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격 - 생생육아



5db5185c697ae068a9e711229c8e66ec. » 울고 있는 큰 딸 수아.






“얘야. 이렇게 하면 안되지. 그렇게 하면 되겠니? 잘 생각해보렴.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지.”






나는 항상 아이들을 훈육할 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내 꿈은 현모양처가 되는 것과 아이들한테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었으니까. 실루엣이 드러나는 정장옷을 입고 한 손에는 커피를 든 채 항상 웃는 얼굴로, 말투는 교양 있게. 아이들을 혼낼 때도 이성적으로 매를 들지 않고, 아이가 스스로 깨닫고 잘못된 점을 고치도록 타이르는 것 등.






실제 교육 관련 전문가나 심리학자들은 아이를 혼낼 때 무조건 윽박지르거나 매을 댈 때, 감정에 치우쳐 혼내거나 하는 등의 행동은 비교육적이라고 강조해 왔다. 아이의 나쁜 습관이나 버릇을 혼내는 방법 중에 최선은 첫째,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한 뒤. 둘째, 입장을 바꿔서 왜 엄마나 아빠가 아이한테 잘못했다고 말하려 하는지 생각해보게 한 다음. 셋째,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 등이다. 






나라고 왜 모를까. 그동안 읽어왔던 육아 관련 서적, 육아 심리 관련 서적이나 방송에 이런 이야기들이 수없이 나왔었고 교육에 관심이 있는 엄마로서 가급적이면 읽고, 또 챙겨봐 왔었는데... 더구나 나 역시 어릴적 엄마가 혼을 낼 때 무조건 소리를 지르거나, 매를 들거나 하는 행동을 하는 게 너무 싫었고, 그것 때문에 일부러 반항(?)을 하려 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내 아이한테만은 ‘우리 엄마는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교양 있게 키웠다’는 기억만을 남기고 싶었다.






그런데 요즈음 아이를 키우면서 ‘교양 있고 우아한 엄마’는 요원한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이가 갓 태어나, 내 눈과 얼굴만 보고 움직이지 않을 때만 해도 난 충분히 교양 있고 우아한 엄마였다. 아이를 위해 클래식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고... 하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음악도 못 듣고, 책도 못 읽는데다 목소리 톤까지 3음계 쯤은 높아졌다. 엄마가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말에 아이가 ‘왜?’ ‘나 이렇게 하고 싶은데?’ ‘이렇게 하면 안돼?’라고 대꾸를 하면 약간 화가 나고, 그렇게 되면 목소리 톤이나 크기가 한 템포씩 높아진다.  심지어 “너 왜 이렇게 말을 안들어?” “혼날래?” 같은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다. 때문에 아이의 주관이 뚜렷해지면 역시나 엄마가 교양과 우아함을 지키면서 아이를 훈육시킨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 느끼고 있는 것이다.






딸 둘을 키우는 엄마가 이럴진데, 아들 둘셋을 키우는 엄마는 오죽할까. 내 친구만 봐도 목소리 톤이 평소보다 5음계 정도는 높아진 상태에서 ‘이 놈의 자식’ ‘이 놈의 새끼들, 왜 이렇게 말을 안들어!’ 같은 말을 달고 산다. 아이한테 회초리를 대는 일도 수시로 일어난다고, 이 친구는 늘 걱정을 한다.






내가 우리 두 딸들한테 교양 있고 우아한 엄마가 되지 못할 때는, 아침에 아이들이 일어나지 않을 때, 두번째는 아이들이 놀고 난 뒤 뒷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을 때로 크게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딸들은 평소 잠을 늦게 자는 편이다. 엄마 아빠의 늦은 귀가 때문인지, 엄마 아빠가 늦게 잠드는 습관을 갖고 있어서인지 새벽 1~2시가 되어도 깨어있기 일쑤다. 그나마 이번주 들어 11시까지 취침시간을 단축시키긴 했지만 덕분에 아이들은 아침 8시가 되어도 깊은 잠속에 빠져 있을 때가 많다.(새벽에 헬스클럽을 다니면서 운동할 수 있는 건 세 부녀가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들을 유치원,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기 위해서는 늘 아침마다 한바탕 전쟁이 벌어진다. 아이들은 깨워도 잘 일어나지 않고, 깨워도 다시 이불 속으로 몸을 숨긴다. 눈을 떴어도 스스로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기는 커녕 두 아이들을 안고 쉬를 누이고, 세수와 양치를 해주고, 옷을 입히고, 밥을 먹이고, 가방을 챙기는 일까지 모두 내가 해야 하기 때문에 화가 솟구치고 나의 큰소리,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한바탕 이어지는 것이다. 큰 아이는 나의 잔소리에 속상해서 울고, 아직 철부지인 둘째 아이는 잠을 깨웠다고 울면서 뒤집어지고...






나의 잔소리는 대개 이렇다. “수아야, 일어나! 유치원 안갈래?” “그러니까 일찍자. 엄마도 아침에 바쁘단 말이야.” “언니가 이러면 쓰니? 여섯살이면 네가 직접 일어나 옷도 입고, 세면도 하고, 밥도 먹어야지! 언제까지 엄마가 해줘야 하니?” 등등. 문장으로 옮겼으니 사뭇 우아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의 목소리 톤은 꽤나 높다... 내 목소리에 남편이 성질을 내면서 ‘제발 좀 아이들한테 그만해! 아침부터. 아이들이라고 기분이 좋겠어?’라고 잔소리를 할 정도니까 말이다.






실제 나의 잔소리를 한바탕 듣고 난 뒤 수아의 표정은 늘 의기소침이다. 주눅들어 있는 느낌이고, 유치원 차에 오를 때까지 표정이 밝아지지 않는다. 아침부터 수아의 컨디션을 망친 죄책감에, 우아한 엄마로서 한 표 깎였다는 좌절감에 현관문을 나와 복도를 걷는 동안, 엘레베이터를 기다리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일부러 더 크게 웃고, 이런저런 얘기를 딸과 나눈다. 또한 딸아이의 손을 꽈악 잡아주거나 안아주거나 뽀뽀를 하거나 갖은 애정 표현을 다 한다. “화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한테 ‘엄마는 널 사랑한단다. 아까 화낸 건 다 너를 위해서다’라는 것을 인식시켜주고 싶은 양.  






그나마 다행인건, 그래도 고함을 치고, 큰소리는 엄마가 되어 ‘우아하고 교양 있는 엄마의 자격’을 하루하루 조금씩 잃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이런 내 행동과 말투를 반성하려 하고 있고. ‘우아하고 교양 있는 엄마’가 되기 위한 마음가짐과 노력을 늘 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양있고 우아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고, 참아내는 인내력에 있는 것 같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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