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꼬불꼬불 곱슬머리는 왜 생겨났을까 생명건강

햇빛 과열 차단해주고…신체 열손실도 막아줘
열대지역 초기 인류 이족보행 위한 적응 산물
모발의 유형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해석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픽사베이
모발의 유형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해석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픽사베이

사람과 마찬가지로 새끼에게 젖을 먹여 키우는 포유동물의 눈에 인간은 매우 특이하게 생긴 동물로 비칠 것이다. 다른 포유동물과 달리 전신에 털이 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몸에 털이 없다는 점은 직립 이족보행, 큰 뇌와 함께 진화 과정에서 인간이 획득한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머리는 예외다. 사람의 머리에는 다른 동물에 못잖게 수북한 털이 난다.

촘촘하게 머리를 덮고 있는 머리카락은 머리가 햇빛에 의해 과열되는 것을 막아준다. 그런데 다 같은 모양이 아니다. 길게 직선을 쭉 뻗은 직모에서 돼지꼬리처럼 심하게 말린 곱슬머리까지 다양하다. 특히 아프리카인들에게 특유한 돼지꼬리형 곱슬머리는 가축 동물을 제외한 야생 포유류에서는 보기 어려운 특성이기도 하다. 진화 과정에서 겪은 어떤 경험이 이렇게 강력한 곱슬머리를 발달시켰을까?

2018년 법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FSI유전학’(Forensic Science International: Genetics)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의 원조인 아프리카인은 대부분(95%) 곱슬머리다. 또 곱슬의 정도도 심하다. 유럽인과 동양인에선 곱슬머리 비율이 12~13%에 그치고 곱슬의 정도도 약하다.

인류 진화사에 견줘 보면, 열대 아프리카에 살던 초기 인류는 대부분 강한 곱슬머리였지만 유럽과 아시아 등 서늘한 기후지역으로 이동하면서 곱슬의 정도가 약해지고 직모가 등장한 것으로 추론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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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차단해주지만 열 손실도 막아줘

과연 곱슬머리는 열을 차단해주는 효과가 더 좋을까?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티나 라시시 박사가 열 센서를 부착한 마네킨에 직모, 약한 곱슬, 강한 곱슬 세가지 유형의 모발로 만든 가발을 씌워, 곱슬머리의 열 차단 효과를 실험해 사전출판논문집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섭씨 30도의 모의 햇빛을 쬔 결과 마네킨 머리가 받는 열이 모발의 형태에 따라 큰 차이가 났다. 직모 가발을 쓴 머리가 받은 열은 머리카락이 없는 민머리의 절반이 채 안됐다. 약한 곱슬머리는 민머리의 4분의 1, 강한 곱슬머리는 10분의 1 미만이었다. 연구진은 곱슬이 피부와 모발 표면 사이의 공간을 늘려 열이 피부에 닿는 양을 줄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모양과 상관없이 모든 모발은 땀으로 인한 열 손실(냉각)을 줄여줬다. 땀을 흘리는 모의 실험에서 민머리는 가발을 쓴 머리보다 증발로 인한 열 손실이 두 배나 많았다.

그러나 머리털이 있는 경우엔 땀의 양이 절반 이상 줄었다. 특히 단단히 말린 곱슬머리는 약한 곱슬머리나 곧은 모발보다 땀의 양을 더 많이 줄였다.

이번 연구는 머리카락은 물이 부족한 더운 지역에서의 이족보행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진화적 적응의 산물이라는 가설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노스캐롤라이나농업기술주립대의 조셉 그레이브스 교수는 “몸을 식히는 동시에 인체에 소중한 수분을 절약하는 메커니즘이 자연선택적 진화에 의해 강력한 힘을 발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시시 박사는 “이후 호모사피엔스의 일부가 아프리카를 떠나 서늘한 기후로 이동하면서 강한 곱슬머리에 대한 선택 압력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레이브스 교수는 “최초의 인류는 검은 피부와 단단하게 말린 머리카락을 가졌을 것”이라며 “초기 인간의 신체적 특성을 진화론적 맥락에서 설명해주는 이번 연구는 인종차별적 편견을 바꾸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마네킨은 인간의 생리를 그대로 재현하지는 못한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연구진은 따라서 모발 유형이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이해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101/2023.01.21.524663

Human scalp hair as a thermoregulatory adaptation

bioRxiv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출처
논문 보기
전 세계 인구의 11%가 곱슬머리
유럽인과 동양인은 12~13%, 아프리카인은 대부분(95%)가 곱슬머리다.
단면적(CSA)과 곡률(곡면이 휜 정도)
곱슬머리 포유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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