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존재, 농민(하)- 농가 80%, 농사로 입에 풀칠만 한다

3. 판매액, 소득으로 본 농민의 초라한 현실

한해 2000만원 이상 파는 농가는 고작 20%
전체 농가의 42%는 500만원어치도 못팔아

농민 실상을 들여다보는 이 기획 첫회 [ 1. 한 세대만에 급격히 준 농민 비중 ]에서는 농민의 비중이 급격하게 줄고 동시에 중간 규모 농가가 몰락하면서 소규모 농가는 급증한 양상을 들여다봤다. 또 두번째 [ 2. 고령화, 고립화로 위축되는 농민 ]에서는 이렇게 줄어든 농민들의 구성을 더 세밀하게 봤다. 마지막으로 이번에는 농가의 농산물 생산과 판매에 초점을 맞춰 살핀다. 이와 함께 식량 자급의 악화 현상도 뒷부분에서 다룬다.

 

먼저 볼 것은, 전체 농가가 어떤 생산물을 주로 생산하는지다. 전체 농가의 44.4%는 쌀(논벼)을 주로 생산하고 있으며, 쌀을 비롯해 잡곡, 감자, 고구마 등 식량작물을 주로 기르는 농가는 전체의 9.9%였다. 채소와 과일 중심으로 농사를 짓는 농가는 33.5%, 특용작물 등 기타 농산물을 주로 기르는 농가는 5.3%다. 또 농가의 6.9%는 축산물을 주로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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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지도는 주요 생산물 기준으로 시군구별 현황을 표시한 것인데, 지역별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전체 농가 숫자가 적은 서울과 5대 광역시는 제외했다. 지도에서 회색으로 표시된 곳이다.) 축산물과 특용작물 같은 기타 작물은 지역별로 큰 차이가 없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축산물이나 기타 작물을 주로 기르는 농가는 10% 이내다. 기타 작물 지도의 중간 부분에 유독 녹색이 짙은 지역은 인삼으로 유명한 충남 금산군이다.) 하지만 쌀, 식량작물, 채소 또는 과일은 지역별로 확연히 나뉜다. 경기 남부, 충청도, 전라도, 경상남도 서부에서는 주민들 가운데 쌀 농사를 짓는 이들이 유독 많다. 감자로 유명한 강원도는 역시 식량작물을 주로 기르는 농가의 비중이 다른 지역을 월등히 앞선다. 경상북도와 경남 동부지역에서는 농민들이 채소나 과일을 많이 재배하는 것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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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의 특성을 1년 판매액을 기준으로 나눠보면, 농사로 돈벌이를 거의 못하는 농가가 절반을 넘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농사는 짓지만 판매를 하지 않는 농가가 전체의 10.6%다. 또 판매액이 500만원 미만, 곧 한달 평균 40만원정도에 불과한 농가가 전체의 42.5%에 달한다. 한달 평균 40만원어치를 팔아서는 비용을 빼고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그야말로 푼돈에 불과하니, 전체 117만 농가의 절반은 자급자족용 농사에 만족하고 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판매액이 이보다 많은 농가 대부분도 형편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체 농가의 26.7%는 1년 판매액이 500만원에서 2000만원 곧 한달 평균 40만원에서 166만원 수준이다. 순수익도 아닌 판매액이 도시 최저생계비 정도에 미달하니, 이들 또한 농사로 돈을 버는 이들로 보기 민망하다.

결국 농사를 통해 돈을 좀 쥐는 농가라고 해봐야 나머지인 20.2%, 가구수로는 23만7775가구다. 18%는 판매액이 2000만원에서 1억원이었으며 1억원 이상을 판매하는 농가는 전체의 2.2%로 집계됐다. (판매액은 순수익과 무관하기 때문에, 이들이 모두 여유 있게 사는 농민이라고 볼 근거도 없다.) 농가 80%에게 농업은 소일거리거나 포기하지 못해 근근이 이어가는 일, 이것이 오늘날 한국 농촌의 냉정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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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 80%의 판매액이 2000만원에도 못미치는 현실이 농사에 전념하지 않는 겸업 농가의 증가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전체 117만 농가 가운데 농사만 짓는 농가는 모두 62만7460가구인데 이 가운데 77.3%가 판매액 2000만원 미만이다. 전업농보다는 1종 겸업 농가(농업 비중이 큰 농가)의 상황이 도리어 낫다. 2000만원 미만 가구가 58.5%다. 반면 2종 겸업 농가(농업 비중이 작은 농가)는 95.8%가 판매액 2000만원 미만이다.

아래 그림은 농축산물 판매액별 농가 분포를 시군구별로 나눠 그린 것이다. (역시 서울과 5대 광역시는 제외했다.) 농축산물 판매를 하지 않는 농가는 예상대로 수도권에 좀더 많다. 500만원 미만 농가가 다수를 차지하는 건 지역별 차이가 거의 없지만, 상대적으로 전남 동부지역과 경남 서부지역, 강원 영동 지역에 더 몰려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경상북도와 전남 서부 지역, 강원 산간 지역에 판매액이 많은 농가 비중이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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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세번에 나눠 봤듯이, 한국의 농민들은 점점 주변으로 밀려나면서 존재감을 잃고 있다. 자연히 농업도 함께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농민들의 소득 또한 좋을리가 없다. 아래 도표는 통계청이 전국 농가 2800곳을 표본으로 조사한 농가 소득과 소비 구조다.(지금까지 인용한 모든 통계는 전체 농가를 조사한 것인 반면 소득 조사는 전체 농가의 0.24% 정도를 골라 조사한 것이다.) 농업을 통해 번 소득이 전체 소득의 31%인 1010만원밖에 안된다. 농민에게조차 농업은 보조 수단에 불과함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통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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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이 위축되고 농업이 극소수의 일이 된 현실에서 식량 자급률이 높을리 없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 한국이 자급하고 있는 건 쌀뿐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이 매년 발표하는 식품수급표 통계를 보면, 2011년 곡물 자급률은 쌀 83%, 보리 22.5%, 콩 6.4%, 밀 1.1%, 옥수수 0.8%다. 곡류 전체로는 23.1%다. 다른 식량의 자급률도 별로 높지 못해서 채소류 90.4%, 과실류 78.5%, 육류 68.8%다. 게다가 그래프에서 보듯 자급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식량 자급은 단지 농민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이는 국민 전체의 생명이 걸린 중대 사안이다. 농민과 농업을 살리는 건 국가의 운명이 달린 문제라는 인식이 시급하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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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주소: 한겨레 데이터 블로그 plug.hani.co.kr/data/1519546
■ 정리된 표 자료 (새창에서 구글 문서도구로 보기): 2010년 주생산물별, 농축산물 판매액별 농가 분포 통계 | 2003년부터 2012년까지 평균 농가소득 | 1984년부터 2011년까지 농산물 자급률
■ 원 자료 보기: 국가통계포털 농림어업총조사

신기섭 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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