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본이 작심하고 개발한 세계 최강 슈퍼컴 기술IT

fu1.jpg » 일본이 개발한 세계 최강 슈퍼컴퓨터 ‘후가쿠’. 이화학연구소 제공
 

6년간 1조2천억원 들여 ‘후가쿠’ 완성

2위 미국 서미트보다 연산능력 2.8배

4차산업혁명 사회 이끌 도구로 활용


2030년 인공지능 세계 최강국을 꿈꾸고 있는 중국은 2010년대 들어 이를 뒷받침할 슈퍼컴퓨터 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미국과 세계 최강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지난 2년간은 미국이 1위를 고수했지만, 그 이전 5년간은 중국의 선웨이 등이 1위였다. 중국은 2001년만 해도 세계 500대 슈퍼컴 명단에 1대도 오르지 못했으나, 지금은 오히려 숫자에서 미국을 훨씬 앞서 있다. 그런데 두 나라가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일본의 신형 슈퍼컴퓨터가 최근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 슈퍼컴퓨터 자리에 올랐다. 여기엔 일회성 깜짝쇼를 뛰어넘는 일본의 미래 사회 비전이 담겨 있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국제슈퍼컴퓨터회의(ISC)가 22일 발표한 제55회 `슈퍼컴퓨터 500' 리스트에 따르면, 일본 노벨과학상의 산실로 불리는 문부과학성 산하 이화학연구소(리켄)에 설치한 후가쿠(후지산의 또다른 이름)라는 이름의 슈퍼컴퓨터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로 평가됐다. 일본의 상징이라 할 후지산 이름을 붙인 데서, 이 컴퓨터에 대한 일본의 큰 기대감을 느낄 수 있다. 일본 슈퍼컴퓨터가 1위를 차지한 것은 2011년 ‘게이’ 이후 9년만이다. 후가쿠는 게이가 1년 걸려서 할 수 있는 실험을 며칠 만에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했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톱 500은 컴퓨터의 연산 속도를 측정하는 프로그램인 린팩(LINPACK) 성능을 기준으로 슈퍼컴퓨터 시스템을 평가하는 프로젝트로 1년에 두차례씩 순위를 매겨 발표하고 있다.

fu2.jpg » 일본에 1위 자리를 내준 미국 아이비엠의 슈퍼컴퓨터 ‘서미트’. 아이비엠 제공

이화학연구소와 후지쯔가 공동개발한 후가쿠 슈퍼컴의 초당 연산 속도는 415.5페타플롭스(41경5500조번, 1페타플롭스는 1000조번)에 이른다. 비유하자면, 세계 전 인구가 1초에 한번씩 화장실 한 번 가지 않고 20개월 동안 쉬지 않고 계산한 것과 같은 계산 능력이다. 이는 기존 세계 1위인 미국 테네시주 오크리지국립연구소의 아이비엠 슈퍼컴 `서미트'(148.6페타플롭스)보다 2.8배나 빠른 것이다. 이에 따라 이전 2위였던 캘리포니아 로렌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의 또다른 아이비엠 슈퍼컴 `시에라'(94.6페타플롭스)는 3위로 처졌다. 덩달아 지난해 3, 4위를 차지했던 중국의 슈퍼컴도 4, 5위로 밀려났다.

커다란 방 만한 크기의 슈퍼컴은 암호 해독, 기후변화 모델링, 그리고 신형 자동차나 무기, 항공기, 신약 설계 등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군사 및 과학 연구 분야에서 요긴하게 쓰인다. 따라서 어떤 성능의 슈퍼컴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는 각 나라의 기술과 경제 경쟁력을 평가하는 주요한 척도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요즘엔 인공지능 분야에 대한 쓰임새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서미트는 인공지능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 새로운 슈퍼컴 측정법인 HPL-AI에 따르면 후가쿠는 벌써 엑사급에 이르는 1.4엑사플롭스 속도로 머신러닝 알고리즘 계산을 수행할 수 있다.

일본은 이번에 세계 최고의 슈퍼컴을 만들기 위해 일본의 자금력과 기술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했다. 우선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6년간 10억달러(약 1조2천억원)의 기술개발 예산을 투입했다. 이는 미국의 슈퍼컴 역대 최고 투입액 6억달러를 훨씬 웃도는 금액이다.

또 공동개발자인 후지쯔는 인텔과 AMD 칩을 이용해온 대부분의 슈퍼컴과는 달리 스마트폰 칩에 쓰이는 기술을 이용해 프로세서를 설계했다. 후지쯔는 이를 위해 세계 대부분의 스마트폰을 지원하는 영국 에이알엠(ARM)의 칩 기술을 이용했다. 이 회사는 영국의 반도체칩 설계 업체로 2016년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의 소프트뱅크에 인수됐다.

fu5.jpg » 일본 정부가 웹사이트에 올린 ‘소사이어티 5.0’ 비전.

일본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들여 세계 최강 슈퍼컴퓨터를 개발한 배경은 뭘까?

후가쿠는 2014년 일본 정부가 제5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을 수립할 당시 제시한 일본판 4차산업혁명 사회 `소사이어티 5.0'(Society 5.0)을 구현하기 위한 시스템으로 개발이 시작됐다. `소사이어티 5.0'으로 총칭되는 미래 사회는 `사이버 공간과 물리적 공간을 통합한 시스템을 통해 경제 발전과 사회 문제 해결의 균형을 맞추는 인간 중심 사회’이다. 당시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의 기술 사회를 수렵 사회(Society 1.0), 농업 사회(Society 2.0), 산업 사회(Society 3.0), 정보 사회(Society 4.0)로 규정하고 정보 사회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로 세계 최강 슈퍼컴퓨터에 눈을 돌렸다. 후가쿠 슈퍼컴은 2021년 4월부터 본격 가동될 예정이다.

일본 이화학연구소 마쓰오카 사토시 전산과학센터 소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초기 개념이 제안된 지 10년, 프로젝트가 공식 출범한 지 6년만에 후가쿠를 완성했다"며 "코로나19와 같은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는 첨단 정보기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5월15일 후가쿠 설치를 완료한 이화학연구소는 최근 실내에서 재채기나 기침을 할 경우 비말이 어떻게 퍼져나가는지를 이 슈퍼컴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발표했다.

fu3.jpg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이 2018년 개통한 한국의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 KISTI 제공

한국 슈퍼컴은 모두 미국산...2023년까지 국산 시제품 개발


일본의 슈퍼컴이 세계 1위에 오르기는 했지만 전체 현황을 보면 일본은 슈퍼컴 경쟁 무대에서만큼은 여전히 주변부에 있다. 중국이 226대로 가장 많은 슈퍼컴을 보유하고 있고, 미국이 114대로 그 뒤를 잇는다.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의 슈퍼컴 보유대수는 크게 떨어진다. 일본이 30대로 3위, 이어 프랑스가 18대, 독일이 16대다.

톱 500에 오른 한국 슈퍼컴은 3대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누리온(18위, 13.9페타플롭스)과 기상청의 누리·미리(139·140위, 각 2.4페타플롭스)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한국의 슈퍼컴은 모두 미국 슈퍼컴 제조업체 크레이가 만든 것들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오는 2023년까지 460억원을 들여 한국산 슈퍼컴퓨터용 중앙처리장치(CPU) 시제품을 개발할 계획이다.

톱 500 슈퍼컴의 연산속도를 전부 합치면 초당 2.23엑사플롭스(1엑사플롭스는 100경번)에 이른다. 이는 6개월 전의 1.65엑사플롭스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후가쿠의 등장이 큰 영향을 미쳤다. 톱500의 꼴찌인 500위 슈퍼컴의 연산 속도는 1.24페타플롭스다.

그러나 일본의 영광은 그리 오래가진 못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에서 2021년을 목표로 엑사급(1초당 100경번) 슈퍼컴퓨터를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2개, 중국에서 3개의 엑사급 슈퍼컴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다.
 
출처
보도자료
한국 개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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