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또 운 아이 이름 ‘숙명’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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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서, 민우, 현아, 다혜, 서연, 준영, 혜린, 지수, 강민....’



결혼해서 뱃속에 애가 생기면 부모에겐 아이 이름을 지어 보는 즐거움이 생긴다. 멋지고, 근사한 이름을 지어 주고 싶은 마음이야 모든 부모가 똑같으리라. 나도 그랬다. 친구들 아이 이름이 뭐였는지 유심히 기억도 해보고, 요즘 어떤 이름들을 많이 짓는지 살펴보기도 하면서 뜻도 좋고, 부르기도 좋은 그런 이쁜 이름을 지어줄 생각에 미리 설레이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첫 째 아이의 태명을 ‘연이’라고 지었다. (왜 이 이름이 되었는지는 5월 13일에 올렸던 ‘연이 이야기’편을 참고 하시라.) 남편과 나는 서로를 ‘연이 아빠, 연이 엄마’라고 부르며 태명을 몹시 아꼈다. ‘연이 엄마, 아빠의 사랑이야기’라는 제목을 붙인 일기장에 ‘연이’를 향한 편지를 함께 적기도 하고, 남편은 출근할때마다 ‘연이야, 오늘 하루도 엄마랑 즐겁게 잘 지내’ 인사 했었다. 임신 기간 내내 이렇게 지내다보니 아이를 낳았다고 태명을 버리게 된다면 정말 서운할 것 같았다. 태명을 살린 이름을 짓고 싶었다. 그래서 은근슬쩍 먼저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형님과 동서에게 아이 이름 얘기를 했더니 두 사람 모두 펄쩍 뛰며 아이 이름은 모두 시어머님이 지어 오신다고 귀띔 해 주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어머님은 아이 이름에 대한 애착이 몹시 강하셔서 당신이 믿는 작명가에게만 이름을 받아 오신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들들은 가문에서 내려오는 항렬에 따라 끝자가 ‘규’로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정 그렇다면 ‘연규’라고 지을 수 없을까 했지만 차마 얘기를 꺼낼 수 가 없었다. 첫 아이가 어머님에게 얼마나 소중한 손자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딸 없이 아들만 셋을 두신 어머님은 당신이 남자 형제가 없어서 많은 고생과 수모를 당하며 살아 오신것이 한이 되어 한 집에 아들이 적어도 둘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뼛속깊이 하면서 살아오신 분이었다. 그렇지만 첫 며느리에게서 손자 하나를 얻으시고 내가 시집가기 전 7년 동안 손녀만 내리 네 명을 보셨다. 그러다가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며느리가 되어 8년만에 두 번째 손자를 낳아 드린 것이다. 아들을 낳았다는 말을 들으신 어머님은 그날로 강릉을 출발, 대관령을 넘어 부천에 있는 조산원까지 오셔서 갓 태어난 두 번째 손자의 고추를 당신 눈으로 확인하고 내려가실 정도였다. 아이는 내가 낳았지만 내 아들이기 이전에 어머님의 금쪽같은 손자였기에 결혼하고 겨우 한 해를 지낸 초짜 며느리에게 시어머님의 뜻은 하늘처럼 어렵고 무거운 것이었다.



어머님은 아이를 낳고 며칠 지나지 않아 이름을 정했다며 조산원에서 조리를 하고 있던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보규, 순규, 필규, 이 셋 중에서 하나를 골라라. 다른 이름은 안 된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맘에 드는 이름이 하나도 없었다. 남편은 집안에서 매우 늦은 나이에 출가를 한 축에 들기 때문에 그럴듯한 이름은 이미 사촌들이 다 차지해서 없고, 내 아이에게 맞는 이름은 이 정도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한참 침묵을 하다가 ‘필규.... 로 할께요’ 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 한 시간을 울었다.



‘필규가 뭐냐고... 필규가.. 당신은 필규 아빠가 되는게 좋아?’ 나는 남편에게 하소연을 하며 곡을 했다. 힘들게 애를 낳아도 이름 하나 맘대로 못 짓는게 서러웠고, ‘필규’라는 이름이 너무나 맘에 안 들어서 속상했다. ‘연이 엄마’에서 ‘필규 엄마’가 된다는 것이 도무지 어색하고 낮설어서 울고 또 울었다.



여자는 결혼해서 첫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 이름이 두 번째 이름이 된다. 그래서 나는 ‘필규 엄마’가 되었다.



 서른 여섯에 둘째를 가졌을때 둘째 아이는 3월이 출산 예정일 이었다. 나는 ‘봄이’라는 태명을 지었다. 이쁜 딸을 낳고 싶기도 했고, 봄처럼 환하고, 강인하고, 따스하게 모든 생명을 다시 살리는 그런 아이가 되라는 이름이었다. 필규도 뱃속의 동생을 ‘봄이야, 봄이야’하며 불렀다. 뜻도, 발음도 맘에 쏙 들었다. 아들이면 ‘최 봄’, 딸이면 ‘최 봄이’라고 지어야지. 한글 이름도 좋잖아? 하며 꿈을 꾸었다. 둘째 아이는 그토록 기다리던 딸이었다. 그러나 둘째 아이 이름도 어머님이 지어 오셨다.



집에서 낳고 조리를 하고 있을때 어머님이 전화를 해서 ‘정윤, 윤정, 윤선, 이 셋 중 어떤게 좋으냐. 그 아이는 꼭 ’윤‘자가 들어가야 한단다’ 하시는 것이었다. 다시 내 꿈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정윤? 윤선? 윤정? 이건 완전히 1980년대 이름이잖아? 다빈, 현아, 혜림, 하얀, 예은같은 이쁜 이름들이 많은데 그렇게 촌스러운 이름으로 지어야 하다니...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윤정’을 골랐다. ‘봄이야’라고 불렀던 첫 딸에게 ‘윤정아’ 부르며 또 울었다.  애 이름 짓는 것이 왜 이렇게 속상하고 서운한 일이어야 할까 슬펐다. 물론 어머님이 여러 가지를 따져서 아이에게 제일 좋은 뜻이 담긴 이름을 지어 오신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이름은 뜻 만으로 부르는게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내가 정한 이름의 의미와, 내 아이에게 주고 싶은 축복과 희망과, 태명과 함께 한 시간들과, 사연들이 더 소중했다.  그렇지만 둘째 아이를 낳고도 어머님은 여전히 내게 어려운 분이었다. 어머님 뜻을 거스르고 불효할 자신이 내게는 없었다.



만약 셋째를 가지게 되면 그때는 누가 뭐래도 내가, 우리가 이름을 지어야지 결심했다.  나도 부모가 되어 내 자식 이름을 지어보는 행복을 누리고 싶었다.  이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결혼 생활도 짧지 않으니까 이번만큼은 어머님에게 내 뜻을 관철시키리라 굳게 마음 먹었다.  그리고 나는 마흔에 드디어 셋째 아이를 가졌다.  태명은 ‘이룸이’라고 지었다.



남편과 나는 결혼 전부터 세 아이를 가지는게 꿈이었다. 셋째는 이런 우리의 꿈을 이루어 주는 아이였기에 ‘이룸이’였다. 더불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삶 속에서 이루어 가는 아이가 되라는 축복도 들어 있는 이름이었다. 태명이 너무 맘에 들어서 아들이건 딸이건 태명대로 지어야지.. 결심했다.



올 해 1월에 집에서 셋째를 낳았다. 내가 바라던 이쁜 딸이었다.



이번에는 기다리지 않고 내가 먼저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다. 태명 이야기를 하고 이번에는 아범과 제가 아이 이름을 짓고 싶다고 말씀 드렸다. 어머님이 당신께서 알아보시겠다고 말씀 하시면 어떻게 하나 가슴을 졸였는데 왠일인지 어멈님은 ‘너희들 맘대로 해라’ 하시는 것이었다.  지난 겨울 사고로 손목을 다치신 어머님은 오랜 입원 생활을 마치고 막 집에서 조리를 하시는 중이었다.  몸도 힘들어서 이름을 알아보러 다닐 수 도 없고, 이젠 너희도 나이가 들었으니 애 이름은 알아서 지으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고대하시던 손자도 아니고, 첫 딸도 아니어서 관심이 없으신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남편을 시켜 당장 출생신고를 했다.



그래서 셋째는 ‘최 이룸’이라는 멋진 한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내 아래 여동생은 첫 딸 이름을 ‘하나’라고 지었다. 부부가 의논해서 정한 이름이었다. 영국에서 유학을 했던 여동생은 ‘하나’라는 이름이 영어로도 발음이 쉽고, 일본어, 스페인어로 해도 좋은 뜻이라고 자랑했다. 부러웠다. 막내 여동생도 딸을 낳았는데 남편과 의논해서 ‘소연’이라고 지었다. 나보다 먼저 결혼해서 두 아들을 둔 쌍둥이 자매도 ‘현기, 준기’라는 아이들 이름을 모두 부부가 정해서 지었다.  아이 이름 짓는것은 전적으로 아이를 낳은 본인들의 선택과 결정이었다.  어른들의 뜻에 따라야 한다던가, 반드시 어느 '자'가 들어가야 한다던가 하는 것들은 없었다.  그런 상황들이 참 부러웠다.   



 필규와 윤정이라는 이름이 지금이야 익숙하고 어색하지 않지만 세 아이 이름을 모두 나와 남편이 지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은 지금도 한다. ‘연이, 봄이, 이룸이’라고 불렀던 그대로 아이들 이름이 되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어머님 뜻이 우리 아이들이 잘 되기를 기원하시는 그 마음 뿐 이라는 것이야 잘 알지만 그래도 아이 이름 짓는 일은 부모에게 맡겨 주셨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이름은 그 부모의 기도다.



연꽃처럼 거친 땅 속에서도 환하게 제 자신을 피워 올리기를 기도했던 ‘연이’



봄 같은 강인하고 환하고, 따스한 사람이 되기를 바랬던 ‘봄이’



품고 있는 꿈을 사는 동안 풀어내고 이루기를 기원했던 ‘이룸이’



이 이름들은 뱃속에 있던 세 아이들에게 열 달 동안 내가 기울였던 기도들이다.



비록 세 아이 모두 이 이름을 지니고 살지는 않지만 기도했던 마음이야 그 안에 새겨있겠지.. 그렇게 믿는다.



(필규와 윤정이가 이 시대에 많이 쓰이는 이름이 아니라는게 그나마 위로가 된다.  병원에 가서 대기중인 아이들에게 '민서야 ' 불러보시라. 꼭 한 두명은 있다. 서연이도, 준수도, 예준이도 어디에나 다 있더라.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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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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