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과 소설 ‘오두막’ 생생육아 칼럼

집에 도착한 우편 봉투를 열어보니 우리 동네에 거주하는
성폭행 전과자의 인적 사항이 담겨 있다.
다엘이 범죄자의 주소지를 찾겠다고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훑고 다니다가
해당 주소를 발견한 다음부터는 무섭다고 그쪽 길을 피한다.

 

성폭행범의 전과 기록과 인적 사항을 동네에 우편으로 알리고
전자 발찌를 부착하는 것만으로 

정부당국은 할 일을 다했다고 자족하는 게 아닐까?

심각한 범죄의 예방을 위해서는 다각도로 원인규명을 하고

사회 전체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10년 전 사람들을 경악하게 한 조두순 사건이 요즘 다시 거론되고 있다.
여덟 살 된 어린 소녀를 잔혹하게 성폭행 하여
장기 일부를 영구 손실케 했던 사건은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 범죄자가 12년 징역형을 받고 2020년 출소를 앞두고 있다.

 

조두순의 출소 문제로 시민들의 문제 제기가 있었고

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 보호 등 문제가 이슈화 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조두순의 죄를 다시 물어 출소를 금지하거나

범죄자 처벌에 치중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나는 좀더 근본적인 문제들까지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두순 같은 이가 활보하게 된 자양분은 넓게 생각하면

가부장제, 승자독식 사회 이런 것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 구조를 바꾸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할까?

비폭력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들이 뭐가 있을까?

 

흉악범의 경우 싸이코패스라는 말로 설명하곤 하는데
사이코패스 논의를 유전적 문제에만 국한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회 환경에서 이들의 성향이 강력하게 발현되는지 고민할 때
문제 해결도 가능하리라.

 

보이지 않는 수많은 조두순이 그럴듯한 얼굴과 이름으로
훌륭한 지도자, 존경 받는 부모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 수 있다.
13세 미만 성폭행 가해자의 다수가 친생부라는 점에 주목해보자.

가정 안에서 마음껏 약자를 유린하는 것을 외면하고 은폐하는

가부장제 안에서 사회악은 자란다.

 

9년 동안 생부의 성폭력에 시다렸던 피해자의 수기를 읽은 적이 있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라는 제목의 이 책은

목사라는 그럴듯한 직책을 가진 아버지로부터 잔인한 성폭행을 당한 당사자가

자신이 겪은 일을 한치의 숨김 없이 쏟아낸 책이다.

 

눈물도빛.jpg

 

이런 생생한 고발이 가능했던 것은

조두순 같은 흉악범에 의한 사건 뿐 아니라

가정이라는 안전지대에서도 끊임없이 성폭행이 일어남을 알린 이들의 노력 덕택이다.

내 집안 일이니 내가 알아서 한다는 말에 침묵하는 사회는

나보다 약자에겐 무슨 짓이든 하겠다는 이를 키워내는 토양이 된다.

가부장제의 폭력에 눈 감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해결의 출발점이다.

 

혈연과 친권에 대한 시각을 근본부터 재편하여

지금껏 친권 박탈을 협소하게 적용해왔던 관습부터 깨야 한다.

학교에서 제대로 된 성평등 교육은 물론

곳곳에서 페미니즘 논의가 더욱 활발해지기 바란다.

여러 방면으로 사회 전체가 촘촘한 감시망의 역할을 할 때

약자에 대한 범죄가 서서히 줄어들 것이다.

 

한편으로, 성폭력 피해자에게 어떤 위로가 가 닿을 수 있을까? 

오래 전에 읽었던 소설 ‘오두막’을 생각한다.
소설은 연쇄 살인마에게 어린 딸을 살해 당한 아버지가
딸이 살해된 장소인 오두막을 찾아가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곳에서 예상 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신과 대면하면서
신학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대화는
소박한 상징과 일상적 언어로 다양하게 펼쳐진다.

 

소설이 주는 치유의 메시지 이전에
주인공이 겪어야 했던 참혹한 고통을 접하면 할 말을 잃게 된다.
어린 딸의 피 묻은 원피스가 발견된 오두막으로 가기 전후
아비로서 생살이 찢어지는 아픔을 확대경으로 들여다 보듯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려내는 생생함에 읽는 이의 가슴이 저린다.

 

소설의 겉 표지는 얼핏 보면 크리스마스 카드의 아름다운 풍경처럼 보인다.
고요한 밤, 꿈 같은 설경 속에 서있는 아늑한 오두막.
그러나 자세히 보면 부서지고 황폐한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아이가 살해된 현장, 그 오두막이다.
고통을 치유하고 싶다면, 고통이 시작된 그곳으로 가라고 저자는 말한다.


 

소설 오두막.jpg » 소설 ‘오두막’의 표지

 

오두막에서 믿을 수 없는 경험을 하며 수없이 눈물 흘린 후
따뜻하고 온전한 치유를 겪은 주인공의 심정은 이렇게 묘사된다.


<‘거대한 슬픔’이 더 이상 없다니 기분이 이상하고 불편하기까지 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존재가 뜻밖에도 사라진 것이다.
“슬픔이 당연하다는 생각은 헛된 거였어.”>

 

소설 ‘오두막’은 극단적 범죄자를 타자화 하여 격리시키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만연한 폭력에 예민해야 함을 알려 주었다.
작가 자신 어린 시절에 겪었던 성추행과 학대,
날것의 아픔이 있었기에 사실적인 묘사가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나의 아픔에 직면하여 용기있게 말할 수 있을 때

치유가 시작됨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성폭력의 직접적인 피해자 뿐 아니라

잠재적 피해자로서 우리 모두에게 위로를 전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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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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