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 계획해보니 무려 2000km 녹색 여행자

 거의 도시에서만 살면서 도시는 참 아니다 싶었습니다. 귀촌을 생각했고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땅을 '오지게' 여행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잃어버린 자연에 대한 감성도 키우고, 여기저기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만날 생각입니다. 그래서 3월 부터 우리나라 도보여행을 떠납니다. 강도 따라가고 산도 따라가고 바다도 따라갑니다. 여행하며 보고, 느낀 것들을 하나씩 써 나갈 예정입니다.


모니터를 몇시간이나 뚫어져라 바라봤다. ‘눈알이 튀어나온다’라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것일까? 그럼에도 전혀 지겹지 않았다. 구글지도를 큰 모니터에 띄워 놓고 우리가 걸어갈 길을 일일이 체크했다. 최대한 작은 길로, 차가 다니지 않을 것 같은 길을 확인했다. 자동차 전용도로 같은 길은 다음지도의 로드뷰로 확인하며 제외시켰다.

처음에는 내 여행의 지론대로 ‘무계획’으로 떠날까 생각했었다. 일단 생존을 위한 준비만을 한 채 무작정 떠나는 것이다. 발길 닿는대로 떠나도 새로운 경험들은 도처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멋진 걸 보더라도 마음에 준비를 한 채 보는 것과 준비가 안 된 채로 보는 것은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 예상치 못한 ‘서프라이즈’는 훨씬 더 큰 즐거움을 준다.

또, 그 지역을 여행할 때 주민들에게 물어보며 찾아가는 재미도 있다. 인터넷 같은 곳에 공개된 장소도 좋긴 하지만 그 지역민들에게 묻는다면 색다른 곳을 가르쳐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저기 저 언덕에 올라가면 마을이 잘 보인다’라든가 ‘골목 안쪽에 들어가면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그게 멋지다’라든가.

그럼에도 길을 일일이 확인한 이유는 불안감을 줄이고 기대감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리고 굉장히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보통, 여행이라면 도시와 도시, 여행지와 여행지를 찾아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런 여행은 무작정 떠나도 크게 상관이 없다. '이' 여행지에서 '다음' 여행지를 계획해도 늦지 않은 것이다. 출발하고 도착하는 곳만 신경쓰면 될 뿐 지나는 길까지-교통수단은 신경쓰겠지만-일부러 고르진 않는다.

그런데 도보여행이라면? 그곳도 개발이 지나치게 진행된 나라에서? 얘기가 크게 달라진다. 길을 잘못 따라가다 보면 미친듯이 달리는 차들과 함께 여행을 할 수도 있다. 누구도 그런 여행은 원치않을 것이다. 도보여행은 지나는 길 자체가 여행지라고 볼 수 있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여행을 떠난 사람은 ‘부산’이 여행지다. 반면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간 사람은 ‘부산까지’가 여행지다. 그래서 부산까지의 길이 ‘이동로’의 의미를 넘어선다.

어떤 길을 걸을까 무지 고민했다. 막연하게 생각했을 땐 ‘4대강’을 따라 걷는 것이었다. 내가 2년동안이나 자동차로 오가며 바라봤던 그곳을 천천히 걸으며 느껴보고 싶었다. 그런데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 듯 이미 그곳은 개발의 칼날이 무참히 망가뜨려놨다. 계속 그곳을 따라 걷는 것은 마음을 힘들게 할 것 같았다.


route.png
▲ 구글지도에 걸어갈 길을 표시했다. 물론 이대로 꼭 가야한다는 규칙은 없다. 도보여행은 '길'자체가 목적지이므로 신경을 좀 썼을 뿐 ^^ 총거리는 2060km 가량이다.


유하와 내가 모니터 앞에 앉아서 경로를 그리기 시작했다. 구글지도에는 ‘내지도’관리 기능이 있어서 지점이나 경로를 마음대로 그려놓고 수정도 할 수 있다. 사실 막상 시작할 때조차 어디에서 어디로 갈 지 구체적인 생각이 없었다. “일단 이리로 갈까?” 라며 한강을 따라갔다.

그렇게 그려나가던 것이, 댐을 피하기 위해 충주에서 영월쪽으로 향했고, 영월에 가니 동강이 있어 그곳을 따라갔고, 정선에 가보니 백두대간이 멀지 않아 백두대간을 따라 걷기로 했다. 마침 그곳에는 국내 최대 채석광산인 자병산 광산이 있어서 경로를 조정했다. 이왕 백두대간에 올랐으니 설악산까지 가기로 한 것이고.

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설악산을 내려와 속초에 도착한 뒤에는 당연하게도? 동해를 따라 남하했다. 예전에 한 번 걸었던 적이 있는 길이지만 더 긴장이 됐다. 위성사진에 나타난 푸른빛깔 바다가 무섭기도 했지만 일렁이는 파도 끝을 비추는 햇살이 머릿속을 간지럽혔다. '동해길'은 울진을 만나며 내륙으로 틀어졌다.

울진은 녹색연합에서 활동하며 부리나케 드나들던 지역이다. 이곳엔 멋진 옛길이 있는데 바로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이다. 이 길을 다 걷고 불영계곡을 가로지르면 국내 최고의 오지인 왕피리, 그리고 그곳엔 왕피천이 흐른다. 두어번 가본 적이 있는데 꼭 다시 가고싶었던 곳이다. 내륙을 거친 뒤에는 안동이 나온다. 그 옆에는 문경이 있고 이곳에서 다시 백두대간에 오른다.

_MG_5230.jpg 
▲ 자연과 최대한 '가까운' 길을 걷고 싶다. 사진은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 사진=채색



덕유산을 거쳐 전주의 멋진 전통마을을 돌아본 뒤 낯선 서해로 향하기로 했다. 부산사람으로써 서해는 정말 낯선 바다다. 고요한 서해 위로 잠드는 태양을 지겹도록 보고싶다. 이 지역은 위성지도로만 보아도 구불 구불 복잡한 해안선이 끊임없다. 주변에는 산이 적고 평야가 드넓다. 기막힌 경험이 될 것 같다. 그렇게 서해를 따라 내려오다 땅끝 해남 땅에 이른다.

남해에서는 산도 몇 개 오르며 원경을 즐기면 좋겠다. 길이 복잡해서 산으로 가로지르는 것도 여러모로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동해, 서해, 남해 모두를 돌아보는 것이어서 이 쯤에선 감회가 남다를 듯. 하동에서 섬진강을 따라 올라가 지리산을 돌아볼까 하다가.. 다시 남쪽으로 틀었다. 그 때 가봐서 결정해도 될 듯했기 때문이다.

남해를 따라 부산까지 걷고 싶었지만 대도시인 창원과 마산, 부산의 끄트머리 공단들을 한번에 통과하는 것은 너무하다 싶어서 그냥 거제시에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바다 깊숙히까지 도로를 담그며 거리를 줄이고자 한 시설을 한번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곳까지 걸어간 우리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할 듯하다. 부산에서 서울까지는 옛길인 ‘영남대로’를 따라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거의 삼일을 이 경로를 짜느라 시간을 보냈다. 삼 일 하루하루를 다 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긴 시간이었다. “이쪽으로 갈까?”, “저쪽으로 갈까” 라고 서로 물을 땐 마치 이미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직접 걸을 때는 무척이나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또 무척이나 힘도 들 것이고. 그리고 무척이나 아름다운 풍경들도 많을 것이다.

집에서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정한 이 길이 현실에 닥치면 반드시 틀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더 긴장이 된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걸어갈 길을 구상한 것을 시작이라 본다면, 지금 이미 반은 한거나 다름없겠다. 그런데 그 길의 거리가 자그마치 2,000km가 넘는다.


 

TAG

Leave Comments


profile안녕하세요. 채색입니다. 봄마다 피어나는 새싹처럼 조화롭게,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