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곁에 있어도 엄마는 외롭다 생생육아

집에서 놀며 애나 보는 주제에 말이지, 문화센터에 몰려다니다 카페에 앉아 코에 바람이나 넣는 엄마들은 대체 뭐가 힘들다는게요?"


육아 기사에 이런 식의 댓글이 달린 걸 종종 본다. 어쩐 일인지 볕 좋은 날 유모차를 끌고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커피 한 잔 하는 엄마들은 꽤나 한심해 보여 마땅치가 않은 모양이다. 실은 나 역시 전업주부의 육아를 굉장히 안이하게 바라봐온 사람이라 그런 의견을 비난할 자격도 없다. 제 앞에 닥쳐야 그제야 알 수 있는 일이 있다. 육아가 그러했다.   

 

결혼을 하고, 나고 자란 지방을 떠나 남편과 살림을 차린 지 열 달 만에 아기가 태어났다. 친정 식구나 가까운 친구는 물론이고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밤 늦게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며 아기와 씨름하는 건 참 만만치가 않았다.
 

"우리 아기 울었어요?" "맘마 줄게" "기저귀 갈아줄게" "코 자자" "어부바"

내가 구사하는 언어는 정해진 몇 문장으로 제한됐고 얼른 밤이 오고 아기가 잠들기를 바라는 나날이 반복됐다. 설상가상, 아기가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남편은 갑작스레 타지로 발령을 받아 떠나야 했고 함께 이주하는 것도 여의치 않아 나는 오롯이 아기와 둘만 남겨졌다.

  
생후 8개월짜리 아기와 둘이 24시간을 보내야 한다니 벌칙도 이런 벌칙이 없다. 태양이 떠오르는 아침이면 기운이 솟아 상냥하게 우리 아가, 손을 잡고 볼을 쓰다듬고 입을 맞추지만 한 시간, 두 시간 흐를수록 다정한 목소리는 건조하게 변해가고 눈가에 웃음도 사라진다. 어느새 낮잠 시간을 기다린다. 낮잠을 자는 두어 시간이 내게 주어진 짧은 휴식, 그동안 나는 이유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린다. 쌓이지 않도록 제때제때 쓰레기도 내다 버린다. 아기가 깨지나 않을까 노심초사 음식물 쓰레기며 종량제 봉투를 바리바리 싸들고 1층까지 내려갔다 서둘러 오르는 길, 엘리베이터는 왜 그리 느리게만 느껴지던지.

 

운이 좋으면 책도 조금 읽는다. 틈틈이 시계를 보다 아기가 낮잠에서 깰 시간이 되면 쫓기는 도망자처럼 불안해 심장이 콩콩 뛰기도 했다.

 

 아기가 눈 비비며 일어나고 오후가 시작된다. 오전과 다를 바 없다. 장난감을 흔들고 그림책을 읽고 간식을 먹이고 바닥을 긴다. 동요에 맞춰 노래를 부르다 또 장난감을 흔들고 그림책을 읽고 저녁을 먹인다. 잠들기 전의 목욕시간은 수도자의 고행처럼 버거웠다.

 매 주말 오는 것도 쉽지 않은 남편은 몇 주에 한 번 집을 찾는다. 고요한 집에서 엄마는 말을 잃어가고 아기 역시 거울처럼 엄마를 닮아가 옹알이조차 없다.
 어린 왕자도 외로워 어쩔 줄을 몰랐던 해 저물녘이 지나고 밤이 오면 엄마와 아기는 둘이 이부자리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둘이서 또 이부자리에 든다.

 

 어떤 밤은 이웃집 휴대폰 진동소리가 아기를 일어나 앉게 만들 정도로 적막해 겨우 밤 아홉 시가 새벽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도 오늘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이따금씩 울고 싶은 마음도 됐다. 

 조그만 손을 꼭 잡은 채 아기 가슴을 토닥여 볼라치는데 아기가 데구르르 저만치 굴러가 저 편한 자리에 눕는다. 어느 밤은 그마저도 서러울 정도로 나는 외로웠다.

 

 바쁜 남편은 일과가 끝난 후에야 기진맥진 전화를 하고 어쩐지 쓸쓸한 기분을 들킬 것 같아 친정 어머니고 친구들에게도 섣불리 연락하지 않게 됐다. 우리집에는 찾아올 이 하나 없으니 세상에서 잊힌 존재처럼 고독했던 내가 한두 마디 나누는 사람은 택배 아저씨 정도였다.

 

 때로, 남편은 있으나 마나 도움이 안 된다며 나름의 위로를 건네는 이도 있다. 하지만 빈둥대며 소파에 누워 TV를 보기만 해도 좋다. 텅 빈 정적을 깨고 누군가 집으로 돌아올 사람이 있다는 거, 하루의 매듭이 지어지고 또 새로운 시작이 온다는 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혼자 남겨지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끝도 없고 시작도 없는 미로가 무한반복되는 것 같은 날들 속에서 나는 어른의 대화를 좀 나누고 싶었다.
 동네 놀이터를 돌며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걸어볼까도 했지만 이미 다들 짝을 이뤄 나온 모양새라 선뜻 다가갈 용기도 안 나고 어쩐지 내가 자란 곳이 아니라 괜스레 주눅도 들었다.

 

 그러던 터에 아기도 돌을 넘겼으니 슬슬 바깥 활동이라도 해볼까 싶어 알아보다 동네 롯데마트에 트니트니 수업을 신청했다. 3개월 12회 수업, 11만원.
 둘이 남겨진 지 일곱 달 만에 스케줄이 하나 생겼다. 나는 수업이 있는 화요일이면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한다, 화장을 한다, 아기옷을 입힌다 부산을 떨며 모처럼 산 사람 같은 기분을 맛봤다.
 더운 날씨에 유모차를 밀고 30분이나 걸어야 했지만 괜찮았다. 내 스케줄이다.

 열다섯 아기들 중 유일하게 걷지 못하고 기어다니던 아들은 프로그램을 따라갈 수 없어선지 영 흥이 안 나는 모양이었지만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타지의 친구를 사귀었다.

 운 좋게도 같은 아파트에 살던 동생을 만나 서로 마음을 의지하고 집을 오가며 퍽도 도움을 받았다. 물론 수업이 끝나면 같이 마트에서 장도 보고 운이 좋으면 커피도 한 잔 하고 그렇게 여유도 부리게 됐다. 

 엄마들의 그런 순간을 너무 고깝게들 보지 말고 조금은 따뜻한 눈으로 봐주면 좋을텐데.

 그런 낮이 지나고 나는 어김없이 밤의 고요 속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웃을 수 있었던 덕에 그 외로움들을 겨우 버텨냈다.  
 
 이 세상 엄마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는 보이는 모습과는 다른 여러 가지 속사정이 존재할 것이다. 혹 그렇지 않다 해도 좀 웃고 떠드는 게 무어 그리 나쁜가. 때로 서로가 서로에게, 타인의 행복에 좀더 관대해지면 좋겠다. 그리고 혹여 지금 아기와 둘이 힘들게 씨름하며 외로움을 버텨내는 엄마들이 있다면 힘내시라고 전하고 싶다. 1년 6개월을 아기와 둘이서만 지냈던 나는 머지않아 곧 그 생활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니 박카스라도 한 병 쥐어드리고 싶은 외로운 엄마들, 우리 함께 힘내십시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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