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갈라진 여론과 ‘6·29의 길 아침햇발

2010년 7월 2일자 아침햇발

 

천안함은 말이 없었다. 자신의 침몰 원인 규명을 둘러싸고 나라가 두쪽 날 지경이건만, 휘어지고 부러지고 끊어진 채 조용히 서 있었다.


지난 29일 오후 평택 제2함대. 민·군 합동조사단이 언론노조 등 세 언론단체로 구성된 ‘천안함 조사결과 검증위원회’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연 자리였다. 아침 9시30분 국방부에서 시작한 합조단과 검증위의 공방은 ‘말없는 천안함’ 앞에서도 쉬이 잦아들지 않았다.

 

“현장에서 발견된 어뢰추진체는 정말 천안함과 관련이 있나, 물기둥은 존재했었나, 실제 사건 발생 시각과 장소는 어디인가….” 검증위의 질문은 날카로웠고, 합조단의 답변도 성실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합조단의 성실함도 지난 5월20일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둘러 발표한 ‘한계 많은 조사결과’를 감싸기가 어려워 보였다. 이미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사건 당일 백령도 초병은 물기둥을 못 봤다고 강조했는데도, 물기둥을 본 것처럼 합조단이 발표문을 만든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합조단은 이날도 “애초 발표했던 어뢰 설계도는 잘못된 것이었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합조단 주장대로 실수라 인정하더라도 문제는 심각하다. 북한을 공격 주체로 명시한 합조단 발표가 어떤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선거를 열흘가량 앞둔 5월24일 전쟁도 불사할 듯한 태도로 밝힌 대북 강경책의 근거였다. 정부는 또 합조단 발표를 바탕으로 유엔 안보리에 천안함 문제를 상정했다. 한민족의 운명을 가를 수도 있는 중대한 조사결과를, 그렇게 허투루 발표했다는 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런 어설픈 발표 탓에 국민들은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로 확연히 갈려 있다. 믿는 이는 믿지 않는 이들을 향해 ‘매국노’라 손가락질한다. “왜 정부 말을 안 믿고 국익을 해치느냐”는 것이다. 믿지 않는 이는 믿는 이들에게 “그만큼 속았으면 충분하지 않으냐”며 조롱한다. 정부가 선거용으로 급조한 발표에 언제까지 장단 맞출 거냐는 지적이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천안함을 둘러싼 끝모를 갈등과 대립 양상이 1987년 6·29선언 이후 최대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을 뽑았던 당시도 ‘호헌’과 ‘직선제 개헌’ 주장으로 나라가 두쪽 나 있었다. 당시 정부와 집권 민주정의당의 해법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계엄령 등 강경책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강경책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나라 전체가 갈림길에 섰다.

 

만일 당시 정부와 집권당이 강경책을 선택했다면, 남한의 민주주의는 크게 뒷걸음질쳤을 것이다. 다행히 당시 집권 민주정의당은 최종적으로 6월항쟁의 도도한 기세에 밀려 직선제를 수용했다. 6·29선언이다.

 

6·29선언은 갈등하던 국민들을, 함께 기뻐하는 주체로 만들었다. 이렇게 갈등을 털고 모아진 힘은 이후 1990년대 남한 경제가 도약하는 밑거름이 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천안함 해법’은 어떤 것일까? 현재로서는 정부가 강경책을 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참여연대 사건을 공안부에 배당한 것이나, 합조단 조사결과에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을 잡아가고 있는 것이 그 징후다.

 

이 시점에서 이 대통령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믿는 이가 ‘지키고자 하는 것’도, 믿지 않는 이가 ‘바로 세우고자 하는 것’도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이다. 대통령의 임무는 이들의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다. 갈등을 해소하고 더 큰 힘으로 모아내는 것이다. 방법이 무엇일까? 그것은 기존 합조단을 해체하고, 믿지 않는 이들까지 포함해 조사단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천안함과 관련해 진실성을 의심받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합조단을 그대로 둔 채 화합의 길을 찾긴 어렵다. ‘천안함식 6·29’가 필요한 이유다.

 

6·29선언 23돌이었던 지난 29일, 열띤 논쟁의 한켠에서, 휘어지고 부러지고 끊어진 채 서 있는 천안함 위로 따사로운 햇살이 가만히 내려앉았다.  / 김보근 스페셜콘텐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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