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게 말 걸기 3 '고로쇠나무' 나무를심는사람들

고로쇠나무는 단풍나무에 속하여 고로쇠단풍나무라고도 불린다. 고로쇠나무 잎은 흔히 보는 단풍나무와 달리 5~7갈래로 나눠지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그림으로 그리면 별모양과 같으며, 시중에 유통되는 술 뚜껑에 그려진 잎사귀 모양과 비슷하다. 단풍나무 종류들은 열매에 날개가 있어 바람이 불면 멀리 날아가는데 이를 연상하여 단풍나무 풍‘楓’자가 만들어졌다고도 한다.

고로쇠나무는 우리나라에 자라는 단풍나무 중 가장 굵게, 그리고 가장 높게 되는 나무이다. 따라서 고로쇠나무는 신록과 단풍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가구재, 기구재, 악기재, 운동용구, 장난감 등 목재로서의 쓰임새도 넓은 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고로쇠나무는 목재보다는 음용수로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산촌 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고로쇠나무 줄기에 상처를 내어 틈을 타고 나오는 수액을 마셨는데, 이를 약수(藥水) 또는 풍당(楓糖)이라 불렀다. 고로쇠 수액은 오대호와 세인트로렌스강 지역에 살던 인디언들이 생산한 단풍당밀(메이플 시럽)과 유사하다.

고로쇠 수액은 밤낮 기온차가 심한 초봄에 많이 나온다고 한다. 그 이유는 고로쇠나무 줄기 안의 압력 변화에 기인한다. 밤에 기온이 내려가면 수체(樹體) 안쪽에 수축이 일어나 마이너스 압력이 생기고, 뿌리는 본능적으로 땅속에 있는 수분을 흡수해서 줄기 안으로 보내게 된다. 밤 동안 물을 빨라 줄기 속을 채우고 있던 나무는 낮에 기온이 올라가면 수체 안에 있던 수분과 공기를 밖으로 밀어내는 플러스 압력을 만들게 된다. 이 때 고로쇠나무 껍질에 상처를 내면 상처를 통해 수액이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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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쇠나무에 통을 매달거나 비닐봉지를 걸어 수액을 채취하던 주민들은 수액을 먹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빠르고 편리하게 수액을 채취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2~3월 지리산국립공원을 걷다보면 계곡 근처 고로쇠나무에 투명한 호스가 박혀있고, 투명한 호스는 검은색 호스로 연결되어, 마을 입구에 있는 통에까지 닿아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호스가 바로 고로쇠 수액 채취 줄이다. 호스는 고로쇠 수액 채취가 전통적인 방법을 넘어 상업적으로 변했다는, 산촌 주민들에게 주요한 소득원이 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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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쇠나무는 국립공원, 자연공원법과 인연이 깊은 나무이기도 하다.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던 주민들은 2001년 국립공원 용도지구가 자연환경지구에서 자연보존지구로 변경되며 고로쇠 수액을 포함한 임산물 채취가 어렵게 되자 환경부에 민원을 냈고 이는 자연공원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현장조사, 토론회, 연구용역 등을 통해 내려진 결론은 자연공원법시행령 제14조2(자연보존지구에서의 행위기준)제7항에 명시되었다. 그 내용은 ‘지리산국립공원 심원지구, 달궁지구, 내장산국립공원 남창지구에서는 2001년 자연환경지구에서 자연보존지구로 변경되기 전부터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여 온 거주민에 한하여 수액 채취를 허용한다.’이다. 자연공원법을 바꾼 나무, 고로쇠나무는 대단히 정치적인 나무라 할 수 있겠다.

고로쇠 수액이 관절염, 요통, 중풍 등을 예방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주민들의 민원으로 자연공원법이 개정되기도 했지만, 야생생태계가 우선인 국립공원에서, 더구나 개인 땅도 아닌 국가 땅에서 나무에 호스를 꽂아 수액을 채취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곰의 쓸개즙을 마시기 위해 곰 몸에 빨대를 꽂는 것과 고로쇠나무에 호스를 박아 수액을 마시는 게 뭐가 다르냐고도 한다. 고로쇠나무는 사람과 자연, 국립공원 등 여러 문제를 고민하게 해주는 나무이다.

글과 사진_ 윤주옥 사무처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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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윤주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