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의 돌잔치 생생육아

행사의 주인공이 되는 것만큼 부끄럽고 몸둘 바 모르겠는 일도 없다. 여간해 주인공 될 일도 없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만 인생에 드물게 그런 순간이 오고야 만다. 예를 들면 결혼식이라거나. 모름지기 결혼식이란 하객 자격으로 참석할 때에야 재미가 있는 법. 지인들과 옹송옹송 뒤편 구석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서 신부 화장이 잘 받았다느니 신랑 키가 작다느니 하등 쓰잘데 없는 남일에 참견을 하거나 뷔페에 맛이 있네 없네 무해한 뒷담화를 나누는게 묘미이거늘.
 내가 이벤트의 중심인물이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얼굴이 화끈하고 손발이 오그라드리는 지경이라 머리카락을 뽑아 분신이라도 만들어 세우고 싶은 심정이었다. '눈 한번 꾹 감았다 뜨면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결혼 선배의 조언을 의지해 식장에 섰더니 과연 깨닫지 못하는 새 결혼식은 끝이 나 있었다. 심지어 기념 촬영 시 부케 던지기도 생략했으니. 부케를 받기로 한 후배가 차마 부끄러워 한가운데에 선 채 사람들의 시선을 감당할 수 없노라 하는데 참으로 이것이 유유상종인가 싶다.
 웨딩 스튜디오에 야외 촬영, 결혼식, 만삭 촬영까지 기세 좋게 즐기는 이들도 꽤나 많은 듯 하니 나만 유별난 것도 같고 모처럼 찾아온 인생의 이벤트인데 아까운 짓을 해 버렸군, 싶을 때도 드문드문 없지는 않다.
 
 이런 연유로 돌잔치도 간소하게 가족들 식사 한 끼로 치렀다. 엄마가 근사한 한복이나 정장 차림으로 손님을 맞고 안내하는 돌잔치도 나름의 재미가 있겠지만 역시 쑥스러우니까 그런 행사는 생략한다. 물론 이때에도 내가 객일 때에는 꽤나 유쾌하다. 회사 선배 아들의 돌잔치에서는 아기가 예쁘다는 둥, 사모님이 미인이시라는 둥 흔히 오가는 덕담을 여유롭게 건넨 뒤 뷔페를 몇 번이나 순례하며 어지간히 먹어댔고 조카의 돌잔치에서는 적극적으로 퀴즈에 참여해 선물을 타겠노라 몇 번이고 손을 번쩍번쩍 치들며 행사를 즐겼다. 조카의 생일을 틀려 형편없는 고모라며 눈총을 받은 기억이 있다만 나는 객이니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하하. 내가 주인공만 아니라면 이벤트란 참으로 드물게 찾아오는 생활의 활력소인 것이다.
 그러니 알뜰하게 지내자는 생각도 한몫을 했지만 허례와 허식을 일소하겠노라는 굳은 소신으로 돌잔치를 생략한 건 아니었다.
 혹여 시댁에서 번듯한 돌잔치를 원했다면 다른 방법도 생각했겠지만 시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데다 남편도 꽤 거리가 있는 타지에서 근무하는 탓에 소박한 식사가 오히려 제격이기도 했다.

 

 늦은 1월의 아침, 전날 올라온 친정 어머니가 상을 차렸다. 거실의 긴 좌탁에 흰 쌀밥과 미역국, 여러 종류의 떡이며, 과일, 나물무침, 고기가 그득 올랐다. 요리가 서툰 탓에 엄마 손맛으로 변변한 돌상을 차려줄 수 없던 나는 다 차려진 돌상에 숟가락만 올리는 식으로 거들었다. 그리고 이벤트를 싫어하는 이 에미도 뿌리칠 수 없던 돌잔치의 하이라이트. 준비한 13,676원짜리 전통 돌잡이 세트를 상 가운데 보기 좋게 척 올리는 것으로 아기맞이 준비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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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음마가 늦어 여전히 기어다니던 아기가 빠른 무릎 걸음으로 다가와 돌상 앞에 자리를 잡고 특별한 날의 기록에는 참도 집착하는 에미는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기대되는 돌잡이의 순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아빠와 엄마는 염원을 담아 특정한 물건에 눈짓을 계속 던졌으니 그것은 바로 엽전과 복주머니. 허나 아기는 퍽도 실망스럽게 길죽한 붓을 잡았다. 사실 복주머니 안에는 외할머니가 준비한 현금 다발이 묵직하니 숨어 있었으니.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던 가족은 눈에 잘 띄도록 지폐를 꺼내 한 장 한 장 펼쳐 진열하고 붓은 손을 뻗어 잡기 힘들도록 멀찌감치 밀쳐둔 채 두번째 돌잡이를 시도했다.

 그렇다! 천박한 자본주의에 물든 이 가족은 당최 미래와의 어떠한 유의미한 연관성도 입증된 바 없거늘 지폐를 집으라며 아기를 독촉했던 것이다. 허나 두 번째 시도에서도 아기는 붓을 잡았다. 어떻게 된 믿음인지 돈을 잡으면 아기가 미래의 거부라도 될 듯 들떴던 이 가족은 붓을 잡는다고 공부 잘하는 법 없다며 기묘하게 낙담을 하는데!

 어쨌든 참으로 소박한 돌잔치가 따뜻하게 끝이 났다.

 

 소박한 돌잔치의 상징이었던 전통 돌잡이 세트는 저렴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맛이 있어 마음에 흡족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이 녀석은 6,500원에 중고로 팔려나갔으니 결국 돌잔치에는 만 원도 들지 않은 셈이다. 물론 돌상 준비에 돈이 들었다만 그것은 내 돈이 아니오! 허허허. 이래서야 시집 보낸 딸자식 소용없다는 부모의 하소연이 들릴 듯도 하다만 기어이 갚을 날이 오지 않겠소,하고 웃어본다.

 

 이후 큰아주버님부터 막내동서, 언니, 오빠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간소하다지만 너무 심했다며 서운한 심경을 토로하기에 이르렀으니 역시 양가 형제, 자매들 정도는 한 자리에 모여 식사했어야 하나 아쉽고 미안한 마음도 든다. 역시 세상일이란 게 간소하면 간소한대로 요란하면 요란한대로 일장일단이 있게 마련인 모양이다. 

 

 이제 내가 주인공이 되는 인생의 이벤트라면 그것은...하고 생각을 하다 머리를 세차게 젓는다. 아아, 그것만은 피할 수도 없고 거스를 수도 없는 단 하나의, 운명의 이벤트가 아닌가. 그 날까지는 어떻게든 즐겁고 재밌게 잘 살아보아야겠다.
 헌데, 정말 그것이 남은 유일의 이벤트란 말인가?
 이벤트고 행사고 간에 싫다는 둥 해놓은 주제에 남은 게 달랑 그거 하나라니 섭섭하기 짝이 없는 마음이 된다. 아무래도 내가 주인공이 되는 이벤트를 스스로, 어떻게든 만들어나가지 아니할 수가 없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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