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눈앞에 다가온 하이테크 전쟁, ‘사람과 교리’를 준비하라 무기

눈앞에 다가온 하이테크 전쟁, ‘사람과 교리’를 준비하라
권영근 박사, <하이테크 전쟁>이 한국군에 던지는 메시지 잘 읽어야

 

<하이테크 전쟁>은 미국에서 출간된 직후 첨단 기술 및 전쟁관련 인문서로는 이례적으로 <뉴욕 타임스> 비소설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인간의 과학기술혁명이 전쟁에 끼친 영향과 미래전의 전망을 뛰어난 시각으로 분석한 <하이테크 전쟁>은 첨단 과학군으로 발돋움하고자 하는 한국군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는 책이다. 번역자 권영근 한국국방연구원 군사기획센터 연구원을 만나 책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담 김종대 편집장 jdkim2010@naver.com
정리 김동규 기자 ppankk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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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에 큰 의미 부여하는 <하이테크 전쟁>

 

<하이테크 전쟁>을 번역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처음에 출판사 대표가 로봇에 관련된 책이라며 번역을 제안했을 때는 바쁜 일이 있어 정중히 거절했다. 하지만 올해 4월 경 책을 찬찬히 살펴보니 이건 단순히 로봇에 관련된 책이 아니라 무인항공기와 네트워크로 전쟁을 수행하는 모습, 이라크전 등지에서 발생하는 현대전의 양상, 민간의 정보기술 발전, 1980~1990년대 이후 과학기술혁명이 군에 끼친 영향 등을 자세히 기술해 놓은 책이었다. 단지 로봇에 초점을 맞췄을 뿐 전체적인 내용은 과학기술혁명이었다. 개인적으로 한국군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책이라 판단하고 거의 한 달 동안 번역에 몰두했다. 

 

한국군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과 연관이 있어 빨리 소개해야겠다는 마음에 번역을 시작했다는 의미로 들린다. 책을 보면 10장 이후부터 과학기술의 어두운 측면들이 나온다. 네오콘 군사혁명을 주도한 세브로스키 같은 경우는 네오콘 군사혁명의 원조이자 광신도로 표현돼 있는데, 저자는 세브로스키의 혁명이 처음부터 성공적이었다고 말하지 않고 있다. 
사실 저자는 세브로스키가 처음 군사혁명을 시도했을 때보다는 결과적으로 봤을 때 어떤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평가한 것이다. 저자의 의견에 따르면 세브로스키는 당시 정보기술을 통해 민간의 월마트 같은 대형마트가 혁신을 이뤄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것을 군에도 적용했는데 군과 민간은 분명 다른 측면이 있다는 것을 간과한 듯하다.


전쟁에는 생사의 문제나 불확실성의 문제 등 특유의 문제가 존재하는데 민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서 군에서 그대로 성공할 것이라 생각한 게 문제였다. 오엔스 제독 같은 사람은 정보기술을 통해 전쟁의 불확실성, 마찰 등을 없앨 수 있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러지 못했다. 불확실성의 문제는 끊임없이 목격되고 있으며, 정보기술의 약점을 뚫고 들어오는 현상도 생겼다. 군의 체계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다 보니 오늘날 사이버전의 문제가 중요한 의미가 있게 된 것이다. 결국 작용 반작용의 측면에서 끊임없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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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해군 폭발물제거반(EOD)대원과 폭발물 제거를 대신하는 로봇 '팩봇(PackBot)'.

팩봇은 가정용 청소로봇 '룸바(Roomba)'로 유명한 iRobot사에서 제작했다. ⓒ iRobot 

 

네오콘인 럼스펠드나 세브로스키가 초기에 어느 한 쪽으로 편중된 건 사실 아닌가? 책에 따르면 이들은 네트워크 개념이 전장의 마찰이나 안개를 없앨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센서와 무기체계를 통신망으로 연결하는 것은 센서를 통해 적의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고 그 정보를 정보통신망을 통해 가져와 신속히 의사를 결정한 뒤 공격을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발전된 센서로도 적의 의도, 적의 능력을 완벽히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였다. 책에도 그런 부분들이 나와 있다. 

 

첨단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교리와 사람

 

어떤 상황에서는 전혀 예기치 않은 어이없는 문제들도 발생했다. 우선 군의 체계가 네트워크로 모두 연결되다보니 데이터양이 엄청나게 폭증해서 감당할 수 없었고, 데이터를 처리하려면 엄청난 양의 배터리가 필요한데 이라크 전쟁에서는 거의 30개국의 배터리를 미군이 몽땅 쓸어가야만 하는 등의 어려움도 생겼다.
그런 문제도 있지만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센서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여 수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의미있는 수준으로 정제하지 않으면 혼돈만 주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그래서 정보의 범람 같은 문제들이 생긴다. 아무리 네트워크가 발전한다 하더라도 결국 정보를 판단해주는 인간의 직관과 같은 것들이 끊임없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

 

11장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선 교리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그걸 뒷받침하는 교리가 없으면 그 기술은 결국 유용하지 않다는 말로 들린다. 예를 들어 터키는 유럽에서 화약을 제일 먼저 발명한 나라인데 그것을 운용하기 위한 교리가 없다보니 실제로 성공한 건 영국이나 다른 나라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5억 원 짜리 하이파이 오디오가 있어도 다루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5만 원짜리가 되기도 한다. 무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무기가 있어도 이것을 어떻게 운용하는 가에 대한 올바른 교리가 없으면 본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책에 따르면 많은 군사 사상가들이 새로운 기술에 저항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더라도 자기가 알던 전쟁의 이미지와는 다르다보니 군에서 저항이 심했던 것이다. 결국 새로운 기술에 맞춰 교리가 나오지 않는 것도 군의 반발 때문이 아닌가?
군이라는 조직도 결국 사람이 주가 되는 것이고 사람에게는 기존의 고정 관념이란 게 있다. 몇 십 년 동안 자기가 생각해왔던 것을 새로운 기술 도입을 통해 변화시키려하면 저항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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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인 무인기(UAV) '프레데터(predator)' ⓒ U.S Department of Defense 

심지어 X-45 무인항공기 개발이 중지된 것도 합동타격기(JSF) 개발에 방해가 될 우려가 있어서라고 한다. 결국 항공기보다는 조종사 중심의 공중전 이미지 때문에 미 공군이 무인항공기 개발에 반대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재에 와서는 무인항공기와 유인항공기를 혼합해서 적극 수용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지만.
문화는 저항성이 있다고 본다. 무인항공기의 등장에 유인항공기 중심의 기존의 문화가 저항하고 있는데, 이는 모든 분야에서 목격되는 현상이다. 문화는 서서히 바뀌게 된다. 결국 무인항공기가 군에 도입되고 있다.

 

이 책의 12장에서 주는 교훈이 인상 깊다. 과학기술을 개발하는 나라가 강한 게 아니라 그 기술의 과실을 따먹는 나라가 강대국이란 분석이 상당히 와 닿는다. 어떻게 보면 혁신은 후발주자가 더 유리한 게 아닌가 싶다. 고정관념에 빠진 승자보다는 전쟁에서 패해 절치부심하는 패자가 혁신을 더 잘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승자는 처음에 군사혁신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많은 예산과 역량을 투입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승자가 되면 자만심이 생기고 기존의 관성에 묶이게 된다. 반면 패자는 그것을 어떻게 뒤집어야 하나 고민한다. 
2차 대전을 보자. 항공기나 탱크 같은 무기체계는 영국ㆍ프랑스가 훨씬 많았는데 전쟁을 주도한 건 독일이었다. 독일은 새로운 것을 찾아 전쟁에 승리해야한다는 생각에 기존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서 이기겠다는 집념을 현실화했다. 대표적인 것이 전격전 교리다.  

 

한반도는 여전히 재래식 전쟁이 중요한 지역

 

13장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쟁이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상대가 안 된다고 봤는데 이스라엘의 항공전력을 완벽히 마비시키고 거꾸로 보복까지 했다. 이런 면에서 하이브리드 전쟁이 이런 초강력 개인, 초강력 집단 이런 곳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 아닌가? 또한 우리의 전통적 군사력 비교 관점은 더 이상 무의미한 게 아닌지.
오늘날 정보화시대가 되면서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정보를 수집해 능력에 따라 정제할 수 있게 됐다. 단순히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많은 무기들에 관한 자료들이 오픈 돼 있고 이것들을 적절히 믹스하게 되면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이라 할지라도 국가에 버금가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주변의 아랍국가와 싸워서 패배한 적이 없는 나라다. 그리고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국방예산의 100분의 1도 못 쓰는 영세한 집단인데 이스라엘과 싸워서 이스라엘군을 죽이고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런 새로운 시대에 있는 것이다. 사실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전쟁은 주로 국가 대 국가 간에 벌어지는 것만 의미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쟁의 주체도 단순히 국가가 아니라 비국가 행위자나 개인이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있는 시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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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으로 던져 날릴 수 있는 무인기 '레이븐(Raven)' ⓒ U.S Department of Defense


예를 들면 국가가 아닌 무장단체에 불과한 알카에다 같은 집단이 미국과 싸운다. 알카에다는 소위 이야기하는 약자가 강자와 싸우는 방법, 모택동의 게릴라 전술 등을 발전시킨 전술을 쓴다. 이것이 중동에서는 효력을 보이지만 한반도는 상황이 다를 것으로 본다. 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중동은 이슬람 문화 같은 공통된 인식들이 뿌리박혀 있어서 민중 속에 숨어서 게릴라전을 수행할 수 있지만 한반도는 좀 다르다. 미국의 현재 가장 큰 관심사는 테러와의 전쟁이다. 미군은 전세계를 무대로 전쟁을 수행한다. 그런데 미군은 유일하게 한반도에서 흔히 말하는 전통적 군사력, 항공기ㆍ탱크ㆍ함정 같은 전통적 군사력으로 전쟁계획을 짜고 연습을 한다. 아직도 재래식 개념의 전쟁양상이 벌어질 것으로 대표되는 곳이 바로 한반도이기 때문이다.

 

아직 한반도에는 재래식 전쟁의 교리가 다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 그래서 한반도와 중동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면 중동처럼 십년이 넘게 게릴라전이나 테러전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에 서해를 보면 북이 전자전을 수행하는 등 이전에 나타나지 않았던 현상들이 관찰되는데, 휴전선 같은 고착된 전선을 초월해 다른 영역에서 혁신적 시도를 하는 북한을 끊임없이 참고해야 하는 건 아닌가.
현재 벌어지는 현상은 새로운 것이라기보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일환이다. 전자전을 무력화하기 위한 활동 등은 사이버전의 한 부분으로 봐야 한다. 특별히 비정규전이라든가 테러와의 전쟁으로 보기는 힘들고 정규전 유형의 하나로 봐야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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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근 한국국방연구원(KIDA) 군사기획센터 연구원 약력

예비역 공군 대령
공군사관학교 26기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졸업
연대대학원 전자공학과 졸업
미 오리건주립대 전산학과 졸업(전산학박사)
전 공군 사관학교 전산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정치학박사 과정

 

기술혁명이 야기한 지휘의 본질 변화

 

14장부터는 암울한 이야기가 나온다. 국가 간의 불평등 문제. 아직도 지구상에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라가 대다수고 그런 불평등 속에서 분쟁 요인 자체가 기술의 요인과는 전혀 무관하게 발생한다. 이렇게 보면 하이테크는 분쟁의 발생요인을 관리하기에는 역부족이 아닌가?
예전에 통신망이 발전되지 않았을 때는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지구상에 공존해도 불만이 없었다. 왜냐면 가난한 사람이 부자의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오늘날엔 인터넷이고 TV고 모든 것이 네트워크화 됨에 따라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도 대한민국이 어떻게 살고 있고 미국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다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지역에서 전쟁을 일으켜도 자기네들은 잘 먹고 잘 사는 미국의 모습은 가난한 나라 입장에서 보면 공격의 대상이고 질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것들이 분쟁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국가내부에서도 슬럼가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부유한 사람들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고 이러한 것들이 갈등의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당혹스러웠던 점은 지휘의 본질 변화다. 현대전은 전장상황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간섭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나폴레옹은 멍청한 장군 한명이 똑똑한 장군 두 명보다 낫다고 말했다. 멍청한 지휘관으로 지휘통일을 해주는 게 똑똑한 장군 둘에게 지휘가 분산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낫다는 말이다.
책을 보면 무인정찰기로 어떤 지역을 정찰하는데 별 10개, 즉 세 명의 지휘관이 개입하는 부분이 나온다. 한명은 점령해라, 한명은 가서 엄호만 해라, 한명은 점령하지 말라는 등 세 가지 지시가 한 명의 현장 지휘관에게 내려간다. 결국 저자는 지휘의 본질을 중첩의 해소라고 말하고 있다.
빈 라덴 제거 작전은 미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현장 상황을 보면서 진행된 것이다. 한반도는 상황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일반적인 추세는 동일상황을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작전에 대해 한 마디씩 할 수 있는 여건이 생겼고 동일한 상황에 대해 A는 어디로 움직여라 B는 어떻게 해라 이렇게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과연 현장지휘관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사실 이는 오늘날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보가 등장한 1800년대 이후부터 제기되고 있는 문제다. 그때부터 야전지휘관의 행동에 대해 후방에서 끊임없이 컨트롤 하려고 했다. 양차대전 당시에도 전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지휘를 하려 하니 야전지휘관이 전화를 끊어버리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그런데 정보화시대가 되면서 이런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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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발로 힘껏 차도 균형을 잡는 것으로 유명한 견마(犬馬)형 로봇 '빅독(Bigdog)'. 한국에서도 현재 이러한 견마형 로봇을 연구중이다.

<하이테크 전쟁>에서는 아무리 화면을 통해 전장상황을 공유한다 할지라도 화면은 현장 상황의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화면이란 건 외적인 모습에 불과해 현장에 있는 전투원들의 생각이나 갈등을 보여줄 수는 없다. 거기서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장 지휘관이다. 고위 지휘관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 모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자신이니까 자기 의도대로 간섭하고 싶겠지만 진짜 훌륭한 지휘관이라면 간섭과 야전지휘관에게 자율성을 주는 부분, 다시 말해 독자성을 주는 부분을 절묘하게 조율해야 한다. 특히 자율성의 문제는 정보화 시대가 대두됐다 하더라도 중요성이 감소하는 게 아니다.


전략적 수준, 작전적 수준과 전술적 수준의 중첩, 예를 들면 전략적 지휘관이 전술적 상황에 간섭할 수 있는 상황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대장은 중령이 하는 일 정도는 화면을 보며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군을 관리하다가 중령이 진급을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중령으로서 지휘를 제대로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고급 지휘관이 되어 지휘를 하면 당연히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마이크로 컨트롤의 문제는 경계해야 될 사항으로 본다.

 

어쩌면 우리도 서해 등지에서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닌가.
그렇다. 한국군도 전장 상황을 공유는 한다. 하지만 정보 공유를 통해 진행 상항을 알고 있다고 위에서 일일이 간섭하면 문제가 커진다.

 

그럼 앞으로 전쟁지휘관은 자기 혼자 지휘하고 있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걸 의식하는 지휘관이 돼야겠다.
예전의 고위 지휘관들은 밑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계속 확인하고자 했다. 그러나 현장상황을 고위 지휘관들이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지휘관의 머릿속에 있는 큰 그림과 개개 상황이 어떤 조화를 이루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어 궁금증은 많이 사라지고 간섭은 줄어들게 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고 지휘를 해야지 야전 지휘관을 마이크로 컨트롤 하려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고위 지휘관들은 야전상황이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큰 그림에 맞춰 바로 가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거기서 벗어날 때 지적하는 수준으로 지휘해야지 세세한 것까지 간섭해선 곤란하다.

 

실제 상황에서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동의한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과도 관계있다. 끊임없이 간섭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인데 그 가운데서 현장 지휘관에게 얼마만큼의 권한을 보장해주느냐는 문제는 한국군 내에서도 끊임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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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고도무인정찰기로 '글로벌 옵서버(Global Observer)' ⓒ AeroVironment 

 

로봇에 대한 교리와 지휘통제 연구에 힘 쏟아야

 

책을 보면 특히 기계에 대한 의인화가 인상적이다.
그렇다. 인간이 기계에 부여하는 의미, 그 의미에 따라서 마치 우리가 강아지에 애정을 느끼는 감정을 기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로봇이나 각종 기계들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짓궂은 일을 대신 해주면서 마치 로봇을 자기의 일부라 생각하고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것이다. 로봇이 다치게 되면 슬퍼하는 등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심지어 책에는 어떤 병사가 로봇을 구출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경우도 나온다.
그러다가 죽는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로봇이 자신의 목숨을 지켜주는 등 많은 일을 해줬기 때문에 그 로봇을 자기의 일부로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사람의 모습을 띠고 있고 또 어느 정도 판단도 하고 하니까.

 

앞으로는 로봇에 관해 새로운 윤리적 문제가 많이 발생할 것 같다.
앞으로 로봇에게 얼마나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가에 대해 논란이 있을 것이다. 첨단화되는 군의 체계의 변화 때문에 무인항공기 등이 자율성을 갖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향후 인간처럼 판단을 하고 외견도 인간과 비슷해질 텐데 과연 로봇에 얼마나 많은 권리를 부여해주느냐, 또는 그럴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가 화두가 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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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팩봇을 만든 iRobot사의 라이벌 관계에 있는 Foster-Miller사가 내 놓은 전투용 로봇

 SWORDS(Special Weapons Observation Reconnaissance Detection System) ⓒ Foster-Miller

 

로봇에게 부여하는 자율성의 문제, 로봇 개발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데?
먼저 OODA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OODA는 관찰(Observe), 파악(Orient), 결정(Decide), 행동(Act)을 줄인 말이다. OODA 모델을 만든 사람은 존 보이드다. 존 보이드는 한국전쟁 당시 F-86을 타고 Mig-15와 공중전을 벌인 조종사다. 당시 Mig-15는 F-86보다 성능이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공중전에서의 전과는 10대 1로 F-86이 우세했다. 존 보이드는 왜 우수하다고 알려진 Mig-15와 F-86이 공중전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우위를 보였는지 연구했다. 물론 그 당시 미군 조종사들의 기량이 뛰어난 측면도 있지만 존 보이드가 판단하기에는 결정적인 이유가 한 가지 있었다.


당시 F-86은 Mig-15에 비해 공중선회능력이 빨랐다. 당시의 공중전이란 건 상대방의 꼬리를 문 뒤 뒤에서 기관단총을 쏘는 방식이었다. 당시는 레이더가 발달된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상대방의 항공기를 먼저 본 다음(Observe) 정황을 파악하고(Orient)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결정한 뒤(Decide) 행동을 하는 것(Act), 이 루프를 얼마나 단축하느냐에 전투의 승패가 달려있었다. 루프가 짧을수록 상대방의 꼬리를 먼저 잡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존 보이드가 발견한 OODA 모델은 현대의 전쟁과 사회전반에도 적용되고 있다.


현대에는 미사일이나 첨단무기들이 굉장한 속도로 날아온다. 거기에 OODA모델을 적용해보면 거의 10-8초 내에 끝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인간의 판단 능력은 아무리 빨라도 10-1초 정도가 한계다. 결국 현대의 자동화된 무기체계에 인간이 끼어들 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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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Robot사의 제품으로 실전을 수행 중인 미군 병사들.

전장의 온갖 위험한 일을 대신해주는 로봇은 병사들에게 친구처럼 여겨진다고 한다. ⓒ iRobot


로봇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결정과 행동을 인간이 해야 하느냐 아니면 로봇이 전적으로 하느냐는 문제에서 로봇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데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군사적 효용성 측면에서만 보면 로봇에 전권을 다 넘겨주는 것이 옳다. 문제는 로봇은 기계이고 소프트웨어를 통해 움직이는데 전자파 등에 약하다. 사람으로 치면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집에서 사용하는 컴퓨터도 어느 날 갑자기 멈추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대부분 소프트웨어 오류 때문에 발생하는 문젠데 수억 가지 경우의 수 중 어느 하나에 걸리면 멈춰버리게 되는 것이다. 만약 전쟁에 투입된 로봇이 발작을 일으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서 로봇에 100% 자율성을 주는 문제는 논쟁의 소지가 있다.


또 전투로봇에게 100% 자율성을 줬을 때 로봇이 기관단총으로 무고한 시민들까지 쏴 죽이면 누가 책임을 져야하나. 로봇에 책임을 물어야하나 아니면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 그래서 로봇에 자율성을 주는 문제는 법적으로 아주 난제다. 군사학 관점에서 100% 자율성을 부여해주면 효율적이겠지만 돌발 상황에서의 책임 문제 같은 것들이 복잡한 것이다. 그래서 대인지뢰나 독가스를 금지하듯 복잡한 법적 문제를 야기한다는 측면에서 로봇의 개발을 금지하자고 제안하는 사람도 생기고 있다. 

 

미군이 로봇체계를 구입해 어떻게 지휘통제 할 것이냐는 문제로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데 그 문제는 미군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추세로 보인다. 그런 체계들이 양산됐을 때 어떻게 지휘통제 할 것이냐는 문제는 한국군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한국군의 경우 국방예산 규모에 비해 늦은 편인데, 이미 미군은 모바일 전투체계로 가고 있다. 독일도 그렇고. 하지만 우리가 좀 더디게 가는 게 오히려 더 좋은 점도 있다. 앞에서 실험을 다 해주다보니 시행착오를 염려할 필요가 적어지는 것이다.


책에서 언급했지만 지휘통제 혼선 가능성과 교리 정립의 미비는 문제가 크다. 사실 미국이란 나라는 군사비를 엄청나게 많이 쓰고 로봇연구도 단순히 군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민간의 발전과 연결돼 있는 상황이다. 한국군은 이러한 로봇들을 주로 군에서 효율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미군보다 교리의 문제, 지휘통제의 문제 등에 더 신경 써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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