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의 세계 숲 곁에서

2001년 어느 봄날, 생태학을 전공한 동료가 새로운 제안을 하나 하였습니다. 생태계조사가 있는데 버섯에 대한 조사를 할 마땅한 사람이 없으니 이 기회에 버섯의 세계에 한 번 들어서 보는 것이 어떠하겠냐는 제안이었습니다. 전체 8분야 중 이미 7분야에 대해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로 팀이 구성되었던 터였습니다. 하지만 남은 한 분야에 대해서 국내에 몇 분 되지 않는 버섯 전문가를 모실 수 있는 형편은 되지 못하며, 버섯 분야는 중점조사 대상이 아니니 성실하게만 조사를 수행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선 자연 상태의 버섯 중에서 그 생김새와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을 떠올려 꼽아 보니 한 손의 손가락 채우기도 빡빡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해보겠다고 하였습니다.

새로운 세계에 도전한다는 취지 자체는 좋았으나 아무런 구체적인 행동 없이 시간만 답답하게 흐르는 사이 결국 종합조사 날이 되었습니다. 일단 버섯으로 보이는 것은 모두 사진을 찍어 두어야 했는데, 그 해 봄에 가뭄이 심하기는 했으나 생각보다 버섯을 많이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없어서 만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 없었으니 있어도 보지 못했고, 있는 곳으로 가지 못하고 없는 곳에서만 찾아 헤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리 중점 조사대상이 아니라도 일을 이리 할 수는 없었습니다. 우선 국내에 나와 있는 버섯과 관련한 모든 서적을 구입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500여 종의 버섯이 자생하고 있다고 하는데, 도감에는 약 400종이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먼저 사진을 보며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1/3 정도는 생김새가 독특하여 쉽게 구분도 되고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지만 나머지는 그게 그것 같아 이름을 다 기억하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다음으로 할 일은 산으로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연구실 문을 열고 나서서 계단 하나 내려가 몇 걸음 더 걸으면 바로 산인 것이 나에게는 분명 축복입니다. 이제는 버섯만 보고 다니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마침 봄비가 알맞게 오다 그친 뒤이기는 했지만 산에 이토록 버섯이 많다는 것에 정말 놀랐습니다. 그동안 산을 그리 다니면서도 관심이 없었기에 보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도감을 보며 머릿속에 담아 두었던 친구들이 많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친구인지 저 친구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어떤 과에 속하는 지는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새로운 만남이 생긴다는 것은 더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시간을 제대로 견디지 못하고 바로 하산을 해야 했습니다. 길이 하나도 없는 산이라 길을 만들어 다녀야 하고 그러다 보니 청미래덩굴, 청가시덩굴, 산초나무, 초피나무 가시에 긁히는 것이야 각오한 것이지만 가시는 상대도 되지 않는 엄청난 녀석이 있었습니다. 버섯학자들의 경고도 있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으나 숲모기들의 공격이 이토록 집요할 줄은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노출된 얼굴은 잠시 만에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가 되었고 장갑의 올 사이도 비집고 들어와 찔러대는 데에는 결국 지고 말았습니다. 하긴 뜨끈뜨끈한 살덩어리가 나 여기 있노라고 이산화탄소를 팍팍 뿜어내며 느릿느릿 이동하다 멈추기까지 해주니 더 이상의 공격 대상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동을 하면 할수록 모여 드는 모기는 점점 더 늘어났고 어떤 모진 녀석은 연구실까지 쫒아 오기도 했습니다. 따갑게 하지만 않는 다면 원하는 만큼 피를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의 대단한 생명력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다음 날부터는 눈만 나오는 모자를 뒤집어쓰고 완전 겨울 복장으로 산에 올랐습니다. 날은 점점 더워져 땀으로 샤워를 해야 했고, 독충에게도 쏘이고 맹독을 잔뜩 품은 뱀과도 자주 마주쳤지만 몰랐던 것을 하나 씩 알아 간다는 기쁨과 일에 대한 책임에 산행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아침에 산으로 들어가 해질 무렵 나올 때까지 그 날 그 날 마주치는 버섯은 모두 사진을 찍는 것은 물론 기상 조건과 주변 환경을 비롯한 모든 것을 기록하였습니다. 날마다 같은 길을 따라 움직이니 시간과 기상여건에 따라 버섯이 변하는 모습을 꼼꼼하게 챙길 수 있었고, 어떤 서식처 환경에 어떤 버섯이 주로 발생하는지도 알게 되어 버섯의 생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연구실에 와서는 그 날의 사진과 도감을 비교하며 서로 같은 것을 찾아내는 동정(同定)을 하였고 외형으로 구분이 어려운 경우 간단한 실험도 하였습니다. 다섯 달 동안 며칠을 빼놓고는 지성으로 학교를 둘러싼 산을 더듬은 덕분에 많은 버섯을 만나 조금씩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세상은 그만큼 더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가을에 있었던 종합조사에서는 전문가 수준은 아니더라도 조사지역에 어떤 버섯이 있는지 그대로 소개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살며 더러는 조금 무모해 보이더라도 도전해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버섯과 인연을 맺어 산이 있으면 버섯을 만나러 다닌 지 10년이 됩니다. 그동안 만난 버섯 중에서 특징이 있는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버섯하면 우선 떠오르는 생김새는 갓(균모), 갓 안쪽의 주름살, 갓을 지지하는 자루를 갖춘 우산모양이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자루에는 턱받이가 달려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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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버섯(턱받이가 없음)/ 암적색분말광대버섯(턱받이가 있음)

 

주름살은 보통 부챗살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가장 많지만 버섯에 따라서는 이 주름살이 관공이라 불리는 작은 관모양의 구멍으로 변형되어 있는 것도 있으며, 이러한 버섯의 이름 뒤에는 그물버섯이라는 말이 붙습니다. 그런데 썩은 나무에서 주로 발생하여 나무를 더 썩게 하는 목재부후균이라 불리는 버섯들도 대부분 주름살이 없고 관공으로 되어 있지만 이 경우에는 그물버섯이라는 말이 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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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그물버섯 

 

버섯의 모양은 우산모양 말고도 싸리 모양, 말뚝 모양, 국수 모양, 공 모양, 주발이나 접시 모양, 술잔 모양뿐만 아니라 사람의 귀를 닮은 것, 망토를 두른 것, 세 갈래도 갈라진 것은 물론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모양을 갖추고 있는 것을 포함하여 무척 다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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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싸리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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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나무싸리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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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불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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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징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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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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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망태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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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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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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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발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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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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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국수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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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두리방귀버섯

 

생김새만큼이나 버섯의 색깔도 정말 다양합니다. 우리가 아는 색이 다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버섯 중에는 버섯의 색을 이름 앞에 붙여 표시하는 것도 있지만 다른 생명체의 색을 이용하여 표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꾀꼬리버섯, 애기꾀꼬리버섯, 꾀꼬리그물버섯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는데, 꾀꼬리가 노란색이니 이 버섯들은 모두 노란색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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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꼬리버섯/ 꾀꼬리그물버섯

 

버섯은 그늘이 지고 습기가 많은 곳에서 많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햇빛이 전혀 없다면 발생하지 않습니다. 또한 독특한 서식처, 특정 장소에서만 사는 것도 있습니다. 때죽도장버섯은 때죽나무에서만 피어납니다. 버섯이 발생하면 때죽나무는 불에 탄 듯 까맣게 변하며 곧 죽게 되니 때죽나무로서는 천척이나 다름없습니다. 한 번 발생하면 이웃한 다른 때죽나무도 감염되어 하나 둘 씩 죽게 하기도 합니다. 또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때죽나무에는 때죽도장버섯 이외의 다른 버섯은 거의 나지 않습니다. 도장버섯이라는 말이 붙은 것은 아래쪽을 보면 꼭 도장을 파놓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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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지는 버섯에서 피어나는 버섯도 있습니다. 버섯이 또 다른 다른 버섯의 먹이가 되는 것인데 대표적인 예가 덧부치버섯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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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부치버섯

 

주로 늦가을에 소나무의 적갈색 낙엽과 비슷한 색으로 피어나 눈에 잘 띄지 않으며, 게다가 생김새가 아주 독톡한 버섯이 있습니다. 파상땅해파리라는 버섯인데 소나무 숲의 불탄 자리에서 주로 발생하는 버섯입니다. 만약 파상땅해파리가 보인다면 그 지역이 지금은 아니더라도 예전에 산불이 났던 지역일 확률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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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상땅해파리

 

곤충의 몸에서 피어나는 버섯이 있어 동충하초(冬虫夏草)라고 합니다. 겨울에는 곤충이었는데 여름이면 그 몸에서 버섯이 피어나 붙여진 이름입니다. 곤충의 단백질을 영양원으로 삼는 버섯이며, 숙주 특이성이 엄격하여 종류에 따라 대상 곤충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동충하초의 포자는 곤충의 성충, 애벌레, 그리고 번데기의 눈, 입, 배, 날개 등에 붙어서 곤충의 몸속으로 들어갑니다. 포자가 발아하고 균사가 나오는 과정에서 곤충은 죽게 되는데, 동충하초의 자실체는 거의 곤봉모양입니다. 동충하초과의 버섯 중에는 마치 눈꽃이 피어난 것처럼 보이는 버섯이 있어 눈꽃동충하초라고 합니다. 주로 가을에 나비나 나방 종류의 번데기에서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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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충하초/ 눈꽃동충하초

 

버섯 중에는 생태가 독특한 것들도 있습니다. 반딧불이처럼 밤에 형광을 띄는 버섯이 있는데 화경버섯과 받침애주름버섯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경버섯은 밤에 달처럼 빛을 낸다고 하여 달버섯이라고도 합니다. 상처만 나면 젖을 분비하는 버섯도 있습니다. 젖버섯속에 속하는 버섯들로 이름 뒤에 대부분 젖버섯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데 젖의 색은 종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공기와 접촉하면 색이 변하기도 하는데 시간이 더 지나면 원래의 색으로 돌아올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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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버섯

 

생태계는 생산자, 소비자, 그리고 분해자라는 세 개의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세계입니다. 그 어느 곳에서 톱니 하나만 빠져도 곧 멈춰서는 세상인 것입니다. 버섯은 분해자 쪽에 치우쳐 있는 생명체입니다. 사체를 분해하여 그 중 일부를 취해 자신이 살고 나머지는 다른 생명체의 것으로 되돌려 줍니다. 더러 살아 있는 나무를 죽게 하기도 하지만 그마저 결국 더 많은 나무를 살리는 길이 됩니다. 버섯은 또한 유익한 생물자원입니다. 귀한 약리성분을 다양하게 지니고 있어 꺼져가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길도 버섯이 열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천연자원이 딱히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자원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좋은 친구인 것입니다.

버섯과 함께 한 10년, 그 시간 동안 내가 버섯으로 인해 알게 된 것은 하나뿐입니다. 버섯에 대해서 알려면 우선 버섯과 친구가 되어야 할 것인데, 버섯의 벗이 되려면 버섯보다 많이 큰 내가 먼저 버섯의 높이로 땅에 엎드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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