단지 돈의 가치로 전투원들의 생명가치가 평가되는 ‘국민 모독 사건’이 청와대 안보총괄점검회의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들이 근엄한 얼굴로 앉아서 국가안보를 혼자 다 걱정하는 태도를 보이며 2년을 쌔빠지게 군대 생활 하라고 우리의 자식들에게 말합니다. 부아가 치미는 것은 단지 저만의 심정은 아닐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천불’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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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