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동선, 어른의 시선 생생육아 칼럼

내 사랑 다엘

아이의 동선, 어른의 시선

동네 마당발 다엘선생과 경비원 아저씨의 우정

제1190호
 
정은주

 

다엘이 학교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가끔 다엘이 빌려 쓰는 할머니 휴대전화로 아파트 경비 아저씨의 문자가 왔다. ‘여행이 재미있고 공부에 보탬이 되나, 어떠신가. 기쁘고 행복한 여행되셔, 다엘선생.’

 

들여다보니 그간 주고받은 문자들이 있었다. ‘아저씨, 파이팅 하세요.’ ‘좋은 아침이야. 오늘도 기쁘게 열심히 지내자.’ 다엘이 아저씨의 생신 선물로 편지와 과자를 정문 초소에 가져다놓은 날의 문자는 이랬다. ‘아저씨, 생신 축하해요!’ ‘서프라이즈 고마워. 정말 감격이야.’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의 중앙에는 광장이 있어 아이들이 자주 어울려 논다. 이곳에서 다엘은 아이들뿐 아니라 분식집 아줌마, 붕어빵 할아버지, 경비 아저씨들과도 정을 쌓으며 ‘동네 마당발’이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얻었다. 또래와 관계 맺기를 어려워했던 아이는 동네 어른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친구 사귀는 법을 익혀가고 있다.

 

최근 마을 미디어를 통해 우리 동네 아파트 경비원들의 인원 감축 문제를 알게 됐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을 앞두고 아파트 경비원 수를 대폭 줄이겠다는 안건이 입주자 대표회의에 상정되고 있다 했다. 한편으로는 경비원들의 휴식 공간도 없는데 휴게 시간을 늘려 실질적 임금 인상을 막겠다는 제안까지 나왔다.

우리 동네 주민들은 관련자들과 함께 토론회를 열어, 아파트 상생 문화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소통이 중요함을 확인했다. 관리비 조금 아끼려고 아파트 경비원들의 삶을 음지로 내몰려는 자본의 논리는 어떤 결과를 낳을까? 이는 단순히 지역 주민의 선의에 기댈 사안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삶의 질과 관련해 풀어야 할 사회문제다. 경비 업무가 아닌 청소와 택배 관리까지 도맡아 하는 경비원의 현실을 돌아본다. 그들의 최저임금과 안정적 일자리 보장 여부가, 나와 내 아이의 삶에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음을 마음에 새긴다.

 

아파트 단지 안에선 늘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난다. 긴급 상황에 주민들이 일차적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이는 경비원이다. 다엘이 ‘경비원 인원 감축 반대’ 서명지를 전달하러 옆 동에 들렀을 때다. 갑자기 한 집에 불이 나서 엘리베이터에 연기가 차고 소방대가 출동하는 일이 있었다. 다엘은 경비 아저씨와 문자를 주고받으며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었다. 내 아이의 동선에 동네 어른의 따뜻한 시선이 함께한다는 건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

“다엘은 제 친구예요.” 경비 아저씨가 다엘을 가리키며 내게 하신 말씀이다. 아마도 다엘은 이 우정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아저씨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프로필엔 어린 손녀의 사진과 함께 글귀 한 줄이 있다. ‘빙긋이 웃다’. 세상이 아이를 향해 ‘빙긋이 웃어주는’ 일,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내 아이가 자신의 고향 마을을 삭막한 아파트숲이 아닌 따뜻한 공간으로 기억하길 바란다면, 부모로서 어떤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

 


정은주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웰다잉 강사

 

(* 이 글은 한겨레21 제 1190호(2017. 12. 11)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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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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