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삼척동자도 다 안다 무기의 세계

<한겨레신문>  2013. 10. 18.

  

“한국의 미사일방어체계(KAMD)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로 편입되는 일은 확실히 없을 것”이라는 김관진 국방장관의 말은 듣기에 이상하다. 서울역에서 고속철도를 타면 중간에 대전에서 내리든, 부산까지 가든 같은 열차를 탔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미사일을 요격하는데 하층(50km 이하)에서 방어하든 아니면 고층(100km 이상)에서 방어하든 미국 시스템을 활용한 미사일방어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북한 미사일에 대한 탐지와 식별, 궤적에 대한 정보를 모두 미국의 미사일방어 시스템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미 같은 열차에 탑승한 미국과 한국이 마치 전혀 다른 미사일방어를 하는 것처럼 말하는 건 중국을 의식한 궁색한 논리로 비쳐진다.

게다가 처음에는 “패트리어트 개량형 미사일로 하층 방어만 한다”고 했던 우리 정부가 이제는 그걸로 안 되니 “다층 방어까지 검토 중”이라고 말을 바꾸고 있다. 그러면 이지스함에 스탠더드 요격미사일(SM-3)을 배치하거나 아니면 고고도 요격미사일체계(THAAD)를 도입할 가능성이 크고, 북한 미사일을 탐지하는 엑스밴드 레이더가 한반도에 배치될 가능성도 있다. 이제껏 미국이 요구해 온 한국의 MD 참여가 바로 이것인데, 이걸 미국 MD가 아닌 한국형 MD라고 주장한들 누가 믿겠는가? 이 점을 의식했는지 국방부는 하루 만에 또 말을 바꿔 “SM-3 미사일 도입계획은 없다”고 했지만 이미 고층 미사일 방어로 나아가려는 속내가 드러났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이 우리에게 요구해 온 미사일 방어의 논리는 간단하다. 중국이나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미국, 한국, 일본이 모두 요격미사일을 발사하여 고층에서 이를 방어하자는 것이다. 즉 미사일 방어에서 한.미.일 3국의 군사행동을 통일하되 이를 위해 각 국의 미사일방어 시스템을 통합하자는 얘기다. 시스템이 통합된다는 건 3국이 집단방위체제로 일체화됨을 의미한다. 최근 일본이 헌법을 재해석하여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한다”는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정부에서 한일 정보보호협정을 서둘렀던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최근 몇 년째 해상에서 한미일 공동 해상훈련이 실시되는 이유도 같은 이유에서다. 한미일이 중국 봉쇄를 위한 하나의 군사 블록을 형성한다는 게 미국의 ‘재균형’ 정책이고, 그 핵심이 미사일방어라는 건 이미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이렇게 되면 2차 대전 이후 형성된 동북아질서가 근본적으로 변하게 되는데, 그것이 과연 우리에게는 생존과 번영의 길인지,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다. 중국 봉쇄에 우리가 동참하게 되면 베이징은 즉시 김정은을 불러들이고 북한을 군사동맹으로 더 결박시키려 할 것이다. 여기에다 중국이 한국을 적성국으로 인식하게 되면 우리의 안보부담은 더 가중될 수 있다. 다름 아닌 동북아의 냉전형 질서의 부활이다.

일본의 경우도 2000년대 초기에는 중국을 의식하여 미국과의 미사일방어는 “연구개발 차원에서만 진행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아예 요격미사일 개발과 훈련, 공동작전을 전부 미국과 함께 하고 있다. 이렇듯 한 번 발이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게 바로 미사일방어의 속성이다.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길에 “이제는 한국이 참여할 차례”라고 미국이 압박하고, 여기에 박근혜 정부가 흔들리는 모습이 노출되는 건 분명 “한국형 미사일방어만 한다”는 국방부의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도록 한다. 동북아시아에서 평화와 공존의 방향이 아닌 군비경쟁과 대결의 방향으로 가는 열차에 한미일이 같이 탑승한다는 것이 마치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당연한 일인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그게 과연 옳은 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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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