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자격 있는 거야? - 생생육아



6e868aa4fb154ab6639462f3dc171578. » 더운 여름날, 집 근처 공원 분수에서 뛰어노는 수아와 아란



베이비트리 프로필에서 고백했듯, 두 딸의 엄마이지만 육아에는 도통 능력도, 재주도 없는 사람이다. 그냥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재밌고, 그 아이들이 내가 낳은 아이들이라 더욱 사랑스럽고, 이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소박한 마음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껏 아이를 키우는 일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크게 부담감을 느끼는 일이 거의 생기지 않았다. 또한 엄마로서, 아이들을 돌보는데 있어서 나의 부주의를 탓하며 심각하게 죄책감을 느낄 일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주말 ‘죄책감’이 생길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몸이 불편에 우는 아이를, 심지어 잘 먹지도 못하는 아이를 방치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평소 엄마 품에서만 있으려고 하는 둘째딸, 엄마 품에서만 벗어나면 자지러지게 울곤 한다. 지난주에도 둘째딸은 여느 때처럼 보챘다. 달라진 점이라면, 도통 먹는 것을 거부했다. 유독 식탐이 많았던 작은 아이는 언니에게만 먹을 것, 심지어 약만 줘도 ‘자기도 먹겠다’고 달려들곤 했었다. 음식도 크게 가리지 않는 편이어서, 김이나 멸치볶음처럼 입안에 상처를 줄 수 있는 반찬들도 곧잘 먹었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음식을 거부하다니! 밥을 주면 ‘싫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심지어 양손을 내밀면서 거부의사를 밝히면서 울기까지 한다. 아이가 먹는 것이라고는 우유와 두유뿐. 바나나, 고구마, 감자 같은 비교적 부드러운 음식들도 거부했다. “날씨가 더워서 식욕이 떨어졌나 보다”고 난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두번째로 달라진 점은 평소 침을 흘리지 않았던 아이가 침을 흘린다는 것이었다. 좀처럼 입을 다물지 못했고, 손가락을 자주 자신의 입안으로 가져갔다. 나를 보면서 “자신의 입을 봐달라”며 손으로 잇몸을 가리키기까지 했다. 입안을 살펴봤더니, 큰 이상은 없어 보였다. ‘어금니가 올라와서 간지러워서 그런가?’ 아이는 평소 치발이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깨끗하게 씻고 소독해서 아이한테 건넸다. 아이가 그것을 입에 넣더니, 자지러진다. 그리고부터는 아예 거부한다.



이러한 증상이 이틀째 계속되더니, 결국엔 열이 올랐다. 그날은 마침 시댁을 방문한 날! 식구들이 모여 삼겹살을 구워먹은 탓에 오랜시간 에어컨을 틀었더랬다. 평소 쐬지 않던(우리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 에어컨 바람을 너무 많이 쐬어 감기가 걸렸다고만 여겼다. 새벽에 해열제를 먹였더니, 열이 금세 내렸다.



그런데 아이가 아침에 눈을 뜨자 마자 또다시 보채기 시작한다.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직감했다. 사실 나는 아이의 몸에 큰 이상 증세가 보이지 않는한, 가능하면 병원에 가는 것을 지양해왔다. 시어머니는 ‘요즘 엄마들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별일도 아닌데, 극성 맞게 병원부터 가서 약을 먹인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는데,  나 역시 그말에 전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또한 직장을 다니는 탓에 낮시간에 병원을 데려가는 일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다.



“병원에 데려가봐. 열 나는 것은 둘째치고, 아이가 잇몸 때문에 도통 먹지를 못하잖아. 영양실조 같은 게 아닌지 봐야할 듯해. 짜증도 심해지는데, 성격 나빠져. 왜 그런지 원인은 알아봐야할 것 아냐?” 참다 못한 남편이 내게 말했다.



“그럴까? 입안이 헐어서 그런가? 잇몸이 헐면 꽤 아프고,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도 심하잖아. 근데, 병원에 간다고 뾰족한 수가 있겠어? 약을 발라준다고 해서 그게 쉽게 낫는 건 아니잖아.”



“그렇다고, 애를 이대로 나둘 순 없잖아!”



병원에 데려갔다. 이참에 큰아이도 함께 의사 선생님의 진료를 받게 할 요량이었다. 사실 큰아이는 며칠 전 내게 ‘귀가 아프다’고 말했었다. 남편에게 말한다는 것을 까먹었지만. 그날 유치원 선생님조차 내게 “수아가 귀가 아프다고 했다”는 말을 전했더랬다. 그런데 이후로 큰아이가  그다지 아파하는 것 같지 않아 그냥 넘어갔었다. 의사 선생님은 꼼꼼하게 큰 아이와 둘째 아이의 몸을 살폈다. 



“수아는 중이염이네요. 심한 편이에요. 항생제를 포함한 약을 먹어야겠어요. 아란이는 수족구를 앓았네요. 지금은 다 낫는 단계네요. 그래서 열도 났던 거고 입안과 목젖이 헐었던 겁니다.”



허걱. 중이염이 심해진 큰딸, 수족구를 앓은 작은딸을 방치한 장본인이 바로 나였다. 남편은 큰딸이 예상과 달리 중이염 증상이 있다는 내 전화를 받고 버럭 화를 냈다. “엄마한테 귀 아프다고 했다는데, 병원에도 안 데려갔어?” 사실 큰딸은 백일 때 무렵부터 중이염을 거의 달고 살았다. 감기 증상이 2~3일 계속되면 큰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곤 했는데, 그 이유는 귀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다행히 중이염 수술은 하지 않았지만, 이 때문에 소견서를 받아 큰 대학병원도 여러 차례 드나들었고, 수술할 뻔한 적도 두번이나 된다. (두번 다 수술 날짜를 잡아놓았으나, 수술 전 약만 먹고서 회복이 됐다.) 



그러고 보니, 큰딸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일이 하나 생각이 났다. 둘째가 생기기 전, 일요일 낮 세살 된 큰 딸과 함께 잠을 잤는데 먼저 잠에서 깬 딸이 면봉을 갖고 놀다가 자신의 귀를 쑤셔서 피가 난 적이 있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아이는 귀를 잡고 울고 있었고, 귀 주변에 피가 맺혀 있었다. 깜짝 놀라 대학병원 응급실에 데리고 갔더니, “고막이 찢어졌다”고 했다. 다행히 청력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순간의 내 부주의로 평생 후회할 일을 할 뻔 했었다. (그 뒤로는 아이들이 낮잠잘 때 왠만해서는 함께 잠들지 않는다. 졸음이 오면 차라리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잠을 깨거나, 컴퓨터를 켜고 웹서핑이나 인터넷쇼핑몰 탐방에 나선다.)



여튼, 두 딸은 그동안 얼마나 아팠을까. 자신의 고통을 외면하는 엄마 때문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지금 생각해도 참 미안한 생각뿐이다. 아이들에게 가장 큰 선물은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해도,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아도, 부모가 자신들을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고, 늘 관심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만큼 교육적으로 정서적으로 좋은 것도 없다. 그런데 난 그러지 못했다. 나쁜 엄마다. 자신이 아픈데 병원 한번 데려가지 않는 엄마한테서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리 만무하다. 직장을 핑계로 아이들에게 맛난 음식과 간식 한번 제대로 해주지 못하는 엄마, 아이들과 오랜 시간 함께 지내지 못하는 엄마가 바로 나다.



이달 초 아이들과 함께 휴가를 보내며, 엄마로서 지금껏 살아온 나날을 반성하고, 새롭게 깨달은 것들이 여럿이지만 아직은 부족한 것이 많아 보인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더욱 분발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가장 손쉬운 실천법 가운데 하나는, 아이가 아파할 땐 가장 먼저 전문의를 찾아 그 원인을 찾을 것! 두번째는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줄 것, 더 많이 안아주고 평소 아이들한테 하는 말투를 더 살갑고 부드럽게 할 것! 세번째는 맛나고 몸에 좋은 음식을 자주, 많이 해줄 것!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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