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때 맞춰서 아이를 낳아야 해요” 생생육아

 “방학 때 맞춰서 아이를 낳아야 해요.”
 충격적이었다. 준비 없이 아기를 갖게 된 나로서는 그게 가능한 일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똑똑해 보이는 그녀는 이른바 명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간강사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까지 공부를 오래했고, 자신의 연구 분야에 자긍심을 갖고 있으며, 학생 가르치는 일을 좋아한다. 내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임신 5개월이었다.


 ‘시간강사 주제에’ 1년짜리 육아휴직은커녕 3개월짜리 산전후휴가도 언감생심이라 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박사 학위를 따고 시간강사를 시작하려면 적어도 20대 후반, 보통 30대가 된다. 여성 시간강사 중에 임신과 출산을 준비하는 이도 많을 터다. 그러나 아기를 낳고 1년 정도 키우다 돌아온다면? 누구도 그 자리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다들 방학 때 맞춰서 출산을 한다. 여름방학에 낳으려면 10월쯤, 겨울방학에 낳으려면 3월쯤 임신을 해야 한다. 다른 달에 임신이 되면 큰일이다. 방학, 그것도 최대한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아기를 낳아 단 한두 달이라도 키워놓고 복귀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기간을 맞춘다. 그러니 강의를 하는데 젖이 돌아 고생했다는 여성이 여럿이다. 그래도 오래 준비해온 꿈, 일을 포기할 순 없다.


 갑자기 그때 그 시간강사가 떠오른 것은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본 까닭이다. 끔찍한 아내 사랑으로 ‘국민남편’에 등극한 방귀남(유준상)이 외주제작사 PD로 일하는 아내(김남주)가 임신을 하자 “일을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갑자기 넝쿨째 생긴 시댁 식구들이 전부 “그만두라”고 하는 상황에서 남편까지 등을 돌린 것이다. 이에 아내는 자신이 일을 그만둬야 할지 말지를 가족 투표에 부치고 만다. 서글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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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장면을 보고 주변의 많은 애엄마들이 격분했다. 하지만 격분하면서도 다들 안다. 맞다. 아이 갖고 낳고 키우기에 한국 사회는 여성에게 엄청 태클을 건다. 자리를 지키려면 아등바등 눈물겹다. 드라마 속 아내처럼 나도 임신 중에 술자리에서 폭탄주 파도타기에 걸려 술을 입에 넣었다가 몰래 뱉은 적이 있다. 둘째를 가졌다는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게 된 친구도 보았다. 임신한 여성을 ‘일 못하게 된 쓸모없는 부하 직원’ 취급하는 상사도 목격했다. 그러니 가족 투표라니 오버라고 흉보기엔 드라마가 너무 현실적이다.


 나 역시 육아휴직을 1년 동안 하기로 하면서 앞으로의 회사 생활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육아휴직을 쓰면서도 이런 마음인데 휴직은 언감생심, 방학에 맞춰 아이를 낳으면서도 누가 만삭인 배를 한심하게 볼까 두려워하며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직장에 임신 사실을 당분간 숨기기로 한, 드라마 속 아내(김남주, 패셔니스타 아닌가!)가 배가 불러오면 앞으로 어쩌나, 벌써부터 괜히 내가 걱정을 한다.

 

음..

덧붙여..

 

얼마전 <넝굴당>에서 시댁과 친정 사이의 호칭 문제에 대해 짚어줬다. 나역시 오래 고민하던 문제다. 남편은 내동생에게 처제, 혹은 이름 부르며 반말하는데 나는 왜 남편의 동생에게 도련님~ 아가씨~ 이러며 극존칭 해야 하는가? 게다가 도련님이 결혼하면,,뭐..? 서방님? 서방니~임? 에라이, 서방이 몇 명이냔 말이다.

이런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이 드리마, 기특하다. <넝굴당>도, 정글같은 방송 바닥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극 중) 임신한 김남주도, 방학에 맞춰 아이를 낳을 예정인 그 시간 강사도, 이 글을 공감하며 읽고 있는 당신도 모두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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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노키드 부부’로 살아가려던 가련한 영혼들이 갑자기 아기를 갖게되면서 겪게되는 좌충우돌 스토리를 나누고자 한다.
임지선 한겨레 기자 s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