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없이 보낸 7년 보고서 생생육아

c3c5d0f8cf0c1a4c9373c934fb5ad4e2.                                                                     (책 읽는 필규와 윤정 2010년 7월)



‘티벳에서 보낸 7년’이란 영화가 있었다. 티벳에서 7년 동안 지내게 된 서양인의 정신 세계 변화를

다룬 영화였다.

내게는 ‘TV없이 보낸 7년’이 있다. 2002년 6월에 결혼해서 2003년 6월에 첫 아이를 낳은 후에

2004년 구정에 TV를 없애고 7년을 지냈다. 오늘 글은 TV없이 보낸 7년이 나와 우리 가족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보고서라고 하겠다.



원래 나는 처녀시절에 헬렌 니어링 부부의 삶과 글에 심취했다가 스코트 니어링 같은 남편을

꿈 꾸었었다. 즉 몸을 움직여 노동을 하고, 밤에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음악을 즐기며

문명의 이기에 얽매이지 않고, 아내와 함께 사색하고, 토론하며 소박하고 건강하게 사는

초탈한 선비 같은 남자 말이다. 그러나 인생이 어디 꿈 꾼대로 흘러가던가.

정작 내가 결혼한 남자는 다른 모든 혼수는 안 해오더라도 제일 큰 벽걸이 TV를 해 오길 바랬던,

지극히 TV를 사랑하는 남자였다. TV와 침대와 소파가 없는 생활을 꿈 꾸었던 나는

결국 벽걸이는 아니지만 큼직한 TV와 넓은 침대를 혼수로 준비하고 결혼을 했더랬다.



결혼을 하면 주말에 남편과 다양한 레져생활을 즐기리라 기대했건만 서른 일곱 늦은 나이에

가정을 이룬 남편은 아내가 있는 편안한 공간에서 마음껏 뒹굴며 종일 TV를 보는 휴일을

추구했으니 가정의 불화가 생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가 생기면 변하려니 했다. 그러나 첫 아이를 낳고도 남편은 변하지 않았다.

어린 아기를 안고도 TV에서 눈을 떼지 못 하던 남편은  첫 아이가 물건을 잡고 일어서기

시작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아이가 텔레비젼을 잡고 일어서서 TV만 쳐다보고 있게 된 것이다.

금쪽 같은 귀한 아들이 TV에 얼굴을 붙이고 있으니 비로소 남편은 늘 TV를 없애자던 내 말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식을 위해서 이듬해 구정에 TV를 강릉 시댁으로

가져다 드렸다. 첫 아이가 9개월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우리 부부를 잘 아는 친정 언니들은 한달이 못 되어 다시 TV를 살 거라고 입을 모았다.

나는 상관 없다고 해도 남편이 TV를 보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그로부터 7년간 TV 없이 살았다.

물론 처음엔 쉽지 않았다.

애초부터 TV를 원하지 않던 나도, 막상 TV가 없어지니 당황스러웠다. 바쁠 땐 TV 앞에 아이를

앉혀 놓으면 반찬도 뚝딱 하고 집안일도 번쩍 번쩍 해낼 수 있었는데, TV가 없어지자

아이는 엄마만 찾았다. 잠시도 느긋하게 지낼 수가 없었다. 새삼 은연 중에 TV에 기대왔던

육아를 전적으로 엄마가 맡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TV가 없어진 거실에 커다란 책장을 들이고 아이 손에 닿는 서가에 재미난

그림책들을 채워 넣었다. 저녁상을 물린 거실에 넓다란 이불이 펴지면 아이와 온갖 책들을

넘겨가며 뒹굴다 잠들곤 했다. 아이는 금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서 기어다닐 때부터 책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으면 잠들기 전까지 TV 리모컨을 놓지 않던 남편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같이 놀아주는 법들을 이내 터득했다.

TV 없는 집에서 밤은 일찍 찾아오고 고요하게 지나갔다. 만화를 보겠다는 아이와 실랑이 할 필요도

없고, TV에 정신 팔고 있는 아이 입에 밥을 떠 넣을 일도 없었다.

무엇보다 속사포처럼 퍼부어지던 현란한 광고 화면으로부터 자유로와지니 정말 좋았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아이와 놀아주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은 행복했다.

첫 아이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랐다.



2007년 3월에 둘째를 낳고, 남편이 일년 중 9개월을 출장을 가야하는 부서로 옮기게 되었을 땐

잠깐 위기도 있었다. 어린 동생을 돌보느라 아무 곳에도 다니지 않던 다섯살 큰 아이를 봐줄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동생을 재우기 위해 침대가 있는 안방으로 내가 들어가버리면

큰 아이는 거실에서 저 혼자 책을 넘기며 그 시간들을 견뎌 나갔다. 큰 아이는 곧 어린 동생을

돌보는 법을 터득하며 동생과 같이 지내는 일을 배워 나갔다.

둘째는 첫 아이보다 더 일찍 책과 노는 법을 배웠다. 오빠가 책을 좋아하니까 자연스럽게

오빠를 따라 책과 놀고, 책을 읽어 달라고 조르곤 했다. 그래서일까? 둘째는 말도 또래보다

훨씬 빨랐고 책도 아주 좋아하는 아이로 자랐다.

이런 환경이 반갑고 좋긴 했지만 이따금 영상물에 대한 갈증이 일 때도 있었다. 드라마나 뉴스는

못 보더라도 다큐멘터리나 좋은 영화는 보고 싶었다. 남편은 마침내 집에 홈시어터를 들였다.

이따금 여유있는 저녁에 스크린을 내리고 아이들과 함께 내용이 좋은 에니메이션이나

다큐멘터리, 뮤지컬이나 공연 DVD 등을 보았다. TV가 없던 집에 이런 것들이 생겼으니

두 아이는 어떤 걸 틀어도 무섭게 집중했다. 덕분에 두 아이는 뮤지컬 ‘캣츠’의 열광적인 팬이

되었고, BBC에서 제작한 ‘살아있는 지구’ DVD를 닳도록 보며 자랐다.



이따금 외할아버지집에 가거나 친척집을 방문하면 아이들은 굶주린듯 TV에 빠져들었지만

집에 오면 다시 책과 장난감을 가지고 재미나게 놀곤 했다. 시댁으로 며칠씩 명절을 쇠러 가면

그때는 하루 종일 켜져 있는 TV를 보게 되는데, 원하지 않는 영상과 소리를 계속 들어야 하는 것이

얼마나 피곤하고 고통스런 일인지 생생하게 실감하게 된다. 어른들만 보게 되어 있는 프로그램들이

아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노출되는 것도 염려스러웠다.

또래 아이들은 대중가요를 흥얼거리며 댄스 가수들을 흉내내곤 했지만 두 아이는 그런 영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게 자랐다. 상업적인 문화로부터 내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것도 다행스러웠다.



그렇지만 출장이 잦은 남편은 늘 TV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DMB 기능이 있는 네비게이션을 사서 출장 다니는 도로에서 TV를 즐겼고, 출장가서 묵는 여관방에서

밤 늦도록 TV를 보곤 했다. 그러더니 멀쩡한 컴퓨터 모니터를 은근 슬쩍 HDTV 모니터로 바꾸더니

아이들이 다 잠든 깊은 밤에 저 혼자 TV를 보곤 했다. 그것까지 막고 싶진 않았다.

남편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즐길 권리는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아이들 깨어 있는 시간엔 절대

켤 수 없었고, 남편은 이 철칙을 철저하게 지켜주었다.



그렇게 7년을 지내다가 결정적인 고비가 왔다.

올 1월에 셋째를 낳은 내가 남편이 출장을 가버린 집에서 세 아이와 함께 지내는 일이

벅차도록 힘들게 되었을 때 동계 올림픽이 시작된 것이다. 더구나 내가 사는 군포에는 김연아 선수가

있었다. 필규는 열렬한 김연아의 팬이었다. 동향 사람으로서 김연아의 공연을 안 볼 수 없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두번째 동생을 본 첫 아이는 날도 추워 밖에서 마음껏 놀 수도 없게 되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백일까지 낮 밤이 바뀐 셋째아이 때문에 심각한 수면부족으로

힘든 육아와 살림을 병행하고 있던 내게도 무언가 잠시나마 도피와 휴식이 필요했다.

남편이 없는 집에서 세 아이와 함께 컴퓨터 모니터로 동계 올림픽을 시청하면서 그 고비를 넘겼다.

동계 올림픽이 진행되는 동안엔 아이들과 마찰도 적었고, 핏덩이 돌보면서 그럭 저럭 살림도

할 수 있었다.

그런 상태로 올림픽이 끝나 버리자 다시 완전히 TV 없는 삶으로 돌아가 버리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 7년 만에 TV 맛을 본 첫 아이가 TV 시청을 열렬히 원했다. 네살인 둘째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가족 회의를 해서 TV보는 원칙을 세웠다.

평일엔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EBS프로그램을 볼 수 있고, 주말엔 가족들이 모두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기로 했다. (우리집엔 지상파와 교육방송, 딱 네개 채널만 나온다.)



한동안 두 아이는 TV를 볼 수 있는 시간만 손꼽아 기다리며 지냈다. 그리고 정해진 것 외에

다른 것도 계속 보고 싶어했다. 그렇지만 나는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아이들은 툴툴거리면서도

원칙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TV를 끄고 책을 들게 되기까지

적지않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큰 저항은 없었다. 큰 아이는 7년, 둘째 아이는 4년간 TV 대신

책을 벗 삼아 자란 내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해서 친구들이 생긴 후에는 TV 볼 시간에도 밖에 나가 노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은 종일 TV를 틀지 않고 지나기도 한다. 주말에는 서로가 약속한 프로그램만 본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가족이 같이 보기 때문에 아이들이 어른 모르게 TV를 볼 일은 없다.

잔인하고 끔찍한 내용도 여과없이 나오는 뉴스나 드라마는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7년 만에 집안에 TV가 다시 틀어졌지만 TV에 얽매이지는 않는다.



다른 것엔 관대하지만 컴퓨터와 TV에 대해서만큼은 내가 전권을 쥐고 있다.

여덟살 큰 아이는 컴퓨터는 일주일에 두 번 30분씩 어린이 사이트(주니어 네이버)만 이용하고 있고

TV는 하루 한시간 반 정도, 주말에 서너시간 정도 시청하는 것이 전부다. 물론 아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어떤 내용을 보는지 부모가 같이 지켜본다.

아이가 크는 대로 원칙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이 두가지 만큼은 아이들의 자율권을 최대한 늦게

인정해 줄 생각이다.



‘TV는 눈이 씹는 껌’이란 말이 있다. 중독되기 싶고, 의미없이 들여다보기 싶다는 뜻이다.

7년 동안 보지 않았어도 TV는 단번에 우리를 사로 잡았다. 나도 이따금 아이들이 없을 때

TV앞에 앉으면 쉽게 리모콘을 내려 놓을 수 없다. 그만큼 TV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어른들의 공관과 아이들의 공간이 구분되지 않는 우리의 현실에서 외국처럼 정해진 시간 외에

아이들을 TV에서 떨어뜨릴 방법은 없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보는 온갖 프로그램에

익숙해져서 자라난다. 그 폐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어른들은 흔히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까를 고민하지만, 무엇을 해주지 말아야 하는지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 자극적이고 상업적인 영상, 폭력적이고 거친 내용들, 난무하는 비속어,

현란한 화면들로부터 최대한 우리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TV를 거실에서 치우기만 해도 집안 분위기는 달라진다. 아이들을 제일 쉽게 보는 방법은

TV와 컴퓨터 앞에 앉혀놓는 것이다. 몇 시간이고 아이들은 그 앞에 앉아 있다. 그러나

사람이 아닌 매체와는 진정한 교감과 소통을 나눌 수 없다. 육아를 TV와 컴퓨터에 의지하면

아이들은 그만큼 우리들의 통제와 이해로부터 멀어진다.

TV 대신 아이들의 얼굴을 들여다보자.

TV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자.

같이 TV를 보기보다 같이 책을 읽고, 퍼즐을 맞추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훨씬 가족을

더 가깝게 한다. 부모와 진정한 소통을 나누며 자란 아이들은 사춘기도 훨씬 수월하게 넘긴다.



찜통 같은 더위가 기승이었던 지난 주 내내 큰 아이는 종일 역사 만화를 붙들고 살았다.

오빠 언니가 책을 좋아하니까, 7개월된 셋째 아이도 벌써부터 책에 관심을 보인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TV라는 자극을 줄여주고 가족이 함께 책을 보는

시간을 늘리면 된다.

긴 인생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책을 보는 저녁도 금방 지나간다.

그 시절만이라도 TV없이 살아볼 것을 권한다. 포기하는 것보다 얻는 것이 몇 배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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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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