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콩코드 탄생 50년...`조용한' 초음속 여객기가 온다 우주항공

con1.jpg » 1969년 3월2일 프랑스 툴루즈공항에서 이뤄진 콩코드 001기 첫 시험비행. 위키미디어 코먼스

1960년대 체제경쟁이 낳은 꿈의 기술

 

"더 멀리, 더 빨리!"
스포츠 경기에서 흔히 보던 구호다. 그런데 동-서 냉전이 절정을 향해 치닫던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이 이동기술을 놓고, 이런 경쟁을 벌였다. 냉전시대의 미-소 대립과 경쟁은 군사뿐 아니라 다른 부문의 경쟁까지 촉발하면서 기술 발전을 가속화했다. 체제 우위를 과시하고 실현하기 위해 두 진영은 국가가 갖고 있는 인력과 기술, 자금을 총동원하다시피 했다. 달 착륙은 그렇게 해서 예상보다 훨씬 빨리 이뤄졌다. 그만큼 인류에게 주는 감동은 더욱 드라마틱했다. 이것 못잖게 두 진영이 온힘을 다해 개발 경쟁을 벌인 것이 초음속 여객기다. 달 착륙이 `더 멀리' 경쟁이었다면, 초음속 여행은 `더 빨리'  경쟁이었다.
공교롭게도 달 착륙과 초음속 비행 모두 올해 50주년을 맞았다.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Concorde)가 프랑스 툴루즈에서 첫 시험비행을 한 날이 1969년 3월2일이었다. 콩코드는 당시 여객기보다 두배나 높은 고도(1만9812m)에서 음속의 두배 속도(2165km, 최고 2180km)로 날았다. 런던에서 뉴욕까지 불과 3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았다. 승객 100명을 태운 채 웬만한 전투기보다 빨리 날아갔다. 지구 자전 속도(적도 기준 시속 1670km)도 추월했으니, 콩코드를 타면 서쪽에서 해가 뜨는 진기한 현상을 볼 수 있었던 셈이다.

con3.jpg » 콩코드 조종실 내부. 위키미디어 코먼스

 

미국이 아닌 영국-프랑스가 만든 이유


미-소 냉전의 정점에서 탄생한 콩코드는 그러나 서방의 대장나라 미국이 아닌 영국과 프랑스 합작품이다. 미-소 두 거인 사이에 낀 유럽 전통 강국의 위상을 되찾으려는 고심의 산물이었다. 두 나라가 오랜 역사적 앙숙 관계이면서도 손을 맞잡은 이유다. 초음속 여객기의 이름을`화합'이라는 뜻의 콩코드로 정한 데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영국항공기법인(BAC)과 프랑스 쉬드아비아시옹(Sud-Aviation)이 1962년 두 나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발벗고 나섰다.

우리에겐 콩코드란 이름만 익숙하지만, 사실 콩코드가 유일한 초음속 여객기는 아니었다. 소련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소련 역시 항공우주공학자 안드레이 니콜라예비치 투폴레프(Tupolev)의 주도 아래 1964년부터 초음속여객기 개발을 시작했다.
오히려 초기 개발 속도는 소련이 빨랐다. 소련은 1968년 12월31일 모스크바 인근 주코프스키공항에서 초음속기 투폴레프(Tu-144) 시험비행을 했다. 콩코드 시험비행 두달여 전이었다. 초음속 비행도 1969년 6월5일 먼저 달성했다. 콩코드가 음속을 돌파한 건 10월1일이었다. 투폴레프가 공개되자 콩코드 개발팀은 소련이 스파이를 내세워 기술을 훔쳐간 건 아닌지 의심했다. 새 부리처럼 늘어뜨린 동체 앞부분 외관이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조종석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빚어낸 우연의 일치였다.

 

con-Russian_Tu-144LL_SST_Flying_Laboratory_Takeoff_at_Zhukovsky_Air_Development_Center.jpg » 러시아의 초음속 여객기 투폴레프(TU-144). 위키미디어 코먼스

시험비행과 음속 돌파는 소련이 앞섰지만

 

투폴레프는 고도 1만6000미터에서 시속 2000km(마하 1.6)로 날아갈 수 있는 성능을 갖췄다. 소련은 그러나 1973년 파리 에어쇼에서 추락사고가 난 이후론 초음속기 개발에 소극적인 태도로 돌아섰다. 그러는 사이 판세가  역전됐다. 콩코드가 먼저 취항해 버린 것이다. 콩코드는 1976년 1월 대서양 항로를 오가는 노선에 정식 취항했다. 애초 7천만파운드 예상을 훨씬 초과한 13억파운드의 개발 비용을 투입하는 전력투구의 결과였다.
소련도 이보다 약 2년 늦은 1977년 11월부터 초음속 여객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1978년 5월 성능을 업그레이드한 새 기종이 시험비행에서 추락하면서 여객 서비스는 영원히 접었다. 투폴레프의 여객 수송은 이 짧은 기간 동안 모스크바와 알마티공항을 오간 55편이 전부였다. 투폴레프는 이후 화물 전용기로 전환해 1983년까지 운항하고 퇴역했다.
콩코드는 20여년간 독주했다. 하지만 끝내 벽을 넘지 못하고 2003년 10월24일 비행을 끝으로 역사의 무대로 퇴장했다. 콩코드는 시제품 6대를 포함해 모두 20대가 제작됐다. 브리티시항공과 에어프랑스가 각각 7대씩 구입해 27년간 운용했다.

 

Concorde_Air_France_Flight_4590_fire_on_runway.jpg » 200년 7월25일 파리 샤를드골공항에서 이륙 도중 화염에 휩싸인 콩코드기. 위키미디어 코먼스

콩코드가 넘어서지 못한 세가지 벽


무엇보다 안전 불안감이 결정적이었다. 콩코드는 취항 이후 한 차례 타이어가 펑크난 것을 제외하곤 20여년간 아무런 사고도 없는 가장 안전한 여객기였다. 그런데 2000년 7월 발생한 단 한 번의 사고가 치명적이었다. 파리 샤를드골 공항을 출발한 뉴욕행 에어 프랑스 콩코드가 이륙 직후 폭발해 추락하면서 승객과 승무원 109명 전원이 사망하는 참극이 일어났다. 기체 결함이나 조종사 실수가 아닌 불운의 결과로 판명나 1년 후에 운항을 재개했지만 사람들은 이제 콩코드를 타려 하지 않았다. 
음속을 돌파할 때 공기와 기체가 부딪히면서 공기 저항력이 4배로 커지면서 나는 소닉 붐(음속폭음=음폭)도 운항의 큰 걸림돌이었다. 음폭 문제가 불거지면서 1976년엔 모든 주문 물량이 취소됐다. 소음 문제로 운항할 곳이 제한돼 대양을 건너는 항로만 가능했다.  미국에선 이 때문에 초음속기의 내륙 운항을 금지했다.
값비싼 요금도 눈총의 대상이었다. 1997년 뉴욕-런던 왕복 요금은 7995달러(2018년 기준 1만2500달러)였다. 당시 가장 싼 여객의 30배나 되는 요금이었다. 때문에 콩코드는 부자들, 그것도 아주 큰부자들 전용기나 마찬가지였다.

 

con-Boeing_2707_mock-up.jpg » 미국이 개발하려다 포기한 초음속 여객기 `보잉2707' 모형. 미 캘리포니아 샌카를로스의 힐러항공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미국은 왜 초음속 여객기를 포기했나

 

1960년대 미국이 초음속 여객기 개발을 시도하지 않은 건 아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달 착륙 도전에 이어 콩코드보다 뛰어난 초음속 여객기 개발을 지시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콩코드 개발을 시작한 지 1년 후의 일이었다. 연방항공국(FAA)은 보잉을 앞세워 초음속 여객기 `보잉 2707' 개발에 나섰다. 사양은 마하 2.7의 속도에 승객 27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여객기였다. 모형 제작까지 마친 상태에서 여러 문제들이 터져 나왔다. 음폭 등의 환경문제, 엄청난 자금부담 문제 등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자 미국 정부와 의회는 결국 1971년 개발 작업을 취소했다. 초음속기의 기술적, 환경적, 경제적 부담 앞에서 손을 든 것이다.

보잉은 초음속기 대신 400명이 넘는 승객이 탈 수 있는 `보잉 747' 개발에 주력했다. 항공여행의 대중화를 내다본 결정이었다. 점보제트여객기의 대명사격인 보잉 747의 첫 시험비행도 마침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보잉은 최초 초음속 여객기의 명예를 콩코드에 내줬지만,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장수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콩코드와 비슷한 양의 연료로 훨씬 싼 요금에 콩코드 3배 이상의 승객을 수송하고 있다. 이솝의 우화처럼 거북이와 토끼 경주에서 거북이가 이긴 셈이다. 보잉 747의 장수는 보잉을 잡겠다고 2007년 취항한 555석 규모의 에어버스 슈퍼점보기 A380이 수요가 없어 2021년 생산을 중단하기로 한 것과도 대조된다.

boom.jpg » 붐 수퍼소닉의 초음속 여객기 상상도. 붐 수퍼소닉 제공

콩코드보다 1000배 조용한 초음속기 개발중

 

한동안 꺼져 있던 초음속 여객기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다시 추진되는 초음속 여객기의 가장 큰 화두는 저소음이다. 이번엔 정부가 아닌 민간기업들이 앞장섰다. 붐 수퍼소닉(Boom Supersonic)과 에어리온(Aerion), 스파이크 에어로스페이스(Spike Aerospace) 등이 선두 주자들이다. 우주개발산업에서 스페이스엑스, 블루오리진 같은 신생기업들이 `뉴스페이스' 시대를 개척해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들 역시 콩코드와 마찬가지로 일단 대서양 횡단 노선을 겨냥하고 있다. 2020년대 중반 취항을 목표로 세 곳 모두 이미 항공기 선주문까지 받았다. 붐은 소형 여객기 시장을, 에어리온과 스파이크는 비즈니스 전용기 시장을 노린다.
개발 일정에서 가장 앞서 있는 곳은 붐 수퍼소닉이다. 영국 버진(Virgin) 그룹과 덴버(Denver)가 합작해 설립한 붐은 올해 안에 초음속기 오버처(Overture, 마하 2.2=2715km)의 시제기 XB-1(일명 `베이비 붐') 첫 시험비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최근 시제기 제작에 필요한 1억달러 투자금 유치 행사를 마쳤다. 오버처의 3분의 1 크기인 이 시제기는 현재 콜로라도주 센테니얼에서 조립중이다. 시험비행이 성공할 경우 2019년은 초음속 여객기 부활의 원년이 될 수 있다. 향후 완성될 오버추어는 55인승으로 콩코드의 절반 크기다. 소음은 콩코드의 30분의 1 수준이 목표다. 요금은 현재의 비즈니스석 수준에서 책정할 생각이다. 버진그룹과 일본항공(JAL)이 이미 30대를 선주문한 상태다.
에어리온은 보잉, 제너럴 일렉트릭(GE)과 함께 음속 1.6배의 속도로 최대 8800km까지 날 수 있는 12인승 비즈니스 전용기를 개발중이다. F15 전투기에 적용했던 스텔스 기술을 활용한다. 단 이 기술은 소형 항공기에서만 적용할 수
있다. 지난해 개념 설계를 마쳤고 2020년 6월까지 예비설계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2023년 첫 비행을 목표로 한다. 에어리온은 탑승 인원을 더 늘린 소형 항공기 버전도 개발할 계획이다.
보스턴에 본사를 둔 스파이크 에어로스페이스가 개발하고 있는 초음속 여객기는 스파이크 에스512(Spike S-512)다. 소음 수준을 75데시벨(찰싹 때리는 정도의 소음) 이하로 줄이는 걸 목표로 한다. 이미 2017년 준음속 시제기 SX-1.2 시험비행을 7차례나 한 바 있다. 현재는 GE, 롤스로이스를 대상으로 엔진을 선정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지멘스가 개발 비용을 지원한다. 12~18명의 승객을 태우고 마하 1.6 (1100mph) 속도로 최대 6200km를 비행한다는 구상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스파이크 역시 2대를 예약받았다. 4대의 시제기를 만들어 2년 후 시험비행을 한 뒤 2020년대 중반 정식 취항할 계획이다. 

 

concept-vehicle_630x410.jpg » 보잉의 극초음속 여객기 상상도. 보잉 제공

성능 일변도 경쟁에서 내실 추구로 전환


오랜 전통의 항공기 제조업체들도 뛰어들 태세다. 미국의 대표 항공기제조업체 보잉은 지난해 6월 마하5(시속 6400km)의 극초음속 여객기 구상(넥스트 하이퍼소닉)을 공개했다. 그러나 아직 항공기 이름을 포함해 상세한 개발 청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2029년 첫 비행이 목표다. 앞서 4월엔 록히드마틴이 미 항공우주국(나사)과 함께 초음속 시험기(X-59 QueSST)를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이 초음속기는 순전히 저소음을 테스트하기 위한 것이다. 고도 1만6700미터에서 음속의 1.2배인 시속 1512km의 속도로 날면서도 지상에선 자동차 문 닫을 때 정도의 소리만 나도록 하는 기술을 확보하는 게 목표다. 실현될 경우 "콩코드보다 1000배나 조용한" 초음속기가 탄생하게 된다. 2021년 시험비행을 계획하고 있다.

다시 추진되는 초음속 여객기 시대의 또 하나의 특징은 외형보다 내실을 추구하는 것이다. 누가 더  빨리 갈 수 있는 여객기를 개발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실용적인 초음속기를 개발하느냐가 중점이다. 기술 개발의 중심이 고성능에서 고효율로 옮겨갔다. 물론 무소음 초음속 여객기가 향후 항공시장에서 어떤 경쟁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안전성과 경제성, 편의성을 얼마나 갖추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반응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지난 20년(1997~2017) 사이 세계의 국제여행객 수는 6억8천만명에서 15억7천만명으로 2배 늘었다. 갈수록 국가간 이동이 빈번해지는 시대에 대륙간 이동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건 큰 이점이다. 비용과 편익 사이에서 고민하는 소비자들에게 초음속기가 어떤 가성비를 제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con2.jpg » 영국항공이 운용했던 콩코드기. 위키미디어 코먼스

 

오랜 기간의 기반기술 축적이 경쟁력

 

하지만 명심할 게 있다. 이들 기업들이 등장할 수 있는 바탕엔 수십년 전 오랜 기간 국가 비전과 역량을 모아 쌓은 기술력과 개발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주로켓이나 초음속기 같은 거대 기술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다. 한국의 우주로켓 엔진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김진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엔진개발단장은 최근 한 강연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민간 기업들이 뉴스페이스 시대를 열 수 있는 것은 각 부문의 기반 기술들이 이미 확보돼 있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엑스의 놀라운 성과들은 자체 기술 개발보다는 흩어져 있는 기반 기술들을 잘 엮어낸 데서 비롯됐다." 오늘날 선진국의 많은 스타트업이 초음속기 개발에 도전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 번 쌓은 기반은 이후의 기술발전을 뒷받침하는 버팀목이다. 먼 나라에서 전개되는 뉴-스페이스 시대와 초음속 여객기 부활 움직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지면 기사

http://www.hani.co.kr/arti/science/future/883427.html

출처

콩코드 이야기

https://newatlas.com/concorde-50-years-first-flight/58609/

콩코드 첫 시험비행

https://www.aerotime.aero/clement.charpentreau/22422-history-hour-50-years-ago-the-maiden-flight-of-the-concorde

콩코드와 투폴레프
보잉 2707
에어버스 380
차세대 초음속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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