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오공을 꿈꾸는 엄마 기본 카테고리

누웠다. 몸이 물먹은 솜처럼 늘어진다. 노트북을 열어야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 잠깐만 눈을 붙이자. 나는 나에게 다정하게 말한다. 눈을 감는다. 그리고 눈을 뜬다. 그런데 아침이다. (이럴 수가. 난 분명히 십분만 눈을 감았단 말이다!) 밤인줄 알고 맞이한 아침들은 언제나 개운치 않다. 그러나 분주한 아침에는 후회와 반추는 사치닷! 얼른 먹어! 양말 신어! 신발 똑바로! 고함과 회유와 당근과 채찍의 폭풍을 뚫고 우리는 나선다. 나와 아이들은 삼각편대를 이뤄서 유치원으로 출동한다. 최근 한 달간의 내가 보낸 대부분의 밤사(밤과 음악 사이가 아닌, 밤과 아침 사이) 풍경이다.


얼마 전 회사 출근이라는 걸 다시 시작했다. 몇 년만의 ‘출근’이라 처음에는 가슴이 설렜다. 어린 아이를 키우면서, 그것도 둘을 키우면서 시작하는 출근에 많은 우려들이 있었다. 그래도 나는 일하고 싶었다. 할 수 있다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장하기도 했다. 물론 나에게 시크하며, 에지가 넘치는 슈퍼우먼의 망토는 애 저녁에 없었다. 슈퍼는 커녕, 우먼으로서의 생존도 비루하게 꾸려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우리집 방바닥이 걸레의 손길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도 느껴버렸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 생활을 마주하면 여러 가지 생각이 보글보글 샘솟는다. 다시 시작한 회사 생활이라 더 열심히 하고 싶고, 그동안 꽤 소원하게 지낸 탓에 나와는 많이 서먹한 사이가 되어버린 영어도 더 공부하고 싶고, 회사의 사람들과도 어울리고 싶고, 하고싶고, 하고싶고, 하고싶은 것들이 쌓여간다. 그리고 얼굴을 돌려 집을 본다. 집에 오면 아이들이 나를 반긴다. 예전보다 더 찰싹 안기는 것 같은 것은 나의 착각일까. 현관문을 열고 내가 집에 들어서면, 목말랐다 물을 받은 화초처럼 애들이 찰랑대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책도 읽어주고 싶고, 블록도 같이 맞추고 싶고, 그림 그리는 것도 봐주고 싶고, 하고싶고, 하고싶고, 하고싶은 것들이 여기도 쌓여간다. 그리고 물론 설거지와 빨래와 청소도 함께 차곡차곡 쌓인다. 나는 요즘 이렇게 쌓이는 것들에 둘러싸인 듯한 느낌이다. 쌓인 것들을 치우기도 하지만, 어쩐지 치우는 것보다 쌓이는 것의 속도가 더 빠른 듯 하다.


며칠 전 지하철 역에서 빠져나와 마을 버스에 올랐던 저녁이다. 왠일로 자리가 비어서 앉았다. 문득 팔이 가려웠다. 소매를 걷고 팔을 긁었다. 팔위의 털 중에 이상하게 긴 털 하나가 비죽했다. 뜬금없이, 나는 그 털을 보면서 손오공이 떠올랐다. 이 털 ‘후~’하고 불면. 그렇게 해서 내가 하나 더 나오면. 그러면 어떨까. 그러면 나는. 그러면 나는...... . 아저씨, 잠깐만요. 저 내려요. 허튼 생각하다가 정류장을 지나칠 뻔 했다. 하마터면 아이들에게 더 늦게 갈 뻔 했다.


엄마가 된다는 건 특별하고 행복한 일이다. 일단 아이들은 귀엽다. 사랑스러운 짓도 많이 한다. (안사랑스러운 짓도 그 두배 정도 한다) 물론 아이들을 빛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미래를 쥔 사람들이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그것을 알기에 우리 공동체도 아이들을 낳으라고 하는 것이리라. (그렇게 믿고 싶다.) 그렇지만 우리 공동체는 현재를 사는 어른들은 너무 몰아붙인다. 여자 회사원들이 임신과 육아에 신경을 쓰는 순간, 이기적인 구성원으로 전락하기가 일쑤. 순번을 받아서 임신을 해야 하고, 육아 휴직은 책상을 뺄 각오로 써야하고, 정시 퇴근은 손가락질 받는 사회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슬슬 공포가 되어간다. 맞벌이 부부의 가사분담 불균형 기사 밑에 김치녀를 운운하는 악플이 스멀스멀 달리는 것을 볼 때 공포는 좀 더 가까이 있다. 


아이가 크는 데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아이를 키우는 일이 그만큼 많은 몸과 마음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뜻한다. 혼자서 해내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혼자서는 제대로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공동체라면, 함께 미래라는 시간으로 가고 있는 공동체라면, 아이들을 위해서는 서로서로의 분신이 되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수많은 일하는 엄마들이 손오공같은 되도 않는 꿈을 꾸지 않게.

털 하나로 잡생각이 무성해지는 어느 저녁. 나는 집 앞 부동산 옆을 지나며 팔뚝에 비죽 튀어나온 털을 괜히 뽑아 날려버렸다. 그리고는 100미터를 20초 대에 주파하던 학창시절의 실력을 살려 쏜살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아이들이 다시 찰랑거리면서 내게 안겼다.

 

TAG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