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섭 숲 곁에서

산에 깃들어 사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산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라도 가슴 설레는 여정이 됩니다. 산에는 내가 좋아하는 벗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꺼이 제 자리만 지키면서도 철을 따라 몰려오는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잘도 견뎌내는 야생화가 있고, 이렇게 사는 것이 옳다는 듯 당당하고 떳떳하게 서있는 나무가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와 빛깔의 멋진 버섯은 낮은 땅과 높은 나무를 오가며 펴있고, 꽃과 나무와 버섯 사이를 분주히 스며드는 크고 작은 곤충이 있습니다. 아주 조심스럽게 조금 더 다가서면 계곡과 그 주변에서는 양서류와 파충류를 만날 기회도 틀림없이 맞을 수 있습니다. 무척 긴 기다림과 외로움을 감당해야 하지만 자연의 모습에 가깝게 적절히 몸을 감추고 버티다 보면 초등학교 이후로 머릿속에 새롭게 입력된 것이 거의 없는 새들의 목록이 한층 풍요로워지며, 더러 하늘이 도와주는 날에는 몸집이 큰 산짐승의 맑은 눈을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기도 합니다. 게다가 같은 곳으로의 산행이 어느 정도 쌓이면 그 안에 깃든 모든 생명들이 수상쩍은 눈빛을 멈추고 슬쩍슬쩍 말을 걸어오기도 하니 산은 내 곁에 있는 참으로 귀한 벗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산행을 할 때마다‘오늘도 무사히’라는 바람은 항상 가슴에 달고 다니게 됩니다.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험한 산을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산행에 동행이 있는 것이 아닌데다 없는 길을 만들며 다닐 때가 많기에 그렇습니다. 그리 높지 않거나 너무 야트막하여 산이라 부르기 쑥스러운 산이라 할지라도 사람이 찾지 않아 길이 없고, 그래서 이리 저리 새로 길을 내며 다녀야 하는 형편이라면 그 앞에는 다양한 모습의 위험 요소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독사와 독충과 적절히 사귀는 것은 오늘도 무사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산하는 길이 됩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뱀의 종류는 16종으로 그리 많지 않으며, 그 중에서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어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독사는 살모사과의 살모사, 쇠살모사, 까치살모사와 뱀과의 유혈목이 모두 4종입니다. 하지만 독사에 물렸다 하여 바로 목숨을 잃을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물린 뱀의 종류와 크기, 상처의 깊이와 투여된 독의 양, 물린 사람의 건강상태 등에 따라 상처 부위가 붓고 심한 통증이 생기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으며 항독소 주사를 맞고 일주일쯤 안정을 취하면 완치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뱀에 의한 사망 사례가 분명히 실재하니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뱀을 퇴치하는 방법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어떤 방법이 효과가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뱀이 먼저 사람을 찾아와 공격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뱀은 크기가 작아 뱀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오히려 피하고 싶은 두려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서둘러 움직이다 뱀을 밟는 것이 문제이므로 우선 신중히 걸음을 옮길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뱀은 후각만큼이나 소리와 진동에도 민감합니다. 따라서 뱀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곳을 지날 때는 발을 디디는 소리를 크게 내고 지팡이로 바닥이나 나무를 두드리며 이동하면 뱀이 알아서 스스로 피해주기 때문에 뱀에 물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숲을 헤치며 다니다 보면 뱀보다 훨씬 더 무서운 존재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벌이라는 녀석입니다. 벌은 잘못 건드리면 끝까지 쫒아오며 공격한다는 점에서 뱀과 다릅니다. 실제로 벌에 쏘여 발생하는 사망자의 수는 뱀에 물려 사망하는 숫자보다 5배 가까이 많다고 합니다.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벌은 말벌과의 말벌, 장수말벌, 그리고 땅벌입니다. 물론 이 벌들이 가지고 있는 독소의 양 자체는 직접적인 치사량 수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는 이들 독소에 대해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우선 말벌은 주로 높은 곳에 집을 지으니 건드리지 말고 피하면 됩니다. 문제는 장수말벌과 땅벌입니다. 장수말벌은 나무 위에 집을 짓기도 하지만 땅에도 집을 지으며, 땅벌은 무조건 땅 속에 집을 짓기 때문입니다. 서둘러 이동하다 장수말벌이나 땅벌의 집을 건드려 훼손했을 경우 그들의 공격을 피할 길은 없습니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뿐입니다. 손을 내둘러 쫒으면 더 공격적으로 달려들 때가 많으니 우선 자세를 낮춘 다음 양손으로 목을 감싸고 웅크린 채 저들 스스로 화를 풀고 물러나주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아무리 벌이 손등에 침을 박아도 목에서 손을 떼서는 안 됩니다. 벌의 독소에 대해서 과민반응이 있는 사람의 경우 목 부위를 쏘이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산에서 뱀에 물리거나 벌에 쏘이지 않으려면 결국 서두르지 않은 것이 최선입니다. 산은 다른 모든 것은 허용해도 서두름마저 허용하지는 않습니다.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 산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더러 있는 일이고 아직 날이 저물기에는 여유가 있어 방향을 바꿔가며 천천히 이동하고 있을 때 낯선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름의 한 가운데라 낙엽이 쌓인 것도 아니어서 나의 발자국 소리까지 묻혀 아무 소리도 없는 것이 마땅한 산속이었기에 더욱 생소하게 느껴지는 소리였습니다. 궁금한 것을 참을 이유는 없어서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보았습니다. 소리는 점점 커졌고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진동음인 것만큼은 틀림없었습니다. 몇 걸음 더 옮기다 엄청난 크기의 뭔가 보이는 순간 거의 본능적으로 바닥에 납작 엎드려 손으로 목을 감쌌습니다. 소리는 벌집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엎어져 있다 고개를 살며시 들어보았습니다. 길이는 자그마치 2미터는 되어보였고 폭은 15센티미터 가량으로 뒤틀린 널빤지 모습의 처음 보는 벌집이었습니다. 그 규모의 벌집에 벌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벌의 수가 수천은 족히 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처음 든 생각은 저 친구들이 나를 발견하고 한꺼번에 달려들면 내 운명은 오직 하나의 길, 곧 죽음이라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참담한 순간이 아무 일 없이 꾸준히 흐르자 또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저 친구들이 어쩌면 나를 적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다는 것과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죽을 때 죽더라도 사진은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옆으로 던져 둔 카메라를 천천히 끌어당겨 사진 한 장을 찍은 다음 누운 자세 그대로 천천히 뒷걸음 쳐 마침내 그 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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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허물쌍살벌

 

학교로 돌아와 곧바로 곤충도감을 펼쳐보았습니다. 벌집의 모양이 워낙 독특하여 벌집의 주인을 찾는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벌집의 주인은 말벌과의 뱀허물쌍살벌로 말벌, 장수말벌, 땅벌과는 친척뻘이었습니다. 현장에서는 정황이 없어 벌집이 무엇을 닮았는지에 대해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벌의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그래, 맞아. 무척 크기는 했지만 정말 뱀이 허물을 벗어 나무에 걸쳐 놓은 것 같았어.”하며 무릎을 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뱀허물쌍살벌의 공격성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 뒤, 완전무장을 하고 이름도 살벌한 그 벌을 다시 찾아 나섰습니다. 하지만 잘못 찾아 들어간 길을 다시 똑같이 잘못 찾아 들어가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아 결국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2년이 지난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학교 뒷산을 따라 오르는데 이제는 낯설지 않은 뱀허물쌍살벌의 집이 눈에 들어와 걸음을 멈췄습니다. 전에 본 것과 달리 아주 아담한 규모였으나 벌은 역시 벌집 전체에 다닥다닥 붙어있었습니다. 학교 뒷산 샛길은 버섯을 관찰하기 위하여 내가 하도 다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이어서 나 말고는 오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2주 정도 다른 곳의 조사를 위해 자리를 비웠는데 그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리고 뱀허물쌍살벌과의 첫 만남 이후로 얻은 정보를 통해 뱀허물쌍살벌이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던 터이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가까운 거리에서 벌과 벌집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욕심이 생겼습니다.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벌은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 믿고 야금야금 다가서 2미터 정도까지 접근했을 때였습니다. 벌집의 맨 꼭대기에서 조금 불편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던 벌 하나가 먼저 내 쪽으로 그대로 방향을 잡아 쏜살같이 날아오르자 거의 동시에 벌집에 있던 모든 벌들이 나를 향해 몰려들었습니다. 엎드려 목을 감싸는 것도 포기하고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나는 멀쩡하고 벌만 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한참 거리를 두고 몇 시간을 기다려 보았지만 벌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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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꼭 보름째입니다. 날마다 먼발치서 벌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지만 뱀허물쌍살벌의 집은 여전히 비어있습니다. 벌은 이제 이 집을 완전히 포기한 것으로 보이며, 나도 이제 날마다 이곳을 찾는 일은 그만 접으려 합니다. 조금 가까이 다가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최대한 얌전하게 바라보았을 뿐인데 그것조차 저들에게는 그리도 애써서 지었을 집마저 비우고 떠날 만큼의 간섭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어마어마한 중장비를 총동원하여 산 하나를 깔끔하게 밀어붙이는 대형공사로는 어떤 일들이 벌이질 지 상상해 봅니다. 수많은 생명체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미안해서 아픕니다.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산을 둘러봅니다. 뱀허물쌍살벌 또한 ‘오늘도 무사히’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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