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그날, 6월 26일 뭇생명의 삶터, 국립공원

2012년 그날, 6월 26일

 

윤주옥 사무처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올해는 기억할 날이 많은 해다. 2월 15일,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어머님과 각별한 애틋함을 나눴던 고부간이라 할 순 없지만 같은 여성으로,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홀로되신 어머님을 잠시 모셨던 며느리로서 나는, 깊은 아픔을 느꼈다. 어머님이 보여주신 마지막 눈물은 이 땅에 사는 여성의 눈물이며,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가야하는 애절함의 표현이라고 느껴졌다.

 

6월26일, 제96차 국립공원위원회가 열린 날이다. 10시부터 진행되는 국립공원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지리산자락에 사는 서초동 남부터미널 근처에서 잤다. 새벽 3시쯤 깨서 멍하니 어둠을 응시하다가 오늘은 특별한 날이 더 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창밖이 밝아오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아는 분들에게 문자와 전화가 왔다. 잘하라고, 기운 내라고, 점점 몸이 식어갔다. 손발이 차가워지고, 피의 흐름이 멈춤 듯했다. 호흡을 하고, 어찌되든 최선을 다하자고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청사로 가는데 낯 익는 얼굴이 보였다. 지성희 국장, 신현호 간사, 인드라망 회원들, 눈물이 핑, 시작도 하기 전에 이러면 안 되는데 싶은데 어쩔 수 없었다. 10년간의 긴 싸움으로 나름 지치고, 회의결과가 두렵기도 했다.

국립공원 케이블카, 국립공원 주변의 일부 지자체와 지역 토건세력들은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올리고 싶어 한다. 정상으로 정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실어 올려서 돈을 벌고 싶어 한다. 2001년부터 시작된 싸움이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이 바뀌면 정책도 바뀌었고 2010년에는 우리나라에 국립공원제도가 도입된 후 최초로 공원자연보존지구에 더 길고, 더 높은 시설을 허용하도록 자연공원법이 개정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국립공원까지 돈과 성장, 개발에 팔아버린 것이다.

전국 15개 이상의 지자체가 국립공원에 케이블카가 필요하다며 달려들었고 놀란 환경부가 2012년 2월에 내놓은 안이 국립공원 케이블카 시범사업이란 것이었다. 그때까지 환경부에 신청서를 제출한 설악산 양양, 지리산 남원․함양․산청․구례, 월출산 영암을 대상으로 가이드라인을 적용하여 시범사업을 하겠다는 안이었다.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해 설치한다는, 케이블카가 지역에 돈을 뿌려줄 거라는, 오히려 환경을 보존하는 시설이라는 등 국립공원 케이블카를 둘러싼 갑론을박, 그러나 그들은 환경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도 지키지 않았다. 국립공원특별보호구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고 했고, 환경영향평가서의 조사지점과 계획서가 일치하지 않았으며, 케이블카를 위해 탐방로를 폐쇄 하겠다고도 했다. 말도 안 되는 계획들이었다. 그런데도 불안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추진하는 개발 사업이 법과 원칙대로 진행되지 않음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회의가 시작되고 민간전문위원회에서 그간 검토한 조사결과를 보고하고, 케이블카 추진 지자체 대표자들의 프리젠테이션이 끝나고, 질의응답이 오갔다. 10년간의 논란, 법까지 바꾼 개발 의지, 국회의원과 지자체장, 일부 주민들을 앞세운 여론몰이, 국립공원 케이블카 정책부서인 환경부나 심의기구인 국립공원위원회나 부담스럽고 초조한 시간이었다. 손에서 식은땀이 났다. 아침에 화장실을 안 간 것 같은 느낌, 체했나 싶을 정도로 가슴이 꽉 막혀왔다. 문제점을 지적하고 6곳 모두 부결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오리무중,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랜 논쟁 끝에 6곳 모두 부결로, 그러나 지리산과 설악산국립공원은 국립공원 케이블카가 필요하다는 아쉬운 단서를 남기며 회의가 종결되었다. 자연공원법에 케이블카가 살아있는 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이 단서가 또 다른 싸움의 시작이 될 것임을 알고 있으니 한껏 기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한편 정말 기뻤다. 밖에서 기자회견을 준비 중인 동지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손이 떨려서 버튼이 눌러지지 않았다. ‘환영 기자회견 합시다, 6곳 모두 부결!’ 입가에 웃음이 나왔지만 자제했다. 케이블카를 찬성했던 위원들도 있고, 완전한 승리가 아니니 쉽게 웃을 수 없었다. 환경부가 준비한 도시락을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었다.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밖에 있는 동지들에게 가고 싶었다. 1/3도 먹지 못하고, 일이 있어 가야한다면 회의장을 나왔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여름의 끈끈한 바람도 상쾌하게 느껴졌다.

청사 앞에 기자회견을 하는 이들, 박그림 선생님, 김병관 대장, 김두석 대표, 지성희 국장, 박창재 국장, 고이지선 님,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자 눈물이 흘렀다. 고맙고 감사했다. 지난 10년간, 지리산 천왕봉, 설악산 대청봉, 북한산 백운대에서 보낸 날들, 매서운 눈보라와 비바람, 뜨거운 햇살아래 서있었던 시간들, 지리산 노고단에서 맞이했던 새벽, 우리들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국립공원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국립공원 케이블카 부결 결정과 함께 나의 국립공원위원 임기는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희망과는 상관없이 국립공원 케이블카는 계속 추진되고 있다. 이미 강원도 양양은 환경부에 설악산국립공원 케이블카 신청서를 냈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들의 싸움도 계속될 것이다.

국립공원 케이블카, 지난 10년간 국립공원의 핵심이슈였다면, 앞으로 10년도 핵심이슈가 될 것이다. 우리사회가 국립공원의 가치와 정체성을 인정하고, 그곳에 사는 야생동식물의 입장에서 공존공생하려는 마음으로, 국립공원만을 지켜내야 한다는 것에 뜻을 같이 하지 않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소모적인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 싸움은 국립공원 케이블카 반대를 넘어, 국립공원 케이블카가 가능하게 하는 법과 제도를 바꾸고, 국민들과 국립공원의 존재 이유를 공유하기 위해, 공공의 공간 국립공원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않도록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삶속으로 파고 들어가야 한다. 국립공원에 사는 반달가슴곰과 산양, 하늘다람쥐를 대신하여!!

 

* 이글은 월간 함께사는길 12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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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윤주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