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컴퓨터와 의사의 전쟁, 승자는? 생명건강

11842302356_40bf9b3cd8_z.jpg » 최근 출범한 IBM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왓슨의 사업본부인 왓슨그룹 사무실. IBM 제공  

 

의사 영역에 도전하는 슈퍼컴퓨터 왓슨

일거수일투족 기록하는 무수한 센서들

 

 컴퓨터와 의사의 전쟁이 시작된다. 승자는 누구일까?

 세계적 컴퓨터업체인 IBM이 최근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왓슨을 이용한 사업을 본격 추진하기 위해 ‘왓슨그룹’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사업본부를 출범시켰다. 뉴욕에 사무실을 둔 이 본부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2000여명. 왓슨 컴퓨터는 2011년 미국 유명 퀴즈프로에서 인간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해 유명세를 탄 바 있다.
 아이비엠이 계획하고 있는 왓슨의 주된 이용 분야 가운데 하나가 의료분야다. 아이비엠은 미국의 대형병원과 함께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을 이용한 환자 진단과 처방에 도전하고 있다. 미 텍사스주 휴스턴시의 MD 앤더슨 암센터도 그 중 하나다.
 이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의사들의 반응은 어떨까? 이 암센터의 의사인 커트니 디나르도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왓슨은 수백 페이지에 이르는 환자 관련 기록들을 순식간에 한 페이지로 요약해 보여준다. 의사들이 직접 했다면 몇시간이 걸렸을 일이다.”
 왓슨 같은 인공지능 컴퓨터가 감히 의사들의 영역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은,  컴퓨터 능력의 진화 덕분만은 아니다. 인간의 행동과 신체상태를 모두 파악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이 쏟아져 나오는 스마트기기와 애플리케이션들이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한다. 스마트기기에 장착된 센서들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관찰해 기록으로 남긴다. 야누스 브라이젝(Bryzek) 페어차일드반도체 부사장은 지난해 10월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트릴리온 센서 서밋’에서 “센서들이 기하급수적 성장 곡선을 타기 시작했으며 2024년까지 센서 수는 조단위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Trillion-Sensor-Roadmap.jpg » 야누스 브라이젝이 발표한 센서 로드맵. 2030년대가 되면 숫자가 100조 단위로 급증한다. 토머스 프레이 제공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의 전망

 

 미 실리콘밸리의 유력 벤처투자가인 마크 안드레센은 “2014년은 자기기록(quantified self, 각종 센서를 통해 자신의 행동이나 상태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주류로 떠오르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프로깅(lifelogging)으로도 불리는 ‘자기기록’ 기술은 음식, 공기, 기분 등 우리의 일상생활에 대한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기술적 진보 덕분에 질병을 80%까지 줄일 수 있다면? (물론 네트워크로 연결된 이 센서들은 새로운 ‘빅브러더’ 논란이나 개인 정보 해킹 문제 등을 부를 것이나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최근 미국의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가, 앞으로 벌어질 컴퓨터와 의사 간의 힘겨루기에서 양자가 각기 갖고 있는 장점들을 각각 8가지로 정리해 내놨다. 그는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의사들은 전통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보여왔다”며 그러나 비용 절감 시대를 맞아 신기술을 도입하려는 사람들과의 대결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미래의 컴퓨터가 의사보다 더 나은 8가지 이유
 
 프레이는 우선 컴퓨터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지만 결국에는 스마트 기기와 연결된 컴퓨터들이 의료의 전면에 등장할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는 컴퓨터가 의사보다 나은 점을 8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앞으로 의사가 수시로 테스트를 하는 대신, 컴퓨터 센서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지는 분석이 늘어날 것이다. 이 센서들은 피부, 장기, 심지어 뇌로부터 수시로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 도구들은 인간의 대사활동을 분석할 때 일종의 포털 역할을 할 것이다. 예컨대 이제까지 의사가 환자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하던 일들을 앞으로는 기기가 수시로 자동 분석하게 된다.
 둘째 표본이 훨씬 크다. 앞으로는 환자의 첫 상태가 어떻든 의학적으로 아무런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정밀검사가 시작되는 일은 극히 드물 것이다. 병에 걸리거나, 뭔가에 감염되거나, 심한 발진이 나거나, 아니면 단순히 몸 상태가 안좋을 경우, 문제의 시작점은 어디일까? 손으로 어떤 물건을 집었을 때 그 손가락에서 시작됐을까? 아니면 오염된 공기에서 숨을 쉰 허파에서 시작됐을까? 아니면 칫솔이나 상한 음식, 더러운 화장실이 시초일까? 센서가 보내오는 방대한 규모의 샘플을 통해, 이전엔 꿈도 꾸지 못했던 많은 정보들을 접하게 될 것이다.

watson.JPG » 아이비엠의 슈퍼컴퓨터 왓슨. 위키미디어

 

 셋째 데이터 처리 능력이 탁월하다. 컴퓨터는 오랜 기간에 걸쳐 쌓인 1만개 이상의 사례들을 동시에 분석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넷째 연중무휴 근무가 가능하다. 의사는 저녁이 되면 지쳐 떨어져 나간다. 그러나 컴퓨터는 지치지 않는다.
 다섯째 외출하거나 대기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 없다. 의사를 만나려면 병원에 가야 한다. 또 의사가 누군가를 만나야 할 약속이 있다면 환자는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자가진단 시스템에 참여하게 되면 굳이 의사를 만나러 갈 필요가 없다. 기다릴 필요도 없다. 이미 실시간으로 모니터링된 정보가 축적돼 있어 환자들은 손쉽게 자신의 상태를 진단할 수 있다.
 여섯째 비용이 절감된다. 수시로 건강 정보를 체크하게 되니 자연히 값비싼 의사에게 가는 일이 줄어든다. 이는 다시 의료비용을 더 낮추게 될 것이다. 의사를 잊는 만큼 비용도 줄어든다.
 일곱째 정확도가 높아진다. 컴퓨터는 전세계 환자들의 데이터를 토대로 환자의 상황을 더욱 정확하게 분석해준다. 이는 진단의 정확도를 높여줄 것이다. 나노미터 또는 10밀리미터 크기의 세포 차원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초정밀도를 갖춘 컴퓨터의 정확성에 인간은 대적할 수가 없다.
 여덟째 진단 결과가 객관적이다. 의사들은 자신을 포함해 주변의 숱한 이해관계에 얽혀 있다. 예컨대 대형 제약사, 보험사, 정부의 의료정책 등이 의사 주변을 맴돈다. 이들은 의사들의 진단과 처방에 다양한 방법으로 제각기 영향을 미치려 한다. 컴퓨터에는 그럴 여지가 없다.
 

 그래도 의사가 컴퓨터보다 나은 8가지 이유


 그렇다면 컴퓨터의 뛰어난 능력 앞에서 의사들은 이제 서서히 자취를 감출 것인가? 토머스 프레이의 답변은 아니올시다이다. 그는 “앞으로 10년간 의료계 종사자들은 전환기를 맞을 것이지만, 소멸하게 될 다른 직업들과 달리 의사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컴퓨터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의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의사가 살아남는 이유는 뭘까? 
 첫째 불의의 사고에 대한 대처 때문이다.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숱한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것들이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건 아니다. 미리 대비를 해두면 사고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일단 사고를 당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인간적 접촉과 관심을 갈망한다. 이는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비정상적 사례에 대한 대처 때문이다. 기술은 그 기술의 전제가 통할 때에 유효하다. 그 전제조건 자체가 달라진다면 기술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의료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간 세계에선 기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비정상적 사고나 질병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04705476_P_0.jpg » 한겨레신문 강재훈 선임기자

 

셋째 새로운 질병의 등장 때문이다. 다른 생물 세계와 마찬가지로 질병의 세계 역시 계속해서 진화한다.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우리는 광우병이나 조류인플루엔자, 족저근막염 등에 대해 알지 못했다. 이 질병들은 최근에야 출현했고, 미래엔 이런 것들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
 넷째 인간적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컴퓨터가 냉정한 선택을 할 수는 있지만, 삶과 죽음을 선택하는 문제는 사람과 사람이 직접 부딪혀야 하는 실제 상황이다.
 다섯째 끊임없는 연구의 필요성 때문이다. 인간이 처한 상황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모든 것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에 의사들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
 여섯째 관리감독의 필요성 때문이다. 컴퓨터는 실수하기 쉬운 인간 대신 좀더 정확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대안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컴퓨터가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컴퓨터의 각 코드는 각기 특성을 갖고 있어서 누군가는 그에 맞게 기술적 점검을 해줘야 한다.
 일곱째 상시적 업데이트 필요성 때문이다. 인간 생물학은 정적인 과학이 아니다. 늘 변화한다. 따라서 새로운 정보가 등장할 때마다 거기에 맞게 모든 조건과 반응, 그리고 가정이 항상 업데이트돼야 한다.
 여덟째 한계를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우리가 명령하지 않는 한 제 스스로 알아서 ‘선 바깥’을 색칠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인간 문제를 다루는 인간 세상에 살고 있다. 이는 기계적인 사고를 넘어 창의성과 비범한 사고, 직감을 필요로 한다.
  

01538656_P_0.jpg » 진화하는 컴퓨터 능력 앞에서 의사와 컴퓨터는 어떤 관계를 이뤄갈까. 한겨레신문 류우종 기자
 

컴퓨터와 의사의 대결, 문제는 오진율

 

 결국 컴퓨터와 의사가 대결을 벌인다면 승자는 누가 될까. 프레이는 선마이크로시스템스 공동창업자이자 현재 코슬라 벤처스 대표인 비노드 코슬라가 201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헬스 이노베이션 서밋’ 행사에서 했다는 말을 소개했다.
 “현재 의사가 하는 일의 80%를 앞으로 기술이 떠맡게 될 것이다. 존스홉킨스대 연구 결과를 보면 매년 미국에서 4만여명의 환자가 오진으로 중환자실에서 죽어나간다. 다른 연구에서는 절차상의 문제, 팀워크, 의사소통 등의 시스템적 요인이 오진으로 이어진 경우가 전체의 65%에 달한다. 가장 일반적인 오진의 원인은 인지적 요인인데, 이는 초기 진단을 고집하고 다른 합리적인 대안을 무시하는 데서 비롯된다 . 오진 사례의 75%가 여기에 해당한다. 대용량 데이터와 컴퓨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기를 활용하면 의사보다 더 정확하고 객관적인 결과를 더 저렴하게 받아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계의 수준이 의사 숙련도의 80% 수준까지 높아져야 한다. 이렇게 되려면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할까.”
 프레이는 앞으로 우리는 근본적으로 지금과는 다른 의료시스템을 만나게 될 것이며, 그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기술이 얼마나 성숙해지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는 그러나 컴퓨터와 의사 간의 대결은 누가 이기고 지는 상황은 아니라고 진단한다. 컴퓨터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할 일은 계속해서 새롭게 생겨날 것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참고자료
토머스 프레이 사이트
http://www.futuristspeaker.com/2014/01/eight-reason-why-future-computers-will-make-better-decisions-than-doctors/#more-3960
왓슨 관련 기사
http://singularityhub.com/2014/01/14/ibm-still-slogging-away-to-market-watsons-ai-smarts-invests-1-bil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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