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처연한 송편 김인곤의 먹기살기

먹기살기/양반송편 머슴송편

 

개천절과 추석이 이어진 그래서 올 해 최장기연휴였던 추석연휴가 끝났다. 추석은 밤낮의 길이가 같아서 가을의 가운데 절기인 추분(秋分)이 있는데도 사실상 ‘가을이 절정인 시기’라는 뜻에서 중추절(仲秋節)로 불린다. 본래 벼농사가 많은 남쪽지역에서는 추석을 크게 쇠고, 보리농사가 많은 북쪽지역에서는 단오를 크게 쇠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추석과 단오는 농사일과 관련해서 정해진 명절이기 때문이다. 추석의 대표음식은 송편(松餠). 그런데 사실 송편은 일 년에 두 번 먹는 시절음식이다. 동시에 송편은 두 얼굴을 가진 그래서 너무나 처연한 시절음식이다.


 일 년 중 송편이 처음 등장하는 건 ‘머슴날’이라 불리는 음력 2월 초하루 삭일(朔日)이다. 2월이 되면 농사준비를 시작해야하기 때문에 겨울동안 거의 놀고먹었던 그래서 더욱 대접받지 못했던 사내종과 계집종인 노비(奴婢)들을 달래려 머슴잔치를 치러주는 날. 크게는 손바닥만 하게 작게는 계란만 하게 만든 송편을 노비들의 나이 수대로 먹였다. 올 한 해 운이 좋아진다는 액막이 명분으로. 멥쌀가루로 반죽을 한 뒤 찐 콩이나 팥 감자 호박 도토리 등으로 소를 만들어 넣고 반달모양으로 빚어 시루 안에 솔잎을 깔고 그 위에 올려서 찌는 떡 송편. 별칭 노비송편 또는 머슴송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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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송편이 추석이 되면 양반송편으로 바뀐다. 안에 들어가는 소가 꿀에 절인 밤이나 대추 늙은 호박 등으로 격상된다. 팥이나 콩을 넣을 경우에도 귀한 꿀이 함께 들어간다. 그리고 쪄낸 다음에도 물로 닦고 참기름을 바른다. 향도 향이지만 시간이 지나도 마르지 않도록. 나이수대로 먹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소가 꿀절임 대신 설탕과 볶은 깨로 바뀌었다는 것 정도가 다를 뿐이다. 아 물론 다른 의견도 있다. 한강 북쪽과 남쪽. 백두대간 동편과 서편. 차례나 제사는 가문에 따라 저마다 다른 그 집안 고유의 법도가 있으니 관여하지 말라는 가가례(家家禮)처럼 지역에 따라 다른 것뿐이라는 주장. 이를 반박할 어떤 근거도 나의 지식 안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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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송편의 생김새에도 이견이 있다. 삼각형을 닮은 모시조개모양이라는 설도 있고 반달형 옥노리개모양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우리역사가 가진 자들의 기록만으로 남겨지듯 문화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귀한 장식품을 닮은 반달형 옥모양의 양반송편이 주류가 되었다. 사대부들은 송편의 반달형에 심오한 철학적 의미까지 부여했다. 반원형 송편에는 나머지 절반의 여백으로 완성을 뜻하는 온전한 원이 감추어져있다는 설명이다. 들판에 널린 풀 한포기, 가파른 절벽에 뿌리내리고 홀로 서있는 소나무 한 그루. 무심히 돌아앉은 계곡의 바위덩어리 하나에도 형이상학적인 격을 부여하던 양반들의 풍류가 송편에도 심오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여기에 그저 커졌다가 작아지는 단순함만으로 수 천 수 만년동안 땅위에 사는 인간을 지켜보아온 달. 일 년 중 보름달이 가장 크게 보이는 추석날, 보름달이 반으로 접혀져 내 안으로 들어간다는 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송편을 일 년에 한 번 추석에만 먹는다. 그 누구도 조상이 노비였던 사람이 아닌 것처럼. 헌데 나는 달달하지 않고 담백한 머슴송편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글 김인곤(수람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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