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하고 험난한 베이비시터와의 생활(1)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2010.08.18 09:27 양선아 Edit
» 와이셔츠와 바지는 키를 쫙 맞춰 걸어놓으시고, 이유식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드는 베이비시터 A. 살림의 여왕이셨지만, 아이 돌보기 부분에 있어선 나와 충돌했다. Photo by 양선아
마음 맞는 베이비시터를 구해 잘 지내는 일. 이것은 지난해 육아휴직하고 난 뒤 직장에 복귀할 때 내게 있어 최대의 과제였다. 친정과 시댁이 모두 지방인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거나 베이비시터를 구해야했다. 갓 돌 지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이 꺼려진데다 기자라는 직업이 정시 퇴근을 보장할 수 없고 남편도 야근이 잦아 우리 부부는 일찌감치 입주가 가능한 베이비시터를 구해야겠다 생각했다.
혹시라도 같은 아파트 또는 주변 아파트에 아이를 돌봐주실 만한 분이 있는지 아파트에 전단지를 붙여봤으나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결국 난 인터넷 사이트 베이비시터 구인란과 각종 소개소를 통해 8~9명에 이르는 재중동포(이른바 조선족) 아줌마들을 면접봤다. 한국인 입주 시터는 구하기 힘들 뿐 아니라 비용이 부담스러웠고, 지인들 중에 재중동포 시터를 고용한 친구가 있었는데 만족해하는 것 같아 그쪽을 택한 것이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각종 사례를 읽고, 면접시 꼭 물어봐야 할 것들을 꼼꼼하게 챙겨 사람을 고르고 골랐다. 그러나 좋은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험난했던 두 명의 베이비시터와의 생활, 그리고 출산을 하루이틀 앞두고 있는 내게 갑자기 몸이 아파 그만 두겠다는 통보를 해온 현재 시터때문에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나. 베이비시터와의 생활은 정말 ‘도’를 닦는 심정으로 해야 하는 것 같다. 사람을 좋아하고 믿고 정이 많아 정을 퍼주는 성격인 내가 베이비시터들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고 있다. 결국 베이비시터들은 ‘돈’과 ‘조건’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인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친정과 시댁이 서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형제자매라도 많고 주변에 육아에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맘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 베이비시터와의 생활을 접어야만 하나, 엄마들이 아이들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보육 시스템을 국가는 언제즈음 마련해줄까 등등 별의별 생각들을 하며 만삭인 나는 밤잠을 설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자, 어떤 사연인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자.
첫 번째 베이비시터 A는 57살 연변 출신 재중동포셨다. 연세는 많으셨지만 한국말이 어눌하지 않았고, 이전에 일한 집 엄마와 통화가 가능한 분이었다. 이전 집 엄마는 “성실하고 깨끗하고 집안일을 잘하고, 아이도 잘 돌본다”는 평가를 해줬고, 그 엄마의 평가를 믿고 면접 본 9명 가운데 이 아주머니를 선택했다. 직장 복귀 두 달 전의 일이다.
두 달 동안 시터와 부대끼는데 그 시간은 6개월 이상 보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24시간 함께 보내니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볼 수 밖에 없었고, 아이를 시터에게 맡겨야 하는 나는 예민한 촉수로 그를 대했던 것 같다.
A의 장점은 정리정돈을 잘하고 한국 음식을 잘한다는 점이었다. 그의 정리정돈은 전문가 수준이었다. 정리정돈에 전병인 난 그에게 ‘살림이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배웠다. 빨래 하나를 널때도 발로 지근지근 밟아 다림질하듯 각을 접어 널었고, 옷을 하나 걸때도 서랍에 정리할 때도 키를 쫙 맞춰 거는 등 자신만의 방법이 있었다. 바지를 거는 법, 윗옷 정리하는 법, 겉옷 거는 법 하나하나가 다 다를 정도였다. 방바닥은 매일매일 반짝반짝 광이 났고, 옷장이며 책상 서랍이며 A의 스타일대로 우리 집은 정리가 되어갔다. 한번도 그렇게 집안을 깔끔하게 정리해놓고 살아본 적 없는 나로선 누군가 우리집에 마법을 부려 놓은 느낌이었다. 정리를 하니 집안도 넓어보이고, 기분도 상쾌했다.
또 그뿐이랴. A는 자신만의 한국 음식 레서피 공책을 갖고 있었다. 나도 제대로 못만드는 육개장, 유부초밥, 각종 종류의 찌게 등을 그 공책을 보며 표준 레서피대로 만들어 우리 부부에게 대접했다. 한국 식당을 운영해도 될 만한 실력이었다. 아이 이유식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원칙을 지켜 만들었다.
A의 정리정돈, 음식 서비스를 받으며 처음에 난 만족해했다. 그러나 A의 장점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느새 단점이 되어갔다. 애초 내가 A를 고용한 이유는 아이를 돌보기 위함이었다. 집안 정리정돈, 음식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터와 아이와의 관계였다. 내가 출근하면 시터가 나를 대신해서 엄마와 같은 사랑을 아이에게 제공하길 바랬고, 집안일이나 음식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A와 생활하면 할수록 자꾸만 그 부분에 있어 맘에 걸렸다.
A는 정리정돈을 완벽하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아이가 울어도 정리정돈이 우선이었다. 정리정돈이나 음식을 해야 한다면, 아이가 칭얼거려도 달래기보다 자꾸 재우려했다. 아이가 칭얼거리면 책도 읽어보고, 노래도 불러보고, 바깥 구경을 시켜도 될 텐데, A는 자꾸 아이를 슬링에 넣어 자장가를 불러댔다. 깨끗한 집안 상태를 유지하려 하다보니,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집안이 어지럽혀지면 그 상태를 견디지 못했다. 아이가 갖고 놀면서 호기심을 충족시켜야 하는 집안 도구들이 모두 제자리에 있어야만 했다. 한참 아이가 음식물에 호기심을 갖고 주물러보고 호기심을 충족할 연령인데, 깨끗함을 중시하는 A는 아이 손이 더러워지거나 음식물이 손에 묻는 걸 보지 못했다.
직장 복귀 시점은 다가오고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으로 마음이 갈팡질팡하고 있을 즈음, A가 주말에 나갔다 복귀하는시간이 점점 늦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일요일 밤에 돌아와야 할 사람이 월요일 오전에 들어오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지만, 직장 복귀 시점이 다가왔기 때문에 A를 잘 설득하고 다스려 어쨌거나 아이를 잘 돌보게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는 작정을 하고 A에게 “아이 오전에 칭얼댄다고 자꾸 재우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랑 놀 때는 아이한테 집중해서 놀고 집안일 안해도 되니까 아이랑 잘 놀아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A는 화를 내며 “열심히 하고 아이 칭얼대면 업어주는 수밖에 없는데 엄마가 자꾸 트집을 잡는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출근하기 일주일 전, A는 갑자기 허리가 너무 아파 아이를 돌볼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두 달 동안 얼굴 익히고 아이와 적응시킨 내 노력은 물거품이 됐고, 출근하기 일주일 전에 새로운 사람을 구해야 할 형편이 됐다. 너무 당황스럽고 놀란 나는 자주 들르던 인터넷 엄마들 커뮤니티 사이트에 사연을 올렸다. 상당수의 워킹맘들이 그런 경우는 대부분 ‘월급을 올려달라는 사인’이라 해석했다. 엄마들의 조언은 엇갈렸다. “월급을 10만원 정도 올려 A를 잡아보라”는 의견이 있었고, “그런 사람은 반드시 또 엄마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용하니 당장 바꿔야 한다. 아이는 잘 적응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결국 난 월급 인상보다는 시터를 바꿔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고 부랴부랴 사람을 알아볼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첫번째 시터와의 생활은 두 달 만에 막을 내렸다. (다음 편에 계속... )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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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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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난 인복이 있는 사람이다. 주문을 걸었더랬습니다.
애초에 양가 부모님께는 맡기고 싶지 않았고(임신중 쉬며 동네에 손주봐주시는 할머니들의 여론을 수렴해보니. 자식키운다 고생하셨는데 손주까지는 아니다 결론이 나더라구요. 남의 손의 맡길 수가 없어서 봐주시는 것.. 때론 역효과를 많이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베이비시터를 당연히 구해야 한다 생각했기에...
동네 미용실, 근처 베이비시터와 사는 언니 등 여러군데 소문을 내고... 결국엔 산후조리 해주신분과 지속적으로 연락한 끝에 좋은 분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동네에 계속 방을 붙여보세요. 그게 제일 좋을 것 같아요. 퇴근시간 눈치도 덜 보이고.......아이를 너무너무 좋아하시는 분...열심히 탐색하시면서...
좋은 분 만나시길 기도할게요 ^^ -
그러셨군요. 저도 육아휴직 하면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동네에서 구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네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해볼게요. ^^ 저도 평소에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고 생각하고, 또 실제로 그래왔는데, 아이를 맡기는 것은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아무튼 좋은 조언 감사드려요. 아이와 놀아주는 일만 해달라 등등 육아방식을 잘 전달해야겠죠. 오늘부터 새로운 이모님이 오셔서 첫째 아이 적응시키고 있는데, 둘째가 나오기 전 빨리 적응하리라 믿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정말 엄마는 왜 이리 할 일이 많은 것인지. 님 말씀처럼 세상의 엄마들 모두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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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분을 만나셨다니, 다행이네요. 저 역시도 양가 부모님께서 아이들을 봐주시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경제적인 형편 때문에 베이비시터를 들일 상황도 아니었구요. 운이 좋게, 큰 아이는 15개월까지 옆집 아주머니께서 아주 저렴한 가격(?)에 봐주셨지요. 이후 큰아이는 15개월부터 어린이집, 작은 아이는 제가 6개월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하면서 9개월째부터 어린이집에 맡기고 있어요.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보내는 것도 제 생각에는 크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봐요. 오히려 또래들과 어울리고, 곁가지로 노래, 그림, 율동, 학습 등 다양한 것들을 익히니 교육적으로도 더 나은 것 같구요. 우리 애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가는 걸 참 좋아한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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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이가 어릴수록 집안일은 최소한의 것만 해달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집안일은 표시가 나는 것이기때문에, 아이와 놀아주는 일만 해달라. 그리고 아이가 생활하는데 지저분한 요소만 정리해달라. 전 그랬답니다. 아이를 두고 어른이 다른일 하시는 건 베이비시터가 아니니깐요.
전 베이비시터에게 정말 육아에 전문적이신거 같다며 칭찬해드리며, 제가 원하는 육아방식을 주입했었답니다. 물론 쉽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방식을 따라주시더라구요. 이렇게 아이를 키운다고 하는데 이렇게 해보고 싶다 책도 보여드리고....
동네놀이터에 나가 아이는 혼자 놀고, 아주머니들끼리 수다떠시고 이런 모습도 은근히 비방하니, 그런 모습도 많이 줄어든 것 같고...어쨋거나 동네에서 아이를 어떻게 봐주시는지는 소문이 다돈다는 인상을 드리기도 하고...실제로도 주말에 나가 아이와 어떻게 지내는지도 알 수 있었구요.
쉽지는 않겠지만, 베이비시터를 하고자하는 주목적을 파악하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돈이 우선인지...아니면, 남는 시간에 좋아하는 아이를 보면 경제적인 이익도 얻고자 하시는 건지...
아웅. 엄마노릇은 이래저래 너무 힘들어요.
세상의 엄마들 모두 화이팅 !! -
글을보니 갑자기 울컥해지네요.
참 힘들어요 정말...
저도 친정과 시댁이 사는 곳과 거리가 있어서 어릴 때 부터 아예 놀이방엘 맡겼답니다.
저는 공무원이라 그래도 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맞출 수 있었거든요.
환절기 때 마다 지독한 감기 때문에 벌써 1년 연차를 다 썼어요.
아이가 아프면 꼼짝없이 집에서 돌봐야 하니까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유독 우리 아이만 병치례가 만다며...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을 때 마다 머리가 삐쭉 삐쭉... 바늘 하나 설 만큼의 여유도 없이 힘들어져버립니다.
힘내세요.
참 눈물겨운 워킹맘들...
모두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