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통령 직속 통상기관, 국방부 저작권 문제 개입 정책

미 대통령 직속 통상기관, 국방부 저작권 분쟁 개입
한미동맹에 ‘채찍’으로 등장한 지적재산권 분쟁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저작권 분쟁에 소극적으로 대응해 오던 국방부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현재 이들의 저작권 분쟁에는 미 대통령 직속 국제무역위원회(USITC)까지 나서서 올해 초 발효된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규정되어 있는 국가소송제도(ISD)까지 동원하는 초강경 조치를 국방부에 행사할 조짐을 보이는 등, 분위기가 험악하게 전개되고 있다. 현재 마이크로소프사는 USITC의 강경한 입장을 의식하여, 우리 국방부를 상대로 불법 소프트웨어가 사용된 것으로 여겨지는 군 지휘통제(C4I) 사용을 금지하는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출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다. 

이 때문에 소프트웨어 현황 자료 제출을 거부해 협상을 결렬시킨 국방부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졌다. 다급해진 국방부는 병사들이 이용하는 사이버지식정보방의 서버접속권(CAL)까지 동원해 C4I(지휘통제) 체계로 전용하려 하는 등 비상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백신공급업체에 자동 업데이트 서버 소프트웨어를 리눅스로 교체하라고 압박하는 등 갖은 수단을 동원해 잘못을 은폐하려한 정황도 포착됐다. 그러나 국방부가 그 동안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왔다는 게 사실로 드러난 이상 이러한 조치가 결정적인 해법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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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정부 개입, 자칫 양측 정부 통상 분쟁 될 여지 있어 

이번 분쟁을 추적하고 있는 한 소식통은 “국방부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 저작권 분쟁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미국국제무역위원회(USITC)가 직접 나서 이번 일에 개입하려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미 이들이 접촉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 접촉에서 USITC 측은 마이크로소프트에 “법과 원칙대로 처리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USITC는 대외무역에 관련된 사항을 조사하는 대통령 직속 조직으로 미국통상대표부(USTR)와 함께 국제통상문제를 다루는 중요한 기관이다. 양측의 접촉 여부에 대해 미 대사관 공보실에 사실 여부 확인을 요청했지만 “미국 정부가 어떤 공식적인 입장을 낸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확인해줄 수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마찬가지로 “확인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답변을 피했다. 

그러나 본지 취재결과 마이크로소프트 한국지사의 강경한 조치는 주한미 대사관에 파견되어 있는 USITC 소속의 상무관들의 압력에서 비롯되었다는 정황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 한국지사장이 주한미 대사관에 불려간 시점은 6월 19~20일 경이다. 국방부와 막판 조정 협상을 진행하고 있던 바로 그 시기 마이크로소프트는 대사관 USITC의 돌연한 호출을 받은 것이다. USITC가 미국의 대외교역이 국내생산, 고용 등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대통령 직속의 준사법기관임을 감안하면 국방부와의 협상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결정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줄곧 “이번 분쟁은 한미FTA와는 관련이 없다”고 해명해왔다. 그러나 USITC의 입장은 다르다. 소식통에 따르면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이유로 한미 FTA에 대한 미국 내 비판여론을 희석시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가시적 성과가 나와야 한다는 게 USITC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그는 “시장 규모가 얼마 되지 않는 한국 정부의 지적재산권 문제에 대해 미 통상기관이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이유는 오바마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추진한 한미 FTA의 상징적 의미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또 다른 전문가는 “최근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대해 주한미군 전력을 증강해 준다는 ‘당근’의 이면에는 통상 현안을 통해 한국 정부를 강하게 압박한다는 ‘채찍’이 준비되어 있다”며 “아무리 가치동맹을 말한다 해도 한미관계의 현실은 냉혹한 생존 게임”이라고 말한다.   

사이버지식정보방까지 희생양 삼아

사태가 여기까지 왔지만 국방부는 여전히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저작권 침해 사실을 은폐하는 데만 급급한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에서 사용하는 21만대의 컴퓨터가 모두 접속하는 백신 업데이트 서버는 국방부가 낸 국방바이러스방역체계 제안요청서(RFP)에 따라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서버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측에서는 21만 대에 달하는 컴퓨터가 이용하는 바이러스 업데이트 서버에 적정 수준의 서버접속권(CAL)을 구입하지 않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국방부는 서버접속권 구입은 고려하지 않은 채 백신제공업체 하우리에 서버 프로그램을 리눅스로 바꾸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소프트웨어를 교체하더라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을 사용한 기록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법정으로 갈 경우 손해 배상은 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바이러스 업데이트 서버 제안요청서에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사이버안전센터에서 인증한 서버 소프트웨어만 사용할 것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인증 받지 않은 리눅스를 사용하는 건 규정 위반이란 점도 문제다. 

심지어 국방부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병사들이 이용하는 사이버지식정보방의 서버접속권을 C4I체계로 전용하려는 계획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되면 병사들이 외부와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인 사이버지식정보방의 운영이 전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국방부가 저작권 문제를 제때 해결하지 않은 책임을 병사들이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한국군의 전쟁수행체제를 전면적으로 마비시키는 C4I의 사용중단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어떻게든 막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대책을 마련하든 미국에 대한 의존심리, 공짜심리에 익숙해있는 국방부는 미국과 말만 잘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를 버리지 못하고 임기응변에만 골몰하고 있다. 국방부는 미국에 종속되어 있는 국방 전산 시스템을 자주적으로 개선하든 정당하게 사용료를 지불하고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든 어떤 선택이 필요한 시점에서 아무런 정책적 결심도 없이 상황을 방치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2015년 전시작전권 전환을 앞두고 우리 국방 시스템 전체에 미증유의 혼란이 초래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한국 합참이 전작권 전환을 앞두고 500억 원을 투자해 미국과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개발한 지휘통제시스템인 AKJCCS에 대해 주한미군 측이 “사용이 불가한 불안정한 시스템”이라며 사용하기를 거부해 전작권 전환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연간 5억 원에 문제 해결하려는 국방부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 4일 손건익 차관의 지시로 각 부서의 정품 소프트웨어 현황을 점검하라는 문건을 내려 보냈다. 이 문건에서 보건복지부는 국방부의 사례를 명시해 불법 소프트웨어 근절을 지시했다. 이처럼 현재 각 정부기관은 국방부 사태를 거울삼아 불법 소프트웨어 근절을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다음 주 중에는 문화체육관광부, 행정안전부를 포함한 정부기관이 모여 불법 소프트웨어 근절에 대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 예정이라고 한다. 앞서 6월 14일에는 한미FTA 이행을 위해 대통령 훈령으로 ‘공공기관의 소프트웨어 관리에 관한 규정’이 제정됐다. 이 훈령에서는 공공기관은 반드시 정품 소프트웨어만 사용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한편 마이크로소프트는 6월 20일 국방부에 대표 변호사 명의로 소프트웨어 사용 현황 확인 기간이 지났다는 공문을 보내 “취할 수 있는 모든 방안들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전달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장하는 저작권 침해규모는 현재 공개된 문서로 밝혀진 것만 670억 원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제시하는 규모를 인정하지 않은 채 연간 5억 원 정도만 투입해 저작권 문제를 해결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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