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살아온 시공간에 단 한번 존재했던.. 연두빛 세상_ 2016년 4월 내장산국립공원 걷기예찬 후기 걷기예찬

우리 살아온 시공간에 단 한번 존재했던.. 연두빛 세상_ 20164월 내장산국립공원 걷기예찬 후기

 

_ 윤주옥 실행위원장(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진_ 나미순 님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회원모임인 걷기예찬은 2009년부터 우리나라 국립공원과 국립공원만큼 아름다운 곳을 걸어왔다. 걷기예찬은 ‘2017년 국립공원 50년 맞이를 축하하며 22개 국립공원을 걷기로 하였다. 나름 의미 있게 계획된 우리나라 국립공원 걷기의 시작은 내장산국립공원이었다.

 

걷기예찬이 416일부터 17일까지 12일 동안 돌아보기로 한 곳은 어디일까? 4월 봄날, 내장산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 내장산국립공원에 살며 울고 웃는 주민을 만날 수 있는 곳, 걷기예찬이 선택한 코스는 백학봉-백양사-가인마을(1)-남창계곡-입암산성이다.

 

 

백학봉은 멀리서, 백양사는 가까이서

 

16일 비소식이 있었고, 예보대로 비가 내렸다. 비오는 날 백학봉에 오르는 건 무리다 싶어 운문암으로 향하다가 백양사로 되돌아 내려왔다. 가기로 한 곳을 포기하는 건 아쉬웠지만 운문암 길에서 만난 연두빛만으로도 행복하다고들 했다. 갓 피어난 새잎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초록으로 몽글몽글 자기 영역을 확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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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학봉-백양사 길 (내장산국립공원사무소 안내지 편집)

 

 

사천왕문 옆 만암대종사를 기리는 이뭣고비석, 얼마 전까지 분홍빛으로 빛났을 백양사 고불매(천연기념물 제486),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졌다는 탑전, 쌍계루에서 바라본 연못, 연못가에 비스듬히 서 화려하게 피어날 날을 기다리는 이팝나무,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난 굴거리나무와 비자나무, 700년 동안 한자리를 지킨 갈참나무, 수채화 톤으로 우뚝 솟은 백학봉, 빗속 백양사는 곳곳에서 우리의 발걸음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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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5대 총림의 하나이며, 만암대종사께서 우리나라 총림 가운데 가장 먼저 설립을 하였다는 고불총림 백양사. 백양사 앞의 화려한 수식어는 백양사를 덩치 큰 절집으로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백양사를 돌아본 후 마음이 따뜻해지는 건, 내면의 울림이 있는 사람처럼 큰 절이면서도 소박함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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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밤새 비바람이 몰아치거든 청류암에 올라라

 

청류암은 고불총림 백양사의 율원이다. 청류암에 가게된 건, 가인마을 한봉운 어르신(80) 덕이었다. 어르신은 가인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팍팍한 삶을 이야기하던 중 가인마을 가까이 있는 청류암을 이야기했다.

16일 밤, 가인마을 주변의 산들이 봄빛으로 빛나던 그 밤, 밤새 비바람이 몰아쳤다. 다음 날 새벽,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왔고 하늘은 잿빛이었다. 비는 그친 걸까?

 

청류암으로 오르는 길은 볼품없는, 걷기에 불편한 시멘트 포장길이었다. 청류암 안내판 아래 율원이라 씐 글씨조차 없었다면 왜 이 길을 오를까 의문스러웠을 것이다. 다행히 이란 단어는 어제와 작년, 그보다 더 옛날의 나를 떠올리게 했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다.

터벅터벅 걸으며, 비자나무가 짙은 초록빛이니 여린 나무들의 연두빛이 더 생생하다고, 어제 비가 많이 왔는지 계곡물이 장난 아니라고, 봄바람 때문인지 속까지 환해진다고, 청류암으로 가는 길의 화두는 당연히 초봄 연두빛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의 화두, 초봄 연두빛은 작은 다리를 건너 깔그막을 오르는 순간 나무가 아니라 시멘트 길 위에 있었다. 밤새 휘몰아친 비바람에 새잎과 여린 줄기들이 떨어져 연두빛 길을 만든 것이다. 치열했던 지난밤의 흔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2016416일에서 17일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시간과 바람, 숲이 만들어낸 절묘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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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류암으로 오르는 길이 준 감동은 청류암으로 이어졌다. 청류암은 율원의 기품을 풍기며, 산자락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님들은 공부중이라 했고, 청소 중이던 보살님은 뭐 줄 게 없다며 미안해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전봉군 장군이 목을 적신 남천감로(南泉甘露)’를 보고 가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전 장군은 청류암에 은거하다가 하산하던 중 체포되었다고 한다. 아프고 배고픈 백성과 함께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던 그가 마셨다는 물, 물에서 단내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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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감동적인 남창계곡과 입암산성

 

내장산국립공원에 가려는데 어딜 가면 좋겠느냐고 물으면 봄, 여름, 가을, 겨울, 내 답은 한결같다. ‘남창계곡으로 올라 입암산성, 습지를 돌아보세요.’

남창계곡-입암산성 길은 장성 전남대수련원에서 출발하여 새재갈림길, 은선동삼거리, 갓바위, 입암산성(북문), 입산산성(남문)을 거쳐 다시 은성동삼거리, 새재갈림길을 돌아 전남대수련원으로 돌아오는 길로 10.3km, 4시간 30분쯤 걸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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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에선 갓바위로 오르는 길목까지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봉우리 바로 아래까지 물의 흐름이 이어지는 곳이 많지 않을 터인데 남창계곡은 신기할 만큼 물이 넘친다. 삼나무 숲을 지날 때도, 돌계단을 오를 때도, 물길은 늘 우리 곁에 머문다. 물의 힘일까, 진달래, 개복숭아, 산벚나무, 제비꽃, 자주괴불주머니, 현호색 등 봄꽃들의 색감이 더 진하고 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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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의 흔적을 보며 입암산성 남문까지 가는 길은 입암산성 습지이다. 이 습지는 말의 구유처럼 생긴 입암산의 지형과 산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저수보(해자)로 인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저수지였으나 갑오개혁 이후 산성이 폐성화되고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떠나면서 자연스레 습지가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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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계곡-입암산성 길 (내장산국립공원사무소 안내지 편집)

 

전남대수련원이 가까워지자 다들 숲 밖으로 나가기 싫다고 한다. 국립공원인 이곳, 과한 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아직은 자연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 물소리에서 바람결에서 삶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는 곳, 오늘이어서 더 특별했던 남창계곡-입암산성 길은 기억 속에 오래토록 간직될 것이다.

연두빛 때문이었을까 물소리 때문이었을까, 봄바람 때문이었을까? 평소 까칠하던 SH1는 순한 양이 되어 사람들을 대한다. 목소리 높던 M1N은 봄바람처럼 부드럽다. 너무 세심하여 오히려 힘겨웠을 JH2도 대범해진다. DO에게선 평소 드러나지 않았던 의협심과 용기가 살아났다. 숲을 바라보는 GM2의 눈에선 따뜻함이 흐른다. 나무와 사랑에 빠진 Y1는 연신 감사하다고 한다. 착하게만 보이던 B는 뭔가 결심한 분위기다. 늘 분주하던 Y2도 편안해 보인다.

S, H, M, N, J, D, O, G, Y, B가 누구냐고? 누굴까,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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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윤주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