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저> (2) 등가교환보다 비정한 농고생의 일상

"귀엽다"와 "맛있다" 사이의 그 어디쯤 주인공 하치켄의 급우들은 갓 태어난 새끼 돼지를 보며 "너무 귀여워! 맛있겠다"고 내적 갈등 없이 말할 수 있는 뼛속까지 농가의 자식들이다. 하지만 "귀엽다"와 "맛있다" 사이의 간극은 하치켄으로선 영영 풀리지 않을지도 모르는 화두다. 새끼 돼지는 귀엽고 돼지고기는 맛있다. 갓 지은 쌀밥에 돼지고기를 수북이 얹어 먹는 돼지덮밥의 맛을 하치켄은 포기할 수 없다. '경제동물'을 다루는 거대한 산업 구조를 본 이상, 혼자만 그 맛을 포기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농가를 섣불리 비난할 수도 없다. 대부분 영세 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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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저> (1) 등가교환보다 비정한 농고생의 일상

'등가교환'이라는 비정한 법칙을 바탕으로 한 대형 판타지 <강철의 연금술사>를 그린 아라카와 히로무가 농촌 만화를 그린다고 했을 때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만화 총판 진열대에서 검은색 스탠딩 칼라 교복을 입은 전형적인 일본 고교생이 젖소 곁에 한가롭게 누워 있는 <은수저> 1권 표지를 보니 이건 영락없이 그 <강철의 연금술사> 작가의 그림체긴 했다. 그러고 보니 그 옆에 놓인 만화 <백성 귀족> 또한 같은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농촌 소재 만화라고는 들었다. 내가 도시 아이라는 자각도 없이 주어진 조건이 그랬으니 평생 도시에서 살아온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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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영멘> 기적을 믿지 않는 세계에선 신조차 개그일뿐

기절하게 웃긴데, 한국에 절대 번역되지 않을 것 같은 만화가 있었다 기절하게 웃긴데, 한국엔 절대 번역출간되지 않을 것 같은 개그 만화가 있었다. 한낱 개그 만화 주제에 주인공은 예수님과 부처님. 게다가 이 두 분이 몸소 독자를 웃겨주신다. 아니, 웃겨주신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이 두 분, '예수'와 '붓다', 진짜 웃긴다. 불교계야 '자비'로 어떻게 넘긴다고 하더라도 좋게 표현하자면 관용보단 자기주장이 강한 일부 한국 기독교계에서 신성모독도 이런 모독이 없는 이 만화를 받아들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일본은 기독교도가 2009년 기준으로 200만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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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퀸타 카메라> 지중해에서 즐기는 낮잠같은

바야흐로 낮잠의 계절이 왔다 며칠 비가 와 이른 더위를 좀 식히더니 비가 그치고 이제 본격적인 더위가 왔다. 가볍게 섭씨 30도를 넘는 낮 기온, 집 밖에 나서자마자 아스팔트에서 열기가 훅 끼친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주말에 날이 맑으면 밖에 나가고 싶어 몸이 달아 가까운 공원에 꽃놀이며 농지, 뒷산 산책이라도 다녔는데. 4월말부터 5월까지 단 6주. 짧은 봄이었다. 환절기 감기가 유행할 땐 걸릴락 말락 아슬아슬하게 고비를 잘 넘겼는데 초여름 문턱으로 진입한 지금 엉뚱하게 남의 결혼식장 가서 감기가 옮아 일주일째 콜록대고 있다. 정체불명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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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내 포이즌 베리> 여자친구의 머릿속이 궁금하다면

그녀의 뇌구조가 궁금하다 # 사오토메 료이치, 23세 남성. 지하철 플랫폼에 서 있는데 한 여성이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지난번에는 반가웠어요.” 기억을 더듬어보니 지난 달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만난 여성. 어찌어찌 같이 밥을 먹고 나니 그녀가 집 청소를 해주겠다며 무척 적극적으로 대시해 온다. 집에 들여 함께 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니 그녀는 이미 사라진 뒤다. 생각해보니 연락처 교환도 안 했다. 지인에 물어물어 연락을 하니 그녀는 오히려 지인에게 무슨 얘길 한 거냐며 화를 낸다. 당황스럽다. 그래서 물었다. “난 원나잇 이었나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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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레이디> 이말삼초, 일도 사랑도 날 안택해준다

"'이말삼초'는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잘 한 거야" 스물일곱 이후, 사는 게 왜 이렇게 팍팍한가 싶을 때는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친구가 언젠가 내게 해 준 말을 떠올린다. “‘이말삼초’는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잘 한 거야.” 이말삼초는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을 지칭하는 말. 9회말 투아웃은 들어봤어도 이말삼초란 말은 그 때 처음 들었다. 나보다 5년 먼저 그 시기를 보낸 그가 당시의 나와 마찬가지로 ‘인생 이제 2회 말인데 어째 벌써 9회말 투아웃 같다’고 느끼며 만들어낸 말인지도 모르겠다.    아닌 게 아니라 이말삼초의 허리를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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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맨> 나는 여기자가 아니라 '기자'라고!

'어른의 세계'를 알기 위해선 직장인 만화 한권쯤은? 취직하기 전엔 ‘직장인 만화’를 꽤 재밌게 읽었더랬다. 장르 만화가 발달한 일본 만화 특성상 피해가기 어렵기도 하고, 어른의 세계를 엿보고 싶다는 희망에 더해 나도 ‘제대로 된 어른’이 되려면 직업 세계에 대해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마저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에 남은 직장인 만화, 혹은 직업 만화는 안노 모요코의 <워킹맨>이다. 자신의 일을 너무 사랑하는 주간지 여기자를 그린 이야기. 작품 제목 ‘워킹맨’은 ‘워킹우먼’의 대척 지점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주인공 주변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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