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하향, 동생은 상향 평준화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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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의젓해질 줄 알았다.

동생이 둘로 늘면 그만큼 오빠 노릇을 잘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올 1월에 둘째 동생을 보고, 3월에 초등학교 입학을 했던 큰 아이는 여덟살 오빠로서 의젓해지기보다

한 살, 네 살 여동생들 수준으로 열심히 내려가고 있다.

반면에 가운데 낀 네 살 윤정이는 또래보다 훨씬 앞선 어휘력과 사고력을 보이며 오빠와 대등하게

말싸움하는 상대로 발전했다. 내가 판단하건데 두 아이는 지금 여섯살 수준에서 서로 어울리고 있다.



학교에서 돌아온 필규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는 윤정이랑 함께 침대 위에 우산 여러 개를 펴 놓고

그 위를 담요로 덮은 집을 만든 다음 그 안에 들어가 숨는 ‘돼지 삼형제‘ 놀이다. 물론 내가

늑대 역할을 해야 한다. 크르르 거리며 ‘요놈 돼지들을 잡아 먹어야지’ 어쩌고 하며 담요집을

흔들면 그 안에서 숨 넘어가게 까르르 거리며 웃는다. 이젠 막내 이룸이까지 배밀이로

그 안에 들어가 같이 어울린다.

이사 준비로 매일 옷장을 뒤집어 엎고 새로 정리하는 일로 집안은 난장판이고, 물건을 짚고

일어서기 시작한 이룸이는 왠만하면 서서 놀고 싶어해서 깨어 있는 동안은 정말이지

다른 일을 할 시간도 없이 서 있는 이룸이를 붙잡고 있어야 한다.  두 배로 힘들어 죽겠는데

필규는 돼지 삼형제 놀이 하자고, 빨리 늑대 하라고 아우성이다. 정말 죽을 맛이다.

필규가 어렸을 때야 앨리스도 하고, 늑대도 하고, 파워레인저에, 배트맨도 하면서 재미나게

같이 놀았었다. 그때는 그렇게 아이랑 노는 게 재미도 있었고 나도 즐거웠다.

이렇게 아이랑 어울려 동심으로 돌아가 역할극을 하는 것도 내 인생에 잠깐이려니 생각하며

땀나게 열심히 아이가 원하는 역할을 맡아가며 놀아 주었다.

그런데 네 살, 다섯 살, 여섯 살도 아닌 여덟 살이나 된 큰 놈과 여전히 돼지 삼형제 놀이를

해야 하다니, 기가 막히다. 힘도 나만큼 센 녀석은 늑대 역할을 맡아 제 담요 집을 흔들어 대는

나를 있는 힘껏 밀어대는 통에  온 몸이 다 아플 지경인데, 한 번 해주고 나면 ‘또요, 또 해주세요~’

난리가 난다. 이거 정말 내 팔자가 뭔가 싶다.



잠시 침대 위에 엉덩이라도 붙이고 앉아 쉬려고 하면 큰 아이가 제일 먼저 달려와 ‘안아주세요’ 외친다.

그러면 둘째도 달려와 ‘나 먼저 안아 주세요. 자고 일어나서 한 번도 안 안아줬잖아요’ 한다.

한 팔로 큰 아이 안고, 다른 팔로 둘째를 안고 있으면 허리가 휘어질 것 같은데 이룸이가 저를

안으라고 내 발밑에서 아우성이다. 힘드니까 다 내려가라고 하면 큰 아이는 ‘엄마 미워!’ 하며

화를 버럭 낸다. 하루종일 세 아이를 번갈아 안아주는 것도 노동이 되 버렸다.



기껏 몸 날려 놀아주면 침대 위에 한바탕 어질러진 것들을 치우는 일엔 아주 굼뜨고 느리다.

읽은 책이라도 제 자리에 꽂아두라고 시키면 ‘윤정이가 읽은 것도 있는데 왜 나만 해요?’ 하며

눈을 부릅뜬다. 네 살 짜리는 책을 꽂는 일이 쉽지 않으니까 오빠가 좀 도와주라고 부탁해도

펄쩍 뛴다. 자기만 늘 힘들고 억울하다는 것이다. 윤정이도 자기랑 똑같이 정리해야 한단다.

네 살과 여덟 살의 차이를 아무리 이야기해도 듣지 않는다. 결국은 엄마가 늘 자기에게만

힘든 일을 시킨다고 화를 내며 가버린다.



네 살, 일곱 살 터울로 두 여동생을 본 필규는 늘 엄마의 보살핌과 도움이 절실한 어린 동생들과

지내다 보니 자기만 가장 많이 엄마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엄마한테 해달라고 매달리고, 저 혼자 하라고 하면 억울해 한다. 네 살 아이는 여덟 살에

비해 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적을 수밖에 없는데도 절대 인정 안한다. 똑같이 하지 않으면

펄펄 뛴다. 네 살 윤정이는 초등학생 오빠에게 치이다 보니 일찍 철이 들어서 야무지게

해내는 일이 많은데 필규는 딱 윤정이 수준으로 해내려고 한다. 여섯 살 아이가 두 명인 셈이다.



얼마 전에 이사온 효빈이 엄마는 나와 동갑인데 지금 뱃속에 네째 아이를 임신 중이다.

그녀는 세 아이를 연년생으로 낳아 아홉살, 여덟살, 일곱살 오누이가 있다.

그 아이들을 지켜보면 어찌나 엄마 말을 잘 듣고 스스로 알아서 하는지 감탄하게 된다.

일찍 일어나 가방 챙기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큰 누나의 지도 아래 숙제부터 해 놓고 놀러 가는 게

습관이 되었다. 현재 그 집의 막내인 일곱살 규남이는 필규보다 더 의젓하게 모든 일을 스스로

한다. 연년생으로 세 아이가 같이 지내다보니 밑의 두 아이가 맨 위 아이 수준으로 스스로를

끌어 올려 상향 표준화가 되어 있었다. 학령기가 비슷하니까 같이 학교에 다니고, 혹은 유치원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정말 부러웠다.

나는 그녀와 동갑이지만 큰 아이 낳고 4년 만에 둘째를 낳고, 또 7년 만에 셋째를 낳다보니

늘 집안에 도움과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아이가 있는 생활이 8년째다.

큰 아이는 늘 동생들을 보면서 자기의 행동과 사고를 맞추게 되어 또래보다 독립이 늦고 서툴다.

터울이 많은 형제들은 중간쯤에서 수준이 맞아 들어가고 연년생인 형제들은 윗 놈을 따라

일찍 여물게 되는 모양이다. 모든 경우가 다 이렇지야 않겠지만 우리집은 확실히 햐향평준화가

된 것이 틀림 없다.



아침마다 필규를 깨우는 것부터가 수월치 않다. 두 여동생들은 곤히 자고 있는데 저 혼자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는 것을 필규는 늘 억울해 한다. 하루에 한 시간 TV를 보는 것도

윤정이가 좋아하는 EBS 만화들로 만족해야 한다. 집에서 놀 상대도 주로 윤정이다보니 윤정이가

이해하고 같이 할 수 있는 놀이들이 주가 되 버린다. 8년째 여전히 돼지 삼형제 놀이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주말에 형아들과 어울려 전철여행을 다니는 것이

제일 맏이로서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막내 노릇을 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된다.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는 것과 터울이 있게 아이를 낳는 것 모두 장점과 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연년생으로 낳으면 한 아이가 오래 엄마의 관심을 받을 수 없으므로 일찍 의젓해지기 쉽고

터울이 있게 아이를 낳으면 큰 아이가 제대로 독립을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8년 째 몸으로 놀아주어야 하는 내 수고도 딱하긴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8년 째

이렇게 아이가 되어 지내야 하는 것이 복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여전히 두 여동생들과 엄마의 관심을 놓고 시샘하고 다투며 매달리는 큰 아이지만

이 다음에는 두 여동생들에게 제일 가깝고 든든한 오빠가 되어 주려나?

오래 서로 몸으로 맘으로 겪으며 지내고 있으니 남보다 끈끈한 가족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내년엔 2학년이 되는 큰 아이가, 최소한 아침에 일어나는 것만이라도 스스로 하게 되면 참 좋겠다는

소박한 소망을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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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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