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폐기를 위한 상상력과 행동지침 원전을 멈춰라

원자력 폐기를 위한 상상력과 행동지침

에너지 정책에 ‘혁명’적인 대전환이 필요하다. 2008년에 이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고유가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1~4호기 폭발로 세슘, 요오드, 은과 같은 방사능 물질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 석유 수입 세계 5위에다가 전력 소비의 34.1%를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어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심상치 않게 다가온다.

일본 원전 사고는 ‘인간이 끄고 싶을 때 끌 수 없는 불’ - 원자력의 위험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도쿄의 수돗물과 후쿠시마 인근 쇠고기, 시금치, 우유가 오염되었는가 하면, 원자로 온도를 낮추기 위해 쏟아 부었던 냉각수가 엄청난 농도의 방사능 물질을 포함한 채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방사능 바닷물이 해류를 따라 순환하게 되면 지구촌 전체로 오염과 피해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은 25년 전 체르노빌 사고 이후 신규 원전 건설 중단과 단계적 폐지로 정책 방향을 설정했다. 체르노빌로부터 교훈을 얻은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일본원전 사고를 통해 독일과 같이 원자력 폐지를 선택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정책 입안자들은 원자력에 에너지의 미래를 걸고 있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2030년까지 전력 중 원자력 비중을 59%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원자력으로 생산한 전기 불매운동!

일본 원전 사고 이후 대통령은 “우리 원자력발전소가 우수하고 안전하다”, 지식경제부 장관은 “원전 확대, 수정할 계획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정부가 원자력 정책을 전환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원자력 없는 미래를 원한다면 시민들이 다시 광장에 모여야 한다. 원자력 반대를 위한 촛불이 적어도 10만은 모여야 한다. 일본 원전사고 이후 독일에서는 "원자력 발전소" 폐쇄를 주장하며 25만 명이 모였다. 프랑스와 일본에서도 집회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에서 가장 가까운 한국은 조용하다. 왜 그럴까?

우린 오랫동안 “원자력=청정에너지”라는 광고에 노출되어 왔다. 우리가 내는 전기요금의 3.7%는 전력산업 기반기금으로 조성된다. 원자력문화재단은 전력산업 기반기금에서 매년 100억 원 이상을 지원받아 TV광고를 포함 원자력 홍보비로 사용하고 있다. 보수 언론은 “원자력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충격적인 표제를 뽑으며 수출산업화를 홍보하는데 앞장섰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방안에 켜진 전등의 3분의 1을 밝히는 에너지가 원자력이라는 사실을, 값싼 원자력 전기요금에는 사고 위험과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 비용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다. 최근 10년간 국내 원전은 89번이나 고장으로 멈춰 섰는데, 이것은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020년대에는 가동하는 원자력의 절반인 10기가 수명이 끝나 폐쇄해야 한다.

이 땅에 원전이 1기라도 덜 세워지길 원한다면 원자력 전기에 대한 불매운동을 하자. 정부와 한국전력이 전력이라는 상품에 대해 ‘허위’, ‘과장’ 광고를 일삼았으니, 국민들은 리콜도 요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당장 원자력 의존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전력소비를 줄여야 한다. 우리는 전력소비량 급등으로 2011년 들어서만 벌써 전력피크를 4번이나 경신했다. 전력피크는 정부의 원자력 추가건설의 근거가 된다. 지금 계획으로는 2024년까지 원전 13기가 신규로 들어설 계획이다. 전력소비량 자체를 줄이지 않으면 원자력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에너지 정치가 필요해!

일본 원전 사고는 당장 독일 선거판을 뒤흔들었다. 58년간 기민당이 집권해온 바덴뷔텐베르크에서 녹색당 총리가 배출된 것이다. 원전 수명 연장안을 가결시켰던 메르켈 총리와 기민-자유당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 독일 시민들은 원자력 반대를 선거에서 표로 보여주고 있다. 독일 사회에서 원자력 문제는 정당의 운명 좌우하는 중요한 정치적 의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치에서는 원자력 문제가 쟁점이 된 적이 있었던가? 부안 군민들이 독단으로 핵폐기장 유치를 신청한 김종규 부안 군수를 3번 연속으로 낙선시킨 것이 유일하다. 그런데 일본 원전 사고는 우리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 28일, 야4당이 원전 확대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이다. 정동영, 권영길, 조승수, 유원일 의원을 포함해 14명이 발의했다. 주장은 명확하다. 신규 원전 건설 계획 취소, 고리1호기 가동 중단, 월성1호기 수명연장 철회이다.

한나라당은 “국민 불안 심리를 이용한 인기영합주의”라고 반박했지만 정작 한나라당은 불안해하는 국민들을 위해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있다. 단 한나라당의 “원전 정책은 정권에 상관없이 일관되게 추진되어 왔다”는 지적은 되새겨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야4당은 이번 결의안에 대한 진정성을 제도화와 입법 활동을 통해 증명해야 한다. 당장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에서 삼척에 원자력발전소 유치를 찬성하는 엄기영 후보에 맞선 최문순 후보가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원자력을 포함한 에너지 정책이 쟁점으로 부각되어야 한다.

독일에서는 헤르만 쉐어, 요셉 펠 의원 등 원자력업계를 견제하면서 전력매입법과 재생에너지법 입법을 통해 에너지 전환에 헌신한 정치인들이 있었다. 우리도 이들같이 기존 원자력과 석유업계의 입김과 로비에 흔들림 없이 에너지 대안의 비전을 제시하고 실행해나갈 정치인들이 필요하다.


문제는 에너지원이 아니라 에너지 소비 시스템!

원자력이 아니면 재생가능 에너지가 대안일까? 인천만 조력발전소는 강화도와 영종도를 잇는 방조제를 건설해 전력을 생산한다. 갯벌과 생태계를 파괴할 세계최대 조력발전 계획을 재생가능 에너지라는 이유로 지지할 수는 없다. 유럽으로 수출하는 바이오디젤을 생산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열대림이 팜유농장으로 변해가고, 미국의 바이오에탄올 정책은 밀과 옥수수를 비롯한 세계 식량가격 폭등을 가져왔다.

인류는 지금까지 부단히도 ‘에너지원’을 찾아 헤맸다. 초기연료인 나무에서부터 석탄, 석유, 원자력, 천연가스, 태양, 바람 등.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류가 마음껏 사용하면서 고갈되지 않고 더구나 환경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 꿈의 에너지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석유 자체인가 아니면 석유가 제공하는 서비스인가. 우라늄인가 우라늄 전기가 제공하는 서비스인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불을 밝히고, 난방을 하며, 이동을 하는 ‘에너지 서비스’이다. 방 하나를 밝히는 데 썼던 백열등을 에너지 고효율 전구로 교체해 같은 양의 전력으로 방 네 개를 밝힐 수 있다면, 전력소비량은 4분의 1로 줄어든다. 에너지 절약과 효율 개선이 곧 에너지 생산인 셈이다. 에너지원보다 에너지 소비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어떤 에너지를 '쓸 것인가'를 이전에 어떻게 하면 에너지를 '안 쓸 수 있을까', '잘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허점이 많은 나라이다. 도심 한복판에 에너지 효율이 낮은 통유리 빌딩과 초고층주상복합 빌딩이 들어서고 있다. 여름엔 온실처럼 뜨겁고 겨울엔 냉기를 차단하지 못하는 건축물의 냉난방을 위해 엄청난 양의 전력을 사용하게 된다. 또 전체 전력소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산업계에는 주택용 요금의 3분의 1가격을 책정해 산업계의 전력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교통부분에서도 국토를 남북 7개축, 동서 9개축의 도로망을 구축하기 위해 도로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도로중심의 교통정책을 펼치면서 고유가에 차량 5부제를 실시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도시계획, 건축, 교통, 산업 시스템 전반에 에너지 효율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에너지 전환을 위한 도구들


원자력 폐기를 이야기하면 성격 급한 원자력 지지자들은 대안을 내놓으라고 닦달한다. 그렇게 대안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정작 고준위방사성폐기물에 대한 대안마련에는 침묵하고 있다. 어쨌든 이렇게 ‘대안에 목마른’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탈핵을 위한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독일은 현재 전력의 23%를 원전에서 충당하고 있는데, 환경청 발표로는 2017년까지 원자력 에너지로부터 독립을 하고, 2050년에는 모든 에너지를 재생가능 에너지로 충당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린피스, WWF 같은 국제 환경단체들도 탈핵과 탈석유사회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와 국책연구소에서는 탈핵 시나리오에 대해 시도는커녕 상상조차 못한다. 정부와 학계가 장기에너지수급계획을 세우는 방식은 항상 현재 상태에서부터 시작한다. 현시점에서 30% 이상의 전력을 생산하는 원자력을 인정한 상태에서 그 위에 수치를 덧붙인다. 최근 박년배 세종대 연구교수가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 비율을 3%로 줄여 사실상 ‘핵 탈피 사회’로 가는 시나리오 작업을 마쳤다. 2050년 전력생산에서 원자력(3%)과 석탄(0%), 액화천연가스(LNG, 3%), 재생가능 에너지(93%)로 전환이 가능하며, 비용도 기존 정부계획(605조) 보다 10% 정도(667조) 더 투자하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가 첫 시도이다. 이제 원자력 없는 미래를 꿈이 아니라 현실로 만들어가기 위한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백캐스팅’ 방식이다. 우리가 원하는 목표와 달성시점을 설정하고, 목표시점에서 역으로 시간계획을 짜면서 각각의 단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예를 들면 2050년 원자력 폐기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조합을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도 지금부터 ‘탈핵’을 위한 시나리오를 작성해야 한다. 계획이 만들어지면 전환을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네덜란드는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위해 20년 뒤를 내다보는 장기 비전을 설정하고, 23개의 전환 경로와 80개의 전환 실험을 계획했다. 계획을 실행할 새로운 거버넌스로 정부와 산학연,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에너지 전환 태스크포스를 구성했으며, 정책조정을 위해 부처간사무국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이렇듯 원자력 폐지 같이 에너지 정책을 획기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비전과 경로, 실험계획, 실행조직이 필요하다.

전환을 위한 사회적 합의

원자력은 온실가스를 쉽게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할 때 빠지기 쉬운 유혹이다. MB 정부도 전기도 생산하고, 탄소 배출도 줄이고, 심지어 수출까지 하는 ‘원자력’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지금 일본 정부는 그동안 사용해온 원자력 전기에 대한 비용을 한꺼번에 치르고 있다. 사실 원자력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 우라늄 채굴과 폐기물 처분 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와 비용을 감안하면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우리가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원자력 폐기를 논의하고, 에너지 전환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한다.

에너지 문제에 관한 한 한가롭게 ‘다음세대’를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지금 바로 닥친 현실의 문제이다. 에너지 전환은 쉽지 않다. 전력소비량 자체를 줄여야 하고, 원자력발전 비중이 줄어든 공간을 꾸준히 재생가능 에너지와 열병합 가스발전으로 전환해가야 한다. 기존의 불합리한 에너지 가격구조를 개선하고, 세금 제도도 개편해야 한다. 에너지 비용을 더 내야 할지도 모른다. 에너지를 덜 쓰고, 좀 더 춥고 덥게 지내는 일을 감내해야 한다. 원자력 이해당사자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힐 수도 있다. 이들마저 설득해야 하는 것이 에너지 전환의 몫이다. 그렇다면 주체는 누구여야 하는가? 누가 이 일을 할 것인가? 시민단체? 전력회사? 정부? 전문가? 천만에! 지금 이 순간에도 원자력 에너지를 쓰고 있는 바로 ‘나’와 ‘당신’이다.

이유진 (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 팀장)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4월호 http://www.ilemonde.com/     고요한 일본, 달아오른 국제사회 <원자력이 폭로한 것들> 기획 기고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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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이고, 녹색당 당원 이유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