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피아골댐,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피아골댐

지금, 지리산 남쪽은 꽃 세상이다. 뒷산과 집 주변엔 매화, 산수유꽃이, 길가엔 개나리꽃이, 곧 벚꽃까지 필 기세이다. 요즘 봄은 ‘아 봄이구나.’ 싶으면 이미 여름이라, 만개한 봄꽃들을 바라볼 때면 괜한 애잔함이 든다. 당혹하고 예측하기 힘든 계절 변화, 동식물들은 어떤 마음일까?

구례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피아골을 오가며 나는 늘 창밖을 본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언제나 따뜻하게 설렌다. 그 길의 오른쪽에 있는 섬진강과 왼쪽에 있는 지리산이 사시사철 다른 빛깔로 눈을 붙잡고, 마음을 뒤흔들기 때문이다. 풀과 나무, 물빛, 그들이 만들어낸 풍경들은 손 내밀어 만지고 싶고, 꽉 끌어안고 싶고, 온 몸을 내던지고 싶을 만큼 유혹적이다. 유혹적이지만 잔잔한, 그래서 몸과 마음이 평안해지는, 지리산과 섬진강은 우리를 너그럽고 부드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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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례버스터미널과 피아골을 오가는 군내버스

지난해 6월 26일, 지리산권 4개 지자체가 추진했던 지리산케이블카가 모두 백지화된 후 이제 삶으로 들어가 소박하고 작은 기쁨들을 찾아내고,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리산자락에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니, 감사함을 전하고, 감사한 만큼 주변과 나누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우리 안에 생각들을 되짚어보며 한 해를 마무리하던 날들, 그 사이를 비집고 2012년 12월 26일 중앙일간지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내서천댐 이야기 들어봤냐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무슨 이야기인지 가늠이 서지 않았다. 내서천이라면 피아골을 말하는 건데, 거기에 댐을? 귀를 의심하게 하는 말이었다.

‘아니, 거기는 피아골인데 거기.. 어디에 댐을 한다는 거예요?’, 그도 나처럼 황당한 듯 하였으나 더 단호히 말했다. 국토해양부의 댐건설장기계획에 내서천댐이 들어있다고, 순간 눈에서 불이 번쩍했다. ‘말도 안 되죠, 거기는 반달가슴곰 이동 통로이며, 몇 해 전엔 곰이 새끼를 난 곳이고, 수달도 살고, 연곡사도 있고, 피아골이 얼마나 유명한 곳인데, 아니 사람이 살고 있는데, 피아골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곳에서 농사짓고, 피아골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숙박도 하고 장사도 하는데, 학교도 있는데, 거기 어디에 댐을 짓겠다는 거예요.’ 열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괜한 화풀이를 그에게 했다. 버럭, 화가 치밀었다. 쌍소리가 입안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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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 고찰 연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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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골은 주민들의 삶터이다

그와의 통화 후 몇몇 신문과 방송에서 피아골댐 계획을 기정사실화했고, 우리는 새롭게 들어선 정부에 아무 것도 기대할 것이 없을 거라는 무력감과 인간의 욕심과 밥그릇 챙기기 싸움에 지리산이 또다시 몸살을 앓겠다는 절망감으로 우울한 한 해를 보내야했다. 잿빛 새해를 맞이해야 했다.

국토교통부(전 국토해양부, 이하 국토부)는 전국에 댐을 짓고 싶어 한다. 댐건설장기계획(이하 댐계획)이라 이름 붙여 수자원 확보와 홍수 예방을 위해 2021년까지 한강·낙동강·금강·섬진강 수계에 6개 댐을 추가로 건설한다고 한다. 2010년 3월에 계획 수립을 시작했고, 환경부와 5개월 동안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했다고 하였다.

국토부는 낙동강 상류 경북 영양의 장파천(영양댐)과 동해안 영덕의 대서천(달산댐), 금강 수계인 충남 청양의 지천(枝川), 구례 내서천에 4개의 ‘다목적댐’을 지어 연간 1억900만㎥의 수자원을 확보하는 한편, 남한강 상류 오대천과 남강 상류인 경남 함양의 임천에 ‘홍수조절댐’을 건설해 2억1100만㎥의 홍수조절 능력을 확보한단다.

그런데 국토부의 댐계획엔 여러 의문점이 있다. 4개의 다목적댐 건설 근거가 모두 수도정비기본계획(2009년)인데 농촌지역의 상수도 공급을 위해 대형댐을 건설해야하는지, 한강 오대천의 경우 편익 발생 지역이 수도권일텐데 댐 예정지와 지나치게 멀어 타당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통해 환경부는 낙동강 장파천 수계 댐은 대체 수자원 개발이나 낙동강 본류에서 취수하는 방안이 타당하므로 댐 계획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금강 지천, 섬진강 내서천, 낙동강 임천 수계 댐도 인근 댐 재개발이나 보강, 대체수원 이용 등의 방안을 먼저 검토하라고 하였다. 그런데도 국토부는 예정대로 하겠다고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국토부의 댐계획에 의한 구례 내서천댐, 낙동강 임천댐은 지리산 남북에 세워지는 댐으로, 내서천댐은 피아골을, 임천댐은 용유담을 물속에 수몰시킬 것이다. 어쩌려고 이런 계획을 세웠을까!

지리산 피아골을 모르는 국민이 있을까? 지리 10경의 하나이며, 지리산국립공원 왕시루봉과 불무장등 사이에 있는 계곡, 가을이면 단풍을 보러 가야하는 곳, 그 피아골에 댐을 세우겠다고 한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농으로도 할 수 없는 말일 것이다.

피아골댐 보도가 있은 후 구례 여기저기엔 반대 현수막이 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수군거린다. 댐이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들어설지 추측하며, 지리산의 자랑이며, 구례주민의 삶터인 피아골을 물속에 잠기게 하는 게 가능한 일인지 설왕설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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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골 입구 기촌마을 앞 소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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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동마을 앞 징검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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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골 하류

국토부는 기촌, 중기, 조동, 원기, 신촌, 남산, 죽리, 평도, 당치, 농평, 직전 등 피아골 11개 마을, 386가구, 788명이 사는 마을을 물속에 묻어버리는 엄청난 계획을 받아들이라고, 피아단풍은 추억 속에서나 생각하라고 한다.

인정할 수 있을까? 마을을 잃고, 피아골을 잊고 살아가는 것을, 지리산자락에 사는 사람으로서, 매일매일 지리산을 그리워하는 사람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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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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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동마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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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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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전마을

지금, 지리산을 사랑하는, 피아골이 지금 모습 그대로 남아있을 원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지리산과 피아골, 섬진강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월 5일엔 광양환경운동연합 등 광양지역 5개 환경단체가 내서천댐 건설계획 폐지 촉구 성명을 냈으며, 2월 13일엔 전남 구례군의회(의장 김성현)가 내서천댐 건설계획 철회 촉구 성명을 냈다. 2월 19일엔 경남 하동군의회가 섬진강 상류 내서천댐 건설 계획 백지화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김진태 의원 대표발의)했고, 3월 21일엔 전라남도의회가 지리산 내서천댐 건설계획 백지화 촉구 건의안(정정섭 의원 대표발의)을 채택했다.

환경운동연합, 영양댐 반대 주민대책위 등으로 구성된 ‘생명의 강, 댐백지화 전국연대’는 4월 3일 창립대회 및 국회 토론회를 준비 중이며, 피아골댐 예정지에서 활동하는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도 3월 28일부터 배움마당 ‘물은 생명이다’를 열고, 3월 30일을 시작으로 매월 1회 피아골을 걸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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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움마당 ‘물은 생명이다’ 안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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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걸음 안내장

피아골댐 백지화, 댐계획 무효화가 쉽지 않음을 안다. 10년 전 폐기된 지리산댐(낙동강 임천댐)이 다시 추진되는 걸 보면, 이제 시작된 피아골댐 싸움은 1년, 2년이 아니라 10년, 20년 긴 싸움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한다.

그러나 지리산과 섬진강에 살기로 작정한 이상, 지리산에서 불어온 바람소리에 잠을 깨고, 섬진강이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에 넋을 빼앗긴 이상 어쩔 수 없다. 누가 뭐라도 피아골댐은 안 된다.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

글_ 윤주옥 사무처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진_ 허명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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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윤주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