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과 수련 들녘에서

  외가댁 바로 앞에는 엄청나게 큰 방죽이 있었습니다. 여름방학이 되어 외가댁에 가면 언제나 제일 먼저 찾는 곳은 이 방죽이었고 밤늦게 도착하여 가볼 수 없을 때면 가장 궁금해지는 것도 이 방죽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나의 놀이터이기도 했던 그 방죽은 지금처럼 ‘얼짱’이니 ‘몸짱’이니 하는 말은 없었던 시절이기에 ‘물을 담고 있는 보(堡) 중의 짱’이라는 뜻은 아니었겠지만 어찌되었든 ‘보짱’이라 불렀던 연꽃이 꽉 들어선 연꽃방죽이었습니다. 보짱은 무엇보다 다양한 생물들을 직접 만져보거나 적어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지금처럼 이름을 조금 더 알지 못한 것이 그리고 모르면 찾을 수 있는 좋은 도감이 귀했던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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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보짱에는 연꽃과 마름과 갈대를 비롯한 여러 가지의 수생식물과 수변식물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친했던 것은 연꽃이었고 나에게 연꽃의 용도는 도깨비 우산과 간식이었습니다. 소나기라도 갑자기 내리면 연잎으로 도르륵 도르륵 빗물이 굴러 모여드는 것과 한껏 고인 물의 무게에 연잎이 중심을 잃고 기우뚱거리면 한꺼번에 빗물이 다 쏟아져 다시 빈 잎이 되는 것을 보느라 이미 옷은 다 젖었는데도 커다란 연꽃의 잎을 꺾어 썼었습니다. 완전히 방수 처리된 연잎이 비를 가려주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보다 연잎에 모여 있던 빗물이 한쪽으로 쏠리며 한꺼번에 물세례를 맞는 것이 시원하고 재미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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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밥

 

  놀다 배가 고파지면 그것도 걱정이 없었습니다. 꽃이 떨어진 자리에는 언제나 내 주먹만한 크기의 삶은 계란 반쪽 모양을 하고 있는 연밥이 있었고, 연밥 안에 자리 잡은 땅콩만한 크기의 씨앗은 녹색 껍질을 벗기면 다시 하얀 막이 나오는데 급한 김에 그냥 먹으면 조금 떫은맛이 나지만 정성을 들여 이것마저 벗기고 나면 제법 달콤한 것이 간식으로 충분했었습니다. 또한, 보짱의 둑을 지나노라면 개구리들이 물속으로 첨벙첨벙 소리를 내며 뛰어드느라 정신이 없었고, 당시 이름을 알고 있었던 붕어, 잉어, 가물치, 메기, 장어 외에도 많은 종류의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가장자리로는 큼직한 우렁이가 슬금슬금 기어 다녔고, 물풀의 줄기를 잡고 기어오르는 우렁이는 가까이 가면 툭 떨어져 물밑으로 사라지고는 했습니다. 물방개를 잡으러 고무신 신은 발을 물에 그대로 담그면 어느 사이에 거머리 서너 마리가 발목에 달라붙어 몸이 똥똥해질 만큼 피를 빨고 있었지만 그것은 손가락으로 튕겨서 떼어내면 그뿐이었습니다. 이제는 무척 귀해진 물장군과 물자라도 수초 한 더미만 끌어 올리면 언제나 만날 수 있었으며, 잠자리와 메뚜기는 그 수를 이루다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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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물치

 

  무엇을 잡는 다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는 일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물고기를 잡는 일은 참으로 재미있는 순간이었습니다. 보짱에서는 주낙을 놓아 주로 가물치를 잡았습니다. 먼저 미끼로 쓸 미꾸라지나 작은 붕어가 필요했는데 아무데나 고여 있는 물의 바닥이 보이도록 물만 퍼내면 되는 것이었으니 도구는 바가지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주낙은 저녁을 먹고 어둑어둑해질 무렵에 형들과 함께 놓았는데 양쪽으로 막대기를 꽂고 두꺼운 줄로 연결한 다음 1m 정도의 간격으로 낚시 바늘을 묶고 그 바늘에 미끼를 끼워두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늘은 20개 정도를 묶었는데 중간쯤 미끼를 끼울 때 벌써 앞서 끼운 미끼를 가물치가 무는 경우도 많았지만 주낙을 거두는 것은 다음 날 새벽이었는데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가물치가 대여섯 마리쯤은 항상 걸려 있었습니다. 한번은 잡은 가물치를 장날 장에 들고나가 팔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혼자 한 일은 아니었으나 내 행위로 인해 소득이 발생한 것이 그저 신기했고 얼마를 받고 내어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장터에서 국수도 먹고 방학 내내 주낙을 할 도구를 마련하기에는 충분했었습니다. 밤에는 등잔불에 모여 앉아 바늘에 줄을 묶었는데 배운 그대로 잘 되지는 않았지만 꿈을 가지고 하는 일이었기에 더욱 신나고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보짱에서 있었던 일들은 대부분이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추억의 대상들이 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하나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몇 학년 때이었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떤 모습에 대해 얼어붙을 정도로 취한 순간이었으니 저학년은 아닌 듯합니다. 외가댁에 도착하였으나 해가 긴 여름날인데도 호롱불을 곁에 두고 모기장 안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으니 그 날은 보짱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다 세수도 하지 않고 보짱을 향해 앞마당으로 나섰을 때 눈앞에 펼쳐져 있고 또 펼쳐지고 있는 정취와 풍경이 있었습니다. 바로 전날까지 있었던 서울에서는 볼 수 없었던 탁 트인 녹색의 싱싱한 들판, 적당히 물기 머금은 흙냄새, 벼 잎마다 알알이 맺혀있는 맑은 아침이슬, 낡은 짚 누리에서 퍼져오는 잘 썩은 볏짚 냄새, 벌써 활짝 피어나 살며시 향기까지 퍼뜨리며 보짱을 가득 채운 연꽃, 보짱 넘어 공손히 엎드려 절하는 모습의 정겨운 초가집 몇 채, 굴뚝 마다 피어오르는 아침 짓는 연기, 초가집을 포근하게 감싸 안으며 걸려있던 잘 읽은 감빛의 아침 해. 이 평온한 모습들은 한 장의 그림으로 어우러져 그 순간 이후로 지금까지도 살고, 살아가고, 때로 살아지며 스스로 만들거나 때로 남이 만들어 주는 힘겨운 날들이 있을 때면 떠올려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었던 1975년은 나에게 정말 슬픈 해였습니다. 등잔불과 호롱불에 의지했던 외가댁에 전기가 들어오고, 초가집의 볏짚 지붕이 슬레이트와 양철 지붕으로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살아 전기와 신식 지붕이 신기할 리 없었고 나는 오히려 등잔불과 호롱불과 초가집 지붕이 좋았지만 그 것은 참을 만 했습니다. 하지만 나의 놀이터 보짱이 없어지는 것은 너무나 큰 슬픔이었습니다. 학교에서도 귀가 따갑게 들었던 '어제보다 나은 내일의 새마을'을 만든다는 새마을운동의 물결이 결국 외가댁 마을에도 구체적으로 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잘 살아 보겠다고 한 운동이었으니 달리 덧붙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보짱과 그 안에 살고 있던 모든 생물을 흙으로 덮어 버린 이유가 단지 한 톨의 쌀이라도 더 얻기 위함이었다면 차라리 한 톨의 쌀을 각자 덜 먹고라도 보짱은 지켜야 했습니다. 더욱이 30년이 더 지난 지금 그렇게 지키려 했던 쌀은 이제 남아돌아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고 그렇게 덮으려 했던 곳들 중 간신히 사람의 눈을 피해 남아 있는 몇 군데를 이제는 놀이터 대신 ‘습지보호지역’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걸며 지키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나부터도 조금만 앞을 내다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알아야 합니다. 정말 모르고 한 일이었다면 그에 대해 혹독하게 죄 값을 물을 수 없을 때가 있지만 자연에 관해서라면 무지는 분명 죄가 됩니다. 그러나 자연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죽도록 공부해야 하지만 그래도 다 알지 못한다면 차라리 그냥 두는 것도 방법이 됩니다. 섣부른 지식으로 자연에 손을 대는 것은 재앙을 스스로 부르는 것이니 세상에 이보다 더 무모한 실험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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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수련은 연꽃에 비해 나와 인연의 길이가 짧아 친근함은 덜하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꽃을 물 위에 피워냅니다. 출근길을 조금 먼 길로 잡아 활짝 핀 수련의 꽃을 보고 왔더니 먼저 눈이 맑아졌고 며칠째 이어지고 있는 열대야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여 멍해진 머리도 따라서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얼마 전까지도 수련의 ‘수’는 물일 것이고 ‘련’은 연꽃을 의미할 거라고 확인도 없이 그저 그렇게 내 마음대로 편하게 생각했었습니다. 수련은 한자로 睡蓮이라고 씁니다. 곧 ‘잠을 자는 연꽃’이라는 뜻이 됩니다. 여름날 물에서 피어나 물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대표적인 식물이라고 할 수 있는 연꽃과 수련은 둘 다 수련과(Nymphaeaceae)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지만 속(屬)이 다를 만큼 몇 가지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수련의 편평한 잎은 대부분 수면과 맞닿아 있지만 토란의 잎을 언뜻 닮은 연꽃의 잎은 물 위로 한참을 올라와 있습니다. 꽃도 마찬가지여서 수련의 꽃은 배처럼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을 줍니다. 더러 물 위로 올라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서식지의 수심 자체가 너무 얕아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높이는 한 뼘을 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연꽃은 잎의 높이와 거의 비슷한 곳에 꽃이 달리니 물 위로 적어도 서너 뼘은 올라오게 됩니다. 연꽃은 붉은색의 꽃을 피우지만 하얀색의 꽃을 피우는 품종도 있어 백련이라고 따로 부르기도 합니다. 수련은 하얀색을 비롯하여 보라색, 붉은색이 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색깔을 띠는 여러 가지 품종이 있습니다. 연꽃의 줄기에는 가시가 있지만 수련의 줄기에는 가시가 없습니다. 가시라 하여도 가시연꽃처럼 찔려서 아플 정도는 아니며, 그저 까칠까칠한 느낌을 줄 정도입니다. 가장 특징적인 차이점은 수련의 독특한 수면(睡眠)운동입니다. 연꽃과 수련 모두 이른 아침 꽃을 피우기 시작하여 저녁 무렵이면 꽃을 오므리지만 수련은 한참 꽃을 활짝 펼치고 있을 한낮이어도 날이 흐리면 펼친 꽃을 닫아 버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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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운동을 시작한 수련

 

아침은 참으로 맑은 날이었는데 점심 무렵 날이 어두워지며 뚝뚝 비가 떨어졌습니다. 출근길에 환한 얼굴로 인사했던 수련도 비를 맞고 있을 것이었습니다. 점심은 조금 미루고 수련이 잠을 청하는 모습을 만나러 다시 갔습니다. 하늘이 어두워진지가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아서 아직 수련은 꽃잎을 활짝 열고 비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연꽃이나 수련이나 물에서 살고 그래서 물에서 꽃을 피우기에 비와는 잘 어울립니다. 땅에서 피어나는 꽃들은 비를 맞으면 꽃잎이 상하거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애처로워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연꽃과 수련의 꽃은 빗속에서 오히려 우아해집니다. 하지만 수련은 그 우아함도 하염없이 허락하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빗줄기는 더 굵어지고 아직 한낮이지만 하늘은 시간이라도 앞당기려는 듯 이른 어두움을 품고 있습니다. 결국 수련은 빗소리 자장가 삼아 꽃잎 접고 낮잠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연꽃과 수련은 모두 바닥이 뻘로 되어 있어 들어가 걸으면 발이 푹푹 묻히는 바람에 걸음을 옮기기도 힘겨운 시궁에서 뿌리를 내려 살아가며 아름다운 꽃을 피워냅니다. 한참 악취가 심할 시궁의 여름날들이 저들이 때맞춰 피워낸 꽃들의 향기에 의해 덮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이 너무 혼탁하고 그도 지나 악취가 난다는 말을 더러 듣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도 같이 따라 나옵니다. 하지만 연꽃이나 수련을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맑지 않은 것은 고사하고 썩은 물도 바꾸어 놓은 꼴이 되니 말입니다. 하여, 이래저래 어수선한 요즈음은 연꽃이나 수련을 닮아 조용히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더욱 그립고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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