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안된 엄마에게 온 생명력 강한 아기 생생육아

 임신을 준비하지 않았던 이에게, 뱃 속에 아기가 들어서 움을 텄다는 사실은 ‘충격과 공포’다. 충격은 말 그대로 놀람이요, 공포는 그동안 내가 임신한 줄도 모르고 몸을 막 굴려 혹시라도 아이에게 이미 해꼬지를 한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서 오는 두려움이다. 그런데 나의 이런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이의 생명력은 엄청나게 강했다. 아이는 이미 “어쭈”하고 나를 내려다보며 자기 살 길을 잘 찾아내고 있는 듯 했다.
 
 임신 사실을 확인한 날, 그날은 남편과 함께 끊은 ‘승마 교실’의 첫 시간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중에 잠깐 산부인과에 들른 것 뿐이었다. 임신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기에 가볍게 들른 참이었다. 그러니 임신 진단을 받고 나서 남편과 나는 고민에 빠졌다. 일단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께 물었다. “지금 승마를 가던 길이었는데… 말 타러 가도 될까요?” 의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허, 한번 숨을 내뱉더니 말했다. “저라면 안갑니다.”
 승마2_~1.JPG » 마사회 무료강습을 시작으로 말타기에 빠진 남편은 저렴하게 승마할 수 있는 온갖 정보를 다 가져와 1년 넘게 취미를 이어가고 있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나를 설득해 드디어 함께 승마를 하기로 한 날, 우리는 곤란이의 존재를 확인했고 곤란이는 내게 승마를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1년 넘게 온갖 저렴한 승마 프로그램을 열심히 알아봐가며 말을 타는동안 승마의 재미에 푹 빠져버린 남편은 강경했다. 1년 넘게 부인을 꼬드겨 오늘에야 드디어 마침내 함께 승마를 배우러 가게 됐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가자, 건강할 아이라면 승마 때문에 잘못될 리 없어. 그리고 승마가 얼마나 여자한테 좋은데….” 물론, 궤변인거 우리 둘 다 알았다. 임신 초기에 말 위에서 덜컹거리겠다니. 그런데도 나는 멍하게 승마장에 따라나섰다. 모자를 쓰고, 신발을 갈아신고. 드디어 말 위로 올라서려는데…!
 
 넘어졌다. 말에 타기 전 계단이 딱 2개 있었는데 고까짓 거를 올라가다가 넘어졌다. 웃음도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넘어진 규모는 작았으나 발목이 접질러지면서 통증이 극심했다. 배에는 충격이 가지 않았고 발목만 엄청 아팠다. 결국 그 길로 승마를 포기했다.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뱃 속에서 아기가 말하는 듯 했다. “어디 감히, 뭐? 승마? 절대 못타!”


 곤란이 006.jpg » 곤란이의 첫 초음파 사진. 잘 보면 마치 벽에 등을 기대고 한쪽 발을 차올리는 듯한 형상을 느낄 수 있다. 내 눈에만 그런가? 어쨌든 강인한 포스가 느껴진다.
 

   나흘 뒤 정식으로 회사 근처 산부인과를 찾았다. 처음으로 초음파 사진을 찍었다. 내 뱃 속에 새초롬히, 당연한 듯히 자리를 잡고 있는 곤란이를 확인했다. 우렁찬 심장 소리도 들었다. 의사는 “아이가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며 모두 건강하다고 했다. 그런데 의사가 건넨 초음파 사진 속에서 곤란이는! 벽에 기댄 듯 서서 한쪽 다리를 들어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고 있었다. 시크하면서도 건방진, 엄청난 포스였다. 남편과 나는 순간 피식 웃고말았다.
 
 씩씩하고 생명력 강한 뱃속 존재를 느낀 이후, 안도감이 찾아왔다. 곤란이는 강하다. 내가 어리석거나 나약해진 순간에도 곤란이의 심장은 힘차게 뛸 것이다. 어쩌면 이런 생각은 준비안된 임신으로 뱃속에 아이가 있는지도 모르고 술담배, 항생제, 피로와 스트레스 등을 꾸역꾸역 삼켜온 못난 엄마의 자기위안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내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한 이 생명력 강한 아이가 고맙고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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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노키드 부부’로 살아가려던 가련한 영혼들이 갑자기 아기를 갖게되면서 겪게되는 좌충우돌 스토리를 나누고자 한다.
임지선 한겨레 기자 s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