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열린 사무실'의 역설...대화의 문이 닫히다 사회경제

f12.jpg » 2015년에 입주한 페이스북 새 사옥의 사무실. 아무런 칸막이도 없다. 오른쪽은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의 책상. 유튜브 갈무리(https://www.youtube.com/watch?v=oezaJ4p6Czc)

소통·협업 위해 개방형 사무실로 전환

 

오늘날 기업들은 직원들간의 원활한 소통을 강조한다. 탁 트인 공간 안에서 직원간 교감을 활성화해 업무 효율과 생산성, 창의성을 높이겠다는 심사에서다. 이를 위해 직원간의 벽, 즉 칸막이를 허무는 기업들이 크게 늘어났다.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는 게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은 2015년 미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에 축구장 7개 크기의 개방형 사옥을 지어 이사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당시 유튜브로 직접 `열린 사무실'을 소개하며 “2800여 직원들이 자유롭게 오고가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세계 최대의 개방형 사무실”이라고 의미를 두었다.

도대체 어떤 모습이길래 이런 자화자찬을 늘어놓았을까? 세계 최대 개방형 사무실을 내세우는 이 업무 공간은 거대한 원룸이다. 세련된 인테리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4만㎡ 건물 내부는 마치 거대한 창고를 연상케 한다. 당시 외신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직원들에게 주어진 건 가로 150㎝의 하얀색 책상 하나뿐이다. 책상 위엔 노트북피시와 모니터, 몇가지 소품만 있을 뿐이다. 책상 아래나 옆엔 별도의 서랍도 없다. 여기에 의자와 작은 파일함이 전부다. 흔히 볼 수 있는 파티션도 없고, 코트를 걸어놓는 옷걸이도, 업무용 전화기도 없다. 책상은 부서별로 5~6개씩 다닥다닥 붙어 있다. 업무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시이오인 저커버그라고 해서 다르지도 않다. 그도 사원들과 똑같은 책상에서 일한다. 천장 높이는 무려 8미터다. 업무 공간의 개방감을 높이기 위해서다. 3년이 지난 지금 페이스북은 과연 계획했던만큼의 효과를 거두고 있을까? `열린 사무실'은 과연 미래지향적인 공간 설계일까?

 

f16.jpg » 연구진이 측정에 활용한 `사회성 측정 전자뱃지'. 마이크와 함께 사용자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세개의 센서가 내장돼 있다. 논문에서 인용

 

직접대면 줄고 이메일 늘고…생산성이 떨어졌다

 

칸막이를 없애고 직원간 직접대면을 유도하는 방식의 사무실 공간배치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애초 의도와는 달리 개방형 사무실이 오히려 직원간 협력이나 의사소통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미 하버드대 연구진은 최근 영국 <왕립학회보B>(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B)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실제 기업 사례를 연구한 결과를 소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개방형 사무실로 바꾼 뒤 직원끼리 서로 직접소통하는 시간은 70%가 적어졌다. 대신 이메일 사용량은 50% 이상 늘었다.

연구진은 경영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 가운데, 사무실 구조를 전통 칸막이형에서 개방형으로 바꾼 두 회사를 골라 직원간 소통 형태와 방식의 변화 양상을 조사했다. 조사 방법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사원증처럼 생긴 전자뱃지를 착용하게 하고, 내장돼 있는 센서로 직원간 소통 정보를 기록했다. 다른 하나는 직원들의 이메일 사용량 변화를 조사했다. 정보 수집은 사무실 구조개편 이전과 이후로 나눠 각각 수주일에 걸쳐 두 단계로 진행했다.
한 회사는 52명, 다른 회사는 100명이 실험에 참가했다. 실험 결과 두 그룹 모두에서 직원간의 직접대면 소통이 현저히 떨어졌다. 52명이 참가한 기업의 경우, 직원간 하루 대면 시간은 평균 5.8시간에서 1.7시간으로 70% 이상 줄었다. 사무실 리모델링 개편 전과 후 3주씩을 관찰기록한 결과다. 보내는 이메일 건수는 56% 늘었고, 다른 직원한테 받는 이메일은 20%, 참조이메일 수신량은 41%가 각각 늘었다. SNS 같은 인스턴트 메시지 사용량은 67%나 급등했다. 100명이 실험에 참가한 기업도 결과는 비슷했다. 직접대면 시간은 67~71% 줄었고, 이메일 사용량은 22~50% 늘었다. 이 기업에선 리모델링 전과 후에 걸쳐 8주씩 관찰했다. 두 회사의 임원들은 하나같이 직원들의 업무 생산성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내렸다.
연구진은 "조직이 사무실 구조를 개방형으로 바꾸는 것은 직원간 직접 소통을 통해 좀더 활기찬 근무 환경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개방형 사무실에서는 사람들이 헤드폰을 쓰거나 바쁜 척하는 등의 방식으로 자신을 다른 사람과 격리시키려 노력했다."고 분석했다. 사실 개방형 사무실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설문조사 등을 통해 그동안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러나 이번 연구 결과는 처음으로 객관적 지표를 통해 이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WeWork_Yunnan-final-large-12.jpg » 위워크 서울역점 사무실. 위워크 웹사이트

열린 사무실이 집단지성을 자극하는 건 아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토대로 `열린 사무실' 문제와 관련한 세 가지 논점을 제시했다. 첫째는 열린 사무실이 반드시 교류를 촉진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는 집단지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곤충 등의 사회적 행태를 근거로 열린 공간이 집단지성을 촉진시킬 것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달랐다. 연구진은 그래서 집단지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적정한 수준'이 뭘지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셋째는 열린 사무실로의 전환은 교류 채널별로 다른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개방성은 직접대면을 줄이고, 이메일 소통을 늘렸다. 디지털 세대는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할 것이다. 열린 사무실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물론 개방형 사무실을 일방적으로 매도할 건 아니다. 개방형 사무실을 채택하는 데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 어떤 환경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일에 대한 적극성이나 의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갈수록 일의 성격이 복잡해지고 있는 흐름을 고려하면 서로 다른 업무를 하는 직원들 사이에, 그리고 사원과 조직 리더 사이에 얼마나 잘 소통이 이뤄지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에 따라 지난 20년 사이에 회사원들이 협업에 보내는 시간이 50% 이상 늘어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다른 사람들과 자주, 건전한 교류를 하게 되면 자연스레 상호간 소통과 협업 증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업무공간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공동작업 공간 서비스 업체인 위워크(WeWork)는 사람들이 원하는 공간의 특성을 잘 파고든 사례라 하겠다.

 

f14.JPG » 고정된 자리를 없앤 개방형 사무실도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위험 수준에 이른 사무실 소음…적정선을 찾아야

 

핵심은 적정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영국의 연구조사기관 옥스퍼드 이코노믹스(Oxford Economics)에  따르면, 21세기 들어 확산되고 있는 개방형 사무실 열풍은 적정선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 이 기관은 2015년부터 개방형 사무실의 효과를 조사해고 있는데, 최근 미국, 인도, 독일, 호주, 중국 등 10개국 500명의 고위임원과 평사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63%가 사무실에서의 소음 때문에 일에 집중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이는 생산성과 업무 만족도 등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요소다. 이 기관은 "사무실의 소음이 전염병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소음에 노출되지 않고 일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에 있다고 답변한 사람은 1%에 불과했다. 이는 2015년 첫 조사때의 20%와는 비교도 안되는 비율이다. 젊은 직장인일수록 사무실의 소음에 더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임원들의 절반 이상(54%)은 이런 상황을 잘 인식하지 못했다. 이들은 부하 직원들이 소음과 산만함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반면 이에 동의한 사원들은 29%에 불과했다. 이것 역시 3년전의 41%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사원들이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 선택한 대안은 일거리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것(75%)과 헤드폰을 사용하는 것(32%)이었다.
공간밀도가 높은 개방형 사무실은 왜 협업으로 이어지지 못할까? 상호교류와 협업을 증가시키는 동력은 집중력에서 나온다. 그런데 개방형 사무실은 주의산만을 불러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뇌의 인지적, 정서적 활동력 저하되는 것이다. 그 결과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고 실수 빈도는 잦아지고, 업무 성과는 떨어진다. 이는 개방형 사무실의 애초 목표였던 소통과 협업에 대한 욕구를 꺾고, 대신 자기를 방어하는 행동을 부추긴다. 결론은 직장에서의 협업이 중요한 만큼 개인이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대 경영자들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딜레마다.

 

f15.JPG » 미국 실리콘밸리의 삼성 미주총괄 본사. 개방형 사무실을 콘셉트로 내세웠다. 삼성전자 제공

 

감각기관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라

 

그렇다면 어떻게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할까?
영국 본드대의 리비 샌더(Libby Sander) 교수(조직행동학)는 <더 컨버세이션>에 기고한 글에서 "조직내 구성원들은 같은 환경에서 근무하더라도 그 환경을 서로 다르게 바라본다"며 "따라서 일률적인 공간 설계 방식보다는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많은 고용주들이 프라이버시와 집중력 대신 협업과 소통을 촉진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며 "이는 생산성과 업무 관계 모두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따라서 조직의 리더들은 협업뿐 아니라 프라이버시와 집중력을 지원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프라이버시는 직원 책상 간의 물리적 거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시각적, 청각적 프라이버시 장치를 말한다. 청각적 프라이버시는 물론 소음 차단이다. 시각적 프라이버시는 뭘까? 사무실의 전반적인 레이아웃과 디자인을 가리킨다. 샌더 교수는 이에 덧붙여 자연 조망이나 채광, 눈으로 예술적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업무 집중력을 높여준다고 말했다. 시각과 청각은 인간이 흡수하는 정보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감각기관이다. 그 감각기관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일의 집중력, 결과적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관건인 셈이다.

 

출처
http://newspeppermint.com/2018/07/19/m-office/
https://techcrunch.com/2018/07/13/yes-open-office-plans-are-the-worst/
https://kottke.org/18/07/open-offices-result-in-less-collaboration-among-employees
http://www.bbc.com/capital/story/20180718-open-offices-make-people-talk-less-and-email-more
https://www.nbcnews.com/better/business/open-office-plan-hindering-your-productivity-here-s-how-make-ncna893586
논문 보기
http://rstb.royalsocietypublishing.org/content/373/1753/20170239
옥스포드 이코노믹스 설문 결과(2018)
http://newsroom.plantronics.com/print/node/3369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연구(2016)
https://www.oxfordeconomics.com/my-oxford/projects/336497
협업 증가 논문
https://dialnet.unirioja.es/servlet/articulo?codigo=5543898
개방형 사무실 부작용
http://www.ciokorea.com/news/35601
https://cafe.naver.com/tqcquality/86321
탈개인화 사무실
https://blogs.scientificamerican.com/anthropology-in-practice/resisting-the-depersonalization-of-the-work-space/?

 

페이스북 신사옥 관련 보도들
http://qz.com/373448/photos-facebooks-new-headquarters-designed-by-frank-gehry/

http://superich.heraldcorp.com/superich/view.php?ud=201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the-switch/wp/2015/11/30/what-these-photos-of-facebooks-new-headquarters-say-about-the-future-of-work/
51120000007&sec=01-74-02&jeh=0&pos
=
http://ksc12545.blog.me/220322453516
페이스북 사무실 사진

https://www.instagram.com/explore/tags/mpk20/

주커버그의 소개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l--zev_37QA

https://www.youtube.com/watch?v=jIHHXSI4eMw

개방형 사무실의 역효과

http://qz.com/85400/moving-to-open-plan-offices-makes-employees-less-productive-less-happy-and-more-likely-to-get-sick/

개방형 사무실은 지난 유행일뿐

http://www.fastcoexist.com/3046415/is-the-open-office-trend-reversing-itself
구글의 새 사무실

https://googleblog.blogspot.kr/2015/02/rethinking-office-space.html

애플의 새 사옥

http://mashable.com/2014/08/31/drone-reveals-apple-spaceship-campus/#hShV9oO_ruq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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