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조개 여정의 끝 강 곁에서

생김새가 새색시처럼 예뻐 각시붕어라는 이름을 가진 물고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민물고기 중 관상 가치가 가장 높은 것으로도 자주 꼽히는 각시붕어는 납자루아과에 속하는 물고기로 체형은 납작하며 크기는 4cm 정도입니다. 각시붕어가 더없이 예쁠 때는 물론 산란기를 맞아 혼인색을 띨 때입니다. 만약 자연 상태가 아니라 어항 속에서 혼인색을 띠고 있는 각시붕어를 본다면 화려한 산호 사이를 누비고 다녔을 열대어로 착각하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근래 일본의 어류학자가 이견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한국 고유종이 틀림없어 보이는 각시붕어는 동해안으로 흘러드는 몇몇 하천을 제외한 우리나라의 담수 수역 전체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각시붕어는 물의 흐름이 빠르지 않고 수초가 무성한 곳을 좋아합니다. 동작이 잽싸지 못하기 때문에 위협을 느끼면 주로 수초 사이로 숨어 버립니다.

하천이나 저수지에서 수초가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은 그 바닥에 진흙이나 모래 성분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러한 진흙이나 모래 바닥에는 자신이 이동한 경로를 굵은 선으로 숨김없이 남기며 천천히 움직이는 친구가 있기 마련입니다. 다 자라면 어른 주먹 크기까지 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민물조개 중 가장 큰 대칭이와 생김새나 크기로 볼 때 홍합을 꼭 닮은 말조개라는 친구가 그들입니다. 각시붕어와 이 두 민물조개 사이의 인연은 서식처를 공유한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각시붕어는 동작이 느릿한 대신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할 정도로 기발한 산란방법을 개발했습니다. 대칭이와 말조개의 몸 안에 알을 낳은 방법을 찾아낸 것이며, 그 대표적인 대상이 말조개입니다. 산란기가 되면 각시붕어 수컷은 멋진 혼인색으로 단장을 하며, 암컷은 긴 산란관을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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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색을 띄고 있는 각시붕어 수컷/ 사진 윤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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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란관을 늘어뜨리고 있는 각시붕어 암컷/ 사진 윤순태

 

산란기를 맞은 수컷은 온 몸을 멋지게 꾸미는 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산란에 알맞은 건실한 말조개 하나를 찜해놓고 다른 수컷은 그 근처에 얼씬도 못하도록 접근을 차단하는 일입니다. 물고기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수컷에게는 사납기 그지없는 수컷이지만 산란관을 요염하게 늘어뜨린 암컷이 다가오면 완전히 다른 친구가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모습으로 암컷을 맞으며 구애행동을 하면서 미리 차지한 말조개 쪽으로 안내를 합니다. 산란의 결정권은 암컷에게 있습니다. 암컷은 수컷의 마음과 달리 수컷의 외모에는 큰 관심이 없고 말조개의 상태에 민감합니다. 말조개를 꼼꼼하게 살펴 본 뒤 마음에 흡족하다 싶어야 산란이 이루어집니다. 암컷이 말조개의 출수공에 산란관을 집어넣고 재빨리 산란을 하면 이어서 수컷이 입구공에 정액을 뿌려 수정이 일어나게 합니다. 말조개는 물이 들어오는 구멍인 입수공과 물이 나가는 구멍인 출수공을 가지고 있습니다. 입수공은 호흡과 먹이섭취를 위한 통로이며, 출수공은 배설을 위한 통로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상식적으로 암컷이 출수공에 산란을 하는 것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당연히 이유가 있습니다. 말조개의 구조로 볼 때 입수공에 산란을 하면 알이 체강으로 흘러가다 몸 밖으로 유실될 가능성이 높지만 출수공으로 산란을 하게 되면 말조개 아가미의 얇은 막 사이에 알이 자리를 잡아 유실될 확률이 낮아집니다. 도대체 어찌 알았는지 모르겠으나 각시붕어가 말조개의 해부학적 구조를 꿰뚫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말조개의 아가미는 안전성이 확보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적절한 온도가 보장되고 산소의 공급 또한 가장 원활한 곳이니 각시붕어의 알이 부화하기에 더 이상 좋은 곳은 없습니다. 부화한 알은 자신의 난황을 영양분으로 삼아 무럭무럭 자라며 난황이 모두 소비되어 스스로 먹이를 찾아야 할 때가 되면 말조개 밖으로 빠져나와 독립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처럼 확실한 산란의 대상을 찾은 이유로 각시붕어가 낳는 알의 수는 무척 적습니다. 잉어나 붕어는 수천 개의 알을 낳는 반면 각시붕어는 수백 개의 알만을 낳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번식에 관한 한 다른 대부분의 물고기들이 낳는 알의 숫자로 승부를 걸 때 작고 느린 각시붕어는 부화의 효율을 높이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니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섬진강 곁에 있은 지 20년이며, 살며 나의 발길이 가장 많이 닿은 곳도 섬진강입니다. 체계적인 조사를 해온 것은 아니지만 각시붕어의 개체수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 많던 각시붕어가 최근에는 아예 만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손을 모아 떠먹어도 좋았던 섬진강 물이었으나 이제는 손을 담그는 것마저 꺼려집니다. 강 가장자리의 수초들도 삭아들어 자취를 감춘 지 오래며, 하천 바닥도 온전하지 않습니다. 수질과 하상의 오염은 말조개가 급격히 감소하는 원인이 되었고, 말조개가 없는 하천에서 각시붕어가 종을 이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게다가 밤이면 황소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시끄러울 정도이며, 황소개구리와 더불어 작은 크기의 고유어종을 싹쓸이하듯 도륙하는 블루길과 베스가 섬진강의 폭군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다른 하천과 저수지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각시붕어가 살아갈 길이 사라진 것이 현실입니다.

햇살이 적당히 간지러운 이른 봄날 아침이었습니다. 아직은 갈수기이기에 여기 저기 드러난 돌을 이어 밟으며 섬진강 줄기를 따라 한참을 거닐다 강둑을 넘어 이웃한 저수지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발자국을 포함하여 저수지 주변으로 틀림없이 남아있을 동물들의 흔적을 만나기 위함이었습니다. 젖은 땅 위로 또렷하게 새겨진 너구리의 발자국을 뒤따르다 보니 발자국은 물에 이르며 사라진 대신 말조개 하나가 느긋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내 마음으로는 답답하다 싶을 정도의 이동속도이지만 말조개에게는 저 속도가 최선이겠다는 생각과 함께 말조개가 그려내는 진솔한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하루해는 그렇게 저물었습니다.

이틀 뒤였습니다. 시기적으로 각시붕어와 말조개를 함께 만날 수는 없지만 말조개의 그 느릿한 움직임이 자꾸만 마음을 몰아세워 저수지를 다시 찾았습니다. 그런데… 저수지는 이미 여러 곳에서 바닥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말라가고 있었고,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수많은 말조개가 자신이 가야할 길을 앞두고 할 수 없이 멈춰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물이 맨 마지막까지 고여 있었을 조금 옴폭한 곳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사력을 다하여 한 바퀴 돌다 여정이 끝난 말조개 하나에서는 정말 눈을 떼기가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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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한 쪽에서는 저수지의 바닥을 더 깊게 파내는 준설작업이 벌써 진행 중이었습니다. 수리수문학적인 입장에서 볼 때 저수지야 물을 가둬 두는 것이고 더 많은 물을 가둬 두기 위해 바닥을 파내야 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면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을 그 일정을 앞두고 적어도 천천히 물을 뺄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저수지에 기대어 사는 동작이 느린 친구들이 안전한 곳으로 옮겨갈 수 있는 시간은 주는 것이 그렇게도 힘든 일이었는지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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