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막] 청와대와 국방부의 대격돌 2007년 비사 사건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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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 Focus 2011년 4월호


남북 장성급회담 결렬과

김장수 낙마시키려던 청와대


김종대 편집장(jdkim2010@naver.com)



역사는 반복된다!

최근 남북 군사실무회담 결렬로 청와대가 국방부 협상 대표단에 대한 문책성 조사를 실시한 사건은 2007년 제6차 남북 장성급 회담과 비견된다. 이 당시에도 청와대와 국방부, 통일부는 극심한 갈등과 혼란의 연속이었다. 당시 비사를 다시 살펴보는 것은 오늘의 사건을 이해하는 크게 도움이 된다. 이 비사는 필자의 저서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 511쪽~519쪽의 내용을 재수록한 것임을 밝힌다.



대표단 구성에 대한 북의 불만

 

국방부와 청와대는 마치 다른 정부에 소속된 것처럼 따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양 부처의 차이는 제5차, 제6차 장성급 회담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났다. 북방한계선(NLL) 문제는 2006년 5월에 열린 제4차 장성급군사회담에서 북측은 백령도, 연평도 등 서해5도에 대한 남측의 주권을 최초로 공식 인정하며 새로운 해상분계선을 제안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었다. 2007년 5월 8일부터 11일까지의 5차 장성급군사회담에서 북측은 공동어로수역 설정, 북측 어선의 해주항 직항문제를 의제로 할 것을 주장했다. 이전까지 북한이 선포한 해상경계선은 서해 우도에서 비스듬히 서해 쪽으로 그어져 NLL을 상당히 남하해 덕적군도 위쪽의 해상을 거의 북쪽 수역으로 설정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북쪽이 주장했던 ‘서해 5개 섬 통항질서’ 등 기존 ‘NLL 무력화’ 주장이었다. 그런데 북한은 금과옥조와 같은 기존 주장을 철회하고 경계선을 백령도와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 근방에서는 NLL과 유사하게 설정하되 소청도에서 연평도에 이르는 수역에서는 NLL 이남 1~2km로 그어야 한다는 제의를 하기에 이른다. 언뜻 보면 일부지역에서 NLL 경계선을 약간만 남쪽으로 조정해주면 NLL을 해상계선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것처럼 보였다. ‘북한이 NLL을 인정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러나 통일부는 국방부가 북한의 변화된 입장에 대한 고려 없이 NLL에 대해 아예 논의를 피하려고 한다고 인식하고 적잖이 불만스러워했다. 당시 김연철 통일부장관 정책보좌관은 2008년에 필자를 만나 이에 대해 설명했다.

“제5차 장성급군사회담에서 우리는 협상대표에 해군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이 일부러 해군 대표를 보강해서 회담에 나온 것과 비교되었다. 모처럼 북한과 NLL에 대한 우리의 주권도 인정받고 새로운 평화수역을 검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음에도 국방부는 이를 의도적으로 회피했다.”

이러한 의혹은 북한으로부터도 나왔다. 5차 회담에서 북한 대표단장인 김영철 인민군 중장은 회담 종료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회담 기본의제는 공동어로를 실현하기 위한 서해 해상분계선 설정 문제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남측은 (이를 논의할 수 있는) 대표단도 구성하지 않았다”며 불만을 표했다고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회담에 참여한 국방부와 합참의 입장은 이와 전혀 달랐다. 당시 회담장에 나갔던 한 대령의 증언이다.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의제관리는 국방부 임의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전에 통일부와 함께 의제에 대한 집중적인 검토를 하고 협상에 임할 뿐만 아니라 회의 중에도 입장정리가 필요하면 정회를 하고 통일부 차관과 함께 대응방안을 협의한다. 당시 통일부의 천해성 팀장이 나왔는데 중간 중간에 훈령을 받기 위해 분주했다. 회의 중에 정리가 필요한 쟁점이 발생하면 즉시 회의를 중단하고 훈령을 요청한다. 모든 것은 훈령에 의해 협상에 대처하는데 국방부가 단독으로 소극적인 입장을 취할 수 없다. 사실 협상대표로 회담에 나간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다.”



김장수의 웅변


누가 말이 옳은 것일까? 이 당시 북한 대표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사실 북한은 이 무렵 NLL에 대한 주권 논란을 최소화하면서 남측에 의해 ‘갇힌 항구’나 다름없는 해주항이 서해로 자유롭게 통항할 수 있도록 일단 NLL에 문이라도 하나 내야할 판이었다. 그러나 남측의 국방부가 아예 논의 자체도 회피하는 태도에 적잖이 분개했다. 통일부 역시 이러한 국방부 태도에 크게 분개하며 연일 NLL 일원의 평화적 관리에 대한 남북 간의 협상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었다.

김장수 국방장관과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이 문제로 정면으로 충돌했다. 7월 19일 저녁에 청와대에서 열린 안보정책조정회의가 바로 그 격돌장이었다.

회의에서 김장수 장관은 이재정 장관에게 강한 톤으로 말했다.

“NLL은 군사회담 이슈이고 군사회담 주무부처는 국방부인 만큼, 다른 부처는 섣불리 공개 거론하지 말라.”

이 말을 들은 이재정 통일부 장관, 김만복 국정원장, 송민순 외교부 장관,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등이 김 장관의 발언이 너무 심하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NLL이 우리의 경계선이라는데 당시 참석자들은 아무도 이견이 없었으나 적어도 북한이 전향적으로 나오고 있고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북 측과의 접촉이 추진되고 있는 만큼 평화적 관리를 위한 제반 협의에 국방부가 전향적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NLL이 법적으로는 근거가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경계선인 만큼 북 측의 입장을 경청하는 자세도 필요하고 우리 내부의 공론화된 논의도 필요하다는 입장 등이 개진되었다. 사태가 불리하게 돌라가고 있음을 직감한 김 장관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안보조정회의가 다수결 제도인가? 이렇게 여러 사람이 나를 공격하는 것은 마녀사냥 아닌가?”

이 말을 하자 회의장에는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모두가 김 장관을 노려보는 가운데 그의 웅변은 계속되었다. 평생을 국방에 몸 담아 온 군인 김장수의 불꽃같은 기백이 터져 나왔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는 사이에 김 장관이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답답한 듯 담배연기를 토해내며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다시 속개된 회의에서 김 장관은 다시 완곡한 어조로 “NLL은 군사이슈이기 때문에 다른 부처가 앞서가는 발언을 하지 말아 달라”며 다시 말하고 나서 회의는 끝났다.

회의 다음날, 청와대는 일제히 김 장관을 성토하고 나섰다. 무엇보다 김 장관의 언동이 괘씸했던 것은 “국방장관 외에 누가 NLL을 함부로 거론하냐”는 태도였다. 마치 이것이 “남북 정상회담의 의제도 될 수 없고 대통령도 이 문제를 함부로 거론하지 말라”는 뜻 아닌가? 대통령도 안 되고 국방장관만 할 수 있는 발언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것은 명백히 청와대에 ‘도전’이라고 판단한 젊은 행정관들을 중심으로 김 장관을 경질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었다. 특히 그 중심에는 국정상황실이 있었다. 한 행정관은 “얼굴 허연 놈 하나가 육군에서 올라와 장관 자리 꿰차더니 참여정부 다 말아먹으려 한다”며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냈고 상당수의 실무자들이 이에 공명했다.



청와대가 조정능력 상실


즉시 인사수석실을 중심으로 ‘김 장관 경질’과 ‘후임 장관 물색’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김 장관의 완고한 태도는 6차 장성급 회담에서 국방부의 ‘NLL 협상 불가’로 나아갔다. 7월 24일에서 26일 열린 제6차 장성급군사회담에서 북측은 공동어로수역 5곳을 좌표로 제시했다. 이 다섯 곳의 수역을 선으로 이어보면 북쪽이 5차 회담에서 제시한 새로운 경계선과 대략 일치한다. 통일부 당국자들은 북한의 이러한 태도 변화에 대해 크게 고무된 눈치였다.

그러나 막상 장성급군사회담에서는 남북 간에 더욱더 인식의 간격이 벌어졌다. 북측 김영철 단장은 “남측이 평화체제를 거론하며 자신이 한반도 평화체제의 당사자라고 말하는데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당사자의 참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나라의 평화문제와 긴장완화와 관련된 서해상 충돌문제를 다루는 문제를 회피한다면 스스로 나는 (평화체제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을 세상 앞에 자기 모습을 폭로시키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당시 상황을 지켜본 한 청와대 관계자는 필자에게 제6차 장성급군사회담에서 북한 대표는 우리 대표단에게 “당신들의 입장이 상부와 다른 것 아니냐”는 말도 했다고 한다. 김연철 정책보좌관도 당시 회의 상황에 대해 북 측 대표가 “남측 대표들이 이렇게 나올 리가 없는데, 당신들 상부 입장은 이럴 리가 없는데”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북측은 장성급회담 당시 이미 남한이 대통령 지시로 NLL 일원의 평화수역을 관리하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올 줄로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6차 회담이 열리는 7월 24일부터 26일이라는 시점이 미묘했다. 정상회담을 위해 국정원 서 훈 3차장이 북한의 통일전선부 최승철 부부장에게 정보기관 책임자 미팅을 제의한 것이 7월 6일이다. 이 때 북한은 “잘 알았다, 답변을 주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 답변은 7월 29일에 왔다. 서 훈 차장 앞으로 최승철은 “김만복 원장이 평양으로 와 달라”는 전갈을 보낸 것이다. 이 전갈이 오기 직전까지 북한은 남북 장성급군사회담을 관찰하고 있었다. 이 문제에 정통한 전직 통일부 핵심관계자는 “북한은 과연 남측이 정상회담을 하려는 진정한 의도와 성의를 갖고 있는지 궁금해 했다, 그것이 바로 6차 장성급회담을 바라보는 북한의 시각 이었다”고 설명한다. 6차 장성급회담이 결렬되는 것을 보고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정상회담이 물 건너 간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6차 장성급회담 당시의 국방부의 협상 태도는 통일부 주요 간부들을 경악케 했다. 회담의 상황은 케이블 보안망을 통해 청와대․통일부 등 관련 부처에 생중계된다. 이 때 첫날 회의를 지켜보던 통일부 고위 간부들은 국방부의 협상 태도에 뒤로 자빠질 정도로 놀랐다. 우선 국방부는 북한의 새로운 태도변화에 대한 고려 없이 마치 첫날 ‘판을 깨는 듯한’ 태도로 보여 지더라는 것이다. NLL 공동어로구역 문제 말고 당시 회의는 중요한 의제들이 많았다. 통일부는 다른 의제마저도 NLL 논란에 함몰되는 것을 크게 걱정했다. 보다 못한 통일부 담당 국장이 국방부 북한정책팀에 연락하여 ‘협상을 다 깰 거냐’며 닦달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당시 통일부 정책보좌관을 맡고 있었던 홍익표 박사는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미 6차 회담 전에 국방부와 의견이 좁혀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막상 회의가 진행될 당시에는 통일부와 국방부 간에 새로운 다툼은 없었다. 남북회담사무국 상황실에서 국방부와 함께 회담 상황을 지켜보았는데 두 부처 간에 다툼은 따로 없었다. 그 대신 통일부는 백종천 안보실장에게 ‘국방부의 판을 깨는 태도를 통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사람 좋은 백 실장은 허허 웃기만 할 뿐 어떠한 조정도 하지 못했다.”



협상이 불가능한 NLL


다시 이종석 NSC 차장이 그리워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성질이 고약한 이 차장이 지금 있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혼란은 어느 정도 정리될 수 있었다. 참여정부 초기의 NSC 사무처에 대한 향수가 밀려왔다.

결국 6차 장성급 회담은 5차 회담에서 합의한 서해상 충돌방지 및 공동어로 실현, 북한 민간 선박의 해주항 직항 문제, 경의선․동해선 통행ㆍ임진강 수해방지ㆍ한강하구 골재채취 등 경제협력사업의 군사보장 등의 이행방안을 논의했지만 아무런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은 물론, 차기 회담 일정도 잡지 못했다.

당시 남북 장성급 회담에 참석했던 합참의 한 대령은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북한의 태도가 일견 달라진 것처럼 보여 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북한의 주장을 들을 때마다 어쩌면 저들이 우리의 약점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만일 공동 어로구역을 만든다면 북한 어선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북한 함정이 들어올 것이고 그 함정의 포 사정거리를 고려하면 우리의 대비태세가 역시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인천 앞바다의 방어 대책이 매우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군사적 판단의 문제는 매우 복잡하고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다. 북한이 전향적이라고 말하는데 무엇이 전향적인가? 그들은 아직도 북방한계선이니 NLL이니 하는 말 자체를 절대 인정 안한다. 그런 표현을 쓰면 그냥 일어서서 가버리는 사람들이다. 마치 저들이 우리가 주권이나 경계선을 인정한 것처럼 말한다면 엄청난 무지와 오해가 아닐 수 없다.”

과연 북한은 달라진 것일까? 아니면 국방부 주장대로 기만전술에 불과한 것인가? 이점에 대해 통일부는 북한의 ‘선의’를 믿고자 했고 국방부는 북한의 ‘악의’를 의심했다. 이 두 부처는 전혀 손발이 맞지 않았는데 문제는 청와대도 이를 조정하고 통합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김장수 장관은 필자에게 “NLL 문제에 대해서는 당시에 나는 장관직을 걸고 수호하려 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목을 내놓고 반대하는데 청와대가 무슨 수로 국방부를 제압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NLL 문제는 이미 사회적으로 극심한 이념논쟁의 핵심으로 떠올라 건드리면 폭발하는 뇌관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렇게 통일부와 국방부의 가파른 대립이 조정되지 못하고 서해 NLL이 오늘날가지 화약고로 남아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정말로 군이 이데올로기적인 예단을 벗고 북한과 이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일까? 예비역을 비롯한 보수 세력의 여론에 민감한 군이 전향적으로 북한과 협상을 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릴 리는 만무했다. 애초 이 협상은 국방부가 아닌 다른 채널, 즉 정치적으로 협상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에 대해 당시 윤광웅 전 장관은 필자에게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북한 군부에 대해 오만한 자신감을 심어주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대단히 ‘혼란스러운 평화’를 향해 가는 길인데 위험한 시나리오다, 그보다는 ‘체계적인 평화접근’이 중요하다, 이런 접근은 가능하다, 우리가 북한에 ‘NLL은 통일되면 없어질 선인데 이 문제로 시끄럽게 할 것이 무어냐, 일단 경계선을 건드리지 말고 양쪽의 불편을 해소하는 길을 찾아보자는 것, 현재로서는 이것이 최선이다. 더 이상 나가서는 안 된다.”



창의적 접근과 이념적 접근


김연철 정책보좌관의 설명이다.

“현재 NLL에 대한 ‘창의적인 접근’은 반드시 필요하다. 현 경계선 체제 하에서 우리의 어로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의 수역은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죽음의 바다’다. 이 지역이 공동어로구역이 된다면 우리 배도 더 북쪽으로 조업을 할 수 있다. ‘죽음의 바다’가 ‘생명의 바다’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영해가 넓어지는 것이지 어째서 축소되는 것인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서해 5도 지역의 우리 어민들은 양식을 주로 하기 때문에 북쪽 배가 근방에서 조업을 한다고 해서 생업에 지장을 받는 것도 아니다. 정 안보상 문제가 된다면 소청도로부터 연평도 중간 중간에 거점 식으로 공동어로구역을 몇 군데 만들어서 통제하면 된다. 북한의 개혁․개방이라는 측면에서도 NLL과 인접한 해주는 매우 중요하다. 해주로 통하는 직항로를 우리가 열어주고 이를 통해 북한 경제의 개방과 번영을 촉진하게 된다면 우리로서도 나쁠 것이 없다. 그것이 바로 북한을 개방으로 이끄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결국 서해 일원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문제는 남과 북이 각기 한발씩 양보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군은 그러한 유연성을 보여주지 못한 측면이 있다. 두 차례 해전으로 소중한 장병의 목숨을 빼앗긴 이 지역에서 평화를 달성하는 문제는 그처럼 지난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이것은 군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아직도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사회의 가장 불행한 일면이었다. 이에 대한 홍익표 보좌관의 회고.

“이재정 장관은 장성급 회담을 지켜보며 ‘군사회담에 대한 문민통제가 관철’ 수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군축 회담은 정치권력의 의도에 의해 외교 라인이 주도했지 군이 직접 주도하는 법은 없다. 냉전시대 전략무기제한협정(SALT)과 같은 중요한 군축회담을 어디 군이 주도했나. 그것은 외교가 주도했다. 그런데 서해수역의 평화적 관리라는 정치적 문제를 군에 맡긴 것 자체가 실수였다. 이것은 엄밀하게 군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단지 군은 의견만 내고 외교가, 우리의 경우 통일부가 주도했어야 했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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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