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도서관, 벽지 서민에겐 `그림의 떡'? 베이비트리 육아 뉴스

131210_장난감 대여 사업12.jpg » 지난 10일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읍사무소 체육관 앞에서 두 엄마가 경기북부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빌린 장난감 가득 든 가방을 받고 있다. 센터의 장난감 이동 도서관 서비스는 2주에 한번씩 이뤄진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난 10일 오전 10시 반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읍사무소 체육관 앞.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 자동차를 비롯한 알록달록한 장난감이 즐비하게 전시됐다. 경기도 북부 육아종합지원센터 소속 보육전문요원이 전곡읍에 사는 아이들에게 장난감과 책을 빌려주기 위해 물건을 가득 싣고 읍을 찾았다. ‘장난감 이동 도서관’ 서비스는 2주마다 한 번씩 이뤄진다. 오전 11시가 되자 엄마들이 한 두 명씩 나타난다.  

 “자동차처럼 부피가 큰 장난감 위주로 빌려요. 워낙 장난감이 비싼데다 공간도 많이 차지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장난감에 빨리 싫증을 내잖아요. 장난감을 빌려쓰니 육아비가 많이 절감돼요. 6개월 정도 이용했는데 대만족이에요. 2주 정도 장난감 가지고 놀다 새로운 장난감으로 바꿔주면 아이가 정말 좋아해요.”

3살, 10개월 된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 전정훈(33·경기도 전곡읍)씨의 얘기다. 전곡읍에서 문화센터만 가려고 해도 차로 30분 걸리고, 젊은 엄마들이 애용하는 키즈카페 하나 읍내에서 찾기 힘들다. 변변한 놀이시설이 없는 시골의 영유아 자녀 부모들에게 센터가 제공하는 각종 육아 지원 서비스는 그야말로 ‘가뭄 속의 단비’다. 센터는 장난감도 대여해주고, 문화공연도 하고, 육아 상담 전문가를 데려와 일대일 상담도 해준다. 다수의 엄마는 “앞으로도 계속 이런 지원이 확대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갈수록 느는 ‘장난감 도서관’

  
이처럼 장난감 도서관 서비스에 대한 부모의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장난감 도서관은 계속 늘고 있다. 장난감 도서관협회가 집계한 결과, 2005년도에 29곳에 불과하던 장난감 도서관이 올해에는 175곳에 이르고 있다. 8년 만에 그 수가 5배 늘었다.

우리나라 장난감 도서관의 시작은 장애아동의 발달과 교육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됐다.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와 그의 아내 김후리다 박사가 1983년부터 지적장애인 학교인 성베드로 학교에서 장애아동의 조기 교육을 위해 장난감 도서관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장난감 도서관은 그 취지에 공감한 사회복지관, 학교, 주민자치센터, 어린이집, 보육정보센터 등이 서비스를 적극 도입하면서 확산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특히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하고 영유아 보육에 대한 공공투자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 나서면서 서비스의 질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11월 개정된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개정안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반영됐다. 개정안 핵심내용 중 하나는 기존 보육정보센터를 육아종합지원센터로 확대 개편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기존 보육정보센터가 어린이집 정보 제공, 보육교직원 교육 등 어린이집 지원 기능에 편중돼 있었다면, 육아종합지원센터로 확대 개편해 장난감 대여 및 부모 교육, 영유아에 대한 체험, 놀이공간 제공 기능과 일시 보육 등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서영숙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장난감 도서관 운영에 대한 각종 경험이 쌓였으니 이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이를 토대로 더 정교한 제도적 지침을 마련해 현장 밀착형 육아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갑작스런 예산 중단에 ‘발 동동’


정부가 육아종합센터의 핵심 기능으로 장난감 대여 등을 명시적으로 밝혔지만, 정작 농어촌 지역에서 ‘장난감 이동 도서관’ 서비스를 해오던 센터들은 내년 사업 예산이 끊겨 애를 태우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각 센터당 매년 1억 3천만 원씩 예산 지원을 받아 ‘장난감 이동 도서관’을 운영해온 경기 북부, 전남, 전북 육아종합지원센터가 당장 내년부터 지원을 못 받게 됐다.

 “어린이집 미설치 지역이나 도서 벽지 등 보육 서비스로부터 소외된 농어촌 읍면 지역을 찾아가 장난감도 빌려주고 육아 상담도 해왔다. 특히 그런 지역의 아이들은 장애아, 조손, 다문화 가정 등 취약아동 가정들이 많고 가가호호 방문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비용과 인력이 많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최근 정부의 예산 지원 중단을 통보받은 뒤 지난 4년 동안 운영해 온 이 서비스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는 김동례 전남 육아종합지원센터장의 말이다. 도 육아종합지원센터의 운영은 국비 50%, 도비 50%의 지원으로 이뤄진다. 재정 자립도가 낮은 전남 같은 지자체에서는 ‘장난감 이동 도서관’을 위해 도에서 추가로 예산을 확보하기 어렵다.
 김 센터장은 “서울 등 재정자립도가 높은 지자체는 장난감 도서관 서비스의 질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결국 육아지원도 부익부 빈익빈이 되는 꼴이 아니냐”며 하소연했다. 세 곳에서 ‘장난감 이동 도서관 서비스’를 받아온 아이들은 총 625명에 이른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올해 농어촌 어린이집 미설치 지역 중심으로 국공립 어린이집(아이돌봄센터)을 확대 설치할 계획이다. 이동식 장난감 도서관 사업의 효과와 중복된다고 본다. 또 장난감 이동 도서관은 사업이 끝난 뒤 시설 등 실체가 남는 게 없는 점도 단점이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 역시 “장난감 이동 도서관보다는 아이돌봄센터가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 그쪽으로 예산을 배정했다”고 설명했다.

 

소외지역 장난감 지원사업 잘 키워가야


정부 쪽 설명을 요약하면 더욱 질 높은 육아 지원을 위해 ‘장난감 이동 도서관’ 서비스보다는 돌봄센터를 만드는데 예산을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장에서 육아지원을 하고 있고 서비스를 받아온 사람들은 아직 돌봄센터가 설치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서비스가 중단되는 것에 난감함과 우려를 표시한다. 유민정 경기도 북부 육아종합지원센터 보육전문요원은 “장난감 도서관 서비스는 단순히 장난감만 빌려주는 게 아니다. 각 가정의 특성을 파악하고 부모님들과 대화를 많이 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부모들과 친해지고 이용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서비스가 중단되게 됐다”며, 아이돌봄센터가 구축되기 전까지 계속 서비스를 하고, 돌봄센터가 만들어진 뒤 기능을 재조정해도 늦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나타냈다.


황인정 장난감 도서관협회 사무국장은 정책 담당자들의 시설 건립 위주의 사고방식에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보기 좋고 거대한 시설을 짓는 것보다는 실질적으로 부모들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업의 연속성이 있어야 부모들도 신뢰하면서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세 곳 센터가 예산 부족으로 관련 사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지역별 특성에 맞는 사업은 각 센터가 예산 범위 내에서 자체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기본이다. 복지부, 농식품부, 기재부가 협의를 통해 농어촌 지역의 ‘장난감 이동 도서관’ 사업을 지속할 필요성이 있는지 다시 한번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장난감 도서관 운영 제대로 하려면? 

운영 지침 만들고 전문인력 양성해야

 

 

131210_장난감 대여 사업5.jpg » 지난 10일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읍사무소 체육관 앞에서 한 아이가 경기북부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빌린 자전거를 타보고 있다. 뒤쪽에선 센터 소속 보육전문요원이 장난감이 든 파란 가방을 나란히 놓고 대여자를 기다리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장난감 도서관이라고 하면 흔히 장난감만을 빌리고 나눠쓰는 곳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도서관의 역사적 맥락을 살피면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난감과 놀이를 통한 상호작용이다. 모든 아이들은 놀 권리가 있고,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상호작용하면서 육체적, 신체적, 교육적, 사회문화적 발달을 이루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장난감 도서관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운영요원들의 전문성 강화와 동시에 장난감 도서관의 사회적 역할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는 운영 지침과 예산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서영숙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운영요원은 장난감 구입, 세척, 관리, 놀이상담, 놀이프로그램 진행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영유아의 발달적 특징을 이해하고, 부모의 요구를 파악해서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사회서비스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영국, 프랑스,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의 일부 국가에서는 장난감 도서관 전문인 양성과정을 운영하며 자격증을 부여하고 있다고 서 교수는 전했다. 

 

고은미 부산 육아종합지원센터장은 “요즘 엄마들은 정보 습득력도 높고 육아에 관한 지식도 많고 자기 주장도 강하다”며 “장난감 도서관을 이용하는 엄마들을 상대하려면 보육전문요원들이 전문성과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의 보육사업안내 지침서에 보육전문요원의 자격사항, 처우문제 등에 대한 어떠한 지침도 없다”면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부모들이 장난감 도서관에 대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전국적인 온라인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김동례 전남 육아종합지원센터장은 “전문가가 아이의 발달 상황에 맞는 장난감을 검토한 뒤 그것을 구입하고 온라인 상에서 부모들이 쉽게 내 아이에 맞는 장난감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인증 시스템 계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유아 뿐만 아니라 초등학생, 더 나아가 청소년과 성인까지 장난감 도서관 이용 연령층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놀이와 휴식, 재미와 즐거움은 영유아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이다. 1100개의 장난감 도서관이 있고 30만명의 어린이가 장난감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는 영국의 경우,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까지 장난감 도서관에서 제공하고 있다. 남아공이나 브라질에선 청·장년과 어르신을 위한 놀이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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