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푸른 별에서 보낸 슬픈 한 철 생생육아

그러니까 암만해도 아기 낳을 때 걱정도 함께 출산한 모양이다. 아기가 점이었다가 땅콩이었다가 할 때는 점 만하고 땅콩 만하던 근심이 아기 팔다리가 생기자 저도 어엿한 모양새를 갖추고 세상 밖으로 나온 거다. 그래, 아기가 첨 생겼을 때부터 일찍이 내 그런 성향의 사람인 줄이야 알았다.

 

 늘그막에 결혼을 해 애는 낳겠느냐던 주위 우려가 바가지 바가지였는데 식 올리고 한 달 만에 임신할 줄을 예상이나 했겠나. 손가락을 꼽아보니 4주 들어설 즈음인데 멋모르고 약을 먹었다. 문제없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도 불신해 진짜냐며 정말이냐며 수차례 반문하기를 시작으로 초음파 사진 속 아기 눈이 한쪽밖에 안 보인다, 아기 머리가 너무 울퉁불퉁하다, 어떤 날은 태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가지가지 근심을 토로하다 결국 엄마가 이리 걱정이 많으면 태어난 아기는 어떻겠냐며 담당의에게 질책을 듣기에 이르렀다.

 

 그러니 통통하고 발개가지고 있을 거 다 있고 없을 거 하나 없는 아기를 품에 안은 순간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그저 감사하는 심정이 됐다.

그러던 게 분유를 너무 많이 먹어 걱정, 한밤에 시도 때도 없이 깨서 걱정, 많이 먹어 걱정이던 게 언제냐며 1년을 넘게 곡기를 끊어 걱정, 걷는 게 늦어 걱정, 말을 안 해 걱정, 웃지를 않아 걱정. 이게 진짜 걱정거리인지 사서 하는 걱정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인터넷을 보면 같은 문제라도 엄마마다 인식하는 방식이 다르고 그에 대처하는 법 또한 천양지차라 중심을 잘 잡고 서지 않으면 쉬이 휘둘리고 만다. 알면 알수록 근심도 커지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여간해 웃는 법이 없어 시크 베이비라는, 찬사인 듯 찬사 아닌 찬사 같은 별명을 얻은 아기는 눈 맞춤이나 상호작용도 많지 않았다. 24개월을 한 달 앞둔 시점에는 영유아 검진 체크 리스트 중 할 수 있는 게 절반도 안 됐고 유의미하게 반복하는 말이라곤 엄마가 전부였다. 단순히 말이 늦는 게 아니라 인지도 못한다는 게 암만 해도 마음에 걸렸다.

 인터넷을 검색했다. 문을 여닫는 데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낯선 음식을 죄다 거부하고 까치발로 딛고 곁눈질을 많이 하고. 한번 이상하게 보기 시작하자 모든 게 이상했고 자폐 스펙트럼 진단 목록 대부분 항목에 해당하는 듯 했다.

 서울, 대전, 대구 소재 대학병원 세 곳에 예약을 하고 기다리던 즈음 그쪽 방면으로 가장 유명하다는 개인 병원을 소개받았다. 이른 아침 기차로 서울역에 도착해 병원까지 이동하는 내내 나는 두려웠다. 엄마가 강해야 한다는 친정어머니 말씀도 마음 다잡는데 도움이 안 됐다.

 언어도 인지도 느린데 단순히 느린 게 아니라 뭔가 이상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만약에 만약에 무수한, 무한대의 만약에 아기한테 문제가 있으면 사람들이 이 아기를 전처럼 사랑해주지 않는 걸까 하는 두려움과 내 사랑스런 새끼가 줄곧 자기 안에 갇혀 얼마나 외롭고 힘이 들까 하는 두려움과 내가 더 이상 이전의 내가 될 수 없는 걸까 하는 두려움과 내 곁에 있던 사람들이 더 이상 나를 예전의 나로 보지 않는 걸까 하는 두려움과 꿈꾸었던, 아들과 함께 할, 내가 그렸던 이상의 미래가 나에게는 이제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과 내가 쉽게 포기하고 지치는 나약한 엄마가 될까 하는 두려움이 범벅돼 무엇을 어찌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상담료는 40분에 12만원. 10여 분간 아이를 지켜본 후 나머지 시간은 주로 시계를 흘깃대던 의사는 시간이 종료되자 언어발달장애라 진단을 내렸다.

 자폐가 아니라는 안도에 가슴 쓸어내릴 새도 없었다. 의사는 눈 맞춤과 상호작용이 적고 언어와 인지발달이 느리며 자주 멍하게 있는 증상 등은 발달장애의 일종이다, 하니 이 아기는 시간이 흐른다고 자연스레 말문이 트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 단언했다. 치료를 한다 해도 보통 아이들처럼 말할 확률 또한 높지 않다고 덧붙였다.

 엄마와 둘만 고요히 지낸 생활이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시끌벅적하게 환경을 바꾸면 나아지지 않을까, 지푸라기 잡듯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건조한 시간이었다.

 함께 상경했던 어머니가 뭐라도 먹고 오라기에 건물 1층 분식집에서 김밥 한 줄을 시키고 좀 울었다.

 무슨 치료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무너지면서도 그래도 안도했다.  

 그 밤에, 그 후로도 줄곧 나는 우리 아기를 깊은 어두움 속에 혼자 내버려두지 않은 절대자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그 어두움 속에 어쩔 수 없이 남겨진 많은 사람들에게 빛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그 어떤 것도 더는 당연히 여길 수가 없었다. 이 나의 행운도, 생면부지 누군가의 불운도. 칼 세이건이 표현한 이 창백한 푸른 점인 지구 위에 이토록 많은 불행이 나부낀다는 사실에 밥을 먹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목이 메었다.

 내게는 세상이, 이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1년 전, 13126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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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는 31개월에 접어들어서야 제대로 말문이 트였다. 결코 자연스레 말할 일 없으리라던 의사의 진단은 빗나갔다. 세 돌을 앞둔 아기는 쉴 새 없이 종알대는 다른 아기들과 마찬가지로 잠시도 조용히 있는 법이 없다.

 이보다 더 좋은 시절이 있겠는가. 행복한 때다. 욕심을 내리고 느긋하게 걸어간다.

 지금도 때때로, 겪지 않았으면 결코 공감할 수 없었을 아픔들을 생각한다. 수많은 밤 검색을 하며 밖으로 쉬이 드러나는 법 없던 수많은 아픔을 목도했다.

 나와 같은 행운이, 나와는 달리 비껴간 자리에서 가장 두려워한 진단명을 들었을 세상 많은 부모들에게 어떤 위안도 어떤 완벽한 구원도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면 이 창백한 푸른 지구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게 쓰라리다. 살면서 처음으로, 완벽하게 낯선 타인들을 위해 이따금 기도한다.

 모두의 마음에 평화가 깃들기를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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