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덕에 낯선 남자와도 수다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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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몇  개월이예요?’



같이 애 키우는 엄마들끼리 이 말 한마디면 금방 친구가 된다.

같이 애 키우는 엄마가 아니더라도 상대방이 이렇게 말을 걸면 누구라도 쉽게 마음이 열린다.

내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는 일만큼 엄마에게 반갑고 기쁜 일은 없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어린 아이를 키우는 동안 얻게 되는 특권이라면 이렇게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많은 인관관계가 수월해 진다는 것이 아닐까.

어딜가든 아이와 함께 있는 사람들과 금방 친해진다. 특히 내 아이와 비슷한 월령의 아이를 데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여자든, 남자든 우선 반갑고 호감이 생긴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관심도 없을 이웃들과도 애 키우는 이야기를 하면서 바로 통하게 된다.

정말이지 애를 키우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애를 키워봤다는 것 만큼 사람들을 강하게 이어주는

관심사가 또 있을까 싶다.



얼마 전엔 아파트 주차장에서 처음 만난 남자와 30분 넘게 웃으며 수다를 떨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남자도 내 아이와 비슷한 아이를 유모차에 싣고 산책을 나온 참이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몇 개월이예요? 우리 아이랑 비슷할 것 같은데...’가 대화의 시작이었다.

알고보니 두 아이가 똑같이 8개월이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어찌나 반갑고 상대방의

아이에게 관심이 가는지, 우린 금방 신이나서 아이가 젖을 먹느냐, 분유를 먹느냐, 이는 언제 났느냐,

제 힘으로 앉긴 하느냐, 밤엔 잘 자느냐 등등 온갖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처음 만난 사람이라는 것과, 그 상대가 이성이라는 것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같은 월령의 애를 키운다는 사실 하나로 그 남자와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 수유실은 특히나 아이 키우는 엄마들의 사교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공통점에 젖을 먹인다는 요소가 합해지면 분위기는 거의 동창회 수준이다.

서로 아이의 개월 수를 묻고, 임신과 출산의 경험담이 쏟아져 나오고, 젖 몸살이나 젖 양 같은

젖을 먹이며 생기는 문제들과 고민들이 어우러진다. 어느 엄마의 입에서 간신이 재운 애가 남편의

코 고는 소리에 깨게 되면 정말 신경질 난다는 말이 나오자 사방에서 맞장구를 치면서 남편들의

못마땅한 잠버릇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데, 그야말로 십년 만에 만난 옛 친구와도 이렇게

진솔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름도 모르는 여자의 시어머니 얘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동생을 질투하는

큰 아이 이야기에 모두가 하나가 되어 공감을 하고, 아이들 병원이며 장난감이며, 놀이며

온갖 정보들을 순식간에 오고 간다. 심지어는 상대방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면 그 자리에서

전화번호를 따기도 한다.

이런 자리에서 아이 셋을 키우는 나는 모두의 감탄과 선망의 대상이다.

아이 셋 키운다고 부러움을 받게 되는 걸 보면 확실히 세상이 변한 게 틀림없다.

아이가 셋이면 어떤 경험이든 이미 겪었기 마련이라 하나 키우는 초보 엄마들의 질문에도 느긋하게

대답을 해줄 수 있다. 거기에 두 아이를 집에서 낳았다는 이야기를 슬쩍 끼워 넣으면 효과 만점이다.

분위기가 좋으면 헤어지기 전에 내 블로그 주소도 알려주고, 요즘엔 베이비트리 선전도 한다.ㅋㅋ



아이와 함께 가면 세상의 절반이 내게 호의를 보이는 것만 같다.

지나치던 사람들이 내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아이에게 눈을 맞추며 말을 걸어 오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자신들의 경험들을 들려 주기도 하고, 아이 셋 키우는 내게 격려를 보내고

존경을 표하고, 칭찬과 위로를 안겨준다.

지극히 평범한 외모에 옷차림도 대단할 게 없고, 남들 눈에 띄는 특별함이란 아무것도 없는 내가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호의를 받는 것은 오로지 아이가 있어 받게 되는 선물이다.

젊은 연인들이 수줍게 아이 손을 잡아 볼 때, 연세 드신 어른들이 대견한 표정으로 내 아이에

대해 물어올 때, 꽃 미남같은 젊은 남자들이 내 아이의 미소에 답을 해 줄 때 힘든 육아에

새로운 힘과 에너지를 얻곤 한다.

살면서 오직 어린 아이를 키우는 이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선물임을 알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익명의 사람들이 보내는 호의만큼만 이 사회가 아기들에게 호의적이라면 진즉에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으리라.



애 키우는 일이 쉽지 않지만 아이 키우는 동안에만 찾아오는 선물이 있다. 그런 선물을 소중하게

여기고, 알뜰히 챙기다보면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 또한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이룸이와 함께 사람들의 마음의 빗장을 열러 나간다.

천진하게 웃는 어린 아기 앞에서 누구나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는 이 아름다운 시절을

욕심껏 더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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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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