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아름다운 이유 다섯 가지 장수박사의 건강 삼위일체

장수박사의 건강 삼위일체 2/ 생명이 아름다운 까닭

 
어린 시절, 우뚝 솟아있는 무등산을 자주 찾았다. 봄이 오면 규봉암의 짙붉은 진달래, 여름철 용추폭의 노란 꾀꼬리의 청아한 노래, 가을 장불재 소로봉의 하얀 갈대밭, 겨울이면 소복이 눈이 쌓인 입석대를 찾아다니던 추억이 아련하다. 근자에는 북한산 남한산 청계산을 다니며 시시때때로 변하면서도 올바름을 잃지 않고 있는 대자연을 몸과 마음으로 느껴왔다. 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고, 하늘은 진리를 따르며, 진리는 자연에 있다는 가르침(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을 새롭게 체득한다. 대자연에 사계절의 질서와 멋이 있듯이 생명체도 나서 자라고 늙고 죽는(生老病死) 엄연한 법칙과 보람이 있다. 이러한 생명현상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그 저변에 흐르는 생명의 논리를 설명해 보고자 노력해 보았다. 생명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생명이 품고 있는 뜻을 밝혀 이에 바탕을 둔 바람직한 생명사회 건강사회 정의사회를 그려보고 싶다. 그래서 생화학자로서 무엇보다도 우선 생명체를 구성하는 생체분자를 중심으로 그 특성과, 이러한 분자들이 어우러져 나타내는 생명체로서의 아름다움과 정교함을 생각하여 보고자 한다. 이러한 생체분자들이 공통으로 가지는 원칙적인 속성을 살펴보면서, 이들이 가르쳐주는 생명의 질서와 논리를 먼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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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서(順序)의 도(道)
 
 생명현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순서이다. 어떠한 생명현상도 주어진 순서에 어긋날 수가 없다. 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모든 생체의 변화가 순서이며, 생명체를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의 변화에도 세포주기라는 법칙이 있다. 순서란 바로 길(道)이다. 생명체는 주어진 길(道)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차례차례 가야만 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길은 자연의 법칙을 따라야만 한다(道法自然). 따라서 순서의 의미는 자연이 부과한 시간과 공간의 얼개에 생명은 순종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러한 생명이 가지는 순서의 근원은 생명의 본질과 다름이 없었다. 그것은 너무도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신비한 것으로 수 천년 동안 믿어져 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수수께끼는 20세기의 중반에 너무도 놀랍게도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바로 생명의 현상의 본질을 설명할 수 있는 분자로 일컬어지는 DNA 핵산의 염기서열구조가 밝혀졌기 때문이다. 생명체가 갖는 모든 구조와 기능에 대한 정보가 바로 DNA핵산의 염기서열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사실의 발견은 진화론 발견 이후 생명과학의 가장 큰 사건이다.
 
 생명현상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숙제는 생명체의 다양하면서도 면면히 이어져가는 유전의 특성과 생명활동의 복잡다단한 현상들을 결정하는 본질적 요인이 무엇인가 였다. 이러한 숙제가 조금씩 풀어져 갈 때마다, 세상에는 엄청난 반론과 파문이 제기되었다. 생명의 본질에 대한 이러한 물질적 구조적 해답을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거부감은 생명의 경외감에서 비롯되었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거센 감정적인 역풍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 핵심이 너무도 단순하고 질서정연한 과학적 논리에 의하여 설명이 되었을 때 아연하면서도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DNA핵산에 수록된 염기서열이 바로 생명의 정보였다. 이 서열에 따라 생체에서 실제적으로 기능과 구조를 관장하는 각종 단백질들이 만들어지고, 생명활동이 가능해져 가는 것이다. DNA 핵산의 염기서열은 바로 단백질의 아미노산서열을 결정하고, 이러한 아미노산의 서열에 따라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은 제한되어, 단백질이 개성과 특정 기능을 갖게 된다. 만일 이러한 생명정보의 공간상 서열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은 돌연변이로 표출되고 각종 유전병, 암 등의 병적 상태로 이어진다. 또한 구조상의 서열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록된 DNA정보의 발현도 반드시 일정한 수순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DNA에 수록된 정보가 아무렇게나 난잡하게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일정한 순서에 의하여 차례대로 발현되어야만 한다. 이와 같이 시간적으로도 생명정보는 엄격한 순서를 지켜야 한다. 이러한 생명정보의 공간상의 서열과 시간상의 순서가 제대로 가동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생명의 거룩함을 느끼게 되고, 여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해괴망측한 생명현상과 기형을 접하게 된다.
 
 이와 같이 주어진 길을 따라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 생명의 가장 기본인 첫째 질서이며, 그러한 길은 자연이 우리에게 정해주었으며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옛말에 하늘을 따르는 자는 살고, 거스르는 자는 죽는다(順天者存 逆天者亡)는 가르침에서의 하늘(天)의 의미가 바로 자연이며, 자연은 바로 순서라는 계율을 숙명적으로 생명에 부여하였다. 바로 자연은 생명이 가지는 서열과 순서를 이루는 질서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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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자(分子)의 지조(志操)
 
 생명체를 구성하는 분자들의 또다른 특성은 짝을 짓는다는데 있다. 생체분자들은 자신과 가장 어울리는 짝과 만났을 때, 구조적으로도 안정되고, 비로소 고유의 기능을 가지게 된다. 아무리 중요한 분자라도 자신이 상대하여야 할 제 짝을 만나지 못하였을 때는 전연 의미가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우선 생명의 분자 중에서 가장 본질적인 분자로 지목되는 DNA 핵산의 경우 그 구조는 2중 나선형(double helix)이다. DNA사슬 두 가닥이 서로 단단하게 결합되어서 안정된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그 구조적 안정성의 핵심은 한쪽 가닥의 염기와 다른 쪽 가닥의 염기가 반드시 정해진 짝과 만나기 때문이다. 아데닌(A)이라는 염기는 반드시 티민(T)이라는 염기와, 그리고 구아닌(G)은 시토신(C)과 만나야만 한다. 개개의 염기도 이러하지만 수백만 수천만 개의 염기들이 이어진 DNA의 거대분자로 볼 경우, 이들 각 염기들의 짝이 모두 맞아야만 안정된 구조를 이룰 수 있다. 조금이라도 짝이 틀리면 구조가 불안정해지고, 여러가지 DNA 수선효소들이 등장하여 절단하여 버리고 만다. 이와 같이 DNA분자는 수백만 개의 염기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모든 염기들이 정해진 짝을 만나야만 비로소 안정되고 그 기능을 발현하게 된다. 바로 유전의 신비는 이러한 DNA의 구조적 특성에 기인한다. 자식이 애비를 닮고, 할아버지를 닮는 현상의 설명이 비로소 가능해진 것이다.
 
 생체의 기능을 주재하는 단백질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단백질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촉매, 운반, 운동, 방어, 공격, 저장, 조절, 구조의 모든 생체 기능이 단백질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이러한 단백질들은 각각 고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아미노산 서열 구조에 의하여 결정된 입체적 양태(conformation)에 의하여 그 기능이 결정된다. 단백질들은 자신의 입체 구조의 활성 부위와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물질들에 대하여서만 기능을 발휘한다. 효소분자의 경우 특정한 분자들 만을 기질로 상대하여, 주어진 반응을 촉매하고 새로운 일정한 생성물을 만든다. 항원항체 간의 결합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유사한 구조가 있더라도 항체는 정해진 항원과 만 반응한다. 호르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호르몬이 기능을 발휘하려면 반드시 호르몬과 결합할 수 있는 수용체가 있어야만 한다. 이러한 수용체가 있고 없음에 따라 호르몬이 어떤 세포에 작용하는가 안하는가 가 결정된다. 이와 같이 많은 생체분자들은 반드시 상대하는 짝이 있어야 하고, 그러한 짝과의 인연은 정도 차이가 있지만 이들 간의 해리상수가 적어도 108~1015분의 하나의 확률로 제한되고 있다. 이렇게 만나 짝을 이룬 분자들은 소기의 생명기능을 이행한다. 그러나 정확한 짝이 아닌 경우에는 서로 만나서 당연히 해야 할 분자들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할 수가 없다. 올바른 짝을 만나지 못하면 어떠한 반응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면 주어진 짝을 만나게 되면 생명현상의 신비를 풀어내는 온갖 반응들이 이루어진다. 이와 같이 생체분자들은 인연이 아니면 상대도 않지만 인연이라면 필사적으로 찾아나서 생명현상을 이루어 내는 천생연분에 대하여 일편단심을 지키는 열정과 지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분자들의 인연이 숙주인 사람에게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항원항체 반응의 경우, 좋은 경우는 백신이나 여러 면역 반응과 같이 생체를 보호해주는 일을 하기도 하나, 나쁜 경우는 알레르기 쇼크를 일으킬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생체분자들의 인연은 때로는 생체 전체의 삶과 죽음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생체 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분자 들에게 오차가 전혀 없는 고유한 인연이 맺어져야만 한다. 바로 이것이 또다른 생명의 질서이다. 사람살이에도 인연의 소중함을 되새겨야 함을 가르쳐주는 분자의 요구이다. 이러한 생체분자들의 속성을 보면서 모든 만남의 인연은 결코 한 쪽만이 강할 수 없는, 반드시 서로 대등하게 어우러진 구조를 형성하여야만 함을 배운다. 올바른 짝을 만나 평생을 서로 믿고 서로 의지하며 해로(偕老)하는 인간의 슬기를 되새겨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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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분(安分)의 절제(節制)
 
 인체가 가지고 있는 정보의 양(量)은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되어 약 삼만 가지의 유전자가 수록되어 있다고 계산되고 있다. 모든 세포들은 동량의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해당 세포 들은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십 분의 일 정도만을 각각의 필요에 따라, 세포에 주어진 분화(分化)에 따른 사명을 수행하고자 발현한다. 그러나 유전자 발현과정에서의 정교한 조절에 의하여 수많은 다양한 단백질 기능분자들이 출현한다. 유전자들이 서로 연결되기도 하고 중간에 짤리기도 하면서 원래의 유전자 숫자보다 훨씬 많은 다양한 단백질 분자를 생성해낸다. 이들 분자들은 세포마다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양적 관계에 의하여 복합적으로 뒤엉켜 있다. 그러나 세포는 이러한 혼돈을 세포내 분자들을 구획화하여 분명하게 정리해두고 있다. 세포에는 핵, 미토콘드리아, 리소좀, 골지체, 미크로솜, 퍼옥시솜, 세포막 등이 있으며, 이러한 세포내 공간은 택지 조성하듯 각 구획마다 일정한 기능을 부여하고, 그 구역에 필요한 분자들을 배치하도록 조정되어 있다.
 
 따라서 생체분자들은 자신들이 있어야 할 위치에 존재하여야만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이행할 수 있다. 생체분자들이 지정된 구획을 벗어나게 되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고, 결과적으로 세포는 병적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와 같이 생체분자들은 주어진 정보에 의하여 결정된 구조를 가질 뿐 아니라, 그 배치도 주어진 위치에 존재함으로써 맡은바 기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질서를 지키고 자기 분수를 지켜야 사회가 안정된다는 삼강오륜의 가르침을 생체분자들은 이미 터득하고 있다. 생체 분자들의 이러한 생명의 질서에 대한 위치적, 순서적, 기능적 복종은 삶을 이어가는데 가장 중요한 원칙의 하나이다. 생체분자들은 이러한 생명의 법칙에 순응하여 헛된 욕심없이 자기 분수를 지킴으로서 생명이라는 전체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았다. 이러한 생명질서의 엄숙함은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도 구성원 하나하나가 갖는 사명의 소중함을 되새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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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동(協同)의 묘(妙)
 
 대부분 생체분자들의 구조적 특성은 일정한 단위체가 주어진 순서에 따라 공유결합으로 연결되어 형성된 중합체라는 점이다. 단백질은 스물한 가지의 아미노산들이 순서에 따라 조합됨으로써 수만 가지 단백질분자를 형성하나, 핵산은 단 네 가지의 염기가 여러 가지 조합으로 수천만개가 연결되어 DNA라는 거대분자를 형성한다. 이러한 염기서열에 의하여 결정되어진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 구조를 단백질의 일차구조라고 한다. 이러한 단위체의 중합체가 생체 기능의 기본 분자가 되어 평면구조인 2차구조를 이루고, 다시 입체구조인 3차구조를 이루어 단백질분자로서의 기능적 특성을 발휘한다.
 그러나 생체의 중요한 반응들에는 이러한 분자들이 보다 복잡한 특별한 입체구조를 필요로 한다. 여러 개의 서로 같거나, 또는 다른 분자들이 모여서 단백질 4차구조를 형성하여, 반응 조절의 묘(妙)를 보인다. 예를 들면 생명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산소를 이용하여야 하는 경우, 산소들을 폐에서 받아 전신의 세포들로 운반해 주는 데는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이라는 단백질이 필요하다. 헤모글로빈은 α와 β단위체라는 서로 다른 단백질분자가 각각 2개씩 모인 올리고체(oligomeric structure)를 이루고 있다. 단백질 분자가 이와 같이 올리고체로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장점은 기능적 효율을 극대화하는데 있다. 헤모글로빈은 폐에서 공기 속에 들어있는 산소를 효율적으로 끌어내서 운반하고, 말초조직에서는 세포들에 신속하게 산소를 공급해주고 돌아와야 한다. 이 과정에서 헤모글로빈과 산소의 결합 및 해리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헤모글로빈의 올리고체구조가 절대적이다. 낱개로 흩어진 단위분자들이 산소와 결합하거나 해리하는 속도보다, 올리고체로 구성된 구조는 그 반응속도를 효과적으로 극대화할 수 있다는 특성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분자들의 협동(cooperativity) 현상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현상은 단위분자 활성부위 이외의 다른 부위들 간의 영향에 의한다는 점에서 알로스테리 (allosterism)이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분자들에 의한 협동의 묘는 효소의 조절, 세포내 신호전달체계 등 생체의 주요한 현상에서 결정적 스윗치 역할을 해준다. 분자들의 단독행위로는 생체반응이 일어날 수는 있으나, 시스템의 효율적인 진행이 어려워진다. 따라서 이러한 분자들의 협동현상은 대사계 전체의 흐름을 유도하고 중단할 수 있기 때문에 생명현상의 조절기전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바로 이것이 생명의 질서에서 협동을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사람들의 삶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개개인이 똑똑하고 잘하면 기본적인 사회 여건은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도약적 발전은 오로지 협동과 단결에 의하여 조직적으로 추진되어야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사실은 생명분자들이 이미 보여준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
 
 화생(化生)의 덕(德)
 
 생체 내에 있는 분자들은 어떤 것도 처음 그대로 남아 있는 법이 없다. 겉보기에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몸을 구성하는 세포와 분자들이 모두 그대로 있는 듯 보이지만, 모든 생체분자들은 나름대로 주어진 수명이 있으며, 없어지면 새로운 분자가 생성되어 자리를 채워주기 때문에 겉으로는 변함이 없는 듯 보인다. 화학반응에서 말하는 동적 평형의 개념이 생명현상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모든 생체 분자는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를 통하여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개발되고 있다. 즉 생체는 아무 것도 아니한 것 같이 보이지만(無爲), 하지 않는 것이 없는(無不爲) 의연한 존재이다. 생체가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음식물의 경우, 고기는 그 단백질 성분들인 각 아미노산으로, 그리고 쌀과 같은 전분은 포도당과 같은 단위체로 위장관내에서 소화 분해된 다음, 비로소 장내 세포로 흡수된다. 흡수된 분자들은 간을 비롯한 각 조직으로 이동되어 여러 가지 단계를 거쳐서 대사되어 궁극적으로 물, 탄산가스, 뇨소(urea)의 형태로 변하여 체외로 배출된다. 모든 음식물들은 사람 몸속에 들어오면 공통적인 대사 산물로 만들어지고, 이 과정을 통하여 생체에 필요한 에너지가 생기고, 구조와 기능에 필요한 각종 분자들을 우리의 삶에 맞도록 만들어서 생명현상을 가능하게 한다. 생체 내에 들어온 분자들은 결국 자신을 태워서 새로운 형태의 분자로 변함으로써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살신의 덕을 본연의 뜻으로 가지고 있다. 보다 큰 생명의 삶을 위한 이러한 개개 생체분자들의 거듭나고 새로워 짐이 바로 부활(復活)의 의미이며 생명의 엄연한 질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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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생체에 필요한 분자들이 변화되지 않고 밖에서 들어온 그 모습대로 이용될 수밖에 없다면, 생체는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몸에 필요한 것마다 찾아 먹는데 훨씬 많은 노력을 기울려야 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세상은 잡아먹고 먹히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 것이다. 생체는 이와 같이 외부분자들을 세포 내에서 대사라는 시스템을 통하여 변(變)하게 하여 생체가 필요한 물질로 화(化)하게하는 과정으로 삶을 영위하고 생명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는데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분자들이 생명 세포 내에서 보여주는 자신을 죽이고 새로워지는 화생(化生)의 덕(德)이야말로 효율성과 경제성을 배태한 생명의 참된 질서이다. 세상살이에서도 자기희생을 통한, 사회에의 밑거름이 되고 발전을 기하는 선(善)이 칭송을 받는 소이(所以)도 실은 이러한 생체분자들이 이미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명의 질서에 기인한 것이다.
 
 이와 같이 생명을 영위하는 기본단위체들인 생체분자들이 가지는 순서, 지조, 안분, 협동, 화생의 질서는 바로 생명의 길이며 자연의 가르침이다. 생명의 질서에는 정연한 논리가 있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생명 현상이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진행된다. 생명이 아름다운 까닭은 바로 이러한 자연의 질서를 엄숙하게 순종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적 논쟁은 가치와 의미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크게 작용하였다. 플라톤은 불변부동의 형태로 나타나는 초감각적이며 균형과 조화 등의 원리로서, 미(kalos)와 선(agathon)이 하나가 된 상태로 인생에 유용하고 목적에 합치된 것이 선인 동시에 미라고 여겼다. 이에 반하여 칸트는 미란 단순히 감성적 인식으로서 주어지는 것으로, 선이나 유용성의 합목적성으로 부터 분리되어 있으나, 미적 판단은 보편성 ·객관성이 요구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미를 선에서 분리시키고 감성에 대응하는 면에서만 추구해갈 때에 미는 악 또는 배덕(背德)과의 결부가 추구되어온 현실을 보게 된다. 

  200.jpg 그러나 사물을 인식하고 평가할 때 생명체가 생명을 영위해가며 보이는 과학적 진실을 바탕으로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결론에 다다른다. 온전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발휘되는 생명의 질서에서 바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고 생명을 위한 가치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생명의 질서가 온전하게 갖추어지고 유지되어가는 삶은 마땅히 건강한 삶이 될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생체분자들이 지켜주는 생명의 질서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거룩하고 아름다운 생명현상을 살펴보고, 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올바른 세상 바이오토피아의 바람직한 방향을 그려본다.

 
  박상철 전남대
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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