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명품 바이올린 소리는 진짜 다를까 사회경제

sn-violins.jpg » 바이올린 소리를 시험하고 있는 솔로이스트 일리야 칼러.sciencemag.org

 

거장들도 명품과 현대 바이올린 소리 구분 못해

악기상에겐 언짢지만, 서민 연주자들에겐 희소식

 

당신이 바이올린에 대해 뭘 좀 안다면, 아마 이 정도일 것이다. “300년의 역사를 지닌 스트라디바리우스는 현대의 바이올린이 따라올 수 없는 신비한 톤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최근 실시된 이중맹검(실험을 받는 사람도 실험자도 실제 어떤 것인지 모르고 하는 실험) 연구에 의하면 바이올린 거장들조차도 스트라디바리우스와 최고급 현대 바이올린의 소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2악장의 미세한 선율이 흐르는 동안 객석에서 터져나온 기침 소리처럼 이번 연구결과는 백만달러짜리 이탈리아산 희귀 바이올린을 거래하는 악기상들에겐 언짢은 소식이다. 그러나 값비싼 바이올린을 살 돈이 없는 상당수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이번 연구에 참가한 바이올리니스트 올리비에 샤를리에는“이탈리아산 명품 바이올린에, 재현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카를로 베르곤지(1683~1747)가 만든 바이올린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에 참가했던 또 한 명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이쟈 수잔 후는 테스트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연구진이 제공한 현대 악기는 최고의 품질을 가진 것이었던 데 반해 그들이 제공한 옛악기는 현존 최고의 악기는 아니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최근 과르네리(Bartolomeo Giuseppe Antonio Guarneri “del Gesu”)가 만든 바이올린을 연주한 경험이 있다.

800px-Stradivarius_violin,_Palacio_Real,_Madrid.jpg » 스트라디바리가 제작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스패니시2'. 위키미디오 코먼스.  

 

솔로이스트 10명 대상으로 실험

 

이번 연구결과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비밀’을 둘러싼 논란의 최종 라운드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일부 바이올리니스트, 바이올린 생산자, 과학자들은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1737)와 이탈리아 크레모나에 거주하는 그의 후계자들이 모종의 비결(예컨대 광택제나 목재)을 갖고 있으며, 이로 인해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비교할 수 없는 품질을 지니게 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과학자들은 이탈리아산 고악기와 현대의 고품질 악기를 구별하는 물리적 특질을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그들이 사용한 광택제와 목재(가문비나무와 단풍나무)는 특별하지 않았다. 더욱이 수십년간의 테스트 결과, 감상자들은 이탈리아산 바이올린과 현대 바이올린의 음색을 구분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산 희귀 고악기에 대한 맹신은 지속되어 왔다. 맹신자들은 “설사 감상자들은 불가능하더라도, 연주자들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2012년에 집중포화를 맞았다. 프랑스 피에르&마리퀴리대의 클라우디아 프리츠(악기 음향학)와 미국 미시건주 출신의 조지프 커틴(바이올린 제작자)이 21명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3개의 이탈리아산 바이올린과 3개의 현대 바이올린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겨우 6개의 악기를 비교했을 뿐이며, 연구 대상자들이 톱클래스의 솔로이스트가 아니었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더욱이 그 연구는 밀폐된 호텔에서 행해졌기 때문에 바이올린의 울림이 부족했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2012년9월 파리에서 진행된 명품과 현대 바이올린 소리 비교 실험 영상

 

이에 자극받은 프리츠와 커틴은 다시 연구진을 꾸려, 톱클래스의 솔로이스트들을 대상으로 좀 더 큰 규모의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진은 13개의 새 바이올린과 9개의 명품 바이올린을 섭외한 다음, 일주일 동안 10명의 전문 솔로이스트들을 파리 근교의 뱅센으로 초대했다. 연구진이 섭외한 바이올린 중에는 6개의 스트라디바리우스와 2개의 과르네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연구진은 연주자들에게 악기 이름을 알려주지 않고 ‘악기 하나를 마음대로 골라 연주하라’고 주문했다.
연주자들은 6개의 고악기와 6개의 현대악기를 연주했고, 솔로이스트들은 악기 소리를 듣고 고악기와 현대악기를 구별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솔로이스트들은 검은색 고글을 쓰고 55분 동안, 한 번은 작은 방에서, 한 번은 300석 규모의 강당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들었다. (연구진은 솔로이스트들에게 악기를 직접 시연해 보도록 허용했다.) 연주와 감상이 끝나고, 솔로이스트들은 느낌이 좋았던 악기 4개씩을 선택하여 조음(articulation), 음향 방사(projection), 연주 적합성(playability) 등을 10점 만점으로 평가했다. 최종적으로, 연구진은 각각의 솔로이스트들에게 자신들이 평가한 악기가 고악기인지 현대악기인지를 판단하게 했다.

 

799px-Vuillaume-Violin2.jpg » 과르네리 바이올린. 위키미디오 코먼스.

 

명품 악기보다 오히려 현대 바이올린 소리 선호

 
몇 번의 세션을 거치는 동안 솔로이스트들의 판단 결과는 일치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들이 고악기와 현대악기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놀라운 사실은 솔로이스트들이 고악기보다 현대악기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솔로이스트들이 선호하는 악기 목록을 분석해 보니, 현대악기와 고악기의 비율은 3:2였으며, 가장 인기가 높았던 악기는 ‘N5’라는 현대악기였다. 현대악기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은 연주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솔로이스트들의 감식력은 단순한 추측보다 나을 것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이상의 연구결과를 정리하여, 4월7일자 <PNAS> 온라인판에 기고했다.

 

"12개 바이올린 대상으로 했을 뿐" 확대해석 경계

 

연구진은 이번 연구의 규모가 작으며 주관성이 내포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우리의 관찰은 약 12개의 바이올린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이번 연구의 목표 중 하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바이올린을 통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인데, 이것을 과학적으로 정량화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예컨대 이번 연구에 참가했던 솔로이스트 중 한 명인 솔렌 파이다시는 “나는 딱 부러지는 소리보다는 약간 퍼져나가는 소리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 참가했던 연주자 중 상당수는 입을 모아 ”‘현대 바이올린이 명품 바이올린의 느낌을 그대로 재현할 수 없다’고 믿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 거금을 주고 명품악기를 사거나 빌릴 수 없는 젊은 연주자들에게 희소식”이라고 말했다.

26MUSIC-master180.jpg » 소더비 경매에 나올 스트라디바리 비올라(1719년 제작). 시작 가격은 4500만달러이다. 소더비 제공. 오는 6월 스트라디바리우스 비올라가 4500만달러에 경매에 붙여지며, 최근 과르네리 바이올린은 1600만 달러에 거래된 바 있다. 연구에 참가한 기오라 슈미트는 “나는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려면 이탈리아산 명품악기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 왔다. 그러나 지금은 제자들에게 진실을 말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한때 이탈리아 고악기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히로시 리츠카가 만든 현대악기를 사용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명품악기는 별 게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이쟈후는 ‘솔로이스트들은 한 번 쓰고 말 악기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함께할 악기를 선택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이번 연구의 작위성을 지적한다. “현대악기는 당장에는 소리가 괜찮을 수 있다. 그러나 명품악기는 소리가 다채로우며, 몇 달 이상 사용해야만 비로소 진가가 나타난다. 나는 에이버리 피셔 스트라디바리우스를 6년 동안 연주해 왔는데, 거기에 적응하는 데만 3년이 걸렸다”고 그녀는 말했다.

 

중요한 건 음질보다 장인의 예술작품이라는 점

 

“설사 현대 바이올린의 음질이 명품 바이올린에 필적하더라도, 명품 악기의 가격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는 ‘바이올린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를 내린 장인의 예술작품”이라고 이번 연구에 참가한 엘마 올리베이라는 말했다. 그는 수백만달러를 호가하는 과르네리를 보유하고 있지만, 콘서트에서는 종종 현대의 복제품을 사용한다. “우리는 마티스의 그림에 2억5000만달러를 지불한다. 그렇다면 스트라디바리우스에 2500만 달러를 지불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그는 반문했다.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악기를 선택하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로 많은 심적 압박감을 준다. 예컨대 파이다시는 현재 로렌조 스토리오니(1744~1816)의 바이올린을 보유하고 있지만, 내년이 되면 대여기간이 만료돼 재단에 반환해야 한다. 그녀는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N5와 같은 현대 바이올린을 찾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커틴은 문제의 바이올린을 생산한 업체가 어디인지를 비밀에 붙이고 있다.
 
출처
http://mirian.kisti.re.kr/futuremonitor/view.jsp?record_no=245681&cont_cd=GT 
KISTI 미리안 『글로벌동향브리핑』 2014-04-09     
원문 
http://news.sciencemag.org/brain-behavior/2014/04/elite-violinists-fail-distinguish-legendary-violins-modern-fiddles
※ 원문정보: Claudia Fritza, Joseph Curtinb, ”Soloist evaluations of six Old Italian and six new violins“, PNAS, Published online before print April 7, 2014, doi: 10.1073/pnas.1323367111

TAG

Leave Comments


profile한겨레신문 선임기자. 미래의 창을 여는 흥미롭고 유용한 정보 곳간. 오늘 속에서 미래의 씨앗을 찾고, 선호하는 미래를 생각해봅니다. 광고, 비속어, 욕설 등이 포함된 댓글 등은 사양합니다. 

Recent Track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