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이슈] 떨어져 교류하기...`문명의 뉴노멀'이 시작되려는 걸까 미래이슈

earth10.jpg » 세계보건기구는 사회적 거리두기 대신 물리적 거리두기란 말을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사회적 거리두기' 대신 `물리적 거리두기' 제안한 이유

백신, 치료제가 없는 `코로나19' 전염병의 가장 현실성 있는 효과적 대응책은 현재로선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내린 사회적 거리두기의 정의는 "다중시설이나 군중집회를 피하고, 가능한 한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를 2미터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도 종교, 체육시설, 유흥시설 운영 중단과 모임·외식·행사·여행을 최대한 자제하는 강력한 사회적 격리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3월22일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3주가 지났다. 정부가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 집행에 들어간 날 세계보건기구는 기자회견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대신 `물리적 거리두기'(physical distancing)란 말을 쓰자고 제안했다. 팬데믹 퇴치를 위해선 서로 몸은 서로 떨어져 있되 사람간 소통과 협력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육체건강만큼 중요한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소셜 네트워크는 유지돼야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 교수 자밀 재키(Jamil Zaki)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애초부터 잘못된 용어였다며 `물리적 거리두기'는 곧 `원격 교류'(distant socializing)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우리가 사회망을 찢어버린다고 비난하는 바로 그 기술이 지금 우리를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대면 접촉에만 익숙했던 직장 일과 학교 공부, 종교 생활 등을 온라인상으로 원격 처리하고 경험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earth11.jpg » 사회적 거리두기의 효과. 위키미더 코먼스

인간 진화 방향과 맞지 않는 거리두기

거리두기는 사실 인간의 진화 방향과는 맞지 않는 정책이다. 사회적 교류와 협력, 연대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우뚝서게 한 결정적 요인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기술문명은 협력과 거리두기가 동시에 가능한 세상을 열었다.
그런데 물리적 거리를 둬야 할 대상은 사람만이 아니다. 코로나19는 인간은 이제 자연과도 거리를 둘 필요가 있음을 깨우쳐 준다. 바이러스가 우리 몸 속으로 들어온 건 숲속에 있던 바이러스 숙주 동물들의 터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인간 번영의 역사는 곧 동물 쇠락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지구 생물종의 다양성을 허물어뜨렸다. 20세기 이후 멸종 속도는 그 이전에 비해 50~100배  빨라졌다. 하루에 150종이 멸종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earth15.jpg »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지역.

다양성이 감소하면 종 생존력도 약화

다양성의 감소는 생존력의 약화를 부른다. 다양한 특성을 발현하는 유전자들이 있어야 환경 변화를 이겨내고 적응해갈 수 있다. 유전적 다양성이 사라지면 면역방어체계도 단순해져 질병에 취약해진다. 지구상에서 생물다양성 핫스팟으로 꼽히는 마다가스카르, 남미 열대우림 등에 있는 식물 50%, 척추동물의 42% 이상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이른바 `신토불이' 토종들이다.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곳에 지구상 식물의 67%, 척추동물의 50%가 살고 있다. 이들 지역은 한때 지구 육지 면적의 24%나 됐다. 하지만 지금은 8%로 줄었다. 더구나 수십년 안에 사라질 수도 있는 멸종위기종으로 좁혀 보면 조류, 포유류, 양서류 세 척추동물그룹의 80~90%가 이들 지역에 몰려 있다.
생물 다양성은 인간의 언어 및 문화 다양성과도 직결돼 있다. 2012년 영국 옥스퍼드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국제보호협회(Conservation International) 과학자들은 세계 언어의 70%가 생물 다양성이 높은 곳에 분포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6900여개의 언어 중 4800여개가 생물 다양성이 높은 지역에서 발생했다.  이들 언어의 절반 이상이 역시 이번 세기 안에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1만명 미만의 사람들이 쓰는 언어의 3분의2가 생물 다양성 우선보호지역에 있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파푸아뉴기니는 전세계 땅의 0.5%에 불과하지만 세계 언의 10%가 이곳에 있다.
diversity.jpg » 언어다양성이 풍부한 지역.

자연과 거리두기가 필요한 이유

생물 다양성과 언어 다양성이 서로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다양한 가설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서로 떨어져 있었다'는 점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지역의 자연 자원이 풍부해 외부세계와 교류할 필요성이 적은 곳일수록 다양성이 풍부했다. 물산이 풍부하다면 굳이 먹거리를 찾아 다른 곳으로 이동할 필요가 없다. 다양성의 기반은 바로 각자의 공간을 온전하게 유지한 것이었다. 
동물한테도 그들의 공간을 보장해준다면 바이러스가 인간세계로 건너올 일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물리적 거리두기가 아닌 자연과 거리두기는 과연 가능할까? 지식과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자연과의 `각자 공생'을 구현할 수 있는 선택지를 넓혀가고 있다. 예를 들어 인수공통감염병의 뿌리라 할 육식 문화를 살펴보자. 2009년 신종플루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돼지축사에서, 1997년 조류인플루엔자는 중국 닭농장에서 시작됐다. 고기를 공급하는 공장식 축사, 은밀한 동물 거래 시장 등이 바이러스 배양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고 가장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인 고기를 먹지 않을 순 없다. 어떻게 할까? 식물에서 단백질을 뽑거나 세포를 배양해 고기를 만드는 신기술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사육 동물을 줄이고, 덩달아 감염병 위험도 그만큼 피할 수 있는 길이다. 온실가스 배출, 항생제 오염, 자연 파괴 등 육식 문화가 초래한 여러 걱정거리들도 줄어든다. 목재나 광물 등의 자원 소비 방식에서도 자연을 덜 쓰는 기술 개발에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Adaptacion_746x419.jpg » 기후변화는 20세기 성장의 결과물이다. https://www.iberdrola.com/environment/climate-change-mitigation-and-adaptation

이젠 지구 공동체를 위해 자연과 거리를 두자

20세기 이후 지난 100년간 인류는 그야말로 숨가쁘게 달려왔다. 21세기의 기후변화와 불평등, 저성장, 저출산은 그 결과다. 세계 인구는 정점에 근접해 가고 있고 자연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문명의 뉴노멀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왔음을 알려주는 전령사인 셈이다.
재키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것은 친절을 베푸는 행위다. 젊고 건강한 사람들은 코로나19에 감염돼도 상대적으로 위험이 낮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을 스스로 격리하는 것은 공동체의 취약층을 보호하는 길이다. 지금은 격리가 곧 연대다." 사회 공동체를 두고 한 얘기지만, 이를 지구 공동체로 확대하면 인간(젊은이)과 자연(취약층) 사이에도 똑같은 충고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지면 기사(2020.4.13)

출처
새균형점 찾자
단백질 섭취 방식의 다변화 필요
사회적 거리두기는 진화 역행
사회적 네트워크가 강해야 회복도 빠르다
보건기구, 물리적 거리두기로 변경
서식지 파괴가 문제
작물다양성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줄인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성장했다
-미 휴스턴대 경제학 교수 디트리히 볼래스 저서 `이미 충분히 성장했다'(fully grown)에서 저성장은 20세기 성공의 자연스런 결과
전세계 불법 야생동물 거래 시장은 230억달러 추정(유엔)
진화생물학자 롭 왈라스가 보는 감염병
직장과 거리두기
대중교통을 어찌할 것인가
사회적 거리두기 효과
과거 사회적 격리 효과 사례

<생물다양성과 언어다양성 관계>
생물다양성과 언어다양성
논문보기
기후가 좋아 식량 생산이 안정적이라면 식량을 찾아 이동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소규모 언어권이 많이 생긴다/생물 다양성도 마찬가지
/따라서 언어 다양성 지도와 생물 다양성 지도는 비슷한 패턴/예컨대 적도 주변이 다양성이 높고 극지로 갈수록 떨어져/동물이 살기 어려우면 사람도 살기 어려워
파푸아뉴기니는 세계 땅의 0.5%지만 세계 언의 10%가 이곳에 있어
생물도 언어도 다양해야 건강하다
TAG

Leave Comments


profile한겨레신문 선임기자. 미래의 창을 여는 흥미롭고 유용한 정보 곳간. 오늘 속에서 미래의 씨앗을 찾고, 선호하는 미래를 생각해봅니다. 광고, 비속어, 욕설 등이 포함된 댓글 등은 사양합니다. 

Recent Track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