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노래를 사랑하는 아이로 컸으면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min.jpg » 동시로 만든 동요를 듣고 자극 받아 시를 쓰고 있는 딸. 양선아.

 

 

* 생생육아는 필자가 아이를 키우면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생생하게 쓰는 육아일기 코너입니다. 베이비트리(http://babytree.hani.co.kr)에는 기자, 파워블로거 등 다양한 이들의 다채로운 육아기가 연재됩니다.

 

동시를 노래로 만드는 백창우씨(관련 기사 링크: https://goo.gl/B8AMed)를 인터뷰한 뒤 나는 그의 앨범에 흠뻑 빠졌다. 이번에 나온 앨범 <내 머리에 뿔이 돋은 날>과 <초록 토끼를 만났어>는 들으면 들을수록 좋았다. 인터뷰를 다녀온 뒤로 한동안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이 시디를 틀어 노래를 들었다. 주말에 시간이 나도 이 노래를 들었다.

 

중·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노래는 나의 친구였다. 노래처럼 나를 위로해주고, 내게 힘을 주는 것이 없었다. 그때만 해도 친구끼리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테이프에 녹음해 손편지와 함께 주며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았다. 녹음 테이프에 나만의 노래를 선곡하는 재미도 있었고, 친구가 준 테이프를 통해 친구의 취향도 알게 됐다.
 
아이를 낳은 뒤에도 나는 한동안 노래를 많이 불렀다. 대중가요가 아닌 동요를 많이 불렀다. 자장가부터 ‘국민 애창 동요’에 영어 동요까지 다양한 노래를 찾아 불렀다. 노래는 육아를 할 때도 내게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친구를 덜 만났다. 영유아 시기가 지나고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아이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동안 부른 동요가 좀 시시하게 느껴졌고 지겹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가 어느날 갑자기 어떤 노래를 듣고 또 듣고 하니 아이들은 신기했을 것이다. 동요인 듯 아닌 듯 뭔가 새로운 노래처럼 들렸을 것이다. 온 집안에 그런 노래 소리가 퍼지니 아이들도 그 노래를 자연스럽게 듣고 덩달아 따라불렀다.  
 
“엄마가 이 노래를 만든 작곡가 선생님을 만나고 왔는데 노래가 너무 좋아~ 그런데 얘들아~ 이 노래들은 다 시로 만든거래. 좋은 시를 선생님이 골라서 거기에 가락을 붙여 만든거래. 그리고 이 노래는 언니·오빠들이 불렀어. 한번 들어봐봐~”
 
딸은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했는데, 요즘도 피아노에 흠뻑 빠져서 산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연주에도 관심이 많다. 시디를 듣자마자 딸은 노래 가사를 궁금해하며 시를 읽어본다. 노래로 흥얼거린다. ‘내 맘대로 거울’이 좋다거나 ‘맨날맨날 착하기는 힘들어요’라는 노래가 너무 마음에 든다고 하며 계속 노래를 부른다. 피아노에 앉아 노래도 연주해보고, 엄마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동영상으로 녹화해 자신과 엄마의 목소리를 들어보기도 한다.
 
노래 부르는 것을 그렇게 즐겨하지 않던 아들도 엄마와 누나가 노래를 계속 부르니 덩달아 따라 부른다. 엄마가 노래 가사가 틀리면 “엄마~ 그게 아니고~” 라고 지적한다. 그렇게 우리집은 시와 노래가 흐르는 집안이 됐다. (유튜브 동영상: https://youtu.be/A5w-E5ogBaM)
 
동시를 갖고 동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딸은 어느 순간 `어린이 시인'이 되었다. 생활 속에서의 소재를 토대로 시를 지었다. 노래 가사를 짓는 마음으로 시를 짓는 것 같다. 딸이 시라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며,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라는 알게 된 것 같아 너무 기쁘다.
 
 
아빠의 잔소리 한바탕
안민지
 
이래라 저래라 하는 아빠의 하루 잔소리 한바탕
아침부터 저녁까지 잔소리 한바탕을 떨어요
자고 일어나서 이러쿵 저러쿵 잔소리 한바탕
밥 먹고 나서 이러쿵 저러쿵 잔소리 한바탕
잠자기 전에 이렁쿵 저러쿵 잔소리 한바탕
별것 아닌 일로도 잔소리를 해요
밤에 들어가려고 하다가 잔소리를 하고
문 닫으려다가 잔소리를 하고
하유(휴), 역시 우리 아빠는 잔소리 대마왕!
 

남편이 가사와 양육을 책임지면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자 잔소리가 잠시 늘었던 상황이다. “너희 물건은 너희가 치워야지” “아침에 제 시간에 일어나라” “밥 먹으라고 하면 바로 식탁에 와서 앉아라” 등등 아빠가 하는 이야기가 잔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아빠에게 이 시를 지어 보여주니 아빠가 겸연쩍여하면서도 미소를 짓는다. ‘내가 그렇게 잔소리를 많이 했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딸이 그런 마음을 시로 표현한 것에 마냥 흡족해한다. 딸바보 아빠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 시를 읽은 뒤 확실히 남편의 잔소리는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아빠의 잔소리 한바탕’이라는 시에 엄마·아빠의 반응이 뜨겁자 딸은 계속 시를 지었다. 이번에는 시화와 함께.
 
 
토마토
안민지
 
빨강색 토마토 뭐가 그리 화나니?
얼굴은 동글동글하면서 뭐가 그리 짜증나는데?
초록 모자 쓰고서 어디나가 무얼해서 화가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는 토마토
내 입으로 출장가면 기분이 나아질거야
냠! 냠!
너는 기분 최고라서 좋고
나는 맛있어서 좋으니까
내가 많이 많이 먹어줄게
냠!냠!냠!냠!냠!
 

시2.jpg

 

 

딸은 토마토를 좋아한다.  최근 엄마는 이탈리아의 남쪽에 있는 섬 시칠리아로 출장을 다녀오더니 “출장이 너무 좋았다”고 입에 달고 살았다. 아이가 일상 생활에서 부모가 하는 말과 행동을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고 있음을 이 시를 통해 나는 알게 됐다. “내 입으로 출장가면 기분이 나아질거야”라는 이 연을 보면 딸에게 ‘출장=기분 좋은 것’으로 자리잡았다. 가기 싫은 출장, 지옥 같은 출장, 위험한 출장 등등 참 다양한 출장이 있는데, 딸에게는 출장이란 기분이 더 나아지는 무엇인 것이다. 토마토를 먹다가 이런 시를 단숨에 써내려간 아이를 보며 엄마와 아빠는 우리 딸이 언어적 감각이 있다며 좋아했다.
 
백창우씨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래를 자연적으로 좋아하는 아이와 좋아할 수 있는데도 기회가 없어서 노래를 좋아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어요. 문화의 모든 영역이 그래요. 겪어보지 않고 반복하지 않으면 알 수 없어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지속적으로 아이에게 주어져야 해요. 자유스럽게. 딱 한 번 들려주거나 부모가 악기 연습을 강요하는 방식이면 안 되는 거죠.”
 
“음악을 좋아하고 즐기는 아이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아이, 꿈을 가진 아이로 자랄 수 있어요. 지금의 교육은 머리만 강조하고 가슴은 무시하죠. 아이들의 정서가 그래서 메말라가고 있어요. 인공 지능 시대가 되면 인간은 기계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계로 대체될 수 없는 차별적인 사람이 되는거죠. 사람이 기계와 다른 것은 뭘까요? 그것은 바로 감정과 정서입니다. 감정과 정서 없이는 미래 시대를 잘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영유아 시기에는 애착이나 정서 발달, 스킨쉽의 중요성을 알고 계속 그런 부분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런데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그런 노력들을 어느 순간 덜 하게 되었다. 학교 숙제는 잘 했는지, 방과후 학교는 잘 갔는지, 친구들과의 관계는 문제 없는지 정도만 체크해도 시간이 빠듯했던 것 같다. 아이가 시 쓰는 모습을 보고 아이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아이의 정서나 마음에 대해 내가 섬세하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백창우 동요를 들으며  “맨날 맨날 착하기 힘들어요”라는 구절이 제일 마음에 든다는 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언제부터 내 눈에 내가 꽤 이뻐” 라며 언제부터인가 거울을 더 자주 보고 손톱에 매니큐어도 바르고 싶어하는 등 멋을 내는 딸의 변화도 느꼈다. 아이들과 노래를 함께 부르며 마음 속에 하나의 바람을 가져본다.

 

우리 아이들이 시와 노래를 사랑하는 아이로 컸으면 좋겠다고.

마음이 따뜻하고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시와 노래를 친구 삼으며 그 시련을 견딜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TAG

Leave Comments


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